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39화 (339/407)

〈 339화 〉 #158 일망타진 (2)

* * *

"……왜, 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둘러보는 마법사의 가슴을 짓밟아 눌렀다. 살아있는 건 하나면 족하고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

"나머지는 어디 있지?"

알고 있는 걸 불라는 말이었다. 단순히 말로 타이르는 걸 들을 리 없겠지만 붉은 눈동자가 일순간 섬뜩하게 빛나자 마법사의 입이 제멋대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알고 있는…"

마치 입만이 별개의 생물이기라도 하다는 듯 입은 자백의 말을 토해내고 팔은 그런 입을 닫게 만들려한다.

발악하던 마법사는 오히려 자신의 턱에 손가락을 씹히고 말자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 여기고서는 스크롤을 찢었다.

미리 준비해 둔 텔레포트 스크롤. 비록 아까의 마법으로 인해 주위의 마력이 불안정해져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확실하게 죽는다. 서서히 빛무리가 모여들자 이젠 살았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져갔다. 머잖아 밝은 빛에 휩싸인 마법사는.

"……?!"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여전히 가슴께 위에는 발이 올려져 있었다. 스크롤의 힘을 빌렸음에도 단 1cm조차 이동하지 못했단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무엇보다 마법사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건 이 제멋대로인 주둥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전부를 주절주절 뱉어내고 있단 거였다.

이렇게 알고 있는 걸 전부 불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니, 알고 있다. 조금 고개 돌린 마법사는 이것저것이 흩어진 육편과 핏물. 분명 저렇게 되고야 말겠지. 벗어날 방법 따위는 없다.

"그리고 지하엔…"

미치고 싶다. 차라리 실성한 척 웃고 싶었지만 제멋대로 떠드는 입은 이미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마치 불길한 악몽을 꾸는 듯하다.

스퀘어에서도 뛰어난 마법사였던 이가 몇이나 포함돼있었나. 심지어 로브의 사내는 그 중에서도 뛰어난 마법사였는데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그 정도 존재가 아니라면 이 많은 이들이 숭배할 일은 없었으리라. 불가해의 마법과 불합리한 마력을 가진 그는 실로 살아있는 신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존재였다.

문제는, 그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걸까.

"도대체 왜."

제멋대로 나불거린 입 덕분에 턱이 얼얼하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달라질 게 없다면. 이만한 살육을 저질렀음에도 흐림 없는 붉은 눈동자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우리를?"

마랑회라는 이름은 괜한 데서 온 게 아니다. 구세마랑회. 그 이름답게 세상을 구원한 마랑을 숭배하는 모임이었는데. 신께서 바라신다면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바라지 않는다."

마치 생각을 읽힌 것 같았다. 한 치도 꿰뚫어볼 수 없는 붉은 눈은 반대로 자신의 눈 너머 뇌 깊숙한 곳을. 일순간의 전기신호조차 놓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런 존재의 생각을 재단할 수 있을 리 없다.

'살려달라는 말은.'

통하지 않으리라.

……점점 숨 쉬는 게 어려워진다. 올려진 발이 가슴뼈를 부수고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법사는 계속해 생각했다.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필요치 않은 존재. 더할 나위 없는, 닿지 못할 영역에 도달한 그것을 완벽이라고 부른다면.

어찌 그것을 신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

숨이 멎은 마법사를 내버려두고 건물을 빠져나온 늑대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오지 않을 섬이지만 언젠가 이곳에도 다시 사람들이 자리잡게 될 터.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

스멀스멀 뻗어나가는 그림자는 이윽고 건물을 뒤덮었다. 그리고 다시 그림자가 걷혔을 땐 그 자리에 있던 게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평한 터만이 무언가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탁, 탁, 탁.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에 늑대는 다시 몸을 돌렸다. 거기에 있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반대로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 역시 너밖에 없겠지."

"……."

"깜짝 놀랐어. 마법까지 이렇게 잘 쓸 줄은 몰랐으니까. 혹시 또 괴물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말하지 않았던가?"

"안 했거든?"

박박 이를 가는 홍유리가 이젠 아무래도 좋아졌다며 두 팔을 벌렸다. 그 제스쳐에 몸을 작게 만든 늑대는 뛰어올라 품 안에 안겼다.

"이제 다 끝난거야?"

"절반 이상은."

실제 남은 마랑회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았지만 근거지를 알아낸 이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리할 수 있다.

이미 늑대의 눈엔 그 너머가 보이고 있었다.

"존나 손해 본 기분이야."

"뭐가 말인가."

"네가 마법까지 쓰면…"

어차피 힘의 차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역력하지만 마법이라는 학문은 영역이 다르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앞으론 그럴 수도 없을 것 같다. 일순간이나마 느꼈던 그 마법의, 마력의 파동이 자신보다 아래일 리 없으니까.

