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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04화 (304/407)

〈 304화 〉 #137 분리

* * *

"……!"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건 만상의 주인이었다.

몇 개인가 차원이 떨어져 있더라도 이런 커다란 파동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확립되어가며 벌어지는 이변.

자아가 확립되어 하나였던 세계는 다시금 원래대로 분리되려고 한다.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뿐,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불가능이라 단정 지었을 정도였는데 뜻밖에도 성공해 버렸다.

만약 그 대상이 희망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

즉, 이번에도 희망은 넘어선 셈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예상과는 달랐던 거겠지. 초월의 영역에 다다르지 못했음에도 그 안에서 미약하게나마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거다.

성공한 지금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을까.

세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았던 이유.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

'…아무래도 좋아.'

희망이 종말을 상대로 시간을 벌어 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근원이 뱉어내는 스킬은 이제 제법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머잖아 완전히 흡수한 뒤, 근원에 남게 될 건 그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때야말로 종말을 쓰러뜨릴 수 있는 적기일 터.

'그때를 준비하기만 하면 돼.'

***

작은 늑대의 무리. 그건 여럿으로 찢어지고 흩어졌던 늑대의 의식이었다. 즉, 그것들 하나하나가 작은 늑대라는 뜻.

문제는 그것들이 어렴풋한 불꽃과도 같다는 것.

"……."

세계와 분리되어 자타의 경계를 찾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허나, 만상의 주인을 먹어치우며 획득했던 업은 세계와 동화하는 기적을 이룸으로써 소실했고 육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1000을 넘겼던 스테이터스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 정신체의 격은 모두 소실했다는 뜻이다.

즉, 이전 여왕의 상태와도 흡사하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육신의 격이 영혼의 격에 받쳐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육신 자체가 남아 있질 않다는 정도일까.

"너어…"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이들을 보고서 늑대였던 의식들은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재를 거두는 자.

몇 번인가의 진화를 통해 도달했던 그 강한 육신은 더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작은 늑대의 무리는,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건 서로를 죽이는 살육전… 이라기보단 반복적인 작업같았다.

육신이 없기에 피와 살은 튀지 않았지만 불꽃이 튀어 번지더니 더욱 큰 불꽃이 되어 간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머잖아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내려다보는 것에 말을 잃어 버렸다.

[……]

타오르는 화염은 언뜻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듯싶었지만 분명 한 줄기 감정이 스치고 있었다. 마치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자네가 맞는가?

의문 섞인 물음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업 4396.8%]

흑린과 그 검을 먹어치우며 스며든 업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남아 있었으니까.

***

늑대의 의식이 분리된 이후에도 세계는 계속해 커다래져갔다.

자아는 떨어졌어도 그 의지는 이미 세계를 이끄는 지침이 되어 있었으니까. 더더욱 커져 여러 개의 세계가 하나 된 그것은 이제 종말이라 한들 쉽게 내려다볼 수 없는 무언가로 화해 있었다.

세계가 종말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적대한다고 하더라도 세계는 결국 진리의 안에 있는 존재. 아무리 거대한 힘이라지만 진리의 이면인 종말을 죽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건 이미 정해진 법칙이었고 벗어날 수 없는 질서나 마찬가지.

하지만 종말이 아닌 타 세계라면 어떨까.

종말이 지나는 세계마다 거대한 의지에 응집되어 하나로 합쳐져가고 있다. 그것들이 완전히 하나로 뭉쳤다가는 더 귀찮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종말은 그렇게 판단했고 세계를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본래 더 큰 문제였던 근원을 일단 제쳐두는 한이 있더라도. 힘을 드러낸 종말에게 대적할 수 있는 것 따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격렬히 저항했다.

여태껏 모인 힘은 종말에게 저항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거기에 늑대는 없다. 즉, 혼무 또한 없다는 뜻. 그건 결국엔 손톱과 이빨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싸울 순 있더라도 상처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

쩌렁쩌렁한 울음과 함께 세계는 억센 팔에 눌러져 바닥에 쓰러졌고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돼 버렸다.

강한 의지에 뭉쳤던 막연한 힘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으스러지고 말았다.

세계였던 그것들은 잘게 쪼개져 분리되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 순간, 늑대의 마법은 산산이 부서진 것이나 마찬가지.

이 시점에서 본래대로라면 흐려졌던 늑대의 자아 또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을 터.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면.

세계는 허망히 스러졌고 종말은 아직 끝마치지 못한 일을 완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충분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

무언가 이변이 생길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어지간해서는 그때 느꼈던 그것을 착각이라 치부할 법도 하지만 그 강렬한 파동은 절대 착각같은 게 아니었다.

"……."

