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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21화 (321/407)

〈 321화 〉 #148 신역(??)

* * *

마력을 구름처럼 만들어 움직이는 백소율. 이은하와 함께 공중에 떠 악의를 피해가고 있었다. 배후의 손은 길게 늘어나 상공을 휘젓는다.

피하는 것도 그리 쉽진 않았지만 몇번이나 잡힐 뻔한 위험에서 벗어나며 어떻게든 버틸 순 있었다.

"……."

백소율은 머릿속으로 계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만약 기만같은 게 아니라면 '손'이 늘어날 수 있는 길이는 그리 길지 않다. 상공 100m 언저리. 그것만해도 보통이 아니지만 상대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 도망칠 수 있다. 다만,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않았더라면.

'역시…'

고작 몇 개월 배웠다고 극적으로 달라질 리 없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도망치고 벗어나는 정도가 고작일 뿐이다. 심지어는 그마저도 손끝이 달달 떨리기 시작하자 발밑이 흔들리고 있었다.

"소, 소율아?"

불안한 사슴같은 눈망울이 두리번거리자 백소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비린 피맛이 입 안을 감돌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흔들거리는 마력의 중심을 잡고 제어한다. 부족한 마력에 구름이 사라지기 전에 백소율은 이은하를 던졌다.

"먼저 가요!"

큰 소리와 함께 허공에 내던져진 이은하는 발버둥치다가 마력을 구현했다. 떠올린 건 낙하산. 적어도 떨어져 죽지 않게끔. 마력이 공기에 저항해 두둥실 떠올랐다.

안도의 한숨을 쉬려고 할 때, 낙하산이 찢어지고 확 낚아채지고 말았다. 혹시 '손'에 붙잡힌 걸까? 그렇진 않았다.

"팀장님!"

"이게 뭘 잘했다고 찡얼거려?"

정작 그렇게 말하는 홍유리의 상태도 좋아보이진 않았다. 포션의 과다남용. 그나마 여타 스킬과 용혈과 대마력의 작용으로 공중에 떠 있는 정도는 그럭저럭 유지할 순 있었지만.

"꽉 잡아."

휘둥그레 눈을 뜬 이은하는 끄덕거렸다.

꽉 잡으란 말에 허리를 감싸며 흩어지는 자색 구름으로부터 떨어지는 백소율을 아슬아슬하게 당길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다아… 괜찮아?"

황망했는지 백소율이 뒤늦게 끄덕였다. 분명 조금만 늦었더라면 분명 떨어졌으리라. 아쉽다는 듯 쥐었다펴는 '손'을 보고 이은하는 오싹함을 느꼈다.

"어째 아까보다 더 길어진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상은 초토화했고 헌터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고 있었다. 그게 뜻하는 건 패배. 악의를 막지 못했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였다.

"더 커졌겠지."

혀를 차며 말하는 홍유리. 그 본질이 악의라면 지금도 계속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커져 이젠 기회따위는 더 이상 없게 되리라. 마력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밝혀냈어도 쓰러뜨릴 방법따위는 없다.

설령 있다고 한들 헌터들이 맞서지 못하게 된 이상 그럴 시간도 주지 않을 테고.

"이건 이제"

끝.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홍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짚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아무래도 한 두개쯤 부러진 듯한데… 그래도 이 정도라면 아직 견딜 만하다.

문제는 지상. 이제 와해된 헌터들이, 인류가 점점 더 강해질 괴물을 어떻게 쓰러뜨리느냐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있었다.

'역시 목표는…'

잠깐 돌아본 곳엔 백소율과 이은하가 있었다. 스퀘어 마스터들조차 내버려두고 굳이 자신들을 쫓는다는 건 의심할 여지도 없으리라.

처음 제안에서도 그랬지만 그 노골적인 의도를 숨기려하지도 않는다.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것이리라. 또한, 악의는 그 자신감의 이유를 증명해냈다.

오히려 그 때문에 홍유리는 전선을 이탈하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되려 악의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게 되는 셈이니까.

궁리해야 한다. 어떻게든 방법을 떠올려야만 한다.

그러기를 얼마간, 상공을 떠돌던 홍유리가 밟은 구름이 멈춰섰다. 붙잡힌 게 아니라 '손'이 흔들리고 있어서. 손이 이어진 곳. 악의가 꿀렁거리며 무언가를 뱉어내고 있었다.

***

까드득 종말의 목을 짓밟은 늑대. 대등했던 눈높이는 더는 대등하지 않게 됐다. 이 상황에선 누가 보더라도 우위를 점한 쪽이 어느 쪽인지는 불보듯 뻔하다.

바닥에 쓰러진 종말. 갈가리 찢어진 날개는 더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검은 불길이 더 이상 재생하지 못하도록 상처부위를 지지고 있었다.

능히 별을 부수고 찢어버릴 힘을 가진 악룡의 거완(巨?)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심지어 한 쪽은 굶주린 짐승이 먹어치우기라도 했다는 듯 엉망이었다.

흘러나온 피는 뜨거운 열기에 타올라 끈적끈적한 흔적으로만 남아 우주를 떠돈다.

부서진 별의 파편이 대기를 떠도는 와중, 무엇보다 붉은 한 쌍의 눈동자는 더는 이곳을 보지 않고 있었다.

