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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31화 (331/407)

〈 331화 〉 #153 구세마랑회 (3)

* * *

조금 먼 미래를 보는 눈이 곧 해안가에 드리워질 그림자를 미리부터 보고 있었다. 늑대의 눈동자는 의도치 않았음에도 그 존재를 통찰하고 있었다.

[탄주어]

그 크기부터 체중과 힘. 스킬과 스테이터스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취할 행동과 싸우는 방식과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어쩌면 저번에 나타난 크라켄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괴물. 그렇기에, 늑대는 참견하지 않으려 했다.

제법 강한 축에 속하긴 하지만 여명이 있는 곳에 나타난 거라면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으리라. 머잖아 새까맣게 불타올라 도륙나고 말 테니.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미래를 보고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는 걸음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이 내달렸다.

***

홍유리의 선전에 이어 박차를 가하는 팀원들. 몰려드는 괴물들을 힘차게 밀어내는 3팀의 선두에는 이은하가 있었다.

누구보다 바짝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런 게 아니다. 따르기는커녕 당장에라도 뒤처질 것만 같았다. 요 며칠간 알파와 함께 해안가를 누빈 경험이 없었다면. 바닷속 몬스터들에게 익숙해져있지 않았다면 진작 쓰러지고 말았으리라.

'대련할 때랑은 달라!'

정말이지, 전혀 다르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애써 말소리로 만들어 뱉고는 땅을 짚었다. 그러자 부족한 마력 대신에 모래가 기둥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머리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한없이 작아져간다.

뿔이 돋아난 등갑을 가진 커다란 거북, 혼 터틀이 들어 올려지고 만 것이다.

'그래도 역시 부족해.'

고작 이 정도로는 죽일 수 없다. 모래로 만든 가시 정도로는 혼 터틀을 꿰뚫기에는 역부족. 복부의 껍데기는 등갑정도는 아니라곤 하나 강철은 우습게 여길만한 강도를 지니고 있으니까.

혼 터틀이 심하게 몸부림 쳐 모래기둥이 흩어지려하자 숨을 고른 이은하는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공간이 왜곡되자 거북은 쪼그라들고 등갑이 불길한 소리를 내고 기둥을 이루던 모래가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몇몇은 그 눈이 반짝였다고 느꼈다.

계속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잡히지 않았던 실마리. 거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붙잡고 말리라 생각했지만, 공간 왜곡에 의해 혼 터틀이었던 조각들이 엉망진창으로 흘러내리자 집중이 깨지고 말았다.

"아…!"

그 아쉬움에 탄식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기에 재빨리 소매로 땀을 닦고는 마력을 집중했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을 썼는데도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듯한…?

"?"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선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반사적으로, 더욱 또렷해진 시야로 아직도 학살을 이어가는 붉은 마법사를 올려다보았다.

여명 최고의 마법사… 이미 그런 말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몇 달간 쭉 이어진 대련.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차이가 좁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다.

아니, 타입이 다른 거겠지.

레드 스퀘어의 불을 다루는 홍유리가 대인전에서 발할 수 있는 힘은 당연하게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하지만 몬스터를 상대로 제한이 사라진, 맘껏 펼치는 역량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따지고보면 1년 전, 단신으로 구획보스를 쓰러뜨린 괴물이 바로 그녀였으니.

"아직 멀었구나…"

홀로 해안가가 아닌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크라켄을 상대할 때조차 조절했다는 것일 터. 어쩌면 클랜원마저 방해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훼방과 족쇄를 벗어던지고 어두운 밤을 붉은 빛으로 수놓는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어쩌면 이대로 혼자 전부 정리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붉은 빛을 집어삼키고 물기둥이 솟아올라왔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어디까지라도 닿을 법한 거대한 턱이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허…"

누군가 뱉은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

물고기와 고래가 반쯤 섞인 처음보는 몬스터였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집어삼켜지면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란 것.

다만­ 어떻게 집어삼킬 수 있단 말인가.

붉은 구름 위에서 오연히 내려다보며 주문을 외는 그녀를 한낱 물고기가 어떻게 위협할 수 있을까.

의뭉스러웠지만 모습을 드러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답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거대한 턱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닫히기 직전이 되어서야 턱에서 붉은 무언가가 쏘아져나왔다.

얇지만 넓은 선. 한참이나 집중한 끝에야 간파한 그 붉은 선의 정체는 한낱 물줄기였다. 한껏 들이킨 피로 범벅이 된 물이리라.

그러나 그걸 가볍게 보고 넘길 순 없으리라.

범상치않은 유속은 마치 고성능의 수압 커터를 보는 듯했으니까. 실제론 분명 그 이상의 위력이 있으리라.

만약 자신이라면 어떻게 받아칠까.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개의 비전이 떠올랐지만 그 결과가 모두 같았기에 망부석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떠듬떠듬 용기내 입술이 떼어진 게 고작이었다.

"위…!"

위험하다. 그 말을 뱉기도 전에 붉은 물줄기는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아니, 더한 불에 타올라 증발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이은하는 아까의 실마리를 다시금 붙잡고 늘어졌다.

