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 #163 마녀 (2)
* * *
"이 쥐새끼."
잘근잘근 발목을 짓밟는다.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한 힘에 엉망이 된 아킬레스 건이 결국 찢어지고 발목을 경계로 위아래가 끊어지고야 말았다.
"!"
비명 소리가 지하에 울려퍼졌지만 곧 그 소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두꺼운 마력의 막에 가로막히고 만 것이다. 고개를 든 사내는 찢어진 동공과 함께 살의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고서 꾹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뭐? 어딜 도망치려고?"
붉은 마력이 넘실거리며 짙은 안개처럼 낮게 깔린다. 이후에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사내는 꼴깍 침을 삼켰다.
어디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이 느껴지던 발의 무게가 사라진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치라는 말인가. 하물며 곤죽이 돼버린 이런 다리로.
불타버리는 걸까. 아니면 질식당하는 걸까. 어느쪽이든 결코 평온한 죽음은 아니리라…….
"거기까지 해라. 그러다 실신할라."
"……."
"어허. 그럼 여기 더 있으려고?"
그 말에 겨우 마력이 거두어졌다. 살았다고 생각한 사내는 그 대신 자신을 들어올린 거한의 얼굴을 마주보아야만 했다.
"자, 어디 속 시원히 털어나 봐. 어차피 이젠 저 놈이랑 둘뿐이잖아?"
사내는 침을 삼켰다. 그 말마따나 남은 건 고작 둘뿐이었다. 원래는 다섯 명이었지만 고작 한 번의 참격에 순식간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고 말았다. 바로 저 남자의 붉은 대검에 의해. 반룡의 마법사처럼 화를 내지도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내에게는 피를 뒤집어쓴 그 얼굴이 흉신악살의 그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끝나고 저놈에게도 물어볼 거다. 만약 돌아오는 게 같은 대답이 아니면…… 기대해도 좋고."
순간, 흉신악살의 눈동자에 한 줄기 섬뜩한 빛이 스치자사내는 위아래로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
"마녀…… 라고요."
"그 반응을 보니 모르는 것 같진 않군."
실수했다는 생각에 백소율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석상 위. 마랑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겠지. 여명에게 보호받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
"적어도 그 이유는 마랑에게라도 들어 알고 있을 터."
그제야 백소율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리하게나마 마랑회가 움직인 이유를. 자신이 마랑회를 안에서부터 부수겠다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을 안으로 부를 셈이었다는 것을.
'날, 마녀로 만들겠다는 거야.'
허세도 뭣도 아니다. 애초에 허세였다면 마랑회를 움직이지도 않았으리라.
어떻게라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물을 것도 없이 멋대로 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저 운이었지. 곳곳에 흩어져있는 탕아의 잔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됐을 뿐이니까."
그런 자료가 남아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거기엔 사람을 병기로 만드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더군."
"……."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딱 하나. 전제가 되는 핵심만 어떻게 한다면 정말로 가능하다고."
문제는 바로 그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으니까. 비정상적으로 마력과의 친화도가 뛰어나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다……그렇게 생각했었다.
"뒤늦게 알게 된 거지. 일개 학생이었던 주제에 고작 1년 남짓한 사이 후계자 자리를 버젓이 차지한 희대의 괴물이 나타날 때까진 말이야. 설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사람의 몸으로 마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비정상적인 친화력을 가진 축복받은 존재가 있다는 걸."
"……."
"그건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칭송받던 그 아가일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거늘. 일지의 내용과 함께 그제서야 알 수 있었지. 탕아들이 그대를 노렸던 이유가 바로 그래서였음을."
기시감이 들었다. 언젠가 백록에게서 들어본 적이 있다. 마력을 받아들이는 건 차라리 환수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자, 핵심이 되는 재료는 여기에. 그럼 필요한 '다른 쪽'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나?"
마랑의 석상을 쓰다듬으며 묻는 말에 백소율은 직감했다. 의문이었던 '어떻게?'라는 물음은 제멋대로 답을 도출해내고 말았다.
"."
"영특하군. 정답이다."
***
심문을 마친 홍유리와 강태호는 실소하고 말았다. 그만큼이나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확인차 들른 곳은 숨겨진 작은방이었다.
하지만 온통 검게 물들어있다. 암시 혹은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맨눈으로 보긴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건 빛이 들어오지 읺아서가 아니라.
"……피?"
벽면을 손으로 쓸어내린 홍유리는 그렇게 단정지어 말했다. 검게 들러붙은 이것들이 전부 말라붙은 피라고. 그게 몇 겹이나 층층이 쌓여 검게 드러나있을 뿐.
