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 #159.5 홍유리 (2)
* * *
"……자?"
잘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물어온다. 안겨있는 그대로 머리만 들어 올려다본 홍유리는 그러리라 예상했단 것처럼 이미 눈을 맞추고 있었다.
새삼스레 느끼지만 정말로 예쁜 눈이었다.
홍옥을 닮은 붉은 눈동자와 세로로 찢어진 용의 동공.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라는 증명. 자신의 탓으로 유일무이한 반룡이 되고 말았다는 증거였다.
"할 말이 있는데."
"많이 늦었지 않나."
"그래서…… 자려고?"
늑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생명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이 몸에 수면은 불필요하니까. 그걸 서로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오랜만이잖아."
"……."
"이렇게 둘이서 누워있는 게 얼마만인지."
이젠 한참이나 익숙해졌단 것처럼 부드럽게 털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음미했다.
"그렇잖아. 늘 페리가 여깄었는데."
페리의 잠버릇도 여간 지독한 게 아니라며 키득키득 웃어보인다. 확실히, 중간에 끼어있는 페리는 덥다며 이불을 걷어차기도 했고 반대로 뺏어오기도 했다. 아직 백소율과 베타와 함께 있는 게 아니라면 분명 여기 있었으리라.
늑대는 가만 끄덕거렸고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만이 계속해서 의미없이 흘러갔다. 고작 몇 초. 길어야 수 분에 불과할 테지만 그게 초조한 것처럼 손발을 꼼지락거린다.
"……등신."
마치 무언가를 알아채달라는 듯한 몸짓에 늑대의 고개가 갸웃거려졌을 땐 어느새 쓰다듬던 손길이 꼬집음으로 변해 있었다.
"내일은 돌아올 거 아냐."
토라진 목소리에, 어쩐지 달뜬 숨에 늑대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래로는 입었는지 아닌지 보이지 않는 데다가 위로 걸치고 있는 옷이라곤 고작 얇은 셔츠 한 장뿐이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젖어있는 눈빛과 달아오른 뺨은 분명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10개월… 아니, 1년도 더 넘었던가.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 훌쩍 넘었는데. 미리 자신이 신경써야 했던 부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늑대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지 않고서 있을 수 없었다.
***
아주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리고 마는 새벽.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숨길 수 없는 긴장의 빛이 표정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바라고는 있었겠지만, 본의아니게 떨어져있던 긴 시간이 마치 서로를 처음으로 되돌려놓은 것 같았다.
"아……"
손이 닿은 순간, 튀어나온 소리에 마치 악기같다고 생각했다.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부서져서는 안 될.
고작 얇은 천 한장 너머로 닿은 쇄골. 움찔거리는 게 재밌어 일부러 한번 더 닿아 보았더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물릴 것 같아 단추를 풀었다.
첫 번째 단추에 꽃봉오리처럼 숨기고 있던 속살이 조금 드러나자 아까 건드렸던 쇄골의 윤곽이 드러났다. 비록 어두운 밤, 조명도 켜지 않았지만 그 정도론 아무 장애도 되지 않는다.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이어서 단추를 풀어나갔다.
샤르륵. 옷이 풀려나갈 때마다 천과 천이 스치는 소리가 귀에 익어 들려온다. 결국 모든 단추를 풀어냈을 때, 뚫어지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벗기지 않은, 그럼에도 풀려있는 단추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나신을. 눈길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야 말았다.
"뭐, 뭐."
아까보다 더 달아오른 얼굴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당당히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틈새 사이로 드러난 나신.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빼앗는 중심부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
화들짝 놀라 아까까진 돌리고 있던 얼굴이, 시선이 똑똑히 자신을 쳐다보게 됐다. 만족스레 웃은 알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연분홍빛 입술을 넘어 탐욕스레 그 안까지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길게 타고 넘어간 혀로 홍유리의 입안을 훑었다.
자신과는 달리 작은 이빨과 부드러운 잇몸. 안쪽에서 볼살을 만짐과 함께 바깥에선 손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정말이지, 어딜 어떻게 건드려도 부드럽다.
