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화 〉 #161 술렁임 (2)
* * *
현장. 그렇게 추정되는 장소에 도착한 여명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근 클랜들은."
"이미 협조를 구했습니다."
"대표 클랜은?"
"마찬가지입니다."
강태호는 고개를 주억였다. 예정대로 곧바로 일에 착수할 수 있도록 클랜원이 미리 길을 닦아두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남은 일은 어렵지 않다. 전문가를 준비해왔으니까.
"햐, 그럼 빨리 끝내고 쉬던지 하자. 이의는?"
돌아오는 답이 없자 강태호는 다시 끄덕였다. 머나먼 이국의 땅. 적도를 반대로 돌아 미국까지 왔지만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건지 나른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
이러는 시간에도 어디선가 마랑회가 날뛰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궁수들이 흩어져 주변을 살피는 와중, 홍유리는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일일이 흔적을 찾고 확인해야하는 그들과 달리 홍유리로써는 단서를 찾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눈에는 똑똑히 이어진 길이 명확하게 보이고 있었다.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어떤 형태로라도 남아있기만 하다면 추적의 마안을 속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간혹 알파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찾았냐?"
"아마도요."
현장엔 시체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체를 가지고 이동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마랑회와 관련이 있으리라.
"그나마 다행이지. 얼간이들이니까."
강태호는 건물 벽면에 부착된 CCTV를 쳐다보았다. 만약 저게 없었더라면 밝혀낼 수 없었을 터. 어쩌면 단순 실종으로 처리됐을지도 모른다.
명백히 어설프다. 이단의 탕아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이나. 물론 덕분에 꼬리를 잡는 건 편했지만.
"갈 수 있겠냐?"
홍유리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강태호는 뒷머리를 긁었다. 그래도 몇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
'뭐, 급조한 조직이라니까.'
마랑회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신앙. 그 탄생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걸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조직이 두터울 리 없다.
이렇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홍유리가 걷기 시작하자 강태호 또한 마찬가지로 뒤를 따랐다.
***
늑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걷지 않는데도 주변의 풍경이 천천히 지나간다. 차에 타고 있으면서 새삼스레 감회가 떠오른다. 과연 마지막으로 차에 올라탔던 건 얼마나 오래전이었던가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필요없으니까. 늑대에게 있어서 자동차란 합리적이지 않은 이동수단이었다. 일단 굳이 길과 도로를 따라가야한다는 점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흔적도 남을 테고 무엇보다 직접 달리는 쪽이 훨씬 더 빠르니까.
자동차가 아니라 기차나비행기. 온갖 이동수단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입장에선 역시 불편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애초에 나오질 말았어야겠지만.'
늑대는 자기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랑회의 수색을 위해 홍유리가 떠난 이상 굳이 클랜에, 밖에 나갈 필요는 없다. 홍유리의 말마따나 기다리고 있으면. 집에서 가만히 페리와 시간을 보내기만 해도 됐을 테지만, 이렇게 차에 타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은하가 불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용건은 토벌에 동행해 달라는 거였지만…… 거절하지 않은 이유에는 개인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날 타고 가는 게 더 낫지 않았나?"
"아, 아니 됐어."
황급히 고개를 젓는 모습이 어쩐지 당황스러워하는 듯하다. 하기야, 그 이유는 얼추 들어 알고 있다. 백소율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은하가 재밌는 말을 했었다고.
'그게 이거였군.'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겠지만, 솔직히 쓸데없는 걱정이다. 너무 뛰어난 감각은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정보까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하고 있으니까. 특히나 후각은 더더욱. 그렇지 않으면 부산에서 서울. 혹은 그 이상으로 먼 곳에서 맡아지는 냄새를 모두 정보화하고 말 테니까.당연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후각은 거의 항상 차단하고 있다.
'애초에 그게 불쾌한 건지도…'
[30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네비게이션의 음성에 따라 핸들을 꺾는 이은하. 늑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직 운전에 익숙하지 않아 뻘뻘 땀을 흘리면서 운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운전대를 잡으면 종종 천성이 드러난다고들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다친 건 좀 괜찮아졌나?"
