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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23화 (323/407)

〈 323화 〉 #150 Behind Story

* * *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한 때 사람이었던 몬스터는 멸망과 종말을 막아 올바른 결말에 도달했다. 때로는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결국 멈추지 않고 나아가 시련을 넘어 마침내 이야기는 매듭지어졌다.

더 이상 위협은 찾아오지 않으리라.

바라던 대로 인류는 평화를 되찾았고 세계는 구원받았다. 물론 영원히 이어지는 건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분명 문명이 흐려지고 인류는 쇠퇴하리라. 결국 그때엔 혼자 남게 되더라도 이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터.

"……."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수많은 별들조차 언젠가는 사라지고 새로운 별이 태어나게 되리라.

그렇듯 결말에 도달했다고, 이야기가 매듭지어졌다고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는 이미 막이 내려진 무대의 뒤편을 들춰 보는 이야기 바깥의 이야기(外?)가 되리라.

***

일전에 용의 황무지 지하 호수에서 보았던 몬스터, 호수 도마뱀과 닮아있지만 보다 색이 진하고 좀 더 커다란 몬스터를 상대로 사슬과 말뚝이 춤추듯 유려하게 움직인다.

능히 강철마저 씹어먹고도 남을 이빨은 마력의 사슬이라고 해도 예외 없이 먹어치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놈이 악식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서. 깨진 사슬의 마력을 씹어 삼키며 의기양양하게 달려든다.

과연, 지상과는 달리 바닷속의 몬스터는 한술 더 뜨는 몬스터라 부를 만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50년간 방치되어 있었기에 그동안 몬스터들 또한 힘을 길러 온 것. 약한 몬스터는 이미 진작에 씨가 말라 있었다. 인류는 분명 평화를 되찾았으나 어디까지나 땅 위에서일 뿐이지 아직 바다만큼은 되찾지 못했단 뜻이기도 하다.

놈이 수면 아래로 몸을 파고들자 커다란 물보라가 솟아오른다. 그럼에도 이은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흠뻑 젖으면서도 눈을 감진 않는 집중력. 제법 격렬해 보이지만 어차피 결과는 눈에 보일 듯 뻔하다. 이제는 예전의 어설픔따윈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동작에 군더더기따윈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솟아오른 물보라와 거친 파도를 타고 서핑이라도 하듯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사람이 물 위에 설 수 있을 리 없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마력. 수류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을 만큼 정교한 마력의 운용이었다.

구름이 아닌 발밑의 마력을 발판처럼 이용하는 모습은 마법사의 방식이라기보단 마치 자신이나 백록을 모방한 것처럼 보였지만.

"……."

확실한 건 못 본 사이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 비록 땅 위와 물 위는 한참이나 다르지만 격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바다 도마뱀이 열 마리쯤 있다면 모를까.

결국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다시 뛰어오른 바다 도마뱀은 수십 개나 되는 말뚝에 사정 없이 꿰뚫려 붙들리고 말았다.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가 바다를 새빨갛게 물들이자 휴 하고 한숨과 함께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고마워."

벌써 몇 마리째였던가. 그만큼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선명하게 내려와 있었다. 자연스레 새어 나온 하품과 함께 눈가를 비비는 동작엔 피로가 드러난다.

"슬슬 돌아갈까?"

남은 마력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기에 물은 말에 위아래로 끄덕거리며 돌아온 대답. 다리를 굽혀 몸을 낮추자 이은하가 등 위에 올라탄 게 느껴졌다.

"휴. 피곤해~"

"임무도 아니었지 않나."

클랜의 일이 아니다. 몬스터를 죽인 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원했기 때문일 뿐. 일종의 수련이라고 봐도 좋을 터였다.

"그야,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

"……."

"바다쪽은 토벌할 생각도 없어 보이니까…"

늑대는 가만 끄덕거렸다. 몬스터의 씨가 마르다시피한 지상과는 달리 바다는 쉽게 건드릴 수 없었으니까. 바다의 재앙이 사라진 것과는 별개로 배를 띄워 봤자 몬스터가 습격하면 결국 침몰하고 만다.

