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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60화 (260/407)

〈 260화 〉 #111 성장

바로 떠난다는 데 아쉬워하긴 했지만, 수색대의 일로 지치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며칠간 혼자서 그린란드에 있을 순 없었기에 홍유리는 순순히 기다리겠다 했다. 설마 이번에도 따라오는 거 아니냐고 장난으로 묻자 와짝 표정을 구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세베로모르스크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여기서 그린란드해까진 멀지 않다. 바다 위를 달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있으면 지구 곳곳을 다 누비게 될 것 같다고. 정말 평화가 찾아오면 세계 일주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곧 도착한 늑대는 레비아탄의 사체를 뜯어먹는 몬스터의 무리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거대한 몸에 족히 수천 마리의 각기 다른 몬스터가 빼곡히 달라붙어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 깊은 심해에까지 몰려와 탐할 수밖에 없는 재앙의 육신. 심지어 내려오다 수압에 짓눌려 터지거나 정신 팔려 하강하는 놈들을 낚아채는 약삭빠른 놈들도 보인다.

게걸스레라고 말은 했지만, 그 단단한 비늘을 씹을 수 있는 건 일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한계는 있었지만. 그걸 보고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바다의 재앙만이 아니라 디저트까지 알아서 찾아온 셈이니까.

***

"……왔군."

밀봉한 편지를 뜯은 강태준은 찬찬히 읽어내리곤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구축함까지 이용하며 보여주기식 쇼를 한 게 말이 안 되니까. 잡설이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 협력해 달라는 것. 그리고 이를 비밀리에 붙이고 싶다는 거였다.

"몬스터라."

러시아 수색대에는 겨울의 주인까지 있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다른 스퀘어 마스터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을 터.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그래도 쓰러뜨릴 수 없는 몬스터라 생각한 것이리라.

어쩌면 재앙과 엇비슷한 급의 몬스터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비약이겠지만. 그렇게 넓은 땅덩어리이니만큼 처치 곤란한 몬스터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일단 편지가 온 것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쓰러뜨리길 원하지만, 생각보다 정말 그렇게 급박한 상황은 아닐 거라는 점. 흑호처럼 자리 잡고 움직이지 않는 몬스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언급된 건 아니었지만 굳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건 그들이 원하는 건 분명 알파이리라. 그가 직접 쓰러뜨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강태준은 손가락을 튕기다 걸려온 전화를 받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알파가 없는 지금 답을 줄 순 없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 전에 일단 강태호를 만나러 가봐야 하니까.

미리 하연에게 언질 준 대로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인근 병원까지 도착한 건 금방이었다. 깨어난 지도 벌써 사흘 가까이 되었고 생각보다 더 빠르게 깨어났지만… 마냥 좋아할 건 아니었다.

"오, 왔수?"

금세 도착한 병원의 개인실에서 웬 거한이 척 봐도 수백 킬로는 족히 나갈 듯한 덤벨이라 부르기 무안한 거대한 무언가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몸은 어떠냐."

"괜찮은데… 괜찮수다. 금방 복귀할 거요."

스스로도 긴가민가한 것처럼 갸웃거리더니 그렇게 답한다. 몸에 이상이 없단 건 미리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어쩐지 순순히 물러났다 싶었지만, 문제는 몸이 아니라 머리 쪽에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였지만 깨어난 직후에는 멘탈이 무너져 사리 분별이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거, 금방 돌아갈 테니 걱정마쇼."

당당하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강태준은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몸은 괜찮아도 정신 쪽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까. 더 쉽게 말해 강훈과 싸웠을 때의 후유증이 남아있다는 거다.

"……."

재생이나 회복으로 나을 수 있는 몸과는 다르다. 정신 쪽은 더 섬세한 문제. 몬스터가 출현하기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강태호에게는 여전히 환청과 환각이 들리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태연해 보이는 건 그걸 견딜만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지난 사흘간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 자신이 말했던 대로 클랜으로 복귀하는 건 힘들 거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힘들다.

"그래."

