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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12화 (312/407)

〈 312화 〉 #143 vs 종말 (3)

* * *

건물 내의 인간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악의는 그렇게 여겼다.

정말 귀찮은 건 셋 정도… 붉은 머리 반룡. 휠체어를 끄는 거한. 척 봐도 마법사일 것 같은 여성. 그 외의 나머진 굳이 신경쓸 필요도 없는 버러지들일 뿐이다.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정도일 터.

더 많은 버러지들이 모여들기 전에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떨어지면 된다.

악의는 건물 안의 인간들에게 속삭였다.

존재를 드러내고 단순히 속삭이는 것만으로 견디지 못한 이들이 가슴을 부여잡거나 머리를 감싸쥐며 쓰러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예상했던 셋과 몇몇을 더해서.

생각보다 견뎠다는 사실에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마저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결과는 뻔하다.

건물을 집어삼킨 악의는 그 속에 자신을 형상화했다.

***

이야기를 마치려던 강태준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환청에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형언하기 힘든 여러 소리가 들려오자 환상 계열의 마법이라 생각했지만 더 없이 역겹게 느껴지는 무언가. 이제 보니 창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다치고 또 깊은 어둠이라도 자신의 눈이 창밖을 보지 못할 리 없다. 분명 이변이 생긴 게 틀림 없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강태호 또한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상황을 수습하려던 강태준은 그럴 것도 없이 클랜원들이 쓰러져있음에 이를 갈았다.

'알파를 기다리면 된다고 할 셈이었는데.'

결국 종말에 대항하지 못하는 이상 믿고 그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가 돌아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모든 게 끝난다고. 멸망이나 종말같은 사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그렇게 알릴 셈이었다.

그러니 그를 믿고 기다리라 할 셈이었는데…

'산 넘어 산이로군.'

습격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설마 탕아의 잔당이 아직 더 남아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망할… 설마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홍유리가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자 강태준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를 향했다.

"……도망쳐야 해요. 저건 못 이겨요."

시선을 눈치 챈 홍유리가 그렇게 말하자 강태준은 끄덕였다. 지금의 상대는 홍유리가 그렇게 단언할 정도로 괴물이라는 뜻일 터. 아무리 못해도 구획 보스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뜻이리라.

"먼저 도망쳐라."

"클랜장님!"

"어차피 그런 상대라면 다 같이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강태준은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지금의 홍유리가 그렇게까지 말하게 하는 상대라면 분명 그러하리라.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침묵하는 걸 긍정으로 받아들인 강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휴. 이젠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찾아올 평화. 하지만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에 모이게 한 것 자체가 실수였을지도. 아니, 아직도 이런 존재가 남아있다는 걸 누가 알 수 있었으랴.

하물며 여기까지 찾아온 것 또한.

어느샌가 속삭임은 멈추고 안개와 같은 검은 무언가가 형상을 어렴풋한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일단… 너흰 필요 없으니까 죽어]

***

죽지 않았다.

늑대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불길이 쫓아온 순간, 차원을 넘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용의치 않았다. 이미 그만한 시간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혼돈의 불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당연 영역 바깥의 힘. 흑린과 혼무를 끌어올렸지만 출력에서 대항할 수 있을 리 없다.

턱도 없이 부족해 스러지는 게 고작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살아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다.

늑대는 가만히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만신창이가 돼 있기는 하지만 혼무를 두른 채 육신은 남아 있다. 종말의 숨결로부터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였다.

'왜?'

어째서 살아남았는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뜻밖의 행운. 뜻하지 않은 기적. 우연이 겹친 요행?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늑대는 자신의 힘이 생각보다 비대해져있음을 깨달았다.

흑린을 먹어치우고 세계로써 종말을 물어뜯고 악의가 가진 근원까지 삼키면서 여기까지 왔다.

혼무(?無). 먹어치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힘.

그 과정에서 다름 아닌 혼무 자체가 성장한 거였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서 이제는 끝이라 생각했던 힘이 더욱 더 먼 바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의 자신처럼.

진리의 바깥, 초월의 영역을 넘어 어딘가로 도약하기 시작하는 힘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늑대로써는 알 수 없었다.

"0.00001%."

다만, 어디선가 진리의 말이 들려왔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야 할 법칙과 같은 존재인 진리에게서 처음으로 감정의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일말의 위기감. 그리고… 약간의 기대.