정말 뛰어난 마법사라면 어느 정도는 싸울 수 있겠지만 결국엔 지금의 이은하와 마찬가지로 지쳐 쓰러질 터. 그런 방식으론 끝도 없다.

따라서 인류는 아직 바다를 방치하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는 이상 한동안은 계속 그러하리라.

"진짜 드글드글하네."

수면 아래라도 이형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질린다는 듯한 이은하의 말에 늑대 또한 가만히 바다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선을 느꼈는지 뿔뿔이 흩어지는 무리. 혼비백산 도망쳐 금세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자신의 등 위에 편히 몸을 뉘고 있는 이은하.

불과 바람을 적절하게 일으키자 바다 도마뱀과 싸우느라 젖은 생쥐꼴이 됐던 그녀의 옷이 순식간에 말라간다. 굳이 보지 않아도 배시시 웃고 있을 표정이 눈에 선했다.

"고마워."

제법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던 걸까. 벌써 육지가 보이고 있었다.

"수고했다. 내일도 갈 건가?"

그러자 이은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 혼자서 애써봤자 달라질 건 없을 텐데도.

"그래. 알았다."

***

"……!"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무언가. 촉수로 받아들자 꺄르르 웃으며 좋아라한다. 만면에 웃음 가득한 페리. 그뿐만 아니라 함께 놀고 있었던 몇 마리나 되는 요정들이 달려들어 주변을 어지럽힌다.

빛가루가 떨어지자 사실 형광등 같은 건 필요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변이 밝아져 왔다.

"늑대! 항상 늦어!"

"늑대는 바보!"

"바, 바아보오?"

어설프게 따라 말한 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실수를 깨달은 요정들이 아차 싶었는지 눈을 크게 뜨곤 입을 가렸다. 이전에 탈피하고 나서 사람의 모습이 된 페리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곧잘 따라 하는 버릇이 생겨있었다.

비록 바뀐 건 겉모습뿐이고 요정용이란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애란 건 변하지 않으니까. 휘파람을 불며 멀어져가는 요정들. 비행기라도 태워주듯 몇 번인가 페리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은 늑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나?"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나도 방금 왔는데."

벽에 기대어 퉁명스레 말하는 홍유리. 다만, 늑대의 귀에는 작은 투덜거림으로 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뭐라고 하려던 그녀는 아까 늑대 자신에게 그랬듯 종종걸음으로 도도도 달려든 페리를 받아들었다.

잠깐 놀아주는가 싶더니 페리가 요정들을 따라가 사라지자 개미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결국 늑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쪼끔."

새어 나온 웃음에 찌릿한 시선이 느껴지자 애써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이를 갈며 멀어져가는 그녀의 볼이 마치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

소시지를 찌른 포크는 입속으로 쏙 들어가곤 급히 다음 소시지를 찔렀다.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허겁지겁 먹는 페리를 보며 늑대는 촉수 끝으로 소시지를 찔러보았다.

부드럽게 껍질을 뚫고 들어가자 진득한 육즙이 흘러나와 소스와 하나가 된다. 망설이지 않고 입속으로 집어넣은 늑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대단한 요리는 아니다. 사실 케챱과 칠리소스. 그리고 야채를 버무렸을 뿐인 볶음. 흔히들 쏘야라 부르는 음식이었다. 야매 요리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 야매가 어지간한 수준은 넘어서 있었다. 종종 혼자 술병을 까 안주도 없이 마시던 모습에선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스퀘어때부터 이어진 오랜 자취 생활로 손에 익은 요리이리라. 안주 없이 술을 마신 이유는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었을까.

하나둘 사라져가는 요리. 어느새 홍유리는 비스듬히 꺾은 고개를 손 위에 올리곤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까닥이는 턱이 어떻느냐고 묻는 듯했고 늑대는 순순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맛없다."

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접시가 깔끔히 비워져 있었으니까. 결국 상 위의 남은 음식마저 전부 비워 버리곤 늑대는 입맛을 다셨다.

"……참, 잘도 먹네."

촉수 끝에 묻은 소스마저 남김없이 먹은 늑대는 겸연쩍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사실, 식사가 필요한 건 이 집에선 홍유리 혼자뿐이었기에 기껏 만든 걸 다 먹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멋쩍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맛있는 음식은 자신에게 있어 기호품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왜 늦었는데?"

