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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67화 (267/407)

〈 267화 〉 #117 불모지

"……?"

무언가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하지만 돌아봐도 색적을 사용해봐도 느껴지는 게 없었기에 잠깐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바다를 거쳐 거의 직선으로 아프리카까지 대략 8000km 정도의 거리를 달린 늑대는 가는 길에도 쉬지 않았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운 없는 몬스터들은 그저 먹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의 직선으로 중국과 인도를 가로지르고 아라비아해의 바다 위를 달려 소말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소말리아라는 국가가 남아있을 리 없다. 부서져 미미한 잔해만 남은 공간 정도가 오랜 옛날 사람의 손이 닿았던 장소임을 알려줄 뿐.

햇볕이 뇌리째 지면을 달구고 있어 제법 더운 날씨이나 몬스터가 살아가기에 문제 있는 정도는 아니다. 또한, 사람의 발이 닿지 않아서인지 여태껏 보지 못한 괴상망측한 몬스터들이 제법 많았다.

예를 들어, 바닥에 눌어붙은 녹아버린 슬라임 같은 몬스터. 그러나 저게 미약한 등급의 은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슬라임이던 시절에 자신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다만, 푸른색 계열이 아니라 붉은 슬라임이라는 게 달랐다. 그리고 수분이 적은지 훨씬 더 끈적끈적해 보인다는 것도.

곧 붉은 슬라임은 햇볕에 달구어진 모래 속으로 숨어들더니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먹이가 근처에 오면 단번에 덮칠 생각이 아닐까.

그리고 조금 뜬금없지만, 선인장이나 바오밥나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바싹 마른 종류 모를 나무도 있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몬스터였다.

곳곳에 섞여 평범한 나무로 위장해 있는데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탐지 계열 스킬이 아니었다면 늑대마저 깜빡 속았을 정도로 빈틈없는 위장. 속으로 감탄하며 잠깐 궁금해져 그 앞에 섰을 때 여러 나뭇가지들이 단번에 뻗어져 찌르려 했다. 생각보다 더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에 조금 놀랐지만 영량을 펼치는 것만으로 전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림자 속으로 자신의 가지들이 빨려 들어가 사라지자 화들짝 놀란 놈이 발버둥 쳤고 늑대의 눈에 보인 건 조금 신기한 광경이었다.

바닥에 내린 뿌리를 뽑아내더니 그게 서로 휘감겨 얇은 다리를 만들어낸 것. 움직임은 턱없이 느렸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탄이 나왔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곤 뿌리의 다리로 바닥을 짚고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 고작 그 정도로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다.

곧 영량은 놈을 새까맣게 집어삼켰고,

[트렌트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트렌트―― 종종 게임 매체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나무 정령과 비슷한 몬스터의 이름. 다른 곳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녀석이 경험치로 변해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한 건지 주변의 나무들이 꿈틀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까처럼 그 앞에 섰을 때, 덤벼오기는커녕 단단히 위장한 채 나무인 척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확실하게 겁을 집어먹은 모습에 늑대는 실소하고 말았다.

곧 그것들을 처리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과연 불모지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로 위장한 몬스터나 곳곳의 몬스터들이 주는 경험치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아프리카에 있는 것들은 죄다 커다랗다고. 정말 그 말대로였다. 같은 몬스터라도 다른 곳의 몬스터보다 크고 강해 보이는 것이 아마 그런 녀석들만 살아남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 말인즉, 양질의 경험치가 곳곳에 널려있다는 뜻이다.

"―――!"

심지어는, 아까 자신이 나무들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고도 겁먹기는커녕 분기해 달려드는 녀석들까지 말이다.

늑대는 자신의 그림자, 영량을 넓게 펼쳤다.

***

"―――♪"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요즘 따라 기분 좋아 보이는 아넬라의 모습에 백소율은 솔직하게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그녀의 연애 사업. 부상으로 요양 중인 세검사와 종종 만나는 듯하더니 생각보다 잘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여명으로 오고 난 뒤, 자신 또한 알파에게 안기게 되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지금의 관계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부럽다고 생각했다.

더 같이 있고 싶고, 더 함께하고 싶다.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거기에 더해 혼자 독점하는 게 아니니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빨리 더 많은 마법을 배워야만 한다… 빤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넬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그래요?"

"좋아 보여서요."

약간 홍조를 띠며 얼굴을 발그스레 물들인 아넬라가 괜스레 헛기침했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은 대체 어딜 갔는지.

"뭐, 좋긴 좋네요. 그러는 소율 양이야말로 어때요? 원하는 건 이미 얻었잖아요?"

그날, 밤늦게 들어와 행복해하던 백소율의 모습을 떠올린 아넬라가 되묻자 천천히 끄덕인 백소율은 다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알파와 관계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아직 선생님의 위치가 공고했으니까.

……그래서 은하 언니를 부르려 했지만, 아무래도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알파가 자신에게 전화해 말했으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과 은하 언니의 문제라고.

또한, 이야기를 들어 보건대 이미 차였다는 모양이니까. 서로 마음이 있단 걸 알고 있었던 자신 또한 쉽지 않았는데 은하 언니는 더 그러하리라. 오히려 자신이 선례로 작용했기에 알파는 더 한사코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건 선생님에 대한 의무감이기도 할 테고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만들어졌지만, 역시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마법까지 배우고 있는 이상 지금 당장 선생님의 자리를 넘보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솔직히 말해, 고작 자신이 마법을 배워봤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이것조차 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 옆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듯 그의 옆에 남아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결의를 다진 백소율이 홀로 끄덕였을 때, 문득 떠올랐다는 듯 아넬라가 말을 걸었다.

