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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45화 (345/407)

〈 345화 〉 #162 성장

* * *

마법을 알려주겠다.

그 말에 이은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몬스터인 알파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돌아 생각해보면 알파라고 안 될리 있겠는가.

마력이 있고 지성이 있다. 하물며 그 운용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분명 가능하리라 만약 마법사들이 들었다간 개소리하지 말라며 난리 칠만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Ascunde."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만다.분명 눈앞에 있었는데도 사라진 알파의 모습. 일순간 당황한 이은하는 이내 어눌하게나마 주문의 말을 따라했다.

"A, Ascunde?"

그러자 마력이 소모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지장이 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서히 자신의 주변이 변해간다.

더 정확하게는 바람이 닿지 않는다. 고작 그 정도 차이였건만 대마력을 얻은 이후, 증폭된 감각으로 똑똑히 느낀 이은하는 탄성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반대로 늑대는 역시라고 생각했다.

마법의 기초는 어디까지나 학문에 기반한다. 마법의 시초는 마력을 사용하기 쉽게끔 정립했을 생각이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더 정확하게는 시초 되는 그녀의 재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전 인류가 사용할 수 있게끔 마법을 보급할 셈이었겠지만, 정작 그렇게 쉽게 만든 마법마저 인류 대부분의 이해를 뛰어넘어있었다.

그리하여,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 마법은 몇몇 이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그 시초에게 있어 마법이란 이렇다할 것도 없는 간단한 것. 굳이 배울 필요도 없을 만큼 단순한 것.시행착오조차 없이 미지의 영역에 가뿐히 발을 디딘 셈이다.

"아, 알파?"

두리번거리는 이은하가 자신을 찾으려하자 늑대는 마법을 거두고 그녀가 만든 장막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아, 거기."

어디 간 건 아니구나.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은하는 긴가민가한 모습이었다. 아마 마법이 제대로 성공했는지 반신반의하는 것이리라.

"걱정하지 않아도 성공했다."

"그, 그래?"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눈에는 또렷하게 보이지만 남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으리라.

"확인해봐도 좋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이은하는 천천히 걸어 해안가로 향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래를 밟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는지 부스럭거렸다. 헌터들이 일제히 시선을 모으자 꼴깍 숨을 삼켰지만, 곧 시선이 흩어지자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너무 뻔하게 느껴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투명한 막 안에 발판을 만들어 걸은 이은하는 곧 바다 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간 더 걸은 뒤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곳까지 도착한 이은하는 마법을 해제했다. 곧불어온 바닷바람이 얼굴에 닿자 소금기를 맘껏 느끼며 저 아래를 바라보았다.

"바로 할텐가?"

"으응. 그야 뭐…"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이미 육지까지는 멀다. 이미 수평선 너머까지 왔으니 분명 이 거리라면 눈길은 닿지 않으리라.

"그래."

순간, 이은하의 눈에 검은 선이 보였다. 그건 너무 빨라 도무지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증폭된 감각으로도 겨우 잔상만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였다.

뒤늦게 그것이 늑대에게서 뻗었음을 깨달은 이은하는 휘둥그레 눈을 뜨며 궤적을 쫓았다. 상공에서 지면까지 올곧게 뻗은 그것이 이미 무언가를 꿰뚫고 있었다.

만약 저것이 자신에게 향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리라.애초에 보지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머잖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을 보고 침을 삼켜야만 했다.

'심해아귀.'

그 이름처럼 바다 깊숙한 곳. 평소에는 눈이 닿지도 않을 깊은 심해에 살아간다 알려진 몬스터. 설사 조우하더라도 B클래스 이하의 헌터는 교전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알려진 대형 몬스터였다.

그런데 그것을 순살한 것에 그치지 않고 들어올리고 있단 사실에 고개를 흔들었다.

하기야 언감생심 비교할 대상이 너무 터무니없기는 하지.

그리고 자신이 수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마법이 풀린 이은하를 볼 수 있게 된 몬스터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죽은 심해아귀의 피냄새와 시체에 이끌려온 것이었지만. 그렇게 얼마간 지났을까. 충분히 득시글거리게 되자 흥분한 몬스터들은 자기네들끼리 날뛰기 시작했다. 발 아래로 모여든 수면 아래의 새까만 그림자들이 붉어져가는 바다에 뒤덮이기 시작하자 이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지독하게도 많이 왔구나."

