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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43화 (343/407)

〈 343화 〉 #161 술렁임

* * *

조금 이르게 잠에서 깨어난 백소율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아직 어둑어둑한,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새벽 5시경. 다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이미 몸이 적응해있었다.

수면 시간은 줄어들어 이제 5시간 이상 잠들 수 없었을 만큼이나. 알파가 곁잠을 해주었던 그 날은 정말로 푹 잠들 수 있었는데……

아쉬움을 삼키고 고개를 흔들었다.

"돌아가는 날이니까."

미리 어제부터 정리해두었던 여권을 비롯한 것들을 챙긴 백소율은 조용히 머릿속으로 할 일을 정리했다.

먼저, 알파에게 다짐한 것처럼 마랑회를 쓸어버린다.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됐으니 그걸 거두는 게 우선. 다음에 알파를 만나는 건 일이 전부 끝난 뒤가 되리라.

"……."

그 다음엔 자신 또한 마찬가지로 선생님처럼……그렇게 생각하니 없었던 의욕마저 생기는 듯하다.

좋은 기분은 안타깝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아직 이른 새벽에 걸려온 전화. 저장도 하지 않은 번호였지만 짐작가는 곳이 있어서.

백소율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무거운 쇳덩이가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같은 동작을 수천 수만번씩 반복하는 훈련도 있었지만 이 훈련은 거기서 더 나아가 세세한 조정을 하는 작업이었다.

그것 자체는 신기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헌터라면 누구라도 해봤을 법한 훈련이니까. 문제는 들어올린 쇳덩이의 양. 마치 방 하나에 쇳물을 부어 통째로 굳힌 듯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집채만한 쇳덩이를 들어올리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걸까. 족히 수십 톤은 나갈법한 그것을 횡으로 휘두르고 있었다.꿈틀거리는 팔뚝엔 이미 수십 마리 작은 뱀이 가죽 아래에서 춤추기라도 하듯 힘줄이 도드라져 보인다.땀은 비오듯 흐르지만 쇳덩이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가능케하는 건 당연상식을 벗어난 힘.

사람의 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정점. 가히 초인이라 부를 만한 힘이었다.

"여전하구나. 이젠 그만해도 될 텐데."

수련은 필요없다. 그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형, 검성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슬쩍 눈을 돌렸다.

"이제 몬스터는 없으니까."

"무슨 소리요. 저번에 그렇게 개고생을 해놓고."

바닷속에는 아직 질리도록 남아있지 않느냐는 말. 하지만 강태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젠 알파가 돌아오지 않았나."

"그 때도 있었수다. 근데 안 하잖소."

"그래. 그래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란 것도 사실이지."

그답지 않은 소리에 휘두르기를 멈춘 강태호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왜? 무슨 일 있었소? 갑자기 이상한 소리나 하고."

"……조금,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상하게?"

"마랑회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어쩔 도리도 없을 만큼 확실하게."

"허 참."

지면에 쇳덩이를 내려놓은 강태호는 거기에 몸을 기대었다. 마랑회가 날뛰기 시작했단 사실을 믿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두려운 건 아니다. 오히려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

"미쳤구만. 죄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 아니오?"

마랑회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 대단한 조직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그 전파속도가 빠르고 생각보다 잘 숨어 있다는 것뿐.쉽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아서 잡지 못했다는 것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 뿌리 뽑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강태호가 헛웃음을 뱉은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게 또 그렇지는 않더군."

"……?"

"각 현장마다 남아있어야 할 시체가 없다. 놈들이 긁어모으고 있다 봐야겠지.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시체? 그딴 걸 모아서 어쩌겠다고? 뭐 흑마술이라도 쓰겠다는 거요?"

무슨 SF영화냐며 좀비라도 만드느냐고 황당해하는 강태호를 향해 강태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움직였단 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강태호는 가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단체로 미친 게 아니라면 죽으려고 나설 리 없으니까. 뭔가 의미모를 꿍꿍이가 있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남은 게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느낌이 좋지는 않아."

"결국 하고 싶은 건 그 말이었잖소."

"……."

강태준은 담담히 끄덕였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언제 해안가를 넘어올지 모를 바닷속의 몬스터같은 게 아니라 마랑회.꿍꿍이가 있다면 움직이기 전에 쳐부수는 게 상책이니까.

"근데 말이오. 그런 거라면 진짜 고놈이 움직이는 게 맞지 않소?"

바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칭하는 놈들이니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을 텐데……

"이미 나섰다더군."

"오? 그럼."

"한국 땅에서는. 하지만 동시에 여기까지.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더는 손대지 않겠다고 했다."