그래도 강태준은 별다른 말 없이 끄덕였다. 두 형제의 침묵 속에 시간은 서슴없이 흘렀고 그 침묵을 깬 건 강태호였다.

"말은 들었수다. 클랜 박살 났다며?"

"이 근처로 옮겼다."

서울이 통째로 사라졌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쓰다보니 수원의 새 건물이 아직 적응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양반은?"

"묘연하구나. 또 숨었어."

강태호는 조심스레 덤벨을 내려놓았다. 뻐근한 듯 어깨를 두세 바퀴 돌리던 그가 기지개를 켜고는,

"그냥 그 양반 잡지 그랬어."

"……."

"따지는 건 아뇨. 그냥 그게 더 나았을 거 같다 이거지."

그게 따지는 거 아닌가. 강태준은 실소했다. 대화하는 도중 종종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물론 모든 건 종말을 맞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젠 조금 알 것도 같군.'

아직 살아있을 자신들의 아버지. 칠영웅이라 칭송받았던 그가 어째서 변절자들과 함께하는지를 말이다. 아마도 여왕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것을 보았으리라. 그리고 절망해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개소리. 강태준은 그렇게 일축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더라도 그래서는 안 됐다. 때때로 머리를 감싸 쥐는 동생을 보며 강태준은 다짐했다. 다음번에야말로 네버랜드에서부터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온 악연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

"이익!"

이를 악문 이은하가 바닥을 굴렀다. 무릎이 쓸렸는지 따가운 아픔이 있다. 자신이 뻘뻘 땀을 흘리고 있는 것에 반해 맞선 상대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었고.

예전부터 쭉 바라오던 거였다. 저 여유만만한 얼굴에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한 방 먹여주고 싶다고 말이다. 감정을 담아 바닥을 내리친 순간, 가시가 솟아올랐다.

예상했다는 듯 비켜서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불꽃이 피어올라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팔을 뻗어 주먹 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고 커다란 손에 붙잡히기라도 했다는 듯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다.

심장이 뛴다. 두근거리는 걸 억누르고 마력으로 구현한 말뚝이 순식간에 날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진짜로 죽일 생각은 아니다. 말뚝이 도착할 위치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곳. 그것만 해도 승패는 명확하리라.

꽉 쥔 주먹과 지근거리까지 다가가는 말뚝. 이겼다고 생각한 이은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붉은 폭풍- 그건 특별한 마법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무식한 마력을 터뜨렸을 뿐.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고작 그것만으로 왜곡과 말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뭘 놀라?"

탁탁, 바닥을 치는 꼬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될 줄 알았어?"

어안이 벙벙한 이은하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버리고는 다시 마력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빙빙 꼬여있는 말뚝. 그걸 보고서 홍유리는 눈살을 좁혔다.

"야. 너 그거…"

"갈게요!"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모습. 머리 뒤에서 힘껏 팔을 저은 이은하로부터 비틀린 말뚝이 쏘아졌다. 유난히 커다란 그 말뚝에 분명 감정이 실려있는 것이리라.

애초에 저것 자체가 바다의 재앙에게 막힌 자신의 대마법. 그걸 보란 듯이 카피해 따라 하고 있다는 거다. 거기까지는 좋다. 모방하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 아니, 오히려 권할 정도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이년이 진짜."

감정 싣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아주 듬뿍 담아서 쏘아내고 있다. 딱 봐도 아차 싶은 얼굴이 조절은 안 했을 테고 저걸 피했다가는 벽이 무너질 터.

거기에 맞서 홍유리는 힘껏 주먹질했다. 뻗은 주먹과 말뚝이 맞닿은 순간, 이은하는 억눌린 비명을 질렀지만 깨져나간 건 말뚝이었다.

"어, 어?"

"뭐."

얼굴 찌푸린 홍유리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분명 이은하는 재능을 꽃피워 능히 A클래스 헌터의 반열에 들만한 힘을 얻었다. 마력을 구현하는 것에 있어 자신보다 한참이나 앞서나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을 정도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 이은하의 마력이라고 해봐야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고 대마력과 용혈을 가진 자신과 비교할 수는 없다. 즉, 두루뭉술하게 마력을 두르기만 해도 이렇게 쉽게 깨부술 수 있다는 거다.

