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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81화 (281/407)

제 281화

#123 Extraordinary

홍유리의 마안에 기대어 그녀를 선두로 강훈을 쫓기 시작한 척살조. 선두의 홍유리와 임시 2팀장이자 궁수인 이기준의 뒤에 나란히 선 강태준은 잠깐 뒤를 스치듯 보았다.

3팀의 부팀장인 전우택과 그 뒤에 동생이 무식한 스틸 자이언트의 팔뼈를 마치 몽둥이처럼 짊어지고 따라오고 있었다.

"신경 쓰이십니까?"

달리는 와중 이기준이 물어오는 말에 강태준은 시선을 돌렸다.

"아니. 괜찮다. 알아서 극복할 테지."

눈동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악귀ㆍ원령에게 당한 후유증 따위는 금세 떨쳐버릴 수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불안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그것은 직감이고 육감. 어쩐지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들었다. 모습을 드러내고 그리 당당히 선언했다면 척살조가 만들어질 거란 사실을 한때 칠영웅이었던 그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팀장님이야 워낙 뭐… 예. 뭐 아시잖습니까?"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신 이기준은 머리를 흔들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덥잖은 농담 같은 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앞에서 홍유리가 추적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니까. 쫓는 건 그녀의 역할이고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게 동선을 짜는 건 궁수인 자신의 일이었다.

"이쪽이에요."

그녀의 말에 진행 방향에 있는 몬스터의 무리를 느끼곤 나무에 올라탔다. 면면이 면면인 만큼 어지간한 몬스터는 우습지도 않지만 가능하면 싸우지 않는 게 최선이니까.

거의 몬스터를 조우하지 않고 안전하게 추적을 이어나간다. 그럴 만한 동선이기도 했지만 홍유리가 펼친 은신의 장막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계속해 흔적을 따라가니 다소 난처한 상황이 됐는데 몬스터의 무리가 네버랜드에 입구로부터 계속 쏟아지고 있는 게 보여서였다.

"……."

척살조는 너 나 할 것 없이 침묵했다. 네버랜드에선 처음 보는 유형의 몬스터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명확하다.

"5구획……"

단 한 번도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5구획의 몬스터들.

1구획은 미궁과 미로 그리고 광장. 2구획은 광활한 숲이었고 3구획은 환각의 외길, 4구획은 식물 정원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5구획의 몬스터가 분명할 텐데도 도무지 그 테마를 알 수가 없었다. 평범한 오크가 있는가 하면 2구획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가 있었고 새장 속에 비행형 몬스터가 힘없이 갇혀있기도 했다.

테마를 알 수 없는 무작위의 괴물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든 것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니, 어쩌면.

네버랜드는 애초에 인위적으로 설계된 테마파크. 각 구획은 다소 그런 특성을 띠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인위야말로 구획의 특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윽고 좁은 틈새를 비집고 불타는 거인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어디까지 도망치려고?"

지겹다는 듯, 이제 끝내자고 하는 말. 674개의 이미 끝을 맞은 세계를 지나 몇 번일지 모를 술래잡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철저히 싸움을 피하던 만상의 주인은 이제 더 도망칠 길이 없단 걸 깨달았다. 아직 차원은 한참이나 더 남아있지만 여력이 없어서. 남아있는 그걸 마시면 더 도주할 수 있겠지만 그래봤자 잡히고 만다.

"……."

검은 불꽃이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세계를 뒤덮어가기 시작했다. 공간 자체를 불태우고 지배하며 영향력을 펼쳐나간다.

그에 반해 자신에게 여력은 얼마 없다. 첫 싸움에서도 밀렸고 그나마 비축해뒀던 마력마저도 대부분 소모하고 말았으니까.

그렇게나 발버둥 쳤는데 아직 차이가 있었구나. 그 사실이 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히 수긍하며 받아들였을 뿐. 새삼스레 일희일비할 만한 그런 감정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영락한 여왕을 기준으로 잡아 흑린을 얕잡아 보았던 게 패인이었을 뿐이다.

