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화 〉 #155 생각 (2)
* * *
전부 끝났냐는 물음에 늑대는 그렇다고 답했다.
구세마랑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자신이 오늘 뿌리뽑은 건 어디까지나 한국 땅 위에서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목적은 이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더 이상 집을 엿보거나 할 일은 없다는 뜻이니까.
그러냐며 집으로 들어가는 홍유리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시간전에 있었던 일을.
***
"와 주셨네요?"
기뻐하는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열기가 담겨있다. 단 한마리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겠다 맘 먹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힌트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정체뿐만 아니라 지내는 곳까지 특정했다는 점에서. 어지간한 확신이 없었더라면 고작 자신을 엿보기 위해 그만한 마법을 펼치진 않았으리라.
그런 정보를 줄 만한 사람이 있었어야 했다.
"일단 들어가요. 여긴 추우니까…"
즉,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
"……왜 그랬나."
기뻐하는 그녀와 상반된 모습으로 차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분명하게 그 자리의 대기만이 스산하게 온도가 낮아져있었다.
돌아보면 힌트는 있었다. 그녀의 말에서 추측할 여지는 있었다.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녀, 백소율이 돌아온 이후였으니까.
"들어갈 생각은 없나보네요."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은 백소율이 차가운 손을 호호 불었다. 어쩌면 진작부터 그녀에겐 연락이 닿았을지도 모른다.
"전부 다 정리하시고 온 건가요?"
"……그래."
"역시 빠르네요."
아쉬움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늑대는 담담히 물었다.
"네가 머리인가?"
"바로 본론인가요?…네."
그렇다고 답하는 말.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협박당한 것도 아니다.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스스로가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도대체 왜."
늑대는 자신을 안아올리는 손을 느꼈다. 봄이라지만 밤이기에 차갑게 식은 손이 털 사이로 파고든다. 그대로 일어선 백소율은 호텔과는 떨어진 어딘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때, 말씀드렸잖아요. 그리웠다고."
"……."
"계속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했다고?"
"네. 처음에는 그냥, 사람들이 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늑대는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녀가 말한 너무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억울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세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그런데도 누구보다 힘들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다들 잊고 있잖아요.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잖아요."
죽을 뻔한 적이 몇 번이었느냐는 물음에 늑대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미 훨씬 오래 전에 당연해져서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으니까.
너무나 새삼스러운 말. 그리곤 "상처입었던 적은요?" 라는 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근원을 얻기 전부터 B등급에 도달했던 재생이 과거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싫었어요."
"이미 전부 끝난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알고 있어요."
새벽이 된, 한적한 길만을 찾아천천히 거닐었다. 어느새 아무도 없는 외딴 길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으셨고요. 정말로 재앙을 무찌른 게 누구인데."
탕아들을 경계했기에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사들이 쓰러뜨린 걸로 알리기를 바란 건 자신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희생이라는 거예요."
"……."
"그렇게 탕아들을 처리한 건 또 누구였나요."
천천히 들어올려지며 자연스레 눈이 맞게 됐다.
"숭배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었어요. 너무 그리워서. 보고싶어서.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게 너무 싫어서 그냥, 기억해줬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에요."
"……."
"제가 알고 있는, 정말 있었던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백소율은 힘없이 웃어보였다.
"그런데 제 생각이랑은 많이 달랐어요."
처음에 자신이 그리 말을 꺼냈을 때 믿는 사람은 없다시피했다. 하지만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 이미 진작에 마랑에 관한 소문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 행적을 더듬어가면서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의 의혹은 믿음으로 변해갔다.
네버랜드에 있었던 마랑의 도움. 그 일 또한 당연히 숨겼지만, 살아 돌아온 네버랜드의 공략대가 모를 리 없는 일이다.
역병과 질병을 쓰러뜨린 게 스퀘어의 마법사들로 알려져있다지만, 달리 말하자면 스퀘어의 마법사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행적을 파헤쳐가면서 코웃음치던 사람들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몇 번이나 이뤘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몇 번이나 세상을 구했다는 거니까.
점차 그들의 안에서 알파의 존재는 커져갔고 믿음이었던 감정은 숭배와 광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구세마랑회의 시작이었다.
"우스운 일이죠. 전 그런 걸 바란 적도 없었는데."
그저 알아줬으면 했을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 처음에는 제발로 찾아오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정도였지만 점차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믿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거였다.
그리고 그 방법은 날이 갈수록 과격해져만 갔다.
"멈추려고도 해봤어요."
모두가 이성을 버린 건 아니었으니까.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과 함께 그만두자고 말했다.
파벌이 생기기 시작한 거였다.
온건파와 강건파… 이름이 붙은 건 아니었지만 그런 느낌으로. 하지만 문제는 이미 브레이크는 듣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이 자신의 생각을 한참이나 넘어 서 있었다.
생각하는 게 전혀 달랐다. 함께 멈추려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 다음에야 미련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으로 알파의 존재를 알린 자신을 건드리진 않았지만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더 이상, 남아있는 사람들만이라도 건드리지 않게끔 그들에게 손을 보탰다.이미 광신에가득 찬 사람들을 멈출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망설이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그래서 날 이용했다는 건가?"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보고 싶었다는 건 정말이니까."
백소율은 표정없이 말했다.
"차라리 조금만 더 늦게 오셨더라면 제가 다 정리했을지도 몰라요."
설령 함께 멈추려했던 이들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후계자가 된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 정도 역량은 있을 테니까.
그러던 백소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결국 변명이었으니까. 하지도 않은 일을 할 거라고 떠들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알기로 그는 단 한번도 변절자를 용서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다정하기에.
때문에, 자신을 결코 죽일 리 없단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단 걸 알고 있기에.
"……죄송해요. 실수였어요."
설령 구세마랑회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미 있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가 그렇게 바랐던 평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따라서, 자신을 용서하지 않길 바랐다.
어떤 죗값이라도 달게 치를 생각이었다.
다만, 그 전에 누군가는 그들을 멈춰주어야만 할 터.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그럴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알파라고 생각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소매에 숨긴 은막대를 쥐었을 때, 백소율의 귓가에 들려온 건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었다.
"오늘, 이은하가 죽었다."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감았던 눈을 부릅 뜨고서 붉은 눈동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드물게 흔들리는, 그럼에도 그 눈동자에선 무엇 하나 읽을 수 없었다.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어떤 의도로 말하고 있는 건지를.
"몰려든 괴물에게 먹혀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였기에 되려 슬픔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홍유리가 죽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힘껏 쥐고 있던 은막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담담한 말과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 아니, 그렇지 않다.백소율은 뒤늦게나마 흔들리는 건 그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
"나는 도무지 그걸 용납할 수 없어."
전에는 알 수 있었던 감정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알파가 맞는지조차.
"구세마랑회는 전부 없애버릴 생각이다. 네가 바라는 대로."
"……."
"나머지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해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진실을 얘기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고 늑대는 그렇게 말했다.
"……구세마랑회는 내가 무너뜨리겠다."
"하지만, 나머지 매듭을 푸는 건 네가 할 일이다."
***
"뭐해? 안 들어오고."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린 늑대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말했던 이상 아직 알리지 않은 일들을 직접 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그녀가 직접 해야 할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