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 #159 엇갈림
* * *
"어딜 가려고?"
앞을 가로막은 이유를 알 수 없어 멀뚱히 쳐다봤지만 비켜 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홍유리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녀 역시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안 꺼져?"
곱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지만 도로시는 굴하지 않고 당당히 곧게 선 채로 양 허리에 손을 올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끝났어. 그리고 아까 마법. 너도 느꼈을 거 아냐."
"근데."
"근데가 아니지. 스퀘어 소속도 아닌데 마법을?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늑대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으니까. 마법이란 건 힘이기 이전에 학문으로써 배워야만 하는 것. 어지간한 정도라면 모를까 방금 자신이 사용했던 수준이라면 스퀘어 바깥에서 익힐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뭘 끄덕거리고 있어?"
홍유리의 핀잔에 머리 위를 긁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상식 선에서라면. 누군가의 기억과 삶을 받아들인다는 건 마법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니 저렇게 재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법 쓴 거…… 너잖아."
마력의 잔향. 아직 남아있는 흔적을 보고 말한 것이리라.
늑대는 부정하지 않고 다시 끄덕였다.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미묘하게 어긋난 시선. 아무래도 예전의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가소롭다거나 같잖게 느껴지진 않는다. 전에는 실금했을 정도로 무서워 했고 심지어 지금도 무릎이 떨리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을 걸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난 절대 인정 못 해."
단단한 의지로 굳은 말. 그러나 홍유리는 간단하게 코웃음쳤다. 자신을 내려놓는 손길에 말리려 한 늑대는 이내 한숨 쉬었다.
괜히 자신이 나서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못하면 뭐. 네가 어쩔 건데."
가까이 다가가 콕콕 이마를 찔러 미는 검지 손가락. 계속해 밀려나던 도로시는 이를 악물고 홍유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쭈. 안 놔?"
스냅을 준 손목. 어느샌가 양상은 반대로 변해 손목이 꺾여 있었다. 참고는 있지만 조금만 힘 주면 가볍게 부러지고 말리라.
단순한 힘싸움에서 아니 마법과 마력이 더해지더라도 마찬가지일 터. 이미 둘 사이에는 좁히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넌 인정할 수 있어?! 배우지도 않고 마법을!"
씩씩거리며 소리친 도로시는 마력을 일으켜 홍유리의 손을 떨쳐내고는,
"너도! 나도! 스승님도! 전부 다!"
전부 다 그래왔지 않느냐며 감정에 호소하며 소리쳤다.
"난 인정 못 해. 저런 건 인정 못!"
"그래서, 어쩔 거냐고."
소리치던 도로시는 망연자실하게 홍유리를 올려다보았다. 동등하던 눈높이가 변해 있다. 어느샌가 자신이 무릎 꿇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올려다보는 사람과 내려다보는 사람. 어떻게든 일어나려 애쓰던 도로시는 자신을 짓누르는 태산같은 마력에 이를 갈았다. 옴짝달싹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새삼스레 알고 있었던 서로의 차이를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분하게 느껴졌다.
"……저런 괴물한테 납득하라고?"
후계자에 불과한 자신과 이미 자신을 한참이나 넘어선 홍유리. 어쩌면 지금의 홍유리를 상대로 한다면 스승님이라 할지라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성장은 이례적인 것. 아니,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성장이었다.
"넌, 난……!"
표독스레 눈을 치뜨고 올려다 본 도로시의 시선에 홍유리는 여전히 오만불손한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자신은 어떠한가. 좁혀졌나 싶던 차이마저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저항할 수 있었음에도 마음이 먼저 꺾여버리고 말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사실, 극명한 차이를 현실에서 들이밀어지고 말았으니까.
"꺼져. 그리고 영감탱이한테 가서 일 다 끝났다고 말해."
그 말에 도로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무는 것뿐이었다.비킨 적은 없었음에도 옆을 지나치는 둘을 막아설 순 없었다.
***
"괜찮겠나."
"뭐가."
"저대로 두고 가도 괜찮겠냐는 거다."
"무슨 상관이야. 다리 풀렸나보지. 저건 고생 좀 해봐야 돼."
이미 한참이나 걸어와 도로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거의 몇 분간을 늑대는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뚫어지라 보는 시선에 잘근잘근 입술을 씹어보였다.