그래. 자신은 여기서 실패했다.

합당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원죄 혹은 죄악. 그런 진부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니까. 당연 속죄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하다못해 자신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던 흑린에게 죽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길은 서서히 자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곧 한 줌 재조차 남기지 않고 불살라지겠지.

미련은 없다. 후회도 없다. 그저 실패했을 뿐.

…….

정말 그런가 하고서 소녀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역시 거짓말이다. 아무래도 좋았다면 이렇게 발버둥 쳐 왔을 리 없으니까. 억지로나마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끌어올려 맞섰다.

그때, 천천히 세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덧없는 모습에 흑린은 조소를 띠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이건 영원의 요람이 아니다. 만상의 주인이 펼친 권능이 아니라는 거다. 그녀에게는 그럴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면 누가?

떠오르는 이는 하나 있었다. 자신 말고도 초월자라 불릴 만한 이는 있었으니까. 한때는 여신이라 불리었던 타 차원의 존재. 그러나 몰락한 그녀가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느샌가, 흑린의 귓가에 어떠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울부짖음.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무언가가 담긴 짐승의 소리였다. 설마 하는 순간, 흑린은 자신의 불길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착각.

세계가 느려지는 게 아니었다. 이미 끝을 맺은 이 세계가 사라지고 있는 거였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이건……!

"――――――."

차원 자체를 집어삼키고 있다. 어떤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짐승이 그러한 권능을 발하고 있었다……!

***

사라져가는 식물. 인류가 토벌하지 못한 정원의 주인이 힘없이 쓰러져있었다.

아우라우네. 난공불락의 던전 네버랜드의 제4구획 보스이자 4구획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존재를 여왕은 어렵지 않게 쓰러뜨렸다.

당연하다. 한참이나 격이 다르니까. 아이와 어른 이상의 차이가 거기에 있었다.

다만, 백록은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힘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여왕의 몸에 무리가 가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여왕 자체의 문제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창백한 안색으로 변한 여왕이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힘이 빠져 있었다.

"걱정 말렴.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란다."

차갑게 열이 식은 듯한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백록은 마력으로 하여금 그녀를 자신의 등에 태웠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이 정도뿐이었으니까.

이걸로 느껴지는 기척 중 가장 위협적인 것들은 처리했다.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단신으로 3구획과 4구획의 보스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이제 남은 몬스터들은 저들이 처리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던 백록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차원의 틈새를 비집고 여기까지 느껴지는 존재감. 그것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보았던 역병과 질병에게도 크게 밀리지 않는 괴물이었다.

저 건물들 너머에서도 똑똑히 보이는 불타는 거인.

달뜬 숨이 뱉어진다. 여왕이 다시 움직이려 하자 백록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계에 달했다. 여왕에겐 분명 여력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육신이 견디지 못할 거다.

"……."

그런데 어째서인지 여왕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왜?

백록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게 이곳이 아니라 더 먼 곳임을 알 수 있었다.

***

[공허(A)― 격의 상승 3/3]

마침내 조건을 충족시키고 격의 상승에 다다른 순간, 공허는 새로운 영역을 향해 발돋움했다.

그것은 빌려서나마 아주 잠깐 맛보았던 지고의 경지. 등급으로 표기할 수 없는(Extraordinary) 규격 외의 영역이었다.

그 순간, 늑대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

그것은 노이즈. 잡음. 아무 규칙성도 없고 의미도 없는 처음 듣는 말이었으나 어쩐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리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문자나 언어 같은 하잘것없는 게 아니라 훨씬 아득한 곳에 있는 무언가였다.

소리를 들은 순간 늑대는 더 이상 흑린의 성에 있지 않았다. 그곳은 깊디깊은 심연.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타차원의 무언가와 의식이 연결된 것이다.

그것에겐 실체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또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지금의 자신에게마저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것. 초월의 영역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무언가였다.

