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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19화 (319/407)

〈 319화 〉 #147 결전 (3)

* * *

언제나 그랬듯 상상은 현실이 되어간다.

구현화의 스킬을 이용해 마력을 구현하고 구현한 마력은 다시 마법진으로 되돌려 더욱 큰 마법을 준비해간다.

이미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전장에서 환영의 나비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드디어…'

생각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준비가 끝났다. 수십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마법진은 복잡한 수식과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가득 차 있어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과도 다름없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빛을 발하더니 다른 영역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뻗어간다라기보다는 돌아온다라는 표현히 맞으리라. 다시 마법진으로 돌아와 빛을 뿌리기 시작하는 그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

누구나가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특히 마법사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러했다. 알 수 있는 거라고는 평생을 노력해봤자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뿐. 선택받은 한 줌의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윽고 빛을 흩뿌리던 마법진은 천천히 떠오르더니 허공에 투영되기 시작한다.

모든 마법에는 절차와 요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만상의 주인이 정립한 마법이란 학문은 영겁의 시간동안 간략해지고 간소해졌다. 세월이 흐르며 다소 변질되기는 했으나 당초의 목적은 모든 인류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니.

따라서, 현대의 마법사들은 본인의 마력을 사용해 주문과 영창으로 마법을 빚어낼 뿐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몬스터와 싸우는 와중에 일일이 마법진따위를 그릴 시간이 있을 리 없으니까. 환경에 맞춰 발전한 거라 해도 좋다.

그렇다면 마법진이란 쓸모없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부유섬을 떠오르게 했던 스퀘어처럼 대규모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시전자의 능력 바깥의 일을 수행할 때 마법진이란 유용하게 사용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마력은 통하지 않는 게……?"

마법진을 그리는 걸 보조했던 백소율이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환영의 나비는 실소했다. 당연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환영의 나비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모든 힘에는 대가가 있는 법. 아무리 저 검은 형체가 강하다한들 마력 그 자체에 면역을 가질 리 없으니까. 그런 게 가능한 건 재앙정도가 아니라 마랑정도는 되어야 할 터. 그렇다면 트릭이 있는 게 분명하다.

영롱한 빛을 흩뿌리며 마법진은 상공으로 떠올라간다. 이윽고 문양이 회전하며 더 이상 마법진의 형체를 볼 수조차 없게 됐을 때, 마치 완전한 원이 그려진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무식한 게 정답이기도 하지."

마법진을 그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타의 마법과는 달리 시간을 잡아먹고 그려야한다는 불편함이 있다는 뜻. 그건 달리 말하자면 시전자의 그릇을 넘어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퀘어 마스터의 그릇을 넘어선 마법. 분명 기존의 대마법 이상의 것이리라. 그것이 발할 위력을 백소율은 차마 떠올릴 수 없었다.

"이걸로 알 수 있겠지. 정말 마력이 통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트릭이 있는 건지를."

또한, 정말로 마력이 통하지 않는다해도 상관없다고 환영의 나비는 그렇게 단언했다.

***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영원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시간의 흐름따위는 무의미한 것. 현실에서 흐른 1초는 1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한달에서 수십년까지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랑과 악룡의 눈에 흐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서서히 끝은 다가오기 시작한다.

점차 우위를 차지해가는 건 늑대였다. 종말은 여태 상대했던 그 누구와도 감히 비교를 불허할 만큼 강했지만 근원의 절반을 가지고 영원마저 양도받은 지금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적은 아니었다.

붉게 물든 우주. 그 피의 대부분은 자신이 아닌 종말의 것.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싱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태 쫓기고 도망치면서도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이었는데 조금 대등해진 순간 이렇게 되는 건가 하고서.

진리가 세상의 모든 것이라면 그 이면인 종말 또한 마찬가지. 힘의 차이는 아직 역력한데 어째서 우위에 서는 건 자신인 걸까.

'그리고…'

나머지 절반. 자신에게 절반이 깃들었다면 남은 절반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의문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진리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궁지에 몰린 종말이 근원을 꺼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태 그러지 않았다는 건……

늑대는 문득, 진리가 건넨 수많은 정보를 떠올렸다.

우주의 탄생을 비롯해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무수한 비밀들을 알게 되면서 이 세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알게 됐다. 이미 싸움의 여파로 별은 부서지고 견디지 못한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며 여러 차원이 연결돼 커다란 하나의 차원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불안정하기 때문에.'

유리를 밟고 서 있는 듯한 불안정함. 생각보다 좁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진리는 자신의 이면이었던 근원을 죽여야만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새로이 태어날 세계를 위해 낡은 세계를 부수며 별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진리가 잘못된 게 아니다. 그래야만 가능성이 태어날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 세계에도 탄생과 끝이 있는 건 당연하다.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별의 순환이야말로 우주의 올바른 질서라고 할 수 있으리라.

