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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10화 (310/407)

〈 310화 〉 #143 vs 종말 (데이터 주의 4.71MB)

* * *

달을 가리고 온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위성은 추락해 우주의 쓰레기로 변하고 오로지 네온 사인을 비롯한 인공적인 빛만이 가까스로 도시를 밝히는 가운데,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디에서도 그것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볼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진 못했다. 그 어떤 생물이라도 마찬가지. 심지어는 몬스터나 헌터와 같이 초인적인 이들조차 그것의 형상을 파악할 순 없었다.

하늘을 날던 새는 추락해 바닥을 기었고 바닷속의 모든 생물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DNA와 같은 유전자 이전에 영혼에 각인된 본능. 그 무엇도 저것엔 대항할 수 없다. 그 어떤 마법을 사용하건 어떤 병기를 사용하건 결과는 마찬가지이리라.

누구도 온전한 형상을 파악하진 못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게 있다. 구름을 뚫고 천공으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하늘과 대지를 잇는 거대한 기둥. 마치 검은 바벨탑이 추락하는 듯 무언가가 지상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마것저도 터무니없이 거대한데, 그게 발톱이었단 걸 알게 된 건 조금 훗날의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의 뇌리에 어떤 말이 떠올랐다.

종말이라고.

***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악의는 생각보다 빠르게 싸움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리라.

근원의 일부를 가지고 나왔기에 어쩌면 쓰러뜨릴 수 있었을 종말에게 패한 것. 물론 그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는 게 예상 밖이었던 점일까.

만상의 주인이 죽었다면 근원의 나머지 일부를 쫓으리란 건 뻔하디 뻔한 일이다.

그리하여 여기까지 왔으리라…

'이미 없는데.'

문제는 정작 그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자신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 여기고 크기까지 줄여 온 모양이지만 그건 늑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역시나 만상의 주인이 더 시간을 끌어줬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늑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면 그래서 진리에 침투하는 것만 성공했더라면 저 종말마저도 자신의 수족이 되었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악의는 아연하게 저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우연인지 아닌지 하필이면 그것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니, 우연 따위가 아니겠지. 여기까지 쫓아왔으니 자신을 찾는 것따윈 그리 어렵지도 않았을 터. 곧 날카로운 손톱이 일대를 파괴하곤 자신을 집어올려 찢어발기게 되리라.

전혀 관심없지만, 이 세계도 종말의 집행으로 끝을 맞이하게 되겠지. 결국 별은 앞으로도 순환하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사라질 터. 변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질서는 앞으로도 지켜지게 되리라.

하지만 곧 흑린은 웃었다. 하늘이 떠나가라 미친 듯 웃어젖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부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진 셈이니까.

아아, 이 당연한 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

자신을 뒤쫓아온 건 종말뿐만이 아니었는데.

***

악의를 뒤쫓아 달려 보인 건 모든 것의 끝.

종말이 기어이 자신의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운 순간, 늑대는 어떤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떼어놓아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초월의 너머. 자신을 한계까지 부풀린 늑대는 종말을 물어뜯어 끄집어냈다. 도사리던 손가락은 순식간에 떨어지고 거대한 차원의 틈새를 열어 또 다른 멸망한 세계를 향해 도약했다.

지구의 어딘가를 노려보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그 무기질적인 눈에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기에 늑대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였던 자신을 무시하고 근원을 쫓았듯이 같은 결과가 반복되고 말리라.

그리하여, 늑대는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악의에게서 빼앗은 근원의 일부를 드러낸 순간, 종말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

"……아."

진리나 종말같은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에 결국 그것이 찾아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늑대가 실패했고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지상에 닿기 직전 기둥은 거둬졌다.

보이지 않지만 그럴 수 있는 건 달리 없으리라.

아직 싸우고 있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였다.

"이제… 보입니다."

얼빠진 표정으로 달을 올려다보며 우택이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뭐였던…"

환상이나 착각이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것을 보고 뭐라고 해야 할까.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다른 세계에서 두 괴물이 격렬히 부딪치고 있었다.

잠깐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생각했을 땐, 또 다른 위협이 악의라는 이름으로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자신을 적으로써 인지한 종말.

물어뜯고 내동댕이쳤음에도 놈은 이렇다 할 상처를 입지 않았다. 당연하다. 단순한 힘이라면 지금보다 세계였던 때가 더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도 종말을 쓰러뜨리기란 요원했다. 세계였던 당시보다 약해진 지금 새삼스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늑대는 자세를 잡고 종말을 훑어보았다.

