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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24화 (324/407)

〈 324화 〉 #150 Behind Story (2)

* * *

근원의 나머지 절반이 흘러나간 곳. 그리고 이 세계로 흘러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원래의 세계.

따라서, 확신할 수 있었다.

진리의 우려를 깨부수고 우주 바깥의 우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유리잔처럼 불안하고 조그맣던 세계 바깥에는 아니나다를까 또 다른 세계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우주 바깥의 우주(外??).

뭇 소설들처럼 형언할 수 없는 괴물들이 자리하고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어져 있었다. 오로지가능성이 있었다. 닿을 일 없는 무수한 수평선들이 끝없이 펼쳐진 무수한 가능성.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세계의 다발을.

[……]

역시나, 그 하나하나는 좁고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당장에 깨지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세계.

그러나, 진리는 늑대를 보았다.

"이제 만족하나?"

붉은 눈동자가 지그시 바라보는 것에 진리는 긍정을 표했다.

엮이고 엮인, 얽히고 얽힌 세계의 다발. 분명 그 또한 저 어딘가에서 태어났으리라.……그래. 설령 하나하나는 작고 불안정하더라도.

"불안은 사라졌나?"

이 무수한 가능성을 본 순간부터 이미 씻은듯이 사라져있었다.설령 자신이 실패했더라도 더 거대한 흐름의 일부밖에 되지 않았을 테니까.

이렇듯, 세계는 흘러간다.

가능성은 태어나고 머잖아 사라지지만 또 다른 가능성이 이어지게 되리라.

그리고 자신 또한 마찬가지로 그 가능성의 일부일 뿐.무수한 가능성을 보고서, 진리는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별로 와닿지가 않는데."

그 말처럼 정말이지 미묘한 표정이라 늑대는 속시원히 웃어버렸다.하기야, 평행 세계란 말을 들었을 때도 사실 그리 와닿지는 않았었다. 다만 도출할 수 있는 답이 그것이었을 뿐.

세계 바깥의 무수한 세계라고 말해봤자 이해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

"진리는 잠들었고 별의 순환은 멈추었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흘러간 나머지 절반의 근원을 되찾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10개월이란 시간의 대부분은 근원의 절반을 되찾느라 걸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땐 이미 돌아갈 수 없게 돼 있었다."

"왜?"

"……신역을 넘어버렸으니까."

종말을 집어삼키고 기어코 초월을 넘어 신역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그 힘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불가능한 일은 거의 찾지 못할 정도였다.그런데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머지 절반의 근원을 받아들이자 너무 거대해지고 말았다.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래서였다. 애당초 진리는 자신을 셋으로 분리하고도 모자라 근원을 죽여야만 했다. 그러고도 별의 순환으로 세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제서야 진리의 불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세계의 허용량을 넘는 힘에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결국 힘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모습이나 형태를 바꾸더라도 마찬가지.

두 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근데 넌 여기 있잖아?"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과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아서 늑대는 천천히 끄덕였다.

"답은 이미 진리가 보여주었으니까."

자신에게서 근원과 종말을 분리해 떼어냈던 것처럼 늑대 또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럼 너 설마…!"

홍유리가 염려하는 힘을 잃었다 그런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분리했을 뿐이니까. 극히 일부만이 페리의 의식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온 셈이다.쉽게 말해 본신은 외우주에 남아있고 그 일부가 여기에 있는 자신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조금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실수?"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많이 깃들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기에 다소의 오차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도 문제였지만.

"……진짜 안 와닿네."

그 말에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홍유리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적어도 인류에게 있어서 먼 별나라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네 진짜 몸은 못 온다는 거지?"

"그래."

진리처럼 등분하는 게 아닌 이상 온전한 형태로는 결코 돌아올 수 없다. 오묘한 표정을 짓던 홍유리는 다시 물어왔다.

"그 근원이라는 거 꼭 있어야 했어?"

"……그래."

세계를 뒤져 10개월이란 시간에 걸쳐 되찾아온 근원. 진리의 일부인 그것이 다른 세계에 있었다간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 상상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시간이 걸려버렸다.

"넌 문제 없는거지?"

마주한 눈동자가 걱정스레 물어오자 그것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래."

"……그럼 됐어. 돌아왔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기 있을 수 있다는 거였으니까.

***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그나마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선이 집중돼있다. 하기야, 보기 드문 물빛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아이와 그와 대조되는 검은 강아지. 그리고 반룡인 자신까지 더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불편하게 느껴지는 시선들에 홍유리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귀찮게."

종종 드는 생각이었지만, 진짜 뿔 꺾고 날개 꺾고 꼬리도 뽑아 버릴까도 싶었다. 아니, 차라리 그럴 바에야 죄다 눈깔들을 뽑아놓고 말지하는 생각으로 되돌아왔지만.

