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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32화 (332/407)

〈 332화 〉 #154 이 밤이 끝나기 전에

* * *

"……!"

실패했다. 놓치고 말았다.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바다 깊은 곳으로 숨어든 이상 저 괴물을 쫓는 것 자체가 개죽음밖엔 되지 않는다. 생각하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해버린 우택은 자신의 걸음이 더뎌져가는 것에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걸음이 멈췄는데도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디까지나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

뒷덜미를 잡은 손에 이끌려 지면이 멀어진다. 수십 미터 위에서부터 흉악하게 휘둘러지는 대검. 거력을 담아 기적을 일으키듯 붉은 바다를 갈랐으나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진작에 도망쳤다는 뜻이리라.

역시 생각했던 대로 소용없는 짓이다.

그러나,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더 후회하게 되리라.

몇 번이나 느꼈던 경험을 발판삼아 우택은 있는 힘껏 주먹을 뻗었다. 거한의 대검이 그랬듯 권사의 철권이 갈라진 바다를 억지로 열어젖혔다.

분명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공중에서 내동댕이쳐진 우택은 그럼에도 만족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보였다!"

착각할 리 없는 커다란 꼬리가 갈라진 바다 사이로 어렴풋하게나마 보였으니까. 그걸 확인한 순간, 갈라진 길은 바닷물 대신 얼음이 채워 길을 만들었다.

누구의 마법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콧김을 뿜으며 착지한 거한이 빙판길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cm나 되는 두꺼운 얼음임에도 발자국이 찍히기만 하면 어김없이 깨져나간다.

그만한 속도와 힘. 이윽고 이어진 길 끝에서 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무겁고 힘차게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진각을 밟는다. 그렇게, 발목까지 얼음 속으로 파고든 그의 하체가 단단하게 고정된 순간.

"간다!"

풍압이 아닌 실물. 거대한 대검이 바람을 가르고 바닷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커다란 물고기의 등판에 박힌 대검. 그와 동시에 치솟은 물보라는 놈이 몸부림쳤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였지만 달리 말하자면 떠오르진 않았다.

다른 몬스터라면 치명상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몸집이 크다는 건 그만큼 끈질기다는 뜻. 고작 일격으로 쓰러뜨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강태호는 아공간을 비집었다.

하나로 안 된다면 그 이상을 던지면 되니까. 하지만,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다.

"망할."

홍유리와 싸우고 있던 탄주어가 몸부림치며 뒤척인 탓에 빙판길 위에 있던 그는 균형을 잃고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지나쳐가는 검은 무언가를 보아서.

"에라이 시펄. 빨리 좀 오지 그랬냐."

그렇게, 붉게 물든 차디찬 바닷속에 몸을 담구었다.

***

찢어진 이마를 감싸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흔들림에 머리를 박을 뻔한 덕분에 오히려 또렷하게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었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미 마력은 바닥 났고 체력도 남아있지 않다. 위장벽에 단단히 걸린 시체를 붙잡고 견디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타 차원에서 만난 그녀에게 수륙양용 스킬을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면 절대 견디지 못했으리라.

체온이 떨어져간다. 손목이 떨려서 놓칠 것만 같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타개법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이은하는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눈을 빛냈다.

위벽 자체가 빨갛지만 그 중에서도 더 붉은 것.

밖에서부터 안으로 찢어발기고 파고 들어온 대검의 칼날. 아까의 커다란 흔들림의 정체는 분명 저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남아있는 마력은 0에 가깝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궁리해봤자 살아남을 방법 따윈 그 어디에도 없다.

이미 차오른 절망은 손아귀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다.

환영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주마등일까.

흐린 눈으로 앞을 쳐다본 이은하의 망막엔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이가 비치고 있었다.

벅차오른 가슴이 환희로 물들고 희망으로 가득해진다.

'살려줘! 도와줘…!'

어렵지 않은 말. 그 한 마디를 뱉으려는 순간,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됐다.

'왜?'

아까까지 차게 식어가던 심장이 펌프질한다.

박동이 빨라지는만큼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는 듯하다.

딱딱하게 굳은 채로 이미 몇 번이나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고야 말았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알파를 보고서야 확신했다.

이건 자신의 나약함이 만든 환상이라고.

도대체 몇 번째인가.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구해져야 만족하는 걸까.

분명 알파는 자신을 구해줄지도 모른다.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분명히. 투덜거리지도 않고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구해줄 게 분명하다.

'그건… 싫어!'

피가 빠르게 흐르자 식어가던 몸이 뜨거워진다.