"어? 응. 이제 다 나았어."
쳐다보지 않고 끄덕이는 모습. 눈 사이를 좁힌 늑대는 그녀의 옷 안으로 이미 상처들이 아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 직접 눈으로 보았던 상처는 제법 심한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겠지."
"……?"
"미약한 재생을 얻기 직전이니까."
순간, 차체가 양옆으로 조금 흔들렸다. 예상밖의 말을 들었단 것처럼 핸들을 잡은 손이 흔들려서였다.
"그렇게 놀랄 것도 없을 텐데. 대충 알고 있었지 않나."
"그거야……"
떨떠름해하면서도 이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스킬로 발현되진 않아서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아직은. 하지만 곧 나타날 거다."
스킬로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말했다시피 미약한 재생에 손이 닿기 직전이었다. 아마 이번과 비슷한 정도로 상처를 입게 되면 곧바로 획득할 수 있으리라.
"……그런 것도 알 수 있는 거야?"
늑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반짝이는 눈으로 홱 고개를 돌리는 이은하가 무언가를 물어보려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 빛나는 눈을 보건대 무슨 말을 꺼낼지는 불보듯 뻔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표기되기 전의 스킬을 알기 위해선 최소한 근원에 접촉할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더 정확히 말해서는, 근원을 보고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걸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정신체. 어지간해서는 초월의 영역에 다다라야만 하리라.만상의 주인에게는 가능했겠지만 이은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초월의 영역에 다다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다시는 '그런 일들'을 겪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
퍽 아쉬워하는 모습에 늑대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쉬워할 것 없다."
비록 근원을 읽을 순 없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 건 애초에 자신밖에는 없다.
안 되는 걸 아쉬워하는 것보단 미약한 재생에 거의 손이 닿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쪽이 나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몸으로 미약한 재생을 얻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르니까.슬라임 시절의 자신마저 처음 미약한 재생을 획득했던 건 어디까지나 스킬 포인트를 소모한 것에 불과하다.자신마저 그러할 진대, 사람의 몸으로는 어떠할까.
그만큼 상처입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가 돌아왔다는 뜻. 고생 없이 얻을 수 있는 보상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나.'
지리산과 네버랜드를 비롯해 탕아들의 침공 때를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는 모르는 그녀만의 시간이 있었을 테고, 거기에는 환계에서의 혹독한 훈련 또한 포함되어 있을 터.
"앞으로 한 번만 더 비슷한 상처를 입으면 분명 스킬로 발현될 테니까."
"응!"
기운 찬 대답. 어느새 창 밖으론 바닷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해안가까지 다다랐다는 뜻이었지만, 얼핏 보이는 모래사장은 역시나 아직 붉게 물들어있었다.
힘겹게 주차를 마친 이은하가 차에서 내렸을 땐 주변엔 제법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다.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고작 며칠 전에 그런 난리가 벌어졌는데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을 순 없다.
"이를 어쩐담."
곤란해하는 이은하가 옆머리를 긁적였다. 일이 벌어지기 전이라면 몰랐을 테지만, 이런 상황에서 바닷가로 들어가겠다고 설레발을 칠 순 없을 테니까. 하물며 휴가 중이라면 더더욱. 수상하게 여기고 클랜에 연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으리라.
"……팀장님한테 엄청 깨지겠지."
끙끙 머리를 싸맨 이은하는 역시 알파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알파를 부른 건 힘을 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서였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
"홍유리는 지금 없으니까. 마랑회를 쫓아 외국에 나가있거든."
뜻밖의 소식에 이은하는 반색했다. 설령 들키게 되더라도 혼날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저들이 있다고 문제될 것도 없지. 난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지만 네겐 들키지 않을 방법이 있지 않나."
"……?"
이은하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파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들키지 않을 방법…… 혹시 높은 곳에서 몰래 지나가라는 말을 하는 걸까?
그렇게 이해하고 허공에 발판을 만들었지만,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 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아."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이은하는 미약하게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배운 적 없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걸로는 안 될 텐데."
어디까지나 불의 거인을 상대했을 때 사용했던 물의 마법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듯 늑대가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
"내가 알려줄 테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