"아차, 들었어요?"

"네?"

"조만간 떠난다고 하네요."

떠난다…… 백소율은 무겁게 끄덕였다. 애초에 여명에 들른 것은 환영의 나비― 스승님께서 아들의 묘가 묻힌 곳을 찾으러 방문한 것뿐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어 생각보다 오래 머무른 거였지 떠난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괜찮겠어요? 정 힘들면 남아도 될 텐데."

가만 물어보는 모습에 백소율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 남아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대견하네요. 사실 아쉬운 건 저였는데. 그냥 남아버릴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에이~ 이러면 소율 양 핑계는 못 댈 것 같네요."

후후 소리 내 웃은 아넬라는 곧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장난이에요. 그보다, 들었나요? 조만간 네버랜드가 다시 열릴 것 같다네요."

"그건……"

"그렇죠? 맞아요. 생각보다 훨씬 빠른 거."

네버랜드가 폐쇄된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지만 다시 열린다는 건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원래라면 1년 내지 2년의 텀을 두고 열리게 돼 있을 텐데 조만간 열릴 것 같다니…

"그래서 벌써 팀을 꾸리고 있다네요. 그리고 스퀘어 마스터들에게는 전부 협력 요청이 들어왔고요."

"스승님은…"

"아직 답은 안 하셨지만 승낙하실 거예요.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만큼은 클리어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있어요. 그래서 다들 한자리 차지하려고 난리일걸요?"

어느 때보다 공략대의 규모가 커질 거란 말에 백소율은 천천히 끄덕였다. 클리어를 확신하는 이유. 분명 알파가 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이 될 공략대에 참여해 이름을 알리거나 전리품을 더 분배 받겠다는 심산일 터. 그의 참전이 판도를 완전히 뒤바꾼 셈이다.

"앗. 혹시 낭군님한테 숟가락 얹는다고 불편해하는 건 아니죠? 너무 화 내진 말아요. 그거야 뭐 당연한 거니까."

안전이 보장된, 클리어가 확실한 던전에 가지 않을 멍청이는 없다.

세간에 자색의 흑호를 쓰러뜨린 게 알파임을 발표한 건 여명. 아직 정식 발표는 하지 않았어도 바다의 재앙 또한 마찬가지. 속 사정을 알고 있는 이들은 역병과 질병까지 모든 재앙을 알파라는 전대미문의 마랑이 모두 쓰러뜨렸음을 알고 있다. 아무리 소문을 막아봤자 입에서 입으로 새어나가는 걸 전부 틀어막기란 불가능하니까. 따라서, 알파가 참전할 거라 예상하는 모든 클랜이 네버랜드에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거다.

"대단하네요."

백소율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알파의 이름이 어떤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 것도.

"아무튼, 어머님이 가시면 아마 소율 양도 참전하게 될 거예요."

"……."

"그리고 그때는 제자가 아니라 후계자였으면 좋겠네요."

별안간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것에 백소율은 조심스레 되물었다.

"원하지 않으세요?"

아넬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하지 않는다고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종종 꿈에서조차 후계자가, 스퀘어 마스터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에게는 재능이 부족하다. 다른 것도 아닌 마법이라는 학문에서 재능이 차지하는 영역은 노력보다도 훨씬 더 절대적이다.

천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범재는 고작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닿지 않을 때가 많다.

어머니가 그랬고 아가일이 그랬다. 그 재능을 물려받지 못한 자신에게 후계자라는 자리는 너무나도 과분하단 걸 스스로 실감하고 있다.

수재라고는 불릴 수 있어도 고작 그 정도로는 한참이나 부족하다. 천재가 아니면 그 자리엔 결코 앉을 수 없다. 스퀘어 마스터와 후계자의 자리는 그렇게 가볍지 않으니까.

"……소율 양이라면 가능할 거예요."

사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스퀘어의 마법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환영의 계파를 아무렇지 않게 탐독해나가는 그녀를 보고 부럽다고 느낀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자신이 저기까지 닿는 데 얼마나 걸렸지? 익히는 데 쓴 시간은? 그리고 앞으로 추월당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어쩌면 이미 추월당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따라 그녀의 수준을 읽기 힘들어졌으니.

마법이라는 영역에서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뭐~ 소율 양이 후계자가 되면 나도 이것저것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알듯 말듯 한 미소. 그동안 연애라도 즐기고 있을 테니 실컷 고생하라는 말에 백소율은 고개를 주억였다.

***

차원의 틈을 비집고 열어젖힌 순간, 황폐하고 척박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을 보기 힘들 만큼 짙고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고 곳곳에 검은 잿불이 타오르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피처럼 붉은 달과 불길한 회색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상상 속의 지옥이나 마계와 흡사한 모습이다. 곳곳에 있는 몬스터들조차 지구의, 여태 보았던 몬스터와는 아예 궤가 다른 형상을 취하고 있다.

꿈틀거리는 촉수나 바닥을 기는 날개 꺾인 새. 기형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고작 이깟 것들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소녀는 조금 먼 곳을 바라보았고, 거기엔 홀로 우뚝 선 고성이 있었다. 아마 거기에 그녀가 있으리라.

그 기원도 정체도 명확하지 않은 또 하나의 초월자. 감정을 먹는 검은 도깨비불, 흑린.

……확신이 없었기에 타차원에 들르는 것은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제 뒤가 없다. 곧 종말이 찾아오는 이상 어떻게든 신혈을 구해 엘릭서를 완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온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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