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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16화 (316/407)

〈 316화 〉 #146 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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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떻게.

이유도 논리도 방법도 모르지만 누가 자신을 이리로 불렀는지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진리. 종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의 의지이리라.

처음 혼무를 얻었을 때처럼 그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오직 그 하나만 온전한 존재로 빚어진 것처럼 완전하고 불변한 존재였다.

그것에게 감정. 인격. 자아같은 건 없다.

그 기원조차 알 수 없으나 세계의 모든 것이자 지침이며 시작이고 끝. 유일한 진실이며 홀로 오롯한 존재.

찬란한 빛은 언어가 아닌 의지로써 그것은 자신을 이해시켰다.

뇌가 터져버릴 것처럼 아득한 정보가 쏟아들어져온다.

그건 조그마한 머리에 담아둘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진실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우주의 탄생. 비밀과 종의 기원. 여왕조차 알지 못한 영혼의 말로. 그리고 별의 순환.

"아."

만상의 주인의 영겁처럼 긴 삶조차 새로이 흘러들어온 정보에 휩쓸려 떠밀려간다.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들이었다.

몇 번이나 뇌가 과부화했을 정도로. 고작 그것만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 또한 가능했을 테지만 진리는 용납치 않았다.

죽음을 거부당해 뇌는 억지로 주입된 정보를 받아들였다. 조그마한 잔에 바다를 담아버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물론 받아들이긴 했으나 모든 정보를 이해한 건 아니다. 대부분은 상자에 담은 물건처럼 간직하고만 있는 채로 그대로였다.

별안간 늑대는 이곳이 두렵다고 느꼈다.

진리가 아니라, 진리가 강제로 부여한 정보가 아니라, 자신이 밟고 있는 이 세계가 당장에라도 깨질 것 같은 얇은 유리처럼 느껴졌다.

아아, 이 얼마나 불안정한 세계인가.

작은 그릇에 너무 많은 걸 담고 말았다.

문명. 문화. 생명. 원소. 존재. 시공.… 빼놓을 수 없는 세계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너무나 무거웠다. 역삼각형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에 알고 있었던 걸 새삼 실감했다.

거기에 늑대는 알게 되었다.

어째서 근원이 죽어야만 했는지. 어째서 종말이란 존재가 필요한지를. 진리란 존재가 너무 거대하기에. 자신의 일부인 근원을 죽여서라도 유지해야만 했다. 이 연약한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무거운 것을 버려야만 한다. 그렇게 무한히 반복해 가까스로 유지해왔던 거다.

……착각이었다.

진리는 분명 세계의 모든 것이었지만 지배자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발버둥치는 거대한 의지일 뿐.

그것이 자신에게 속삭여온다.

결국 무너지고 말 거라고. 이 불안정한 세계마저 끝나버릴 거라고. 그런데도 끝까지 발버둥치겠느냐고. 기어코 종말을 물어뜯을 송곳니를 거두지 않을 거냐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 말해온다.

흘러들어온 정보를 뒤지던 늑대는 마침내 진리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말 얕지만 종말을 쓰러뜨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의 유지를 위해 그 낮은 확률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신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

늑대는 동감했다.

진리가 옳다고. 틀린 건 자신이라고.

종말은 우주의 질서나 마찬가지. 그걸 없애겠다는 건 모든 걸 끝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별의 순환. 진리가 보여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늑대 자신이 지키려던 세계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작디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불과하다.

무거워진 낡은 세계를 없애지 않으면 새로운 가능성은 싹트지 않는다.

가능성이 없는 세계는 죽어버린 세계나 다름없다.

모든 것의 존속을 위해 낡은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야 말았다.

***

그렇게 여왕의 세계는 처참히 무너지고야 말았다.

오직 그녀만이 살아남아 종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색의 흑호와 함께 차원을 떠돌며 수많은 세계를 넘나들었다.

그녀는 환계라는 자신의 세계를 모방한 차원을 만들고, 그리움을 빚어 환수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끝없이 찾아오는 종말을 피하진 못했다.

***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늑대의 머릿속에 정보로써 맴돌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극. 잔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세계는 무너지고 말았으리라. 그 끝에 자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진리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가능성이란 그러한 것. 항상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잔혹함을 내포하고 있기도 했다.