"설마……"
홍유리는 중앙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옆 책장을 보곤 실소했다. 왜냐하면, 책장에 빼곡히 놓인 병에서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에. 하나하나는 대단할 것 없었지만 전부 다 합치자면 얼핏 세어봐도 백은 넘는 숫자였다.
"…이게 전부 다?"
그리고 책장 아래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히 용도를 추측할 수 없는 쇠붙이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들의 날이 녹슬어있고 날카롭다는 점이 아닐까.
방 중앙의 테이블은 이제보니 정말 엉망이었다. 철제임에도 찌그러진 부분이 많았고 생채기같은 자국도 셀 수 없이 드러나있다.
그 흔적들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본 홍유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에 오히려 무표정해지고 말았다.불행하게도, 추적의 마안은 그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거, 살려두려고?"
마치 감정이 죽어버린 듯한 말. 그리고 일견 싸늘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 강태호는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손에 붙들린 사내가 살려달라고 몸부림친다. 약속했지 않느냐며 자비를 구하고 울고불고 있었다. 그러나, 강태호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육이 돋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단단히 조여들더니 마치 사과처럼 그것을 으깨었다. 더 이상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게 된 시체를 덩그러니 던져놓았다.
"올라가자."
"……."
"만약 이놈이 지껄인 게 전부 사실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농땡이 필 시간 없다. 알고 있지?"
홍유리는 끄덕이면서도 분을 삼키지 못했다. 어느샌가 턱이 맞물린 채 으드득거리고 있었다.
***
정답이라고 박수를 치는 그. 백소율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럼 이제껏 실종됐다던 사람들은 전부……
"그래. 활동을 멈추기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도대체 왜."
"어디까지나 보험이었을뿐. 이것도 저것도 전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다만, 그 때는 핵심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 몰랐다며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원래는 자신이 취할 생각이었다고 함과 동시에.
"그리고 그 결정체가 이것."
끄드득 끄득
아까까지만 해도 소중히 쓰다듬던 손길로 그는 자신이 숭배하는 우상의 눈알을 뽑아내고야 말았다. 물론 그것은 실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석상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뽑아낸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뛰어난 안목으로 그것을 살핀 백소율은 아찔함을 느꼈다. 석상을 보고 느꼈던 흉폭함은, 바로 그 정체가 이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마치 저주의 덩어리. 아우성치는 원혼이 담긴 듯한 붉은 결정체. 동시에 더없이 진한 마력의 향을 품고 있었다.
그 진한 농도에 마법사로서 감탄하기는커녕, 구역질이 치솟아올랐다.도대체 이 작은 결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희생됐을까. 그걸 생각하니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백소율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이래선, 이래서는!"
"이제 와 선악을 논하나? 우습군."
같잖다는 듯이 그는 코웃음쳤다.
"알고 있나? 이미 비슷한 짓을 했던 집단이 있다는 걸."
"……."
"이 아이디어는 내것이 아니다. 이미 있었던 '사각지대'라는 조직의 것이었지. 난 어디까지나 뒤늦게 들어 알게됐을 뿐."
그들은 인위적으로 마력을 늘리는 방법을 만들어냈다.바로, 사람을 갈고 갈아서.효율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이었다. 죽어간 숫자만큼 정직하게 축적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조금은 개량했지만……"
"이건 정신나간 짓이에요. 적어도, 적어도 당신이! 칠영웅이었던 당신만큼은 이래서는…!"
사정없이 흔들리는 백소율의 눈동자를 보고서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그 의지는 확고했으니까.
"그래. 광기지. 타락이기도 하고."
"……."
"하지만 그걸로 됐다."
미련 없다는 듯이 그는 손을 내밀었다. 석상에서 뽑아낸 번들거리는 저주의 결정체를.
"자, 이제 복용해라.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거다! 네게 주어진 재능은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한 것이니까!"
눈앞이 어두워지는 듯하다. 어느새 자신이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순수한 광기 때문에.그의 눈동자 저편에서 엿보이는 건 무저갱과도 같은 깊디깊은 심연이었다.
눈이 뽑힌 마랑의 석상은 마치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하다.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오래된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미 극복해 사라졌을 그것에 목이 죄어온다. 보이지 않는 암운이 드리워져 자신을 감싸안은 채 가라앉으려 하는 듯하다.
"마녀의 그릇이여."
선고와도 같은 말에 백소율은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