"아 씨! 그럼 어쩌라고?"
"……."
"나도 네가 마법까지 쓰는 게 마냥 좋겠어?"
속 좁다고 말 할 거면 하라면서 홍유리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 행동이야말로 속에 든 것을 털어놓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억울해. 밤새 외우고 익히고 배우고. 코피도 났고 머리털도 뽑혀봤는데. 책상에서 잠든 건 또 몇 번인데? 정신 고갈에 시달리고 불면증에 몽유병에…… 심지어졸도도 해봤고 기절도 해봤어."
"……."
"그래도 처음에 쓰려고 했을 땐 존나 안 됐고. 나름대로 죽을 뻔도 했어. 굳이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을 걸?"
아닌 사람은 이은하정도겠지. 홍유리는 씹어뱉듯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익힌 마법이다.그건 스스로를 지탱하는 자부심, 자신감. 그 동시에 걸어온 삶의 이정표이자 증거였다. 마법사의 질은 어디까지나 재능에 좌우된다고 하지만 노력이라는 이름의 제련이 없으면 담금질되지 못한다.
다만, 그 노력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뿐이지.
분명 누군가는 자신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아니, 마법사의 태반이 그러하리라. 앞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뒤에서는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떠들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억울한 게 사실이었다.
평생을 노력한 걸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의 마법을 어느 순간부터 가지게 된 셈이니까.애꿎은 뺨을 잡아당겼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괜스레 부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근데. 그래도 난 납득할 수 있어."
눈을 맞추고 시선을 교환한 채로 홍유리는 똑똑히 말했다.
"왜냐구? 너잖아."
바로 늑대 자신이기에 납득할 수 있는 것이노라고. 그건 가진 힘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 쌓은 노력 때문이었다.
죽을 위기는 일일이 세는 게 무의미한 수준이었고, 그걸로도 부족해 스스로 자해하고 죽여서라도 나아가려했다. 하물며 자아조차 잃어버려 한낱 힘의 집합체가 되어버렸던 때조차 있었다.재앙을 몰아내고 종말을 극복한 그 노력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또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납득할 수 있다.
늑대의 존재 자체가 이미 기적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근데 쟨 모르잖아."
"……."
"쟤는 네가 뭘 했는지는 알아도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모르잖아."
그것이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였다.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홍유리는 늑대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매번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또 매번 무엇을 걸어왔는지를.
하지만 도로시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눈 앞에 들이밀어진 건 어디까지나 결과에 불과하다. 돌연 나타난 알파라는 이름의 마랑이 평생을 싸워왔던 스퀘어의 숙적, 역병과 질병을 무찌르고야 말았다.그 이후에는 자색의 흑호. 그 다음에는 바다의 재앙. 차례차례로 구원받고야 말았다.
거기서 도로시가 본 것은 그저 서로를 물어뜯는 짐승일 뿐이었으리라. 연소되고 남은 감정은 그저 두려움. 그 두려움이 삶의 증거나 마찬가지인 마법에서마저 앞서고 있다. 늑대를 부정했던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과정을 보지 못했기에 같은 결과를 보고서도 느끼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백날 말해도 납득 못 해. 절대 못 받아들여. 내가 말해봤자 반감밖에 더 가지겠어?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
확신에 찬 말. 도로시가 늑대 자신을 모르듯 자신 또한 그녀를 모른다. 하지만 홍유리라면 적어도 더 잘 알고 있을 터. 늑대는 무겁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집으로 가자. 그리고…"
***
집에 도착한 늑대는 물끄러미 달을 올려다보았다.
도로시와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었다. 홍유리의 말과는 달리 늑대는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 보여주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그리 하지 않았던 건 그럴 가치가 없어서였다.
늑대 자신에게 있어 도로시란 마법사는 그만큼 가치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구세마랑회의 척결. 그리고 몬스터의 몰살. 그렇게 더는 환수와 영물이 다치지 않을 세계에서 여왕을 되살리는 것.
어쩌면 그건 여왕이 바라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어렴풋한, 제멋대로인 추측일지도 모른다.
종말을 막고 싶어했지만, 진리를 부정하지 못했던 그녀가 보기에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보일까.
그런 생각에 잠겨 늑대는 한참이나 달을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