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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26화 (326/407)

〈 326화 〉 #152 크라켄 토벌

* * *

홍유리가 해안가로 향하자 얼떨결에 클랜에 혼자 남겨진 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건 아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데리러 오겠다는 말은 들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에베베베~"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 거한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애기도 아니고 그게 되겠습니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며. 난 될 줄 알았지. 아니 근데 이 자식이. 넌 뭐 뾰족한 수라도 있냐?"

이기준은 고개를 내려 어린 아이를 쳐다보았다. 알고 있다.페리. 늘 알파가 데리고 다니던 요정용이 이렇게 변했단 건 그야 신기한 일이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이나.

"한 번 먹을 거라도 줘 볼까요? 코코아는 마신다던데."

"오. 진짜로?"

희희낙락하며 달려간 거한의 뒷모습을 보며 이기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 사람이야 알아서 할 테니 내버려두면 될 터.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보육원은 아닌데."

물론 이해는 한다. 그냥 어린애도 아니고 환수씩이나 되는 이상 사무실도 안 될 테고 진짜 보육원에도 맡길 수 없었겠지.언뜻 귀띔으로 들은 이야기로 곧 그만두겠다는 것 같으니 굳이 뭐라고 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왔다! 근데… 뭐여? 어디 갔어?"

강태호의 말에 이기준은 자리가 비어있음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생각에 빠져 있긴 했지만한눈 팔지는 않았다. 움직였다면 분명 알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페리는 환수. 심지어는 요정용. 그 특성이 무엇이던가.

"점멸…!"

분명 인지하고 있었을 텐데…! 멍청한 실수에 자책하며 이기준은 넓게 마력을 퍼뜨렸다.예상 외로 페리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건물의 최하층. 만약 미아라도 됐다간 그 사람한테 무슨 갈굼을 받을지 눈앞이 어두컴컴해져 달리기 시작했다.

"어? 야, 야 인마!"

***

이 몸이 본신이 아니라 한들 본신의 힘을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외우주에 본신을 두고 와야했을 만큼이나 신역을 넘어선 힘은 너무나 강대했으니까. 괜한 개입으로 이 세계에 이상한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몬스터를 박멸하는 건 자신이 아닌 인류의 손으로 이루고 싶었다.

재앙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지만, 바다까지 자신의 손으로 되찾아줬다간 인류를 자립시킬 수 없으리라. 이후 이변이 일어나더라도 기대어 올지도 모른다.

인류의 자립. 그리고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의 경각심을 키우는 게 제일이었다.

그들의 손으로 몬스터를 없애버리게끔 만들어야 한다.

물론, 알고는 있었다.

몬스터는 실패한 생명체일뿐이지 절대적인 악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다만,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감정이 식은 눈으로 늑대는 이어지는 싸움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

그물에 휩싸인 몬스터로 만들어진 살덩이 바리케이드.

미리 가시를 세워 두긴 했지만 만약 저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해안가는 이미 돌파당해 인근 마을까지 마수가 뻗쳤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알파가 막았을 테지만.

'정말로?'

심해 아귀나 바다 도마뱀 혹은 고블린 피쉬까지 더해 끝도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 살덩이 바리케이드도 결국엔 한계가 있다. 살덩이를 비집고 그 사이에서 하나 둘 작은 몬스터들이 빠져나오고 있었으니까.

아직은 괜찮지만 결국 길이 열리게 되리라.

'생각해보면 대부분 바다에서밖에 살지 못하잖아?'

당연 바다에 서식하더라도 육지로 올라올 수 있는 종은 있다. 대표적으로 버려진 섬을 거주지로 삼는 악어 계열의 몬스터가 그러했다.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잠깐은 육지로 올라올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하려할까?

이 정도라면 어찌어찌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게 오산이라는 듯 저 멀리서 여기까지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촉수가 수면을 꿰뚫고 치솟아올랐다.

"……?!"

그 순간만큼은 용혈에 눈이 멀어 하염없이 해안가로 전진하던 몬스터들마저 몸을 돌렸다.그것은 정말이지 빨갛고 거대한, 마치 문어의 다리를 연상케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촉수가 기둥처럼 나타난 순간 문어를 연상케하는 것이 아닌 정말 문어임을 알게 되었다.

"모, 몬스터…?"

분명히. 안목 스킬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동물의 크기일 리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냐. 잘 생각해보면…'

감히 바다의 재앙과 비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 사이, 솟아오른비상식적인 크기의 촉수가 단번에 해안가를 휩쓸었다.

"……Embiggen!"

생각할 겨를이 없다. 미리 해안가에 만들어둔 가시를 거대화시켜 떠오르게 만들었다.

'노리는 건 알파일 거야.'

애초에 용혈을 쫓아 왔으니까.해안가를 쓸어버린 건 어디까지나 방해되기 때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 물론몬스터끼리 편을 가르거나 하진 않는단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살덩이 바리케이드와 몰려든 무리를 해안가 구석까지 쓸어버린 힘은 압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거대화한 가시를 모조리 쏘아내 부딪친 순간, 푸른 피가 왈칵 흘러나오자 쾌재를 질렀다. 아까의 일격을 보고 혹시라도 공격이 통하지도 않는 괴물이면 어쩌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으니.

하지만 그마저 착각임을 깨달았다.

기껏 박힌 가시가 저절로 빠져나왔으니까. 높은 등급의 재생 스킬 새살이 돋아나더니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하고 말았다.

