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163 마녀
* * *
"……."
늑대는 고개를 흔들었다.
수평선 너머였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과할 수밖에 없다. 들키지 않을 리 없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진 모르더라도.
'과소평가했나.'
마법만 가르쳐놓으면 이제 더 알려줄 건 없으리라 생각했다. 전후사정이 어찌됐건 분명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서 가져온 것이니 이렇게나마 돌려주는 게 맞다고 여겼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만상의 주인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용할 필요가 없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느새 눈앞에 휘적거리는 손이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저런 광경을 만들어냈다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진맥진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물어왔다.
"어땠, 어?"
그 말에 늑대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리는 하지 말라고 했잖나."
어쩌면 자신이 과소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그녀는 뒤쳐지지 않게 됐다. 이제 산에서 죽을 뻔했던 소녀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이제 와서 그녀가 강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탕아들은 사라졌고 모든 일은 끝났으니까.이제 남은 일들은 전부 자신이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잘했다."
여태껏 노력해온 그녀가 대견하게 느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으리라.
만면에 만족한 미소를 띠운 이은하는 대자로 엎드린 채 색색거리며 잠들었고, 늑대는 조금 다른 눈으로 그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
환영의 나비가 있을 곳 대신에 백소율이 도착한 곳은 자신을 부른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약속한 장소에서 잠깐 기다린 끝에 마중나온 이를 볼 수 있었다.
"선구자 님."
"선구자…… 그런가요."
비록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지만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함께 과격파였던 이들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
"의외네요. 다른 분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만큼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바쁩니다. 적어도 저한텐 맡길 수 없는 일일테고요."
자조하는 그를 보고 백소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실종사건. 그게 마랑회의 짓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적어도 온건파였던 사람에게 맡길 일은 아니리라.
"제가 나와서 실망하셨습니까."
"그럴리가요."
백소율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이 자리에 나와있는 게 오히려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니까.
"…감사합니다."
그와 함께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이 일종의 시험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또한. 왜냐하면, 그의 뒤를 쫓아온 사람도 있었으니까.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백소율은 순순히 그 말에 응했다. 그가 곤란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마랑회의 근거지를 알지 못하는 한에서야 목적을 다할 수 없으니까.
…….
머잖아 안내에 따라 제법 걸었을 때, 백소율이 안내받은 장소는 어느 폐건물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겉으로 보이는 외관상으로만 그러하다는 점이었다. 흐르는 마력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다. 실제로 저 안은 요새나 다름없으리라.
수십 겹의 결계와 여러 마법진으로 둘러싸인 채 보호받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더욱 발전하고 세력을 키웠단 뜻이다.
정작 그 요새가 인류의 최전선. 스퀘어의 지식으로부터 고안된 것이란 게 아이러니하기는 했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결계는 외부의 공격을 대비하는 것. 허나, 자신이 하려는 건 안에서부터 깨부수려는 것뿐. 자신이 여기 온 것과 마찬가지로 저 안에서 그 또한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
"별거 없구만 뭘 그렇게 엄살이냐?
맨홀 뚜껑을 버젓이 들어올린 강태호는 코를 킁킁 거렸다. 조금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렇게 신경쓸 정도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게 고작이었다.
"거, 코 좀 막고 가면 되겠구만."
"……제정신?"
진심이냐는 물음에 강태호는 말하는 대신 훌쩍 뛰어내렸다. 심지어 물웅덩이 위에 찰팍거리며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홍유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래를 보았다.
"얼른."
저 아래서 손짓하는 게 마치 황천길 저편에서 부르는 것만 같다. 허나, 안타까운 점은 자신이 없으면 쫓을 수 없을 거라는 점.
애처럼 떼 쓰고 있을 순 없다.싫어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가방 속에서 장갑과 우비를 꺼낸 홍유리는 이를 갈면서 하수도 아래로 들어갔다.
"쥐새끼들이…"
이 원한은 반드시 풀어주겠노라 다짐하면서.
***
폐건물의 지하. 그리고 더더욱 지하. 그곳에서 곧 백소율은 어느 방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고즈넉한 방이었다.
마치 취미나 흥미 그리고 감정 따위를 모두 배제하고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는 듯한 삭막한 풍경의 방. 너무나도 인간미가 없어보이는 그런 방이었다.
그럼에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화려한 것이 있다.
그것은 동상. 정성스레 조각한 검은 늑대의 석상이었다.곧게 선 눈빛은 정면을 노려보고 당장에라도 덮쳐들 것만 같다는 위압감을 준다. 당장이라도 움직여 무엇이든 물어뜯을 흉포함을 가진 마랑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자신만큼은 알고 있다.