'…….'

바로 그런 불완전함으로 가득 찬 세계이기 때문에 근원은 죽어있는 채여야만 했다. 엘릭서같은 걸 만들지 않았더라면 분명 앞으로도 그러했으리라. 별의 순환은 계속 이어졌을 테고 거대한 흐름 속에 생명이나 문명같은 작은 반짝임은 앞으로도 나타나고 사라졌으리라.

하지만 근원은 부활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만상의 주인에게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포화상태라고 봐도 좋으리라. 종말이 근원을 가진 이를 쫓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넘쳐흐른 물은 당연 컵 밖으로 쏟아진다.

하지만… 그게 우주라면?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여러 차원이 겹쳐 하나된 것으로도 모자란다면?

그 때, 넘쳐흐른 물은 어디로 쏟아지는 걸까.

***

체력 때문인지 부상 때문인지 몰라도 드러난 틈. 끈질긴 거한을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였다. 아무리 끈질겨도 머리를 부수면 더는 살아있지 못하리라.

[잘 가. 네가 제일 귀찮았어]

크게 눈을 뜨는 거한. 그리고 그를 끌어당기려는 무색 무형의 마력. 악의는 그걸 용납치 않았다. 배후의 손이 불꽃의 마법과 함께 마력을 함께 낚아채 사라지게 했다.

빼앗은 붉은 창이 거한의 살갗을 파고들어 심장에 틀어박혀간다. 곧 심장을 터뜨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빠르게 상공에 떠오른 마법진이 빛을 흩뿌리자 일대가 자색으로 물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느껴져야 할 감촉 대신 어렴풋한 자색 연기만이 창끝에 휘감긴다.

"…이건."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악의는 눈살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기가 자욱한 보라색이 돼 가라앉은 듯하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농도짙은 마력이었다.

본래 무색이었을 대기에 널리 퍼진 마력이 그에 물들어간다. 맑은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심상치 않은 마력의 질과 양. 코끝에 닿은 불쾌한 자색 마력에 악의는 창을 흔들어 그것을 걷어냈다.

얽힌 마력은 닿자마자 사라진다.

한껏 준비하더니 고작 이 정도인가? 이윽고 마법은 눈을 교란하듯 쉴 새 없이 변화하더니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예리한 칼날. 유려한 창끝. 날카로운 화살촉. 익히 보았던 이들이 휘두르자 악의는 실소했다.

왜냐하면 전부 가짜였으니까.

제법 오랫동안 수작을 부리더니 완성한 게 고작 이런 건가. 환영의 세계에 자신을 가둔 셈이겠지만 이깟 건 같잖지도 않다. 창칼과 화살이 다가오지만 막지 않았다. 어차피 환상 그리고 마력에 불과하니까.

……그게 오산이었다.

"아?"

피가 흐르진 않았다. 실체를 가지곤 있었지만 그게 피륙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전해지는 아픔. 처음으로 고통이라 부를 만한 걸 느끼자 악의는 의아해했다.

도대체 어떻게?

만상의 주인이라면 모를까 인류따위의 마법이 자신에게 닿을 리 없는데? 아무리 약해졌다지만 그럴 리가.

순간 오싹함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닿은 화살에 아픔을 느꼈다면 검과 창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까.

파고든 화살을 만진 순간, 악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마법이고 환영이고 가짜.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손으로 쥐어 으스러뜨리자 보라색 연기로 화해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느껴지는 질량과 질감. 이렇게나 정교한데 정말 가짜일까?

가짜인 동시에 진짜. 비실체인 동시에 마력. 환영이면서도 현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창칼과 화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총과 화약. 그리고 대포와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병기들이 자신을 조준한다. 홀로 있는 세계에서 악의는 처음으로 위기라고 부를 만한 것을 느꼈다.

뒤늦게 떠올렸다. 환영의 나비. 타세계에서 머리뼈를 수집했던 그녀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구현화­ 환상을 구현해 현실로 불러오는 힘.

실체를 가지는 이상 환상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게 된다. 여태 그랬으니 저것들 또한 마찬가지. 즉, 마법사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을 상처입힐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고통 속에서 악의는 웃었다.

역시 처음에 그녀와 싸우지 않은 건 정답이었다고. 역시 그녀가 가장 귀찮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이미 늦어버렸다.

탄알과 미사일. 구현한 무수한 것들을 거대한 손이 낚아채 순식간에 으스러뜨렸다. 이곳에 만연한 두려움과 적의같은 부정적인 감정. 그것들이 한데 뭉쳐 배후의 손은 완성된 지 오래였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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