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화 〉 #143 vs 종말 (2)
* * *
몇 개나 되는 별이 스러지고 말았을까.
진작에 무너진 별은 부스러기가 되었고 그나마 있던 것마저 잘게 부서져내리고 만다.
우주에 만연한 파편을 밟고 뛰어오른 늑대는 아득하리만치 커다란 종말의 몸 위로 타고 오르려 했다. 굳이 크기를 비교하자면 아나콘다와 애벌레만큼의 차이. 만약 정면에서 맞상대했다가는 승산 따윈 없을 터.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펄럭인 날개가 바람을 불러온다. 폭풍을 일으킨 늑대는 촉수를 뻗어 주변의 파편을 지지대로 삼아 가까스로 견뎌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남은 여력. 자색의 흑호가 공간을 날려버렸다면 종말의 일격은 세계를 흔들어버린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서 행사하는 폭력. 풍압은 어찌어찌 견뎠지만 함께 떠날아오는 우주의 파편이 자신을 마구 찢어발기고야 말았다.
바다의 재앙이 그랬듯 그 거대함으로 인해 재생 스킬로 상처를 회복하는 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만다.
상처를 회복하는 대신 늑대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부상을 내버려두고 몸을 변형시켜 상처부위를 새로운 가죽을 만들어 덮어버린다. 파편이 찢어발기면 새로운 겹을 쌓아 덮어버리고 또 덮는다. 뇌와 심장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상처따위는 이미 걸림돌조차 되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놈의 몸 위로 도약해야만 한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듯 놈 또한 그걸 알고 있으리라.
올라탄다고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이대로 거리를 두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 거란 건 확실하다.
날갯짓이 그러했듯 양 팔이 우주를 휘저어 풍압을 불러오자 늑대는 그걸 기회라고 여겼다.
'타고 오른다…!'
그 수 밖에는 없다. 놈이 움직이는 순간에 맞춰 무릎을 굽혀 탄력을 받아 도약한 늑대는 자신을 밀어내려는 풍압과 먼저 싸워야만 했다.
풍압. 더 정확히는 매질이 되는 터무니 없는 마력. 혼무를 일으켜 먹어치우는 것보다 더 압도적인 힘이 기어코 자신을 쳐내고 말리라. 아까 달과 부딪치며 그랬듯 척추가 내려앉을 정도의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본신을 드러낸 이상 이번엔 겨우 그 정도로 끝나진 않으리라.
정면에서 맞설 힘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하다못해 근원을 받아들인 만상의 주인에게는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차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반계라는 힘이 있었지만, 늑대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힘이었다.
맞서는 건 불가능하다. 피할 방법이 없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당장 늑대를 몰아붙이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다가오는 악룡의 팔을 보며 늑대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피할 수 없으면 피하지 않으면 된다. 막을 수 없으면 막지 않으면 된다.
어째서 맞서려하는가하는 생각.그래서 늑대는 이번에는 자신을 밀어내는 바람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포기같은 게 아니라,
"!"
순식간에 태양계의 저편까지 날아와버리고 말았다. 부서진 달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태양계의 끝이라 할 수 있는 해왕성의 옆에 와 있었다. 은하 저편까지 날아가지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멀찍이 떨어진 종말의 모습을 끝까지 주시했다.
결국, 흐름에 저항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종말의 힘에 대적할 수 없다면 그 힘을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 거리라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터.
늑대는 알고 있다.
결국 자신에게 깃든 근원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그래도 초월자였던 만상의 주인은 근원을 온전히 수습하고서야 종말과 대적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초월의 영역 너머에 있더라도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저걸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설령 자신이 뜻한 대로 등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한들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지금 놈의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 더 정확히는 자신의 안에 있는 근원의 일부였다.
타 차원으로 넘어온 이상, 지금 자신의 세계가 위협받는 일은 없다.
따라서, 늑대는 한껏 숨을 들이키고 냄새를 맡았다.
온 우주에 만연한 암흑 물질과 종말이라는 괴물. 별의 부스러기와 온갖 원소의 냄새. 그걸 넘어 머나먼 타 차원의 정보까지 뇌리로 흘러들어온다.
분명, 만상의 주인은 종말에게 패해 쓰러졌다. 이제 더 이상 그녀라는 존재는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자신의 기억 속에 영겁의 시간동안 살아왔던 그녀의 삶이 기록처럼 남아있을 뿐.
다만, 존재란 건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불을 사용했다면 재가 남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마법을 사용했다면 마력의 잔재가 그 자리에 남는 것처럼 분명 만상의 주인이 쓰러진 자리에도 무언가 남아있으리라.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근원을 뒤쫓았으니 그 힘은 분명 종말이 없애버렸으리라. 어쩌면 이제 근원은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는 힘이 됐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진리가 모종의 방법을 취했을 테고.
하지만 말했다시피 힘이나 존재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한 힘을 일거에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했을 터. 분명 그 흔적 정도는 남아있으리라.
무엇보다, 근원이 죽어있었던 이유는 어째서였을까.
종말을 죽일 수 있는 건 마찬가지로 진리의 이면의 힘인 근원. 그럼 반대로 근원을 죽일 수 있는 것 또한…
무수한 가정과 추측을 뒤로 하고 늑대는 종말을 피해 차원을 달리며 자신의 후각에 신경을 쏟았다.
***
하늘을 검게 드리웠던 무언가. 저절로 뇌리에 떠오른 종말이라는 단어. 모두가 보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한 무언가. 영화나 소설에서조차 등장하지 않는 터무니없는 괴물이었으나 아무도 부정하진 못했다.
왜냐면, 직접 보았으니까.