안목 스킬로 확인하건대, 아무리 못해도 300에서 400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저걸 다 없애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리라.

"Pile."

말뚝. 자신이 가진 가장 뛰어난 공격 수단.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거의 백에 달하는 숫자가 펼쳐져 하늘을 수놓는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장관이었지만, 마력의 말뚝은 실제 보이는 것 이상의 위력을 발하리라. 대마력을 얻은 이후 제대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될지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데 모여있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 이 이상의 방법은 모른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와중에 걱정 또한 들었다.

강해진 힘은 그만큼 조절하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만약에, 자신이 상상한 대로 했다가 그 여파가 번지면 어떡하지? 만약에 실패하면 또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불안감이 마음을 좀먹는 듯하다.

"무리할 필요 없다."

하지만, 낮은 저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불안이 가시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작 말 한마디일뿐인데.'

뒤는 생각할 필요없다. 그도 그럴것이, 함께 와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알파였으니까. 분명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뒤를 맡길 수 있으리라. 대답 없이 끄덕인 이은하는 마력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이제 시작일뿐.

"Embiggen! Embiggen!"

청아한 목소리가 공기중으로 퍼져나간다. 매번 담겨있는 마력은 펼쳐진 말뚝에 간섭해 그것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고작사람 하나만한 크기에 불과했던 말뚝은 몇 번이고 외친 끝에 커지고 또 커져 집채만한, 그리고 빌딩만큼의 크기로 변했다. 분명 홍유리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무식한 년."이라고 말했으리라. 어쩐지 그 모습이 상상되는 터라 이은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헛웃음을 뱉었다.

아무리 대마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무리였을까. 슬슬 마력의 한계가 느껴지고 있었다. 눈 앞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 그러나 이은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이야."

저 아래 득시글거리는 몬스터를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선 아직 한 번 더.

"Embiggen!"

거대화의 영창. 마력이 담긴 말에 따라 말뚝은 다시 한 번 그 크기를 불린다. 백에 달하는 빌딩만한 말뚝들은 고층 아파트에 비견될 만큼 거대해졌고 순간, 이은하는 발 아래가 불안정해졌다고 느꼈다.

"……!"

세상이 흔들리는 듯하다. 실제로 기껏 만들어놓은 발판이 제어에서 벗어나 깨져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추락하는 일은 없다. 검은 터럭이 자신을 받쳐주고 있었으니까.

"……고마워."

그리고 이은하는 들어올린 손을 내렸다.

***

장관이었다.

비록 다른 차원에서였지만 이미 비슷한 광경을 훨씬 더 큰 스케일로 목도한 적도 있었음에도 그렇게 느꼈다. 오히려, 현실감이 없던 그 때와는 달리 펼쳐진 말뚝들에 의해 어떤 광경이 떠오르고 있었다.고층 빌딩만한 크기의 말뚝들은 마치 하나의 도시를 보여주는 듯하다. 언젠가 보았던 뒤집힌 마천루의 광경을 떠올린 늑대는 헛웃음을 뱉었지만, 그와 달리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과장을 보태자면 도시 하나가 바다에 추락하는 셈. 설마 여기까지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진 못했지만, 가만히 있다간 물보라를 뒤집어쓰고 젖은 생쥐꼴이 되고 말리라.

이은하를 태운 채 뛰어오른 늑대는 곧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과, 그 뒤를 이어 짙게 피어오른 혈향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 보러 온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법을 가르치고, 혹시 가능하다면 대마법을 사용하게끔 유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위력이라는 면에서만큼은 대마법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과연, 평행세계의 마법의 시초라고 부를 만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은하가 만상의 주인이 될 리는 없다.

그렇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테고, 같은 일을 겪을 수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만상의 주인이 겪은 시간보다도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만약 똑같은 영원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을 때, 그녀는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홍유리의 뒤를 따르던 강태호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이 아니라 홍유리가 먼저 멈춰 있었으니까.

"하, 씨발……"

한숨과 함께 새어나오는 적나라한 욕설. 그리고 그녀가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건 맨홀 뚜껑이었다.

"이것들이 무슨 쥐새끼들도 아니고…"

머리를 짚은 홍유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보였다.

"왜 죄다 지하에 숨어있고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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