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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62화 (262/407)

〈 262화 〉 #112 새 집

8 소리 없이 조용히 고치 속에 들어가 있는 페리의 모습에 늑대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탈피하는 모습 자체를 본 적은 없지만 이건 탈피라기보다는 곤충의 변태에 가까워 보였다.

"놀라게 해주고 싶은 모양이더군."

"……."

"진작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지만."

함께 있고 싶어 탈피하지 않았다는 듯하다.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대견해졌는지.

"언제쯤 끝날 것 같아?"

"글쎄…"

긴가민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백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라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더군. 당장 일수도 있고 훗날이 될 수도 있다고."

오래된 용이 그렇게 말했다는 듯하다. …역시 지금 당장은 깨어나지 않을 모양이다.

잠깐 영안으로 살핀 결과, 고치 안에서 꿈틀거리는 페리를 볼 수 있었다. 마치 심장처럼 고동하는 하얀 고치 속에서 허물을 벗고 있는 모습에 늑대는 고치 위에 손을 올렸다.

"……."

그래. 이 안에 페리가 있다.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을 테고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 사실 자체에 묘한 감상을 품었다.

돌아온 페리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변하던 마찬가지. 넝마가 된 자신의 옆에서도 몇 번이나 변하고 변해도 쭉 함께였으니까.

"데려갈 거니?"

여왕의 물음. 늑대는 고개를 흔들었다. 페리가 원한 건 자신을 깜짝 놀래켜주는 거였으니까. 물론 종종 들를 생각이었지만 페리의 바람을 깰 생각은 없다.

"그래.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구나. 내가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 모양인지 여왕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이미 며칠이나 지났지만 여분의 삶이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늑대는 아까 했던 생각을 그대로 전했다. 집이 완성되기도 했으니 그녀를 부양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 만상의 주인의 위협. 그 때문에 눈길이 닿는 곳에 있어 줬으면 한다고 말하자 여왕은 눈을 크게 떴다.

"요정들이 함께라도 상관없습니다."

홍유리는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그 경우에는 집을 비워주고 다른 장소를 찾으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돈 따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강태준은 그러기를 바라는 모양이었고. 하지만 여왕은 웃으며 거절했다.

"아직은 더 여기 있고 싶구나. 거긴 익숙하지 않으니까."

비록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나 그녀의 원래 세계가 어떠했는지 알기에 군말 없이 끄덕였다. 어차피 노파심일 뿐이었으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나으리라. 대신, 종종 들리면서 확인하면 될 테니까.

"그래도 나중에 다시 물어봐 주겠니?"

기꺼이 끄덕이자 다시 기껍게 웃어 보이는 여왕. 가만 그녀를 바라보다가 어쩐지 백록이 뚱한 시선으로 보기에 그만두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지만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환수가 듣기엔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그날은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잠든 페리의 곁에 있다가 지리산을 떠났다.

***

"그래? 탈피?"

신기하다는 듯 말하는 홍유리. 한번 봐보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시간 나면 보러 가자고 말했더니 잠깐 눈을 반짝였다. 페리가 어떤 모습이 될지 또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같은 마음이다.

이전 탈피에서는 동양의 용에 가까운 모습에서 두 쌍의 날개를 지닌 서양의 드래곤과 흡사하게 변했었다. 이번엔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된다.

탈피에 관한 이야기를 미뤄두고 늑대는 원래 하려 했던 말을 꺼냈다. 다름 아닌 집에 관한 이야기.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자 가만 듣던 홍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집이 완성됐다고?"

"네가 전에 억울해했으니까."

탕아들의 침공으로 불타버린 서울의 집. 무척 열 받아 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을 구해뒀다- 거기에 홍유리는 어쩐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답지 않은 기색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니까, 집에 와서 살라고?"

아까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반응에 늑대는 속으로 웃었다. 누가 알고 있을까. 여명 제일의 마법사이자 성질 더러운 헌터라 알려진 그녀가 알고 보면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걸.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그래. 예전처럼."

"……."

"같이 있어 주겠나?"

바라는 말을 해주자 꼴깍, 목울대가 넘어가고 홱 돌려 딴청 피우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는 옆얼굴에 홍조가 떠 있었다.

"뭐, 그렇게까지 바란다면야…"

거드름 피우며 생색내는 모습. 그런 주제에 기뻐 보여 굳이 딴지를 걸진 않았다. 저런 모습을 보면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럴 시간은 나중에 얼마든지 생길 테니까.

곧 강태준이 알려준 주소를 향해 그녀와 함께 길을 거닐었다. 종종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나는 산책 중인 강아지를 보는 듯한 눈이었고 다른 하나는 헌터들의 시선. 한눈에 알 수 있는 특징적인 홍유리의 외견과 그녀의 소속으로 미루어 자신이 누구인지 추측한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신기해하는 눈빛이었지만 새삼 신경쓰진 않았다. 클랜에서처럼 커피 같은 공물이라도 바쳐오는 게 아니면야.

"어째 네가 더 눈에 띄나 본데."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까지 자라난 사람은 달리 없을 텐데…… 나름 숨기기는 했지만 그 특징적인 붉은 머리 붉은 눈에 더해 눈길을 안 끌래야 안 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어쩐지 홍유리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가려 했지만 열렬한 눈빛으로 따라오는 웬 어린애가 있었기에 잠깐 눈길을 피한 사이에 촉수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읏!"

그러자 억눌린 비명을 토해내며 골목 사이로 마구 달려 도망친다… 아니 왜?

"너 뭐해?"

어쩐지 한심하다는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홍유리의 모습. 알고 묻는 것이리라. 쭉 따라오기에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잘하는 짓이다. 애나 울리고."