달빛조차 가리고 완전한 어둠을, 모든 것에 종말을 고하는 괴물을.
"……."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종말. 그 존재 때문에 아직 해가 밝아오지도 않은 시각에 여명의 전원이 소집되고 말았다. 아직 움직일 상태가 아닌 강태준조차 휠체어에 앉아 미라처럼 전신에 붕대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실 이런 회의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걸. 그것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언제라도 찾아와 자신들의 터전을 으스러뜨리고 말리라.
마을이나 도시, 국가 따위가 아니라 행성 자체가.
몬스터나 재앙의 영역이 아니다. 그런 건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그냥, 차원이 다른 불가항력일 뿐이다.
결국 순응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들 스스로 느끼진 못했지만 이미 마음이 꺾여 체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시각에 소집했는가. 그런 의문 섞인 눈빛에 강태준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렇게 모이게 한 건 다름이 아니다."
동생이 이끄는 휠체어에 탄 그대로 강태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발버둥쳐봤자 종말이 찾아오고야 말 거란 사실을."
"……?"
정말 뜬금없는 말이었다. 마치 세기말의 사이비 교주가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꺼내는 말 같았다.술렁거리는 좌중을 손을 들어 진정시킨 그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알게 됐다고 하는 게 맞겠지."
누가 알려주었느냐는 당연한 물음에 강태준은 신이라 답했고 클랜원들은 여태껏 처음으로 그의 정신을 의심해야만 했다.
네버랜드의 싸움에서 혹시 머릴 다친 게 아닌가 하고.
"알고 있을 텐데. 한동안 클랜 최상층에 머물렀던 이를. 그분이야말로 신이라 부르기에 합당하지. 모든 환수들의 어머니되는 존재이니."
"……."
"그녀가 알려주더군. 결국 이 때가 올 거라고."
진지한 표정. 평소에도 장난 따위는 치지 않는 그였기에 클랜원들은 반신반의했다. 만약 다른 이가 말했다면 분명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으리라.
"믿기 어려운가보군.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연."
강태준이 턱짓하자 하연은 짧은 한숨과 함께 어떤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영화나 게임… 뭐 그런 겁니까?"
CG 혹은 누군가의 정교한 그림이냐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연이 꺼내든 사진에 찍혀있는 건 지구의 모습과 그보다 훨씬 커다란 악룡이 바로 그 지구를 감싸쥐려는 듯한 모습이었으니.
"NASA에서 받은 위성 사진이다. 이미 몇몇 클랜의 장들은 이 사진을 확인했을 거다."
장난도 뭣도 아니라고 강태준은 단언했다.
"그리고 이 붉은 점은 보이나?"
클랜원들은 넋을 놓고 끄덕였다. 그냥 가만히 그 붉은 점을 보고만 있었다.유일하게 붉게 물들어있는 점. 그러고보니 사진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위화감을 느낀 어떤 이가 묻기를,
"별이… 안 보이는데요?"
강태준은 끄덕였다. 그리곤 그를 앞으로 불러 더 자세히 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고야 말았다.
사진에 찍혀있는 붉은 점은 사실 점이 아니었으니까. 별은 없는 게 아니라 가려진 거였으니까.
"설마…"
말을 잃고 멍청하게 올려다보는 그를 보며 강태준은 끄덕거렸다.
"그래. 정답이다."
***
쉽게 끝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지 않음에 악의는 속으로 계산했다.
과연 이곳에 있는 인간들과 싸워 전원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를. 당연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동시에 마냥 쉽지만은 않으리라.
그게 비참함을 불러온다. 자신에게 남은 힘이 정말 티끌만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역병이라 했던가? 지금의 자신에게 남은 힘은 기껏해야 그 정도. 여태껏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버러지 따위와 비슷한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신중해야만 한다.
어둠을 틈타 전부 끝내버릴 생각이었지만 하필이면 이 늦은 밤중에 모여있는 이들. 악의는 저울질했다.
시간이 더 흘러 저들이 흩어지는 때를 기다릴지 아니면 이대로 전부 죽여버리고 빠르게 일을 끝마칠지를.
어느 쪽도 리스크는 있다.
[그래도 역시…]
악의는 자신의 마음이 어느 한 쪽에 기울어가는 걸 느꼈다. 그와 함께 여명의 건물에 짙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
차원의 틈새를 거대한 악룡의 머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그것이 움직인 이상 더는 틈새같은 정도론 끝나지 않는 다. 두 차원이 이어졌다고 봐도 좋으리라.
머리만이 비집고 나온 그대로 종말의 목구멍 너머에서 무언가가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늑대의 후각이 그 정보를 인식했다.
그것은 비늘과 피처럼 용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숨결. 그러나 여태 늑대가 보아왔던 것들과는 격을 넘어 차원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악룡의 안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건
'그 때의…!'
본 적 있는 힘이다. 세계였던 자신이 보았던 진리를 둘러싼 혼돈의 장막. 본질적으로는 그것과 같은 혼돈이나 실제론 한참이나 다르다.
그저 둘러싸고 있을 뿐인 장막의 형태가 아니라 종말의 숨결에 의해 내쏘아지려 한다.
혼돈이라는 건 모든 걸 내포하고 있기에 혼돈. 분명 저것에 닿는 순간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오감과 육감이 맹렬한 경고를 보낸다.
늑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그것을 피하려했다. 빛보다도 빠르게 움직여 벗어나려 시도했다.
종말의 불길, 혼돈의 숨결은 일말의 망설임조차 내쏘아졌고 늑대를 뒤덮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로 합쳐져가던 두 세계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야 말았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존재마저 사라진 곳.
오로지 혼돈만이 남은 곳에 종말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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