'내 지난 시간은 도대체 뭐였나.'

그런 억울함, 자격지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차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마저 되살리는 알파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너무나 현실감이 없다.

그래도 화풀이. 한숨과 함께 늑대의 볼을 잡아당겼다.

거칠거칠한 털과 탄력있는 가죽. 그런데도 비틀어지진 않는다. 아마 처형자의 낫을 가져와도 마찬가지이리라.

"어디까지 아는 건데?"

"만상의 주인이 알고 있었던 만큼은."

그게 어느 수준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한 홍유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쯧…… 은퇴하면 마법이나 배울까."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심심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 생각에 끄덕인 홍유리는 이제 돌아가자고 하려 했지만 뒤따라온 금발 소녀가 거친 숨을 뱉으며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도 체력에서 뒤쳐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는지 뻘뻘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어딜 가려는거야."

***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이은하는 샤워를 마치고 갈아입어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따라가야하는가 생각했지만 애초에 자신을 부른 이유도 기껏해야 망보기에 불과했으니까.

……갓 퇴원한 사람을 갑자기 불러서 부려먹은 거니까 투덜거리진 못하리라.

체력이 빠져 나른한 기분이었다. 그런 나른함과는 달리 마력은 너무나도 충만해서… 감각이 예민해져 있었다.

옆 방의 소리가, 동생이 공책에 샤프를 끄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그 소리만으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nC2×2×4!…'

고작 작은 실마리, 깨달음. 얻은 거라고는 고작 스킬 하나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있다. 여태까지는 마력을 돋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됐는데 이제부터는 반대로 감각을 억눌러야만 할 판이다.

마치 고전 영화 속의 소머즈라도 된 것만 같다.

스스로의 성장에 새삼 놀라하던 이은하는 곧 눈살을 찌푸려야했다. 움직일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누워있다보니 악취가 풍겨서.

분명 방호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샤워까지 마쳤음에도 조금 냄새가 배 있었다. 보통 사람의 후각이라면 느끼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황급히 일어난 이은하는 화장실로 향했고 냄새를 지우고 나오기까지 거의 1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이젠… 괜찮지?"

샴푸와 비누향에 완전히 파묻힌 냄새. 감각이 예민하다는 게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해도 이 정도인데 과연 알파는 어땠을까 하는.

"혹, 혹시."

혹시 같이 있었을 때마다 숨을 참았던 건 아닐까. 알파라면 여태 그런 배려를 했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 함께 있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옆에 앉아 있기도 했고 업혀있기도 했던 즐거운 시간들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변해 쥐구멍에라도 파고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곳이 침대 위였더라면 분명 애꿎은 이불만 걸레짝이 됐으리라. 확 차오르는 수치심에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시끄러!"

문을 열고 소리치는 동생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동동 발을 구르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미, 미안."

"대체 뭐 해? 얼굴도 다 빨개져서는…"

이따금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동생이 방 안에 들어가자 이은하는 볼을 쓰다듬었다. 그 말마따나 따뜻한 볼이 홍조가 떠올랐음을 여실히 알려준다.

멍하니 있던 이은하는 콕콕 쑤시는 옆구리를 짚고 조심스레 자신의 방으로 걸었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쪽팔림이 가시질 않았다.

'대체 앞으로 무슨 낯짝으로…'

누구, 혹시라도 누구 물어볼 사람 없을까.

'미쳤어?'

이런 걸 누구한테 물어본다고? 데구루루 침대 위를 뒹굴던 이은하는 다시 찾아온 수치심에 마구 이불을 걷어찼다.

"언니!"

동생이 소리치기 전까지.

***

한참을 놀다 체력이 다했는지 새근새근 잠든 베타와 페리. 과연 이렇게 느긋했던 날이 있었을까.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일지도 모른다.

자라기도 전에 악몽에 시달리고 마법에 매달렸으니까. 여명에서 지낸 나날도 스퀘어에서 보낸 시간도 이렇게 마음 편하지는 않았는데.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분을 맛볼 수 있으랴.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를 여유와 느긋함 속에서 둘을 재우고 세로로 누워있던 백소율은 핸드폰의 진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

혹시나 마랑회의 사람이 아닐까. 당장에라도 호텔 문을 박차고 누군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불안이 엄습했다.

하지만 어느 때라도 모른채 외면하는 것보단 맞서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는 백소율은 용기를 내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는 아니다. 그나마 목소리를 들을 일은 없다며 안심한 백소율은 아까의 진동이 누군가의 문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소 황당한 것이었다.

[있잖아. 혹시 냄새나면 어떡해?]

무슨 의도로 보낸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문자. 혹시라도 무슨 암호나 뜻이 숨겨져있는 게 아닌가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해야만 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