"아… 안 되네요. 오늘은 여기까지죠?"

아쉽다는 듯 헤헤 혀를 빼고 웃는 이은하를 보고 홍유리는 코웃음 쳤다.

"멀었어."

"…팀장님…?"

"이제 시작이야."

"호, 혹시 감정 상하신 건 아니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지고 나서야 끝난 대련에 이은하는 바닥에 죽은 개구리처럼 뻗어 누웠고 그제야 속 시원하단 것처럼 손을 턴 홍유리는 연무장 밖으로 나왔다.

……아주 조금이지만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면서.

***

딱딱한 비늘과 차가우면서도 타오르는 듯한 착각을 주는 용의 피. 공허를 일으켜서도 먹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만큼 시간이 지체됐다. 공허가 용린을 먹지 못한 게 아니라 그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놈이 훨씬 거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3km에 100만 톤을 넘는 사상 초유의 괴물이니까. 거기에 더해 사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몬스터까지. 이 지루한 심해 속에서 묵묵히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건 제법 고역이었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은 더 흘러 꼬박 열흘을 채우고야 말았다. 바닷속 심해라 느끼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그렇게 도달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데.

[최후의 희망(재를 거두는 자) Lv.71]

[EXP 17149781 / 29562178]

[업 132.9%] [영량 1130.9m³]

[체장 ―] [체고 ―] [체중 ―]

[힘 735] [민첩 777] [체력 836] [마력 878] [극기 71]

마지막 레벨이 37이었으니 놈을 먹어치우고 34레벨을 뛰어넘은 거나 마찬가지다. 과연 멸망의 끝이란 이름은 괜히 붙은 게 아니란 거다.

하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50레벨을 한참이나 넘겼음에도 제한에 다다르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 100레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레벨을 달성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경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설령 바다의 재앙이 한 마리 더 있다고 해도 힘들지 모른다.

시간이 넘친다면 몬스터의 씨를 말려서라도 억지로 다다를 수 있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문제는 경험치가 부족한 것뿐만이 아니다. 설령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한들 격의 상승을 이룰 업이 부족하다. 얼마나 필요한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흑호의 정수를 받아들인 정도로는 턱없이 모자랄 터.

사실상 지금 이상의 성장은 힘들다고 봐야 한다.

……그럼 생각해보자. 지금의 자신이 흑린과 만상의 주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 그들과 싸울 역량이 되는지를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불가능이었다. 여왕과 두 번 싸워 기진맥진한 만상의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다. 만전의 그녀라면 싸움은 성립하지 않으리라. 최소한 같은 반열에 위치해야 한다. 여왕에게 들은 만상의 주인이 가진 터무니없는 권능. 찰나를 영원으로 늘리는 힘에 대항할 수 없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그 부분을 해결하면 미약한 승산 정도는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 성장에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만큼 초월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이니까. 이어서 늑대는 스킬을 확인했다.

[보유 스킬 목록]

[外] - (0)

[A] - 광폭화↑(4)

[B] - 심안↑(7)

[C] - 마촉수↑(10)

[D] - 아공간, 영안↑ (7)

[E] - (0)

[F] - 요정어 (1)

[남은 스킬 포인트 60]

스킬 포인트로 획득한 광폭화. 혜견과 초감각 그리고 예지가 하나 돼 도달한 심안. 가시 촉수가 최대 레벨에 오른 마촉수. 수납의 등급이 상승해 도달한 아공간. 그 외 스킬에도 이런저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시각, 후각, 청각의 세 감각들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C등급에 도달해 뛰어나다는 수식어가 초월한으로 변했다는 것. 그리고 기존 E등급이었던 투시가 영안으로 변하는 등 E등급 스킬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만복이 9레벨에 걸쳐있는 그대로 다음 등급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단 거였다. 진작에 그랬지만 바다의 재앙을 먹음으로써 B등급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성장할 수 없는 잠식과 연계해 A등급 스킬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영 아쉬웠다.

일단은 여기까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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