부르르 떨리는 그녀의 등줄기. 젖어있는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지기 전에 얼른 시선을 맞추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턱 아래를 잡아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혀가 얽매여온다. 아까까지 깊이 숨어있던 그녀의 혀가 조심스레 의사를 묻듯 건드려왔다. 움찔거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답지 않게 소심하게, 겁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심장소리보다도, 시계가 재깍이는 것보다도 서로의 혀가 얽매이고 타액을 교환하는 질척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워간다.
목울대를 넘겨 그녀의 타액을 삼켰음에도 오히려 갈증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 더, 조금만 더.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갈구하고 있었다. 목 뒤로 둘러진 홍유리의 손에 알파는 그녀의 옷을 풀어헤쳤다.
완전히 드러난 나신에 또 시선을 빼앗길 뻔했지만 자신을 봐달라는 듯이 당겨오는 혀에 다시금 눈을 마주했다.
처음은 아니다. 아닌데도 긴장으로 떨리고 있는 몸. 말을 할 수 없는 대신에 눈빛으로 말했다.
'긴장하지 마라. 더한 것도 할 테니까.'
'이, 이것보다 더?'
'그럴 생각 아니었나?'
'…….'
또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심스레 끄덕이는 것에 맞추어 그녀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크지는 않다. 하지만 봉긋하게 솟아 확실히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이 순간, 누구보다도 그녀를 갈망하고 있는 건 바로 자신이었다.
지금만큼은 오직 그녀여야만 한다. 그래야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손바닥에 담긴 조그마한 가슴. 그리고 그 중심을 쓸었을 때, 계속해 탐해오던 그녀의 혀의 움직임이 멈추고야 말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나신이 쾌락을 느끼고 있음을 알린다.
그 사실에 조금씩 흥분이 고조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으로 인해 그렇게 느끼고 있단 사실이 참기 어려웠다.
역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자신의 색으로 마구 덧칠해버리고 싶다. 누가 보더라도 자신의 것임을 알 수 있을 만큼이나.
'이상해.'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막상 시작한 이후부터는 이상하리만치 감정이 들끓는다. 정말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숨이 거칠어지고 저열한 정복욕이 어딘가에서 샘솟아오른다.
애써 끓는듯한 감정을 참은 늑대는 손바닥을 조이고 그 첨단을 비틀기 시작했다. 한 손은 등 뒤로 품 속에서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히 두른 채로.
누구도 손대보지 못한, 오롯한 자신의 것.
그 어느 곳보다 부드러운 분홍색 첨단을 마음껏 희롱하며 입으로는 마음껏 타액을 적셨다.
"하아아… 읏."
떨어진 입술 사이로, 더 이상 누구의 것이라고 구분하지 못할 만큼 엉망진창으로 섞인 타액이 길게 늘어져 흘러내렸다.
입술에서 쇄골 아래까지. 그녀의 나신을 가로지른 투명한 액체는 조금 왼쪽으로 이어져있었다.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그만큼 귀가 가까워져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혀를 탐했던 입은 가슴을 물고 있었으니까.
"……."
차마 거부하진 않지만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생각해보면 처음이었던가.
이빨 사이에 놓인 첨단을 조금 깨물어보자 참지 못한 달뜬 신음이 터져나왔다. 스스로 소리를 낸 것이 부끄러웠는지 입을 틀어막았지만 늑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을 수 있으면 참아보라는 듯이 첨단을 마구 비틀고 희롱했다. 그럴수록 침대 시트를 꽉 붙잡은 손은 그것마저 놓칠 것처럼 흔들렸다.
이것만으로도 꺾을 자신이 있었지만 허기 진 갈증에 늑대는 남은 손을 아래로 이끌었다.
입지 않았나 생각했었지만 셔츠에 가려져 있었을 뿐 확실하게 있었다.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이 손가락 끝에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건드린 틈새는 속옷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이미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거, 거긴…"
부끄러워하며 더듬는 말. 한쪽 끝을 잡고 반쯤 내린 알파는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여태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은 전기가 통한 것처럼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입술은 앙다물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
몰려오는 쾌락에 그녀가 허덕이고 있을 때, 좁고 작은 틈새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뜨겁고, 좁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조심스레 빼 끈적이는 그것을 보라는 듯 눈앞으로 가져오자 안 그래도 붉었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벌려진 검지와 중지에서 아까 타액이 그랬듯 액체가 늘어지자,
"……너, 너!"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홍유리가 날뛰려하자 알파는 그 손에 깍지를 끼고서 억눌렀다. 억누르고서 얼른 입을 맞추었다.