'대체 얼마나 센 거야?!'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문어. 그런데 저만한 재생까지 가지고 있다면… A급? 아니,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리라.아무리 그래도 재앙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구획 보스에 상응하는 괴물일지도.

기어코 해안까지 다가와 얕은 수심으로 감출 수 없게 된 문어. 놈의 시선이 잠깐 자신을 쳐다본 순간 이은하는 직감했다.

놈이 자신을 방해라고 인식했노라고.

해안가를 막고 있던 몬스터 무리처럼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진 못 오겠…지?"

문어인 이상 육지로 올라오는 건 한계가 있으리라.그리고 그 어설픈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괴물은 너무나 간단히, 촉수로 자신을 끌어당기며 육지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그 움직임에 이은하는 신음처럼 내뱉었다.

"……설마, 수륙양용?"

***

클랜의 입구까지 단숨에 내려온 이기준은 곧바로 페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멋대로 사라진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놀라서 내려와봤더니…"

요정용이 있었으니까. 페리와는 달리 정말 용의 모습을 한 요정용. 하지만 이젠 완전히 자리잡아 깊은 산이나 숲이 아니라면 거의 볼 수 없다고 하던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하는 의문도 곧 해소되었다.

클랜 앞에서 멈춘 택시. 좌석에서 내린 인영을 향해 페리와 요정용이 함께 달려들었으니까.

"설마."

긴 흑발에 알파와 마찬가지로 요정용을 다루는 이. 한 때 여명에서 지냈던 사람이기에 그 얼굴은 낯이 익다.다만 자신이 알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져있었다. 주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면이.

"오랜만이네요. 2팀 부팀장님이셨죠?"

이젠 저릿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그녀의 마력. 뒤늦게 후계자가 됐다는 말을 떠올리고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그 홍유리조차 후계자가 아닌 후계자 후보에 불과했었으니까.

"아 이자식. 겁나 뛰어댕기네. 찾았냐?"

팀장님이 코코아 다 식는다고 투덜거리며 뒤따라 내려왔을 때, 그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그녀를 보고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와. 너 되게 오랜만에 본다?"

***

[무리에 이어 출몰한 크라켄은 기어이 육지를 기어올라 내륙으로 들어오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표 클랜과 여명의 헌터가…]

"크라켄. 잘도 떠드네요."

"커다란 문어하면 그거 말곤 안 떠오르잖아."

전례가 없는 몬스터이기에 이름이 있을 리 없다. 크라켄이란 이름도 방송국에서 제멋대로 붙인 이름일 뿐. 그러나, 크라켄. 신화 속 괴물을 연상케하는 저 괴물을 이 이상 잘 표현하는 말도 없으리라.

마침내 해안가로 도착했을 때, 홍유리는 차 문을 부술듯이 열어버리곤 단숨에 뛰쳐나갔다. 막고 있다던 TV속 아나운서의 말과는 달리 시종일관 밀리고 있다. 애초에 저런 괴물을 일개 대표 클랜이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이은하가 있어 육지로 기어오르려는 문어를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을 뿐.가장 먼저 전황을 살핀 홍유리는 뒤이어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두말할 것 없이 알파. 오는 도중 계속 머리가 복잡했다.

구세마랑회. 그 이름처럼 '그 날' 이후 생겨난 알파를 숭배하는 사이비 교.

만약 알파가 힘을 드러내면 놈들의 움직임이 격해지리라. 하지만 저만한 몬스터가 여기까지 온 이상, 게다가 이은하가 저렇게 분투하고 있는 만큼 알파가 모습을 드러낼 건 기정사실이라 여겼다.

애당초 바다가 아니라 해안에서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의문. 왜 바다로 나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알파는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다른 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알파의 초월적인 능력을 떠올려보면 그럴 가능성은 턱없이 적다.높은 확률로 자의라는 뜻. 이은하가 위험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도대체 왜?

의문이 차올랐지만 먼저 놈을 쓰러뜨리는 게 우선이리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차 안에서부터 준비해 둔 마법을 있는 힘껏 외쳤다.

"Iată moartea ta!"

***

"……."

폭발하는 백광. 그 이상으로 천지를 뒤덮는 굉음. 이은하가 성장한 만큼 홍유리 또한 마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단 뜻이다.

지금의 그녀라면 정말 스퀘어 마스터에 걸맞은 힘을 가지고 있을 터. 환영의 나비를 제외하면 타 스퀘어 마스터와는 좋은 승부가 될지도 모른다.

용혈에 몰려든 몬스터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지만이걸로 됐다.홍유리에 더불어 여명의 팀이 도착한 이상, 저 몬스터가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백광이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크라켄은 제법 넝마가 돼 있었지만 금세 회복하고 있었다. 타입은 다르지만 바포메트나 스노웰에 필적하는 힘. 굳이 비교하자면 러시아에서 봤던 서리 대군주와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이번엔 이걸로 됐어.'

지구의 7할은 바다. 나머지 3할에 불과한 육지에서도 네버랜드와 재앙과 같은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배가 넘는 면적에 50년간 방치된 이상, 아무리 그래도 재앙 수준의 몬스터는 없겠지만 저 넓은 바닷속에 크라켄 정도 되는 몬스터가 아직 더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으리라.

과연 알고는 있을까. 자신이 쓰러뜨렸던 바다의 재앙마저도 수륙양용 스킬을 가지고 있었단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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