이은하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구해지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다. 구해지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하지만 몇 번인가 구해지면서도 달라지지 않으면. 계속 어리숙하고 멍청하고 아둔하게 성장하지 못한 채 도움만 바라고 있을 뿐이라면.

'정말 싫은 건 그거였어!'

환영속의 알파가 뻗은 검은 촉수가 코앞까지 닥쳐오자 이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뻗은 촉수를 내쳐버렸다.

지난 10개월.알파가 사라진 동안 노력했던 이유. 머리로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가슴으로는 알고 있었던 거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응어리 진 감정이 터져나오자밑바닥의 밑바닥. 바닥 아래에서부터 우물이 샘솟아올랐다. 샘솟아오른 것은 우물만이 아니라 감정 또한 마찬가지.

그것을 한껏 담아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젠, 싫어!"

언제라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하지만 여태 붙잡지 못한 실마리에 드디어 손이 닿았다.

***

기껏 뻗은 손을 쳐내진 늑대는 가만히 이은하를 바라보았다.

탄주어를 쫓아 안으로 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신체의 격이라고 말했지만 신역을 넘었던 존재가 정신체의 격을 가진다고 겨우 그 정도에 머무를 리 없다. 그 때문에 탄주어를 쫓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은하가 아직 살아있는가하는 점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본신으로 개입해서라도 되살린다.

그렇게 마음먹고 안으로 발을 디뎠건만 의외로 아직 견디고 있었다.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됐다고. 잘 견뎠다고 구해주려했으나 뻗은 손을 쳐내고 말았다.

마력은 바닥났고 눈은 흐리다. 악몽이나 환각을 본 거라 생각한 늑대는 다시 한 번 이은하를 구하려했으나 그 전에 빛을 보았다.

휘황찬란한 빛이 번뜩인다.

언젠가보았던 광경이다. 하지만 그녀와는 감히 비할 수 없고 마력의 색도 검정이 아닌 더 없이 맑은 푸른 색이었다.

'마력.'

분명 바닥났던 마력이 바닥 아래에서부터 퍼올려진다. 이미 지나왔던 길인 만큼 모를려야 모를 수 없다. 또한, 늑대의 눈은 더욱 근본적인 것을 통찰하고 있었다. 바로 영혼에 아로새겨져가는 글귀를.

***

"……!"

폭발하는 것 같다.

분명 바닥났었는데도. 더 안쪽에서 끌어올려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마력의 힘.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아니, 하고 싶다.

안에서부터 샘솟은 그것을 욕망에 따라 터뜨린 순간, 이곳 전체를 뒤흔드는 힘에 이은하는 눈을 부릅 떴다. 짧은 순간이라고는 하나번뜩이는 마력이 폭발하며 어둠을 모조리 몰아내고 빛을 불러왔다.

그리곤 역류한다.

어딜 어떻게 잘못 건드린 걸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들숨이 날숨으로 바뀐 것이다. 아니, 거센 흐름은 헛구역질과 함께 안에 들어찬 것을 모조리 뱉어내고 있었다.

"……!"

나갈 수 있다. 빠져나갈 수 있다!

이대로 뱉어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탄주어가 몸부림치는 만큼 바깥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쿠구구구­

안에 있던 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지는 덩어리. 사체의 무리가 역류하고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낸 이은하는 허우적거리며 바깥을 향해 헤엄쳤다.

그러나, 역부족.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결국 따라잡혀 짓뭉개지고 말리라.

이번엔 결코 자력으론 벗어날 수 없다.

그래. 자력으로는.

있는 힘껏 헤엄쳐 헛구역질하는 탄주어의 바깥으로 나온 이은하가 고개를 돌렸을 때, 시체더미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하나뿐.

수륙양용 스킬을 믿고 있는 힘껏 육지를 향해 헤엄치는 것뿐이었다.

***

"……."

생각과는 다른 결과에 허공에 만든 발판 위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은 전부 정리된 셈. 아까 물에 빠졌던 강태호가 육지로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사체를 전부 삼켰던 그림자는 줄어들어 사라져간다.

붉게 물든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구세마랑회 아무래도 이 귀찮은 것들을 뿌리뽑을 필요가 있겠다고.

"……."

분명 정보는 얻지 못했다. 은막대를 심장에 찔러넣음으로써 한줌 핏물이 돼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수도 없이 많을 정도였다.

다만,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 냄새는 어디까지라도 남아있기 때문에. 정 원했더라면 놈의 정수가 사라지기 전에 삼켜 기억을 읽어봐도 괜찮았을 터.

방법은 무수히 많다.

이 땅에 있는 이상 한 마리도 남기지 않으리라.

이 밤이 끝나기 전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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