시큰둥한 말에 늑대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차라리 비가시화로 모습을 숨기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았을 때,

"여기네."

지도를 찾아 도착한 곳에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이라기보다는 저택에 가까웠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도시 한복판에 세웠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울타리까지 새로 지은 모양. 어쩌면 학교의 옛 터 같은 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만한 부지가 집과 마당이 됐다는 뜻.

"하, 스케일 참."

정작 스퀘어에 저택을 세웠던 홍유리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기대하던 것과는 달리 쉽게 문을 열지 못하자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 건 아니고. 좀 꺼려져서."

"……?"

"아니, 그렇잖아. 재수 옴 붙은 것도 적당히 해야지. 스퀘어도 그렇고 서울도 그렇고 집이란 집은 다 무너졌잖아."

그러고 보니 두 번째였다.

"그니까 세 번째가 걱정 안 되게 생겼어?"

보험이라도 들어야 하나? 하지만 있었던 일들이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지라 어쩔 수 없기도 하다. 특히 스퀘어가 추락한 건 더더욱. 질병이 그렇게 나올 거라곤 예상치 못했으니까.

아무튼, 걱정을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무난한 밝은 색상의 인테리어가 무리 없이 공간을 소화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저곳에 파스텔을 칠한 듯한 색감이었다.

"……괜찮네."

홍유리의 감상. 불만 없는 것처럼 보여 다행이다. 1층에서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총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는데 옥상까지 있어 느낌이 묘했다.

일반적인 가정집과는 동떨어져 있다. 길게 늘어진 복도에 구조가 비슷하고 넓은, 많은 방들이 줄지어져 있어 마치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가구와 생필품도 어느 정도 구비돼 있어 신경 써준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뭐 헌터 때려치우고 숙박업 해도 되겠네."

정말 그랬다.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최상층인 4층에는 함께 쓰라는 건지 유독 커다란 방이 있었고. 집을 전체적으로 둘러본 늑대는 홍유리의 옷깃을 잡았다.

"왜?"

"아직 보여줄 게 남았으니까."

의아해하는 그녀를 데리고 2층으로 갔을 때, 여느 때처럼 놈들이 만들어 둔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좁았지만 허리를 숙이면, 홍유리는 고개를 숙이는 정도로 지날 수 있는 곳이었다.

"설마……"

묘한 기시감. 고원을 따라 곳곳을 누볐던 홍유리였기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상이 현실이 된 것처럼 드러난 장소는 커다란 아지트였다.

이단의 탕아들. 놈들이 준비해 둔 공간이리라. 절차의 문제인지 아무것도 없이 전부 비워져 있었는데 홍유리는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든다는 듯 코밑을 쓸었다.

"좋네. 통로만 새로 뚫음 되겠어."

만족스레 웃는 홍유리. 혹시 불쾌할까 했는데 다행히도 불만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그 얄미운 놈들이 쓰던 곳을 자신이 뺏어 쓰게 됐다는 데 속 검은 미소를 지어보일 정도로.

아무튼, 그렇게 별 탈 없이 집 구경을 끝마치곤 홍유리는 홀로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세 번째 집이 무너지겠느냐며.

***

해가 저물고 밤이 되자 늑대는 자신의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기껏해야 홍유리와 백소율. 하지만 바로 맞은편에 있는 홍유리가 전화를 걸 리 없기에 백소율이리라.

그렇게 생각해 받았더니, 의외의 인물이었다.

[여보세요?]

긴장이 역력한 목소리. 꼴깍 침이라도 삼킬 듯한 소리가 전파 너머로 들려왔다. 백소율에게 물어 알게 된 걸까? 언제부터인가 TV를 보던 홍유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은하?"

[와. 맞구나!]

신기해하는 반응. 놀라 하는 그녀가 즐겁다는 듯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홍유리는 통화하는 상대가 이은하임을 알자마자 관심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게…… 내일 시간 괜찮아?]

잠깐 생각해 보았다. 빠르면 6월 말에 종말이 닥쳐오는 만큼 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다. 촉박하다. 사실,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까 집의 위치를 귀띔 받으며 들었을 때, 이틀 후에 러시아로 출발할 거라고 했었다. 어차피 그럴 거라면 하루쯤은 괜찮으리라.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까. 금세 통화를 마치고 홍유리를 보았지만 역시 관심 없어 보였다. 만약 백소율이었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괜찮겠나?"

그래도 예의상 물었더니 대강 끄덕이며,

"어. 상관없어. 갔다 와. 근데."

"……."

"못 걸으면 못 나가겠지."

어쩐지 그 말이 못 나가게 해버리겠다는 듯 들려와 늑대는 쓰게 웃었다. 내일 이은하가 더 고생할 거란 듯 들려왔으니까.

***

날이 밝았을 때, 이른 아침. 늑대는 대문 입구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는 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파가 몰려있는 이유에 의아해했지만 그네들의 말소리를 듣고 금세 알 수 있었다. 새로 지어진 이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확실히 불을 켜놓았으니까…… 다만,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고 금세 흩어져 사라져갔다.

마침 들리는 알람이 울렸지만, 홍유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렸지만 깨어날 기미가 없자 꺼진 알람을 대신해 알람을 깨워 출근할 시간이 됐다고 알려주었다. 비몽사몽해있던 홍유리는 고양이처럼 드러누워 기지개를 켜더니 눈 밑을 문지르곤 일어나더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그냥 쉴까."

하기야 밤새 잠들지 못했으니 그러하리라. 이은하를 못 걷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때는 언제고 이불에 잠긴 것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흔들어 깨우니 알겠다고 답해왔다.

이제 출근하고 다시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리라. 드물게 평화로운 하루였고 그래서 문득 생각하고 말았다. 이 일상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종말을 막아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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