쓰러진 악룡의 목을 물어뜯기만 하면 이 싸움은 끝난다. 종말을 죽이면 분명 그토록 바랐던 기나긴 평화가 찾아오리라. 더는 가능성이 나타나지 않을 테지만 꿈결같은 시간은 제법 오랫동안 이어지리라.더 이상 누구도 죽지 않을 테고…… 어떤 가능성도 태어나지 않으리라.

문명은 성장하겠지만 영원한 건 없다. 분명 언젠가는 걸음을 멈추고 멸망의 기로에 서게 되리라.

별의 순환이 없다면 그 이후는 없다.

결국 영겁의 끝에 남는 건 고독과 허무. 진리가 알려준 그대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리라. 언젠가 분명 찾아올 그 잔혹한 미래가 늑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

다만, 생각해 둔 방법은 있다.

결국 각오를 다지고 마음을 다잡은 늑대는 종말의 목을 짓밟아 꺾었다. 경추가 부러지고 눈에 초점이 사라진 순간 늑대로부터 혼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종말은 죽지 않았다. 생물로서는 당연히 죽었어야겠지만 종말을 그 일반적인 범주 안에 집어넣기란 무리가 있다. 아무리 처참한 모습이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되살아나게 될 건 뻔하다.

종말을 지키기 위해 흘러나오는 혼돈. 여태까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지만 늑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려 그와 같은 힘이 더한 기세로 늑대로부터 흘러나와 종말의 혼돈을 밀어내고야 말았다.

혼무의 진수는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먹어치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 모든 것의 범주에 혼돈 또한 예외가 되진 못했다.

그리하여, 한 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종말을 먹어치운 늑대는 다소 떨어진 곳을 쳐다보았다. 혼돈의 장막. 그 안에선 여전히 찬란한 빛이 반짝이고 있다.

'이젠 알겠어.'

남은 절반의 근원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진리가 알려준 건 많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마지막으로 숨기고 있던 사실을 종말을 먹어치우며 알게 되었다.

오롯하고 완전한 존재…… 사실 그런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걸음이 차원과 차원을 넘나든다. 종말마저 먹어치운 지금 사실상 늑대를 막을 수 있는 건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진리라고 한들.

그래. 이젠 담판을 지을 시간이었다.

모든 이야기에 끝을 고하기 위해.

다만, 그러기 전에 머나먼 차원 너머를 흘기듯 쳐다보았다.

***

쌓아온 것이 흩어지고 있다.

갑작스런 이변에 누구보다 당황한 건 다름 아닌 악의 그 자체. 안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더는 용납치 않겠다는 듯이.

가장 먼저 흘러나온 건 검게 물든 사슴. 늠름하고 고귀했던 흰 사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검게 물들어있었다.

이미 초점이 없다. 풀린 동공과 뛰지 않는 심장. 사실상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사슴을 뒤덮고 있던 부정이 흩어지며 본래의 색을 되찾는다.

안개와도 같았던 모호한 형상의 악의는 이제 와 모습을 달리해 흩어지고 있었다.

[이, 이게에에에……?]

보기만 해도 끈적끈적한 점액같은 무언가. 악의에게 좀 더 명확한 형상이 부여된 것이다. 문제는 바라지 않았다는 것. 바라지 않았음에도 부여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슴이 그랬듯 죽었던 이들이 눈을 뜨고 있었다. 한줌 핏물이 돼 시체조차 남지 않았던 이들과 기력없이 쓰러져 가까스로 숨만 붙어있는 이들이 시간이 되감기듯 체력을 회복하고 생명을 되찾아간다.

죽지도 않고 끈질겼던 거한. 제법 수준 높던 창잡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닿은 대머리 형제. 비밀을 꿰뚫어봤던 활잡이. 부서진 도시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죽은 이들은 되살아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설마아아…]

느릿한 움직임으로 악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의 자신이 볼 수 있을 리 없지만 똑똑히 보았다.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아무 감정도 없이 머나먼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그것이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마저도.

[그 자리느으은, 그 자리느으으으은!]

납득할 수 없다. 악의는 있는 힘껏 발버둥쳤다. 배후의 손마저 무너지고 일어난 이변에 모두가 어안이 그 의지가 자신을 부정하고 있을 뿐인데. 머나먼 차원에서 고작 전해진 의지가 죽은 이를 되살리고 자신의 생명을 앗아간다.

그야말로 전지전능. 바라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힘. 아주 오랫동안 바라왔던 변하지 않는 지고의 옥좌. 그에 합당한 힘.초월의 영역마저 넘어선 누구도 닿지 못한 곳(??).

악의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슬라임처럼 흘러내리는 끈적한 부정형의 몸을 이끌고 저 너머를 저주했다. 촉수와 같은 무언가가 머나먼 하늘을 더듬는다.

[그 자리느으은! 그건 내가아아! 내가아아아아!]

다만, 저주는 닿지 않는다. 닿을 리 없다. 미래영겁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다시는. 설령 정수와 사념이 남아 무한한 시간이 흐르더라도 다시는 닿지 못하리라. 그 사실에 절망하던 악의는 흩어져가는 부정을 다시금 한데 모아 응집하려했다. 어떻게든 만들어낸 마수를 아직 일어나지 못한 흰 사슴을 향해 뻗었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 이게 남아있다면

뻗은 손길마저도 닿는 일은 없었다.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놓지 못한 고집보다도 싸늘한 눈길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버러지라 생각했던 그들이, 쓰러지거나 죽었을 터인 그들이 어느새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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