'신은 없단다. 오직 진리만이 있을 뿐.'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말. 여왕과의 문답이 떠올랐다. 직관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이름에 합당한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

그것이 의지만을 전달해 자신에게 물어온다.

그것은 단순한 물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늑대는 그것의 극히 일부나마 엿볼 수 있었다.

법칙이고 무질서. 기억이고 기록이며 세계이거나 우주였고 혼돈이거나 공허였다. 종말이기도 했고 창조이기도 했다. 가장 고귀햐 동시에 미약한 그것은 하나인 것처럼 보였으나 전부이기도 했다.

세계의 모든 것. 삼라만상의 전부가 거기에 있었다. 아니, 세계가 그것이었고 그것이 세계였다. 여왕의 말을 빌려 진리라 불리는 그 존재는 늑대가 보아온 그 어떤 것과도 비교를 불허했다.

마치 개미라도 된 것만 같다. 그 아득함 속에서 늑대는 진리의 다른 면을 보고 말았다. 처음으로 절망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진리의 이면이자 세계의 끝.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최후의 목표이기도 했다.

별을 먹어 치우고 세계를 지워가는 그것의 눈에 자신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무가치한 것을 보듯이.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것처럼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다.

그것, 종말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어렴풋한 작은 빛이 있었으니까.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단세혁. 자신에게 새겨진 시스템의 자아이자 원작의 주인공이었다. 즉, 이곳은 원작의 평행 세계. 단세혁이 살았던 세계였다.

하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왜 여기에 오게 됐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단세혁이 부른 게 아니라는 것. 그가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었으니까. 즉, 진리라는 존재가 자신을 이곳에 부른 거였다.

그러나 아까의 노이즈는 들리지 않는다.

침묵하던 단세혁은 별안간 사과의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떠맡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삼스러운 말이다. 이제 와서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로. 불합리했지만 진작에 납득한 거였다.

[그런데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고작 이것뿐입니다]

빛무리. 잃어버린 자들.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그 자체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그들에게 남아있는 얼마 되지 않는 마지막 업. 흑호의 정수는 물론 늑대가 지금 가지고 업에도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지금에 이르러 새삼스레 변할 건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단세혁은 종말을 가리켰다.

[그 누구도 종말을 막을 순 없었으니까요]

쓴웃음을 지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종말은 진리의 이면. 섭리를 위해 우리의 세계는 사라져야만 했습니다. 새로이 태어날 세계를 위해 낡은 세계를 없애는 것이 종말이고 그 일부가 멸망]

[진리의 의지는 세계의 섭리. 우리는 신에게 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늑대는 어떤 말을 떠올렸다. 신을 거부한다는, 이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떠한 조직을.

[그런데도 해야만 했습니다]

당연한 말이다. 설령 쓸데없는 발버둥에 불과하더라도 가만히 죽음을 맞이할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실패. 실패. 실패… 그리고 실패가 쌓이고 쌓여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무수하게 사라져간 세상. 자신에게 스며든 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단세혁은 그리 말했다. 실제로 자신은 몇 번이고 무너지려 했다. 페리와 백록이 아니라면 분명 그리됐으리라. 그 외에도 앞을 가로막는 건 많았다. 인류와의 엇갈린 마찰. 시련과도 같은 괴물들이나 재앙. 온갖 불합리함을 겪어왔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당신은 여기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실패의 끝에서 드디어, 마침내 가능성은 열렸습니다]

진리가 자신을 이곳에 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늑대 자신의 의지가 스스로를 종말을 맞은 이곳에 이끌었던 거다.

진리의 속삭임은 단순한 계기에 불과하다.

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것에게서 비롯된 거라면 스킬이라는 것조차 그것에게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나아가십시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말인즉, 등급 외의 스킬이라는 것은.

'……이제 알겠어.'

진리를 벗어난 것. 정해져 있는 등급이라는 규격으로 감히 정의할 수 없는 별격의 힘이라는 뜻이다. 통제를 벗어난 아득한 곳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힘이자 권능.

[혼무(混無)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그것이 등급 외(EX)의 스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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