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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38화 (338/407)

〈 338화 〉 #158 일망타진

* * *

자신을 드러낸 늑대는 가볍게 몸을 털었다.

연기는 여기서 끝이다. 남은 건 놈들을 일망타진하는 것뿐.

잠든 백소율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 성대를 변화시켜 목소리를 흉내내고 모습을 바꿔 흉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걷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마랑?!"

"왜, 왜 여기에!"

놀라하는 목소리와 의문 섞인 눈동자엔 두려움과 의문이 섞여있었다.

두려움의 이유는 은은히 퍼져있는 살기에 있었고 의문은 의심에서 기인한 것.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우습다면 우스운 일이었다.

구세마랑회. 자신을 숭배한다던 이들이 정작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중에서 두려움과 의심이 아닌 환희를 비친 이 또한 있었다.

"정말… 정말 돌아왔다니."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로브의 사내가 묻자 늑대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후드를 벗고 드러낸 그의 모습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주 먼 발치, 스퀘어가 추락하기 전에 보았던 수많은 마법사의 무리 중 하나. 스퀘어의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있단 건 알고 있었지만 조금은 감회가 느껴졌다.

'선구자라고 했었나.'

백소율의 모습을 빌린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본래 자신과 함께 스퀘어로 걸음했던 건 백소율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잠깐 멍하니 시간을 지새는 사이 웅성거림은 커지고 술렁임이 일고 있었다.

'괴물… 진짜… 마랑… 죽는다… 도망쳐야…'

너무나 뛰어난 청각이 작은 말소리 하나하나를 전부 포착해 정보로 받아들였다. 똑똑히 귓속을 파고드는 말소리에 늑대는 천천히 그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로브의 후드나 눌러 쓴 모자나 두건과 복면조차 윤곽을 가리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이미 건물 전체를 마력으로 둘렀기에 탈출하는 건 불가능.

눈길이 닿는 대로 발길이 멈추고 굳어버리고 만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 또한 자신을 살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으, 끄으으윽."

곳곳에서 신음과 비명이 터져나온다. 하나같이 손으로 얼굴을 덮고 뒹구는 이들이 고통에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자 자신의 앞에 선 로브의 마법사가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눈빛으로 물어왔지만 늑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했다고 한다면 자신이 아닌 그들일 터. 감정 혹은 탐지 계열의 스킬을 사용했으니까. 문제는 바로 거기서 발생했다.

자신이 두르고 있는 업. 육체를 가진 이들과 정신체의 격을 가진 자신. 그저 순수한 격의 차이가, 닿을 일 없는 격의 차이가 도랑처럼 가로막고 있을뿐이다.

그걸 보고서 늑대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만약 여기 있는 게 본신이었다면 '고작' 저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로브의 마법사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로 주머니를 뒤졌다. 당황스러웠던 모양인지 위아래를 더듬거리며 겨우겨우 꺼낸 물건은 렌즈. 무척이나 안경을 닮은 물건이었다.

'그러고보니 강태준이 가진 물건도.'

분명 스퀘어에서 제작된 물건. 그리고 그 결과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한 치의 반전도 없이 산산이 깨져나간 렌즈와 당황하는 마법사.

"당신은 정말……?"

고개를 돌려 늑대는 날뛰는 이들을 쳐다보았다. 만약 렌즈가 아닌 마법사 본인이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들과 같은 꼴이 되었으리라.

"정말, 정말로 마랑이십니까?"

떨리는 목소리엔 아까보다 더한 짙은 환희가 담겨 있었다. 한 걸음 디딘 순간, 혼란스러운 장내에 침묵이 찾아왔다. 고작 한 걸음 디뎠을 뿐인데.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텐데.

"……Б, БОГ α…!"

움직이지 못하는 군중이 그 어떤 번지르르한 말보다도 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두 손을 겹쳐 모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신 앞에서 마법사는 무릎 꿇은 채 빌다가,

"아아, 당신이 돌아왔다는 건 우린 평화를 되찾았다는 겁니까?"

"종말은 이제 사라…!"

그 머리가 어딘가로 사라져 힘없이 바닥에 몸을 뉘었다.

다른 의미로 침묵이 그리고 의문이 차오를 때, 늑대는 말했다.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마라."

"……."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을 테니."

"……!"

***

하수구 깊은 곳까지 걸어간 홍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부터 발자국이 더 있었으니까.