목 뒤를 두르던 손은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지만 하나 남은 손이 비부를 건드리자 점차 힘이 빠져간다. 결국 다시 목 뒤에 놓아진 손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힘이 빠진 눈빛은 꿈을 꾸는 듯 몽롱해져있다.
평상시 그녀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나 침대 위의 그녀는 이렇게나 여리고 연약하다.
그 사실이 또 소중하게 느껴져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더 이상, 말은 필요없다. 서로의 눈빛이 교차한 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이미 과시하듯 단단하게 솟은 자신의 것이 그녀를 더없이 원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탐했음에도 오히려 더해진 갈증에 목이, 가슴이 타는 것처럼 느껴진다.
질척하게 머금어진 순백의 실크가 자신의 손길에 허벅지를 타고 내려왔을 때,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를 붙잡고 안아올렸다. 기분좋은 중량감과 부드러운 살결에 손가락이 파묻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그렇게, 들어올린 그녀의 손이 다시 목 뒤로 둘러져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단단히 깍지 끼고 있었다.
질끈 감은 눈은 어째서일까. 문득, 이대로 시간이 지나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려볼까하는 심술이 들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그랬겠지만 갈증과 탐욕에 그럴 수 없었다.
조금씩 내리자 자신의 것이 갈라진 틈새 위로 맞닿는다. 그녀를 지탱한 이 손을 내리면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고 말리라.
가슴의 첨단도 부드럽다고 생각했지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더라도 미끄러져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읏."
조금씩, 비부가 움직인다. 양 손에 단단히 붙잡힌 그녀의 허리가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단단히 닫힌, 젖어있는 꽃망울이 자신의 끝에 비벼지고 있었다.
갈망하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증거. 밀려오는 쾌감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손을 내림에 따라 홍유리의 안을 파고든다.
안쪽은 바깥보다도 훨씬 질척거리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분명 반들거리고 있으리라. 이미 애액으로 코팅된 그녀의 안은 좁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끌어당긴다.
더더욱, 안으로. 더 깊숙한 곳으로.
"……!"
그러자 입술을 겹쳐온다. 아직 들려있는 그녀가 거의 같은 눈높이에서 자신을 갈망해왔다.
기꺼이 응한 알파는 천천히 그녀를 내렸다.
안쪽의 주름 하나하나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좁지만 먼젓번의 행위로 자신의 형태를 기억하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윽고, 대등했던 서로의 눈높이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낮춰야할 만큼이나 차이나게 되었다.
그녀의 허벅지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있었다.
한참이나 타액을 교환하다가 또 한번 침이 길게 늘어진다.
"……죽을 것 같아."
"많이 힘든가?"
세차게 고개를 흔든 홍유리가 격렬히 부정했다. 아랫입처럼 젖은 입술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니. 저번보다 더 좋아."
"……."
"이번엔…… 보이잖아. 네 얼굴."
손이 앞머리를 쓸어올리자 알파는 흥분을 참지 못했다.
***
들썩이는 침대. 열락에 젖은 소리. 살과 살이 마구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열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명 몇 도나 올랐을 실내의 온도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소한 것따윈 까맣게 잊어버리고 서로를 갈구하고 있었다.
바닷물을 들이킨 것처럼 갈증이 멎지 않는다. 오히려 더해져만 가고 있었다.
허덕이는 홍유리를 보곤 또 한번 사정감이 치솟아오르자 늑대는 애써 그것을 참아냈다.
이미 몇 번이나 냈지만, 앞으로 몇 번이고 함께 가고 싶었으니까. 입으로 첨단을 물고 손으로는 등줄기를 간지럽힘과 동시에 남은 손으로 살집 있는 둔부를 문질렀다.