따라서, 진리는 세계를 지켜야만 했다. 부숴지지 않도록 자라난 것을 잘라내야만 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일부인 근원일지라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지했다. 필요성을 이해했다.

그럼에도, 늑대는 거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설령 진리를 막는다해도 언젠가 찾아올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사라지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있어 이 세계야말로 모든 것이었으니.

혼무와 흑린이 퍼져 진리에게로 뻗어나간다.

그러자 자아, 감정, 인격조차 가지지 않은 그것이 탄식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서로의 의견은 엇갈린 채 이어지지 않는다.

이미 영원히 이어질 수 없는 평행선이나 마찬가지.

합리성을 이해했더라도 서로가 매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래선 안 된다고 해도. 자신이 틀렸다 한들 늑대에게 있어 부서져야만 하는 낡은 세계야말로 모든 것이자 전부였다.

설령 다른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별의 순환이 끊겨 결국 자신이 지키려했던 세계마저 스러지게 되더라도 지켜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전부 되찾아 돌아가기로 했으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직 절반밖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완수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리라.

'……쓰러뜨린다.'

다시 눈을 뜬 늑대는 여전히 자신이 종말의 안에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놈의 안에서부터 아득하게 몰려오는 혼돈. 여전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진리는 자신에게 미약한 승산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 승산은 없다고 치부해도 될 정도로 옅었다.

수백가지나 되는 우연이 겹치고 그 끝에 기적이 매듭지어져야만 성공할 수 있는 극히 희박한,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확률.

진리와 이야기를 나눴을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늑대는 쓰러지고 세계는 종말을 맞이할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결국 어떠한 이변도 없이 혼돈은 늑대를 휩싸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모든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늘 그랬듯 같은 결과. 의미없는 발버둥으로 끝맺어지고 말았다.

어떠한 이변도 없었더라면.

혼돈에 삼켜진 늑대는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혼돈이 한없이 느리게 보이고 있었기에.

마치 찰나를 영원으로 늘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건……'

만상의 주인. 분명 그녀의 권능이었다.

종말에게 짓밟혀 최후를 맞이했을 그녀의 힘.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익히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늑대는 깨달았다.

영원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건 이미 죽어 사라진 그녀가 아닌 자신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 힘이 자신에게 깃들어있었다.

***

종말과 싸우며 만상의 주인은 직감했다.

악의를 해방하며 근원의 일부를 빼앗긴 자신은 결코 종말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절대 닿을 수 없을 거라고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꼈다.

싫었지만,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지를 넘어선 미래의 결과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손에 닿을 듯 보이고 있었으니까.

염원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스러지고야 말았다.

기나긴 시간동안 발버둥쳐왔음에도 어떤 과실도 맺지 못한 채로.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지 종말에게 짓밟히게 되리라는 건 변하지 않으리라.

심지어 이번엔 도망칠 수조차 없다. 근원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종말이 놓아줄 리 없으니까.

차원의 너머. 세계의 끝. 우주의 반대편까지 따라와서라도 분명 자신을 죽이고 말리라.

웃음이 새어나왔다.

결국 그처럼은 할 수 없었던 거다.

불가능을 뛰어넘어 시련을 극복할 순 없었다.

……대체 뭐가 부족했던 걸까.

왜 자신은 희망처럼 할 수 없었던 걸까.

명확한 답은 내릴 수 없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은 여기서 끝이라는 거였다.

만약 근원을 받아들였던 게 자신이 아니라 희망이었다면 어땠을까. 늘 실패해왔던 자신이 아니라 극복하고 넘어서왔던 그라면 어쩌면 이번에도 넘어설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그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건 여태껏 누구도 실현시키지 못한 일이니까.

아직 싸울 수 있음에도 만상의 주인은 다가오는 종말에 저항하지 않았다.

혼돈에 휩싸여가며 생각했다.

……역시, 자신은 실패했다고.

….

…….

……….

………….

…………….

그러니까, 다음으로 넘기기로 했다.

희망. 애초부터 그는 자신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었으니까.

부디 미약한 가능성이나마 그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영원은 혼돈 속에 녹아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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