그가 자신에게 분명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의문은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늑대는 이를 드러냈다.

결국 그 모든 건 종말을 쓰러뜨리면 알게 될 테니까.

***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이 다짜고짜 휘두른 손을 앞장 서 막아낸 강태호는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어마어마한 마력과 정신의 침식. 잠깐 방심하기만 해도 어떻게 돼 버릴 것 같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

악귀ㆍ원령. 그것들에게 괴롭혀지던 지난 나날이 자신의 정신을 강철처럼 견고하게 만들었으니까.

'망할 영감탱이.'

덕분에 내성이 있다. 첫 일격을 막아낸 강태호는 고작 한 번의 공격에 어깨가 뻐근해졌음을 느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압력이란 말인가.

그러자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그것.

거기에 오히려 의아해한 건 홍유리였다.

"어떻게……?"

비록 힘겨워보이기는 해도 공격을 막아냈단 건 크나큰 의미가 있다.

그건 대적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

다른 차원에서 보았던 악의는 분명한 절대자였다. 그 때의 그 존재는 자신의 대마법을 정면에서 맞고도 꿈쩍도 하지 않았을 만큼 별격의 괴물이었다.

따라서 승산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홍유리는 힘겨워하는 이은하와 시선을 교환했다. 무엇보다 명백한 증거로 아직 자신이 쓰러지지 않았다. 익숙해져서?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다. 분명 그 때와는 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약해져있다.

'전부 되찾아오겠다.'

홍유리는 실소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늑대는 악의를 쫓았었고 지금은 종말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이건 처리했다는 뜻. 그 때 보았던 형상에 비하자면 고작 찌꺼기에 불과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이것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재앙이라거나 종말이라거나 그런 것들 사이에 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러면 하다못해 이 정도는 쓰러뜨려야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이 지긋지긋한 것들도 끝날 테니까.

***

"……연락이."

환영의 나비는 자신의 핸드폰에 수신된 문자를 확인했다. 한국이라면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을 새벽. 강태준에게서 받은 문자의 내용은 심플한 구조 요청.

[SOS]

그리고 첨부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지구를 감싸쥔 거대한 괴물의 형상이 또렷하게 드러난. 이걸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적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단 건 확실하리라. 어쩌면 제대로 보낼 시간조차 없었을지도.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는 뜻일 터. 어쩌면 자신에게 보낸 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너무 걸리는데.'

지금부터 가더라도 족히 몇 시간은 걸리리라.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늦어있을 테고. 하필이면 떠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환영의 나비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돌아가야겠다."

돌려서 말한 준비하라는 소리에 백소율은 끄덕였다.

여왕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던 건 자신이 아닌 그다. 어디까지나 그 이야기를 다시 강태준을 통해 전해들었을 뿐. 그리고 이 사진까지 보내온 걸 보면 반드시 오라는 뜻일 터…

고민할 여지가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다짐한 환영의 나비는 겨울의 주인에게도 손을 뻗었다. 급하게 이런 사진까지 보내 올 정도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스퀘어 마스터가 더 있는 편이 도움이 될 테니까.

***

풍압은 여전히 견디기 어렵다.

마력은 비교할 수조차 없이 밀린다.

혼무가 성장했더라도 크게 승산이 생긴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차이가 미세하게 좁혀졌을 뿐 여전히 종말에게 닿기란 요원하다.

혼돈의 불길에 상처입으면서 형상을 유지했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울부짖는 악룡은 여전히 건재했고 자신은 피폐해져간다.

시공조차 없는 완전한 무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늑대는 여전히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떻게든 진리에게 닿아야 한다. 만상의 주인이 가졌던 나머지 근원을 수습해야만 승산이 있다.

악룡의 턱이 자신을 씹으려한다. 때때로 앞을 가로 막고 물어뜯으려 한다. 심지어는 이미 열어젖힌 차원의 틈새 그 자체를 닫아버리기까지 하면서.

근원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이미 전신의 대부분을 변형시킨 촉수로 지탱하고 있었지만 늑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 딱 하나. 딱 하나만 더 차원을 넘으면 되니까.

진리와의 거리는 이제 그리 멀지 않다.

'정말 여의치 않다면.'

악의가 그리하려 했듯이 진리에 직접 접촉하는 한이 있더라도 종말을 멈추고야 말리라.

설령 그것이 별의 순환을 멈추는 일이라 할지라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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