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 #153 구세마랑회 (2)
* * *
바글바글한 몬스터 무리.
호출된 홍유리는 무리의 모습을 보곤 가장 먼저 알파를 떠올렸다. 일부러 몬스터를 불러 경각심을 일으키겠다 말했으니까.
알파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마안을 사용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정말 숨을 생각이라면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을 터.
"팀장님!"
연락을 받고 도착한 자리에 여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다만, 홍유리가 놀란 사실은 팀을 나누지 않았다는 것. 강태호와 하연까지 나와 있었으니까.
"뭐야. 장난해?"
2, 3팀뿐만 아니라 1팀까지 같은 곳으로 부른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과잉 전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거라 알고 있었던 것처럼 클랜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
"반대쪽은 다른 클랜이 대처할 겁니다."
명백한 이상 현상이라는 말에 홍유리는 퉤, 침을 뱉고는 모래를 덮어 버렸다. 코를 쑤시는 피 냄새에 용혈을 뿌린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수를 써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더럽게 많네.'
끝도 없다는 말은 과장도 뭣도 아니다. 인근 해역에 몬스터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몰려들어 있다.
이미 처리한 몬스터까지 더해 그 숫자가 세 보지 않아도 1000을 가볍게 넘고 있으니 웬만한 던전은 우습게 넘는 셈이다.
거기다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바닷속 몬스터.
'균형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수륙양용. 바다와 육지 양면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을 가진 몬스터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안가로 밀려들긴 하지만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으니 마땅히 위협이 되진 않는다.
마치 선이 그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제야 홍유리는 자신이 예비로 호출됐음을 깨달았다. 강태호나 하연이 지치면 팀원들과 함께 다음번 순서로 투입될 예정이리라.
'무슨 생각이야. 너 대체.'
손톱이 살갗을 파고든다. 피곤함은 둘째치더라도 대처가 늦었더라면 얼마나 인명 피해가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구세마랑회가 있으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자제해 달라고 했는데 설마 귓등으로도 듣지않은 걸까.
이미 어둑해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
동해안. 서해안. 그리고 남해안.
해안가는 넓었지만 한 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했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였다.
누가 알려 준 게 아님에도 늑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본신이 아닌 이 몸에 깃든 힘은 고작 정신체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리 바깥을 꿰뚫어 보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무리의 기척이 거슬린다.
몬스터가 단지 문명화에 실패한 인류 이전의 생명체에 불과하단 걸 알고 있음에도. 몬스터가 악이라는 기존의 편견같은 건 전부 버렸음에도 거슬려서 어쩔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영역이 침범당하기라도 했단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도.
"."
***
가볍게 깨진 마법진. 며칠씩이나 걸려 준비했는데 너무 가볍게 파훼되고 말았다.
"……!"
섬뜩한 시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착각이 들었다. 몸이 덜덜 떨려오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구멍이란 구멍으로 분비물을 쏟아내고 한참이나 지나 이성을 되찾았을 때, 어느새 두려움은 가시고 환희에 젖어있었다.
악취 속에서 다시금 아까의 시선을 떠올리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역시, 역시!"
격이 다르다.
모든 재앙을 쓰러뜨리고 종말을 물리친 마랑.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 주마등을 보고 말았다.
고작 시선이다.
적의나 살의조차도 담고 있지 않았다. 불쾌한 감정을 담아 한 번 쳐다본 것에 불과한데도 이리도 쉽게 마법진이 깨어졌다.
만약 그것이 적의나 살의였다면. 그리고 적으로 인식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녀가 말했던 대로다.
목적은 이뤘다. 신에 가까운 마랑의 모습을, 숭배의 대상을 직접 목도했으니까.
"비록 직접 나서지는 않으셨다 해도…"
그 시선에 담긴 힘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만족한다. 언젠가 마랑, 그분이 직접 움직이게 된다면.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되면 그를 숭배하는 형제들이 늘어나리라.
어찌 됐건 슬슬 물러나는 게 좋으리라.
꼬리를 밟히진 않았겠지만 헌터들은 뛰어나다. 탐지나 마안같은 특수한 스킬을 가진 이가 있다면 뒤를 쫓아올지도 모르니까.
아직 떨리는 다리로 일어났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어떻게…?"
