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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33화 (333/407)

〈 333화 〉 #155 생각

* * *

부서진 방파제를 잡고 파도에 밀리면서도 억지로 헤엄쳐 육지로 반쯤 올라온 이은하는 온 몸이 오슬오슬 떨리는 추위에 몸서리쳐야만했다.

눈이 흐린 탓에 그리고 유독 어두운 밤에 실루엣만 보이는 누군가 뻗은 손을 잡자 온기가 넘어오는 기분이었다.

"너 어쩐지 해조류같네."

그건 또 무슨 말일까. 그래도 닿은 손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손을 타고 넘어온 몸을 녹여주는 열기를 만끽하면서 바닷속에서 완전히 끌어올려진 이은하는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느슨하게 힘이 빠져서 어쩐지 햇살에 말려지는 빨랫감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힘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었다.어쩐지 분해서 뭐라도 하려고 했을뿐이지.

"그러게 누가 싸우는데 넋 놓고……"

귀에 물이라도 들어온 걸까? 점점 소리가 사라져간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아까까지 코를 찌르던 피냄새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이 가벼워진다.

몰려드는 피로와 노곤함 속에서 이은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이게 진짜."

사람 말도 안 듣고 기절해버린 모습에 꿀밤이라도 먹일까 싶었지만 그 대신에 안아들었다. 축축해진 옷이 물든 바닷물을 머금어 무거웠지만 마력을 일으키자 수분이 증발해 금세 가벼워졌다.

홍유리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커다란 물고기를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린 만큼 이래저래 정리가 끝난 모양이었다.

근육뇌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고 클랜장이 없는 대신 하연이 통솔하며 지시하고 있었다. 클랜원들도 기진맥진해 누워있는 사람도 많았고.

그런데도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게 기적적인 게 아닐까.

"……머리 아프네."

이미 주변은 정리가 끝났다지만 어쩌면 이곳만 그럴지도 모른다. 운이 나쁘면 다른 지역까지 지원을 가야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파.

'무슨 생각이야?'

오지 않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분명 짧은 순간이나마 그 기척을 느끼고 말았다. 관련없기를 바랐지만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하겠다고 말한 건 미리 들어 알고있지만 좀 더 준비할 시간을 줄 거라 생각했다.적어도 사전에 알려 줄 거라 생각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이은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진짜 무슨 생각하는 거야?'

혹시나 되살릴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진다.

조심하라고 한 건 분명 자신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한 것 또한 자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구세마랑회 따위를 신경쓰느라 움츠러드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홍유리는 안아든 이은하를 내려다보았다.

오물과 핏물에 범벅이 된 동안에는 몰랐지만 알게 모르게 상처가 많다. 전부터 있던 흉터도 있었고 지금 새로 생긴 상처들도 있다.

홀린듯이 손가락으로 건드렸을 땐 그래도 아팠는지 몽 을 뒤척인다.가만히 보고 있던 홍유리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어."

이미 들리지 않을 한 마디와 함께.

***

"제발, 제발!"

분명 문이 열렸는데도 지나갈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벽 앞에 가로막힌 모습은 팬텀마임을 하는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표정은 겁에 질려있었다.

숨길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소리에 결국 뚝뚝 눈물이 떨어진다.

틀렸다. 얼마나 틀려먹은, 어리숙한 생각이었는가.

결국 등 뒤까지 당도한 죽음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왜, 왜?"

쉴새없이 부딪치는 이빨. 분명 아까까지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검은 마랑이 읽을 수 없는 붉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거기에 뒤늦게 깨달았다.

숭배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정작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짐승의 흉폭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짙은 피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온화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섬겨 마땅한 존재도 아니었다. 두 눈으로 본 그것은 분명한 괴물이었다.

낮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누군가에게 전해받은 믿음이 산산이 깨져나간다.

믿음과 광신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찬 감정은 오직 두려움뿐이었다.뒤늦게 방침을 떠올린 그는 은막대를 꺼내 심장을 찔렀다.

이걸로 됐다. 적어도 두려움에서부턴 벗어날 수 있다.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에죽어가는 와중에도 환희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마저 오산. 이미 당했던 방법에 두 번이나 당해줄 리 없다. 은막대는 분명 심장을 꿰뚫었지만 거기에 걸린 마법은 하나도 남김없이 풀려있었다.

남은 거라고는 그저 독. 심장을 꿰뚫고 주입된 독이 혈액을 타고 혈관을 불태우며 몸 속을 돌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몸을 뒤척이는 것뿐이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는 붉은 눈의 마랑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굳이 자신의 입으로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처음부터 그는 전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

문득 떠오른 말과 함께 눈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빛이 사라져가며힘없이 동공이 풀린 순간, 게걸스런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

늑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만상의 주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녀와 동등한 수준의 지식이 있다는 것. 마법을 모를 리 없다. 은막대에 걸린 마법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애들 장난과도 같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이 한 짓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애도하진 않는다. 다만 정수만을 남겨 언젠가 다음 생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인도한 늑대는 다음 목표를 향해달렸다.

이미 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을 지도가 또럿하게 새겨져있었다. 누가누구와 언제 접촉했는지. 어디서 뭘 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다.

아예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한 번 맡은 냄새는 계속 이어진다. 같은 마랑회라는 이름 아래 접촉한 이상에야.

누군가는 헌터였고 누군가는 마법사였다

하나 둘 척살해가던 늑대는 문득 어쩐지 오래 전의 일을 떠올렸다.분명 이렇게 비슷하게 달렸던 적이 있었는데 하고서.

네버랜드에 가기도 전의 일이다. 홍유리와 사투를 벌인 뒤였던가. 규모도 실력도 감히 비교할 순 없지만 이단의 탕아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 이도 있다. 심지어는 그 숭배가 진심이었는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이마저 있었다.

고작 하룻밤사이에 골치를 썩게 만들었던 조직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너무나 가볍게, 쉽게 와해돼간다.

"……."

그들이 바란 것은 사람들 앞에 자신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리라.

그 바람만큼은 결코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진짜 의미의 평화는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서류상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전혀 관련없는 이들. 차라리 오늘 그들을 부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발품 팔아가며 찾기엔 너무 잘 숨어있었으니까. 뿌리 뽑지 못했던 것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어설프게나마 이단의 탕아들을 따라했으니까.

그건 탕아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

하지만 세력을 불렸다고 해봤자 고작 10개월.수십 년간 물 밑에서 철저히 준비했던 탕아들조차 자신에게선 벗어날 수 없었다.

영원을 살아간 마법사의 지혜로도 그랬다, 서류를 얼마나 조작하든 그 아무리 깊은 곳 어디 숨어있든 간에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사실상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도망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이어진 냄새의 진원지까지 다다랐을 때, 늑대는 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밤은 끝나지 않았다.

***

아침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온 늑대는 현관에서 굳은 얼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홍유리를 보았다.

"기다렸나."

표정이 좋지 않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은하가 죽을 뻔했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곧,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했다.

"밤새 생각해봤는데."

천천히 떼어지는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랬을 리는 없잖아."

바닷속 몬스터를 불러 경각심을 일으키겠다, 그렇게 만한 건 늑대였다. 그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럴 리 없다.여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아무리 그녀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이렇게 이은하가 죽었다가는 본말전도일 테니까.따라서, 아무리 의심이 가더라도 알파가 그랬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런 전제를 깔고 생각하니 그 너머로 보이는 게 있었다.

알파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했을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아. 네가 늦게 와서 더 확실하게."

조금 의외라는 눈빛에 홍유리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곤 피곤하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래서, 이젠 전부 끝난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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