전보다 길어진 붉은 머리칼이 정신없이 흩날리고 자신의 코 끝을 때린다. 이미 눈은 초점을 잃고 이성이 증발해있다. 달아오른 몸은 고작 그것만으로 절정에 달하려하고 있었다.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가 더. 그렇게 이미 몇 번째였던가. 세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절정에 다다른 횟수가 스무 번은 넘은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헌터가 아니었다면 고작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으리라. 그 증거로 침대 시트는 이미 자신의 정과 그녀의 액으로 젖을대로 젖어 사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했다. 아니, 만족하면서도 더한 만족을 바랐다. 가슴의 첨단을 꼬집듯이 비틀자 넋을 잃은 와중에도 쾌감에 반응해 허리가 활처럼 젖혀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을 토해낸 알파는 그럼에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한참 부족하다. 고작 이런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
홍유리는 이미 반쯤 실신해 있었지만, 알파는 타오르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했다.
분명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 때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었지만 이 정도로 끓어오르진 않았었다. 어디까지나 욕구는 커다란 이성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갈증은 계속 커져가고 있었다. 그 욕구에 지배당하지 않는 게 고작일만큼 힘들었다. 분명 조금만 방심하더라도 한 줄기 이어진 이성의 끈을 놓치고 말리라.
뭐가 달라진걸까 생각하던 알파는 곧 답을 도출해냈다.
홍유리가 말했지 않았던가. 자신이 이전보다 더 감정에 물든 것 같다고. 그녀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본신에서 분리된 영향이리라. 신역을 넘어선 거대한 이성의 총체는 그곳에 둔 채로 감정과 욕구를 간직한 채로 현신했기 때문이리라.
마르지 않는 성욕을 어색하게 느끼면서도 이 이상은 위험하다고 깨달아버렸다. 완전히 실신하지는 않았지만 이 욕구를 그대로 풀어낸다면 그리 쉽게 끝나진 않는다.
그렇기에, 늑대는 자신을 억눌렀다.
더욱 그녀를 원했지만, 고작 욕구에 휩쓸려 소중한 것을 부술 순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연결돼있던 자신의 것을 틈새에서 뽑아내려한 순간, 강한 조임이 느껴졌다. 깨어난 걸까? 눈을 쳐다보았지만 초점은 여전히 흐리다. 다만 자극에 반응했을 뿐이리라. 쾌락을 갈구하며 몸부림치는 그녀가 유리로 된 잔처럼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이 이상 해버렸다간 돌아올 수 없을 거란 걸 느끼고 말았다.
다소 강압적으로 그녀를 안아들어 올린 순간, 마치 칭얼거리는 것처럼 벌어진 꽃잎이 놓아주지 않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미 안쪽이 너무 젖어있었다. 미끌림에 힘입어 단번에 자신의 것을 뽑아낸 늑대는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 위로 올렸지만 난처함을 느꼈다.
이미 엉망이 된 시트 위를 열린 꽃잎에서 흘러나온, 마구 섞인 서로의 액이 흠뻑 적시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또 한번 욕구가 치솟는다.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넘긴 알파는, 안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흠칫거리고 말았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낼거야?
아무도 없는데도 무언가 그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건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여태껏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린 적 없던 강철의 의지가, 가슴이 요동친다. 본능이나 욕구는 진작에 뿌리치고 극복했을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신의 일이었지 지금의 자신이 아니다.
본신은 외우주에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있는 건 분명 자신이었지만 온전한 자신이 아닌 일부. 그로 인해 감정과 욕구는 더욱 충만해졌지만 이성은 작게 갈라져나오고 말았다. 이 갈망의 이유는 바로 그것이리라.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은 알파는 초인적인 의지로 욕구를 추슬렀지만, 감정을 온전히 수습하기 전에 자신을 건드리는 손가락에 감았던 눈을 떠야만 했다.
"……!"
간과했던 건 욕구는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 반쯤 실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을, 쾌감을 찾아 본능적으로 움직인 그녀의 섬섬옥수가 어느새 자신의 것을 쥐고 있었다.
고작, 고작 그것뿐이다.
하지만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방 안의 열기와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의 감촉에 간신히 이어지고 있던 한 줄기 이성의 끈이 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본래 늑대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 본능만이 남아 사납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고 기다란, 얽히는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은 알파의 손은 이마에서부터 길게 자라난 그녀의 뿔을 단단히 쥐고서는 본능에 따라 허리를 들썩였다.
그로부터 한참이나 이어진 열락에 방 안이 더욱 후끈 달아올라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