"Ascunde."

얇은 막이 감싸자 빛이 반사되며 모습이 가려진다. 마법까지 사용할 정도로 불편했을까. 곧 여명의 건물 안에 들어온 순간, 막은 깔끔히 사라졌다.

"페리랑 기다리고 있어."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홍유리는 계단을 올랐다. 여명의 최상층. 클랜장실까지 도착해 곧 강태준을 만난 홍유리는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헌터, 그만두려고 합니다."

***

촉수를 휘두르는 와중에 잠깐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쯤이면 강태준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있으리라.

새삼스레 쓰다듬으려는 손길을 툭툭 쳐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워라."

"거의 성공했는데."

그럴 리가. 죽을 때까지 시도해봐도 무리이리라. 아쉽고분해하는 면면은 알 바 아니다. 그나마 사람 모습인 페리에게는 거의 손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만큼 자신에게 공격 아닌 공격이 집중되는 듯하다. 돌아온지 벌써 며칠이나 됐다고…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솔직한 말로는 그동안 잊혀지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허황된 기대였던 모양. 그 대신이라고 해야할까? 종이컵이 재주도 좋게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가고 있었다.

마침내 화룡점정을 찍듯 마지막 한 개의 컵이 올려지자 연달아 박수치는 소리가 들렸다.

"응응. 대단하네!"

기쁘게 웃는 페리와 이은하. 홍유리를 기다리는 동안 찾아온 그녀가 페리와 놀아주고 있었다.놀아주고 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묘하게 쿵짝이 잘 맞았지만.

"바다로 갈 거라고 하지 않았나?"

"아직 아침이잖아."

만들어진 피라미드 탑의 꼭대기에 놓인 종이컵의 커피를늑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러다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넣은 페리를 보고서야 뒤늦게 아차 싶었다.

***

"그만두겠다고?"

"…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그 물음에 홍유리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전부 끝났으니까요."

"전부 끝났다…라."

서류를 작성하던 펜을 내려놓고 계속 말하라는 듯 홍유리를 쳐다보았다.

"기다리던 이는 돌아왔고 목적은 이뤘습니다."

"……."

"더 이상, 제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기다리던 이는 알파일 터. 목적이라고 한다면 역병과 질병의 타도였겠지만, 그건 알파가 이루고야 말았다.그림자 속에서 마랑은 인류를 구원했다. 홍유리의 말마따나 그녀가 더 이상 클랜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으리라.

"……그렇겠지."

탁자 위에서 강태준은 손가락을 튕겼다. 헌터가 필요한 시대는 저물어간다. 언젠가는 바다를 되찾아야한다는 의견들은 있었지만 당장은 평화로우니까.

게다가, 알파가 마음 먹는다면 그 바다를 되찾는다는 것마저 전혀 어렵지 않으리라.

"아, 그리고 구진하도 다 나았더라고요."

굳이 쓸 꺼면 구진하를 쓰라는 말. 자신 대신에 제물이라도 바치는 듯한 말에 강태준은 작게 웃으며 물었다.

"알파는 어떻게 한다던가?"

"아마 원한다면…"

그렇다면 정말 헌터와 마법사는 필요없으리라. 진짜 의미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게 될 테니.

"……여명의 해체부터 고려해봐야겠군. 퇴직 건은 받아들이겠다. 다만, 며칠간 시간이 필요한 건 어쩔 수 없겠군."

"알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었기에 수긍한 홍유리가 바깥으로 향하자 구둣굽소리와 함께 다가온 이가 물었다.

"…괜찮을까요?"

"괜찮겠지."

"문제는 뒷일입니다."

강태준은 끄덕였다.

여태까진 몬스터라는 명확한 외부의 적이 있었기에 서로에게 창칼이 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몬스터가 사라지고 위협이 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까.

또한, 그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총과 미사일에 더해 마법과 마력이 더해져 인류의 무기가 서로를 향한다면 멸망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에 불과하다. 하지만넘쳐흐르는 힘이 어디로 향할지는 불보듯 뻔하지 않을까. 하연의 말은 그 불안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었다.

"……문제없겠지."

설령 그 힘이 서로에게 향한다 하더라도 꺾이고 흐려질 리 없는 마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의지가 그를 용납치 않을 테니까.

***

"……."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지난 10개월은 너무 길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픔을 발판 삼아 마침내 원했던 자리까진 도달했다.아직 스승을 넘어선 건 아니었지만, 후계자의 자리엔 앉을 수 있었다.

물론 스퀘어 마스터가 되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돌아왔다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주문 영창을 제외하곤 거의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오랜만의 안부와 함께 이런저런 말로 시작되어 길게 이어진 문자엔 그가 돌아왔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저도 모르게 가슴 위에 손을 얹어보았을 땐 진작 멈춰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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