갯과의 그러나 그것보단 훨씬 더 커다란 발자국. 종종 꾹꾹이마저 눌러봤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발자국이었다. 그렇기에 착각할 리 없다.

'알파.'

역시나 알파가 이미 들렀노라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런 곳까지 전부 정리한 모양이었다.

"뭐 해?"

"닥치고 있어."

등을 떠미는 손을 쳐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신을 가지고 둘러보니 이곳저곳이 다르게 보인다. 하수도가 더러운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깨끗하다.

마땅히 하수도 아래에 있어야할 것들이 하나도 없다. 쥐 그리고 벌레. 그러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쯧. 이럼 더 가봤자잖아."

무슨 청소부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청소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였다. 차라리 이럴 거라면 알파 본인에게 묻는 게 나았으리라.

괜히 하수도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걷어찼을 때, 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평소같았으면 그런 실수를 가만히 둘 리 없다. 건수를 잡았다고 좋아라하며 낄낄대고 있으리라. 그런데, 도로시도 홍유리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이 머나먼 곳에서까지 느껴지는 폭발과 거대한 마력의 파동. 비록 한 순간이었지만 오금이 지릴 정도로 강한 마력이었다. 또한, 그 위치는 명백히 인지 범위 바깥.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이지만, 버섯 구름이 피어오른 걸 멀리서 볼 수 있듯이 아슬아슬하게 얕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해도 하수도 아래가 아니었다면. 하수도 아래에서 상당히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느낄 수 없었으리라. 이렇게라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대마력을 가진 정상급의 마법사였기 때문에.

그리고 느껴진 마력은 그 정상급의 마법사 자신들마저 한참이나 웃돌고 있는 것.

"이거……!"

착각이었나 싶어 서로의 얼굴을 보았지만, 여진(??)과도 같은 두 번째 파동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가자 확신을 가졌다. 저 머나먼 곳에서 분명 무언가가 일어났노라고. 마법사라면 착각할 리 없는 힘의 파동이 마법이라는 형태로 폭발했노라고.

***

떨어진 목이 붙을 리 없다. 그렇기에 한 마리도 남기지 않겠다는 선언은 농담도 뭣도 아니다. 순수한 살의를 담아 말하는 것이리라.

"하, 하지만 분명 자색 마력이…"

믿을 수 없단 것처럼 떨고 있는 또 다른 마법사. 이빨을 부딪치며 물어오는 말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답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짙은 자색 마력이 회오리친다.

환영의 계파가 아니라면 발현할 수 없는 마력의 색이었지만 그걸 흉내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환영의 계파라고 해봤자 결국엔 모두 하나의 가지에서 뻗어간 거였으니까.

그 결정을, 기억을, 정수를 가진 건 다름 아닌 자신. 격의 차이를 빼놓더라도 마법이라는 영역에서 지금의 늑대의 발치라도 따라올 수 있는 이는 단 하나도 존재치 않는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색 마력은 색을 바꿔간다. 보라색은 남색으로. 남색은 노란색으로. 노란색은 다시 빨강으로. 그리곤 종국에 이르러 처음으로 되돌아가 검게 물든다.

색만이 아니라 변해가는 와중에 이미 수십 종의 마법이 완성돼있었다. 주문 한 절조차 뱉지 않고 이뤄낸 마법들은 하나같이 3절 이상의 마법은 인류의 상식의 영역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자, 잠시만……!"

이곳은 섬. 설령 일이 잘못되더라도 주변에 피해가 갈 일은 없다.

제어를 놓고 방아쇠를 당긴 순간, 셀 수 없는 마법이 일거에 폭발했다.

***

오물이 밀려온다 그렇다기보다는 맹렬한 기세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이은하는 정말 그 의외의 사태가 벌어지자 마력을 구현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곧 그게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하수도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홍유리와, 그녀와 함께 들어간 사람이었으니까.

"비켜!"

비키라고 말해놓고선 그럴 시간도 주지 않고 뛰어오른 홍유리. 그 탓에 오물과 물이 튀어 방호복에 묻고 말았지만 불평할 시간도 없이 사다리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밀치면서도 빠르게 올라간다.

"……?"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한 이은하 또한 두 사람을 뒤따라 사다리를 타고 하수도 위로 기어올라 왔을 땐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찢어지고 불탄 방호복의 잔해만이 허물처럼 남아있을 뿐.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남겨둘 순 없었기에 그걸 집어든 이은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뭐가 저렇게 급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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