이변은 분명히 있었으리라. 어디까지나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

제법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홍유리라는 그 마법사와 마랑이 사라졌음을 알고 있다. 소란으로 번지게 하지 않으려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모양이지만, 좋든 싫든 간에 많은 이들이 마랑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고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가 사라졌음을 모를 리 없다.

분명 그 파동은 마랑과 관련된 것이리라.

"……."

세계는 어렴풋한 평화를 찾았다.

재앙이 사라지고 던전이 붕괴한 여파에서 벗어난 지금 수십 년만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다. 비록 몬스터가 다 사라진 건 아니라지만 언젠가는 몰아낼 수 있을 터.

그 무엇보다 큰 증거는.

'어느 순간부터 던전은 생겨나지 않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남은 던전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더는 던전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바로 마랑이 바다의 재앙을 쓰러뜨렸던 그 순간부터였다.

멸망과 종말. 강태준에게 들어 알고 있다.

여왕이란 존재는 종말이 올 거라 말했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파동은 종말이란 존재와 관련된 것일까?

어렴풋한 추측만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뿐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확인해 봐야겠어."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 파동을 느낀 이가 있을 테니까.

스퀘어 마스터. 자신과 같은 영역에 서 있는 이라면 분명히. 환영의 나비는 답을 찾아 움직이기로 했고, 때는 이미 6월에 접어든 뒤였다.

***

"……."

자신에게 깃든 힘에 만상의 주인은 전율을 느꼈다.

그건 일찍이 초월의 영역에 접어들었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한 힘.

종말이 진리의 이면이듯 근원 또한 진리의 이면.

엘릭서로 되살린 그것의 힘을 수습한 지금, 만상의 주인은 스스로 그 이름에 적합한 존재가 되었음을 느꼈다.

"이걸로 됐어."

지금이라면, 흑린과 다시 싸워 보라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지금이라면 종말과 맞설 수 있다.

그런 어렴풋한 확신이 있다.

뒤에 남아 있는 건 그저 거대한 기계. 아직 톱니바퀴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 스킬을 토해내진 못하고 있었다.

즉, 빈 껍데기. 더 이상 저기에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근원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남아 있지 않다.

그 모든 걸 온전히 수습한 자신이야말로 근원이었으며 삼라만상의 주인.

차원이 갈라지고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용과 악마가 뒤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검푸른 피부와 억세고 커다란 팔. 용의 얼굴과 등줄기를 타고 솟아오른 뾰족한 가시. 보다 거대한 날개는 능히 행성을 감싸고도 남으리라.

아니, 애초에 저것에게 거대함이나 크기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원한다면 원자보다도 작아질 수 있을 테고, 은하보다도 거대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의 이름은 종말.

절망을 안겨다주는 모든 것의 끝.

하지만 기어이 여기까지 오고야 만 종말을 보고서도 만상의 주인은 웃을 수 있었다.

오히려 바라 마지 않던 순간이었으니까.

무수한 시간 속에서 하염없이 지금만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자신의 염원을 이룰 때가 왔다.

종말을 죽일 때가 되었다.

***

기다란 사슬이 뻗어져 종말을 향한다.

이전의 자신이 가진 마력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악한 마력이 사슬 따위는 단번에 떨쳐 내었을 터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날개와 팔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바로 놓쳐 버리고 말겠지만 만상의 주인은 전율했다.

곧 사슬은 끊어졌지만 그녀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신의 힘은 분명 종말에게 닿았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몇 번인가 도전했음에도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던 공격이 분명 닿은 것이다.

절망이었던 존재를 보고서 희망이 피어오른다.

역시 근원을 받아들이는 건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린 순간, 거대한 구름이 피어오른다.

먹구름과도 같은 그것이 우주에 떠 있었다.

무감정한 종말의 눈은 구름을 응시했고,

"!"

구름으로부터 쏘아진 셀 수 없는 줄기의 벼락들이 종말을 수 차례 꿰뚫었다.

분명 마력이라면 닿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건 마력만이 아닌 스킬 또한 포함된 것.

근원으로부터 받아들인 무수한 스킬이 자신에게 깃들어 늑대의 혼무가 그러하듯 등급 외의 영역으로 도약한 것이다.

초월의 영역과 등급 외의 스킬.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직 그 둘만이. 진리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그 힘만이 종말에게 닿을 수 있단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보유하게 된 등급 외의 스킬은 영원을 포함하여 넷.

달리 말하자면, 종말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넷이나 지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래 몬스터와 인류의 구분을 막론하고 넓게 분배됐을 힘을 독점해 다다른 결과가 이것이었다.

'쓰러뜨릴 수 있어.'

그런 확신 속에서 만상의 주인은 근원의 힘을 사용해 종말을 압박해갔다. 자신이 받아들인 건 그것뿐만이 아니란 걸 어느샌가 망각해 버린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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