전후사정은 뒤늦게나마 홍유리에게 전해들은 바. 강태호는 굵직한 손가락으로 턱 아래를 긁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어느새 그 손에 들린 건 쇳덩이가 아닌 검의 손잡이였다.

"사람. 모아야겠구만."

***

마랑회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류 또한 그에 상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직접 일이 벌어지지 않은 한국, 여명에서도 나설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헌데 정작 일이 벌어진 곳은 어떠할까.이미 수사에 나서 뒤를 쫓고 있으리라.

그 결과, 어느쪽이 당하게 되더라도 꼬리는 잡힌다. 흔적은 남는다. 그렇다면 놓칠 리 없다…….

"내가 있으면이란 거죠?"

강태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랑회의 꼬리를 잡아도 결국 그걸 쫓을 사람이 없다면 말짱도로묵이니까. 광휘가 없는 지금 최고의 추격자의 이름은 홍유리가 계승하고 있었다.

'글쎄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강태호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럴까. 그동안 알게모르게 홍유리의 성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젠 자신마저 승패를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로.마찬가지로 추적 능력도 한참이나 늘었으리라. 어쩌면 전성기의 광휘가 살아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래. 갈 테냐?"

위아래로 끄덕거리는 고개. 승낙했다면 더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여명의 정예를 소집해 출발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럼 이게 마지막이겠는데."

"알고 있었어요?"

"모를 수가 있냐."

홍유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건 이미 클랜 내에 퍼진 이야기였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진하 그 놈이 한숨 쉬더라고."

강태호는 씩 웃어보였다.

"나도 신혼인 놈 부려먹긴 미안하다마는…"

말과는 달리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었기에 홍유리는 눈 사이를 좁혔다.

"흠흠. 뭐 그래도 어쩌겠냐? 팀장 자리 빵꾸낼 순 없고 너부터 쉬어야지."

"웬일로?"

"뭐 그런 게 있다."

2팀의 팀장이 3팀에 있는 게 드문 일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커다란 덩치가 눈길을 끌 수밖에 없어서였을까. 아닌 척 하면서도 팀원들의 이목이 집중돼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득 든 장난기에 강태호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근데 인마. 사직서말고 휴직계로 바꿀 생각은 없냐?"

"휴직계요?"

"왜, 거 있잖냐. 육아휴직 같은 거."

"……."

"안 그래도 요즘 많이 쓰더라. 안 그래도 우리 팀 아영이도 내년에 복직할 예정이고."

"……."

"왜 인마. 너도 신혼생활 즐길거 다 즐기고 나중에 오면 되지. 난 그런 거 불만 없다? 사람이 놀 땐 놀아야지."

"……."

"아 근데 식은 어디서 치르려고? 그냥 아예 여기서 할래? 주례는 걱정마라. 이 몸이 두 팔 걷고 나서서 형님도 설득……?"

말을 흐린 게 아니다.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을 뿐. 그건 주변의 수군거리는 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느샌가이글거리는 불꽃이 주변에 넘실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

활활 타오르는 불꽃. 한껏 올라간 온도. 이미 벽에 걸린 온습계가 고장나있다. 아침 단련때보다 더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다가 금세 사라지고 만다. 땀이 증발해 열기로 피어올랐으니까.

"야. 농담, 농담인데…"

불꽃의 저편에서 강태호는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눈을 보았다.

***

그 날로부터 하루가 더 지난 아침.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홍유리. 그에 늑대는 뒷머리를 긁었다. 백소율에게 맡기겠다고 말한 이상에야 참견할 생각은 없다. 없었는데… 정말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 걸까.

"뭐? 왜? 설마 당하기라도 할까봐?"

"……."

어쩐지 어제부터 쭉 언짢아보이는 기분에 차마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 늑대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스퀘어 마스터와 동등하다는 건 인류의 정점에 있단 뜻이지만 그렇다고 무적인 건 아니다. 물론 지금의 홍유리를 위협할 사람은 기껏해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밖에 없겠지만…

"쓸데없는 걱정 안 해도 금방 끝내고 올 거야. 어차피 잡것들인데 뭐. 걱정하지 말고."

그 말에 늑대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묘하지 않은가. 마치 종종 영화에서 보던 상황에 처한 것만 같았다.

연인의 은퇴하기 전 마지막 남은 일.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 늑대는 창문 바깥의 무심하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통은 반대아닌가.'

입장이 반대가 된 것 같다.

'이런 기분이었나?'

그제야 늑대는 기다리라 했음에도 몇 번이나 따라왔던 홍유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믿어야 할 텐데… 어쩐지 가슴이 술렁여서, 물가에 애를 내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갔다올게."

결국 문을 나서는 그녀의 등을 한참이나 바라본 늑대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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