페리의 물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주며 묻자 늑대는 거짓없이 답했다. 이은하가 바다로 나가겠다는 걸 따라 갔노라고.

"갈 필요가 있긴 했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고 싶었으니까."

"안 봐도 알았을 거면서."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늑대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럴 리 없단 걸 알곤 있지만 이은하의 성장은 아무래도 그녀를 떠올리게 되고 만다. 설령 같은 존재라한들 둘은 다르고 이은하는 그녀가 될 수 없단 걸 알고 있음에도.

"안 그래도 걔 때문에… 쯧."

뭐라고 말하려던 홍유리는 혀를 차며 말을 끊었다. 자존심에 흐린 뒷말은 얼추 예상이 된다. 직접 눈으로 본 이은하는 홍유리와의 격차를 상당히 줄여 놓았으니까. 아직은 아니라곤 하지만 길어 봤자 1년이리라.

"하여간에 쓸데없이 열심히 하기는."

그걸 본인도 알고 있을 텐데 의외로 초조함은 엿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어쩐지 알 것도 같았으니까.

"그냥, 전부 없애버리지 그래?"

"……?"

"왜. 할 수 있을 거 아냐?"

늑대는 고개를 주억였다. 없애버린다 홍유리가 지칭하는 건 당연 바닷속 몬스터. 애초에 그 씨를 말려 버리면 따라갈 일도 없을 거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그때가 되면 인류에게는 진짜 의미로 평화가 찾아오리라.

"……."

그러나 늑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따지자면 물어볼 것도 없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렵기도 했다. 시간이 걸린다거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빤한 시선에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던 늑대는 어느샌가 물어본 것 따윈 까맣게 잊었다는 듯이 까르르 웃고 뒹굴고 있었다.

"뭐 해? 안 오고?"

가까스로 되찾은 일상. 늑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곧 셋은 엉망진창으로 바닥을 뒹굴었고 뒤늦게 온 요정들까지 달려들었다.

***

깊은 밤. 창 너머 달빛에 비치는 그녀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빗어보았다. 여전히 붉은 단발은 부드럽게 얽히며 흘러내린다. 언뜻 보기엔 전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그맣던 날개와 뿔도 그동안 조금은 자라 있었다. 분명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라나게 되리라.

품에 안은 온기를 소중하게 느끼며 깊은 눈으로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쫌. 숨 막히잖아."

다리를 토닥이는 손길에 느슨하게 힘을 풀어 주자 들어 올린 얼굴의 졸린 눈이 자신을 마주해 왔다.

"왜."

"……아무것도 아니다."

그만 잠을 깨워 버렸을까. 졸음에 하품이 새어 나온 홍유리는 눈가를 비비는 듯하더니 이내 알듯 말 듯한 웃음을 띠어보였다.

"잠도 못 자게 보고 있음 어쩌자고?"

불평하는 말과는 달리 얹짢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일 정도로.

"자는 내내 보고 있으려고?"

돌아오고 나서 벌써 며칠이나 지났던가. 사흘? 나흘?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다.

"왜? 아주 눈도 못 떼겠어?"

아주 뻔뻔한 말에 늑대는 잠깐 생각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싶어서. 아마 또 얼굴을 붉히고서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지 않을까. 조금 기대하는 눈빛이 어쩌면 일부로 그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순순히 응해주는 대신에 감싸 안기로 했다. 답답하다고 투닥거리는 손길을 그대로 받으며 한참이나 그러고 있자 포기했다는 듯 축 늘어진 홍유리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왜 이러는데."

"……."

"너, 돌아오고 나서부터 이상하잖아."

둘러안은 앞다리 사이에서 쏙 하고 얼굴이 올라왔다.

"원래 안 이랬으면서."

이상하게 감정에 휘둘리는 것 같다고 홍유리는 그렇게 말해 왔다. 그렇게까지 다른가 싶었지만 돌아보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마주한 눈동자가 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말해 봐. 왜 이러는 건지."

왜 돌아오는데 10개월이나 걸려 버렸는지. 그사이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를. 며칠간 고민하고 있던 늑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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