여전한 오만함을 담은 채 오연히 내려다보는 시선이 고작 그거냐고 묻는 듯하다.

아니, 들리진 않았지만 정말로 외치고 있었다.

'도…망쳐?'

괴물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홍유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에 따라 고개 돌린 이은하는 자신의 측면이 새까맣게 가득 차 있음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 마리가 아니다.

드리운 그림자는 처음부터 하나가 아닌 둘이었던 거다.

***

아슬아슬하게 붙잡지 못했다. 옷깃의 감촉이 손에 스친 듯했는데 결국 닿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은하!"

제지했어야 했다. 혼자 멋대로 앞서나가지 말라고.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계속 노력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넋을 잃은 그 모습에 무언가 실마리를 붙잡았다고 여겨 차마 건드릴 수 없었다.

도약할 기회는 어쩌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게 실수였다.

홍유리가 자리를 비운 이상 3팀의 팀원을 통솔해야하는 건 자신.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했던 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자책한 우택은 이를 악물고는 바닷속으로 잠수하려는 그것을 뒤쫓았다.

거대한 몸집. 바닷속의 몬스터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지만 결국 피륙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다름 없다.

발끝에 가득 힘을 주고서 모래사장을 질주해 순식간에 답파한 우택은 주먹에 가득 힘을 주고선 뛰어올랐다.

놈이 사라지기 전에 붙잡으면 그만. 뛰어올라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쯤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지른 주먹은 아래에서부터 차오른 마력을 허리에서부터 어깨 그리고 주먹으로 전달해냈다.

단순하지만 그 힘은 실로 압도적. 순식간에 이루어진 동작과 주먹에 담긴 힘은 폭풍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어지간한 폭탄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힘이 담겨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정도로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잠깐 뒤흔드는가 싶었지만, 결국 그 정도. 이미 바닷속으로 사라져버린 그것을 뒤쫓을 수도 없이 우택은 이를 악물었다.

***

삼켜지고 말았다. 시체와 바닷물에 함께 휩쓸린 이은하는 뒤늦게나마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그건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발판은 몬스터의 사체가 나뒹굴며 깨져버린다. 아가미 의 틈새를 붙잡아 견뎌보려 해도 들숨에 버티질 못하고 더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싸움의 한가운데 넋을 잃고 시선을 뺏기고 말았던 것?

혹은 잡힐 것 같은 실마리에 손이 닿지 않아 탄식하고 있었던 것?

'아니. 전부겠지.'

어쩜 이리 안일한 걸까.

난 대체 몇 번이나 당해야 속이 시원한 걸까.

이를 악문 이은하는 있는 힘껏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헤엄쳐나갔다. 후회는 바깥에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 만약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후회할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으리라.

물살과 들숨에 굴하지 않고 헤엄쳤지만 아무리 헌터라고 해봤자 결국 한낱 인간. 격류에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다. 거기에 더해 몰려드는 사체를 피하는 것만 하더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은하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고, 아연해했다.

마치 낭떠러지, 무저갱을 보는 듯하다.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붉게 물들었던 사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저 너머가 어떻게 돼 있는지는 몰라도 빛 한줌 들지 않는 저 새까만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면 본능적으로 두 번 다시는 나올 수 없으리라 직감했다.

헤엄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 대신 마력을 쥐어짜 마치 실처럼 길게 뽑아내 있는 힘껏 팔을 휘둘렀다. 마력의 실은 마치 낚싯대, 채찍처럼 휘둘러져 가까스로 그것의 아가미에 닿을 수 있었다.

'살았…?'

살았다고 생각한 건 아주 잠시동안.

거센 흔들림과 함께 외부에서 가해진 강한 충격에 기껏 걸어놨던 실이 뽑혀나가고 말았으니까.

손을 뻗은 채 닿을 리 없는 무언가를 바라며 깊은 심연속으로 삼켜져간다.

아, 얼마만에 느껴보는 걸까.

악의에 삼켜진 이래? 아니면 좀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이은하의 머릿속에 절망이라는 감정이, 단어가 생생하게 떠오르고야 말았다.

***

밤이 내달린다.

그것은 깊은 밤, 어둠 속에서조차 똑똑히 보일 검정. 혼자만이 이질적인 칠흑이었다. 천장에서 반짝이는 빛을 빨아들이듯 집어삼킨 그것이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속도로 달렸다.

분명 해가 뜨더라도 아침이 쫓아오기도 전에 도망쳐버릴 깊은 밤이리라.

어렴풋한 형상, 짐승의 모습을 한 그것이 지나쳐가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뒤늦게 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실수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반대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멋대로 풀려버린 다리와 흔들리는 무릎이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그런데도 쓰러질 수 있었단 사실에 안심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 정체를 확인한 건 아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짐승의 모습을 한 죽음이 분명 자신의 곁을 지나갔노라고.

그리고 곧 공포는 머릿속에서 금세 잊혀졌다.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그렇게 지나친 밤은 어느샌가 해안가의 바닷바람을 가르고 질주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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