족히 백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며칠이나 걸려 만든 마법진으로 겨우 엿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넋을 놓았던 건 정말 짧은 시간. 고작 2, 3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어둠 속에서 드러난 한 쌍의 붉은 눈이 자신을 주시한 순간,
"하, 하하하…"
망연자실하게 웃으며 포기하고 말았다.
***
한 줌 핏물이 돼 스러진 그들을 무감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분명 구세마랑회의 일원이었으리라. 물론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정보를 캐내려 했다.
그런데, 자신을 보자마자 멋대로 자결해버렸다. 마치 그래야한다고 사전에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은막대?'
생긴 건 그랬지만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감정한 순간 그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마법이 걸려 있다. 그에 더해 독극물과 함께 이것저것 부정한 것들이 섞인 물건. 심장에 정확히 찔러넣었다면 이렇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눈살을 찌푸린 늑대는 잠깐 생각했다.
'되살릴까.'
허공에 떠다니는 옅은 빛을 움켜쥐었다. 비록 육신은 한 줌 핏물로 변했다지만 정수가 남아 있으면 되살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내 그 빛을 놓고 말았다.
되살려서 정보를 캐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본신의 힘이 필요하다. 가능한 한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외우주에 두고 있을 정도.
차라리 다음번엔 상기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정답이리라.
'문제는 내 존재를 알고 있다는 점.'
그것 자체는 그리 의문은 아니다. 여명과 자신이 관련됐다는 걸 알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집의 위치까지 특정했단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뜻. 그에 늑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막대를 아공간 속에 집어넣고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져가는 정수를 뒤로 했다. 핏물을 그림자속에 삼켜 버리곤 다시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
강태호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손으로 부채질하며 투덜거렸다.
"와나. 뭐 이렇게 온다냐."
"저희라고 알겠습니까?"
"아직 멀었냐?"
저 앞. 빙산처럼 높게 치솟은 얼음이 해안가의 길을 틀어막고 있기에 한 번에 싸우는 몬스터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싸움이 지속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벌, 나도 대기조나 할 걸 그랬지. 완전 개꿀빠는구만."
비록 자리엔 없다지만 그가 아니라면 누가 클랜장에게 투덜거릴 수 있을까. 옆에서 듣고 있던 이기준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조. 여명은 한쪽 바다를 맡았지만 만약을 대비해 모든 전력을 투입하진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클랜장인 강태준 혼자 서해안과 남해안의 중심지에서 어느 쪽에든 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단한 게 아니라 크라켄과 같은 대형 몬스터를 대비하는 것. 만약 그런 몬스터가 또 출몰한다면 인근 클랜들만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일 테니까.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런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다.
"그게 내 전문인데. 망할."
대검은 조막만 한 놈들을 베려고 있는 게 아니라며 다시 투덜거린 강태호는 그 새 얼음이 녹은 바다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얼음이 녹아 길은 생겼지만 도무지 지나갈 수 없는 길. 빙산 대신에 불길이 높게 솟구쳐 있었으니까.
"진짜 존나 세구만."
마법이라곤 하지만 불길이 모래와 바다 위에서도 타오르는 거였던가? 환경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어느새 피냄새보다 타는 냄새가 더 심하게 나고 있을 정도였다.
당연 그 원인으론 붉은 꼬리와 날개를 가진 홍유리가 있었고.
"이제 나보다 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요?"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이기준이 쳐다보자 강태호는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물론 마법사를 상대로 1대1로 질 리는 없겠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대인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밀리지 않을까. 물론 용종이 된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 성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조만간 날아다녀도 안 이상할 것 같은데."
가만보면 날개도 제법 자라난 것 같기도 하고.
"설마 그렇게 되려고요."
"낸들 알겠냐."
"하기야, 꼬리는 잘 움직이시긴 하죠."
보란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강태호는 크게 웃으며 끄덕였다.
"너 그거 나중에 말해 줘도 되냐?"
"앞으로 일 혼자 하시려면 그러시던가요."
"이 얌체같은 놈. 안 한다 안 해. 들리지도 않을 건데."
"…흠. 성격도 좀 용 같기는 하죠."
"그래 인마. 그리고 더워서 땀도 안 식잖냐?"
"거, 덥기는 하네요."
"으허허. 역시 하연이가 낫다니까."
우연인지 아닌지 마침 튄 불꽃에 화들짝 놀란 둘이 모래사장을 헤집었다. 그리고 마침 바닷속 깊은 곳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