고작 자신의 눈으로 실체를 꿰뚫어 볼 순 없다지만, 만상의 주인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은 없어보인다.

곧 그것이 손을 들어올렸다.

악룡의 손이 뻗어지자 유려하게 피한 늑대는 그 손을 물어뜯었다. 혼무의 힘을 둘러 딱딱한 비늘을 파고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

정말 깊숙한 곳까진 파고들지 못했다. 다른 팔이 자신을 쥐어뜯으려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자신을 붙잡으려 든다. 더 빠른 속도에 대응하지 못한 늑대는 턱 아래의 갈기를 붙잡히고 말았다.

털을 촉수로 만들어 끊어내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던져졌다. 고작 일격. 심지어 미끌려져 온전한 힘이 전달되진 않았을 텐데도 단 한 번의 공격에 타 세계의 달까지 날려보내지고 말았다. 그렇게 부딪친 충격에 달이 부서져 내린다.

척추가 내려앉은 듯한 충격에 늑대는 피를 토해냈다.

직감적으로 역시 승산은 희박하다고 느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는 몇 번이나 맞붙어왔다.

하지만 이건 그런 범주가 아니다.

호랑이는 용을 물어뜯을 수 있을지 모르나 늑대가 용을 물어뜯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

공격은 이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만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어느새 검은 불꽃이 혼무와 함께 파고든 상처를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늑대의 눈은 옅은 승산을 주시하고 있었다.

***

"일단 첫 번째."

제법 달리며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버러지에 불과하다. 동물과 환수를 가리지 않고 산 속의 생물을 모조리 억압하며 집어삼킨 악의는 흰 사슴의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분명 그 때 늑대와 함께 있었던 환수임에 틀림 없다. 분명 이거라면 인질로 삼을 가치가 있으리라.

"이거 놓…!"

시끄럽게 투덜거리기 전에 악의는 사슴의 입을 막아 가렸다. 몸을 비틀며 저항하려 애쓰지만 이깟 사슴 따위가 뭘 하던 간에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머잖아 완전히 집어삼켜 자신의 안에 넣었을 때, 흑린은 웃었다.

상황이 변했다.

늑대와 종말이 싸우는 이상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건 분명한 사실이나 결국 살아남는 게 종말이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늑대라면. 그가 정말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것들은 좋은 교섭 재료가 될 터. 고작 그 조그마한 것의 의식을 강탈했다고 뒤쫓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쓸데없이 정 같은 감정 따위에 얽매이는 늑대에게서 근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진리가 두른 혼돈의 장막을 열어달라고는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사실, 더 좋은 생각이 있다.

보험으로써 이것들을 데리고 가 만상의 주인이 쓰러진 차원으로 가 근원을 수습하는 것. 종말이 모종의 조치를 취했겠지만 정말 운이 좋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진리에게 향할 수만 있다면 사실 이깟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일 뿐. 따라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이것들을 수집해야만 한다.

이윽고 흰 사슴을 자신의 안에 집어삼킨 악의는 조금 떨어진 곳을 보았다.

"다음은…"

갈색 단발 머리. 분명 그것도 이은하였지. 만상의 주인과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리숙한… 거기에 우스운 감상을 품고 악의는 키득거렸다.

설령 힘을 잃었다 한들 고작 인간 하나를 사로잡는 건 정말이지 같잖지도 않은 일이니까.

***

시종일관 불리하기는 하지만 그건 분명 싸움이라는 이름으로 성립하고 있다.

혼무와 흑린. 그리고 근원의 일부는 종말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마저 재생하기는 하지만 점점 종말의 움직임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이변이 없다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어설프다 못해 물렀던 거다.

대치하고 있던 늑대는 종말이 순식간에 자신에게 다가오자 물러나기 위해 달렸지만, 사실 다가온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어디까지나 악의를 찾기 위함이었을 뿐 여태까지의 크기가 아니었으니까.

분명 자신보다 작았던 종말이 한참이나 커져간다.

점점 늑대의 눈은 더 높은 곳을 쳐다보게 되었다.

결국에 본신을 드러낸 종말. 굳이 비교하자면 지구와 태양 그 이상의 터무니없는 차이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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