진짜 그는 저렇지 않다는 것을. 알파는 그렇게 흉포하지도 않고 본능에 휘둘리는 괴물도 아니라는 것을. 그가 바라는 건 숭배도 뭣도 아닌 그저 평화와 일상이었을 뿐이다.그걸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해왔을 따름.구세마랑회는 어디까지나 그걸 제멋대로 왜곡하고 이용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매듭지어야만 해.'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이상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알파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으리라. 마침 석상 아래, 무릎 꿇고 기도하던 인물 또한 일어나 자신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왔는가. 선구자여."
"누누히 말했지만전 그렇게 불릴 사람이 아니에요."
"부정해봤자 그대로 인해 이어진 끈이라는 건 틀림없지. 마랑회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 마랑이 최초로 구한 목숨. 그리고 대화를 시도한 것도 처음이란 그대가 사실을. 달리 누굴 선구자라 부를 수 있겠나?"
아카데미 습격 사건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백소율은 알고 있었다. 알파가 대화를 시도한 건 자신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매번 거부당해왔을 뿐. 그게 마침내 구원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이어졌을 뿐이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진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정정해주지 않은 채 백소율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건 됐어요. 그것보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의외로군. 그것부터 묻는 건가?"
"적어도 이렇게까지 어리석진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알고는 있는 건가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리가 없지. 그런데, 언제부터 그렇게 걱정했던가?"
그는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바라고 있던 게 아닌가. 마랑회가 붕괴하는 걸."
"적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었어요! 전부 죽을 거예요. 그걸 모르시겠어요?"
마랑회 전원이 구분없이 사냥당하고 말리라.
헌터라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백소율은 잘 알고 있었다. 탕아의 존재가 드러나고 여러 사건이 벌어진 지금, 알파가 바라던 대로 변절자에 대한 적개심이 커진 지금이라면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설사 이제 와 항복하더라도 마찬가지.
뛰어난 마법사는 하나의 마법으로 도시를 불태울 수 있다. 상식을 뛰어넘은 힘을 가진 범죄자란 건 그만큼 경이롭고 위험한 존재. 분명 몰살당하고 말리라.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온건파의 남은 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백소율은 여기서 그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걸 새삼 자각했다.
역시, 할 수밖에 없다.
오기 전부터 보류해두었던 주문과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력은 언제라도 끄집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저 남자가 누군지를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알고 있는데.
"해볼 셈인가?"
담담하게 묻는 말에 백소율은 답하지 않았다. 승산은 충분히 있다. 오히려 유리한 건 자신이란 걸 알면서도 몸이 떨리는 것만큼은 주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드높은 이름을 가진 '일곱 명'중 하나이니까. 설령 은퇴한 이후 오랫동안 전선에 서지 않아 세월에 녹슬었다 하더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궁금하지 않나?"
"……."
"선구자. 내가 굳이 그대를 부른 이유를."
"……."
"그대가 옳았다. 적어도 마랑께서 우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지."
여전히 고저없는 목소리였다. 분노를 표하지도 않고 슬픔에 빠지지도 않는다.그 때문에 백소율은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신앙과 믿음을 배신당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한 그의 모습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제멋대로인 지레짐작…… 그래. 결국 그랬던 거지."
등을 돌린 그가 다시금 석상을 향했을 때, 백소율은 고민해야만 했다. 지금이라도 공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의 틈도 엿보이지 않는 그를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으니까. 도리어 자신이 당하고 말 거라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마치 눈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 사람의 형상을 한 쇳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그럼 지금이라도…"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지."
"……."
"사실, 나는 지금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목적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설사 마랑께서 우릴 거부하신다 하더라도 직접 그를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우리처럼 생각하게 될 테니. 진실을 깨닫게 되는 거지."
"……."
"그렇게 해보려고 했고, 실패했지. 생각보다 여명의 헌터들이 너무 뛰어난 탓에."
그래서 마랑을 끌어내지 못했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냥 방법이 없는 건 아니더군. 오히려 단순했지. 저 바다 깊숙한 곳의 몬스터로도 안 된다면 더한 것을 준비하면 될 뿐이니까. 설령 헌터들이라도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것을. 그 때가 되면 마랑께서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실 수 없겠지."
"그런 게 있다는 건가요."
백소율은 눈살을 찌푸렸다. 헌터들이 해결할 수 없는, 마법사들이 대항할 수 없는, 인류가 쓰러뜨릴 수 없는 존재인 재앙은 이미 남아있지 않을 텐데.
"그래. 우연찮은 기회였지. 그대라면 알고 있겠지. '마녀'라는 존재에 대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