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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50화 (350/407)

〈 350화 〉 #163 마녀 (5)

* * *

흔들리는 건물 밖으로 혼비백산 뛰쳐나가는 사람들. 질서따위는 없이 도망치기 바빠있다. 그도 그럴것이 건물이 몇번이나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지진일까? 아니, 아니었다. 건물 밖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아지트로 삼은 커다란 폐건물만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흔들리고 있을 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화약같은 종류였다. 그 다음으론 보수공사를 받지 않은 건물이 세월에 녹슬었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관은 허름해도 여러 겹의 결계로 안팎에서 보호받는 이상 어지간한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 아예 폭격기라도 떠오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

혼란의 와중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소수였다. 그리고 그 중엔 백소율을 이곳까지 안내한 이 또한 포함돼 있다. 그는 어설픈지레짐작으로나마 생각했다. 이 흔들림은 선구자와 회주의 싸움이라고.

'선구자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스퀘어의 후계자와 맞설 수 있는 회주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또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헌터와 마법사라고는 해도 고작 두 사람일 터.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만약 결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고작 두 사람이 아니다.

바로 그 둘이기에 이런 싸움이 성사될 수 있는 것이리라.더는 선구자의 편을 들 수 없게 됐지만, 그는 속으로나마 바랐다. 부디 그녀가 무사히 나올 수 있기를.

***

주먹이 벽에 부딪히면 어김없이 공간이 넓어진다. 마법의 보호를 아득히 뛰어넘은 충격량. 과연 철인이라 부를만한 힘이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손가락이 부러지고 어깨가 이상한 방향으로 탈구돼있었다. 심지어 양 발은 몸이 향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돌아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맹우처럼 짓쳐들어오는 그를 향해 들어올린 손을 내리자 손끝에 나부끼는 감각을 느꼈다.

그건 여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의 힘. 분명 대마력을 넘어선 무언가였다.마치 자신의 손끝에 세계와 이어진 실이 길게 늘어져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선을 붙잡고 당긴 순간, 철인이 고꾸라졌다.

쿵­ 쿠르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마력에 짓눌려 처박힌 그가 몇 개나 되는 바닥을 부수고 아래층으로 떨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지상층에서 지하까지 이어진 구멍을 잠깐 바라보던 백소율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유혹을 이겨내고 남은 반쪽의 결정을 단단히 쥐고 으스러뜨려 붉은 가루를 흩뿌렸다. 그것만으로 마력의 향에 취할 것 같았지만 손등을 비틀어 꼬집으며 어찌어찌 유혹에 이겨낼 수 있었다.

이걸로 하나. 남은 결정은 아직 그가 가지고 있다.

'유리한 건 나야.'

백소율은 머리를 짚은 채 생각했다.이젠 다음 행동을 정해야만 할 때다.여기서 멀어지던지 아니면 끝까지 그를 쓰러뜨리던지.

'아니, 해야만 해.'

그가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원래는 자신이 직접 복용할 생각이었다고. 고작 절반만으로 철인을 압도하고 있다. 그런데 온전한 하나를 삼킨다면 어떻게 될까.

감당치 못할 힘에 풍선처럼 터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 남자에 한해선 그럴 리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지를 발견한지 제법 시간이 지났을 터.무작정 견디는 게 아니라 모종의 방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하리라.

할 수밖에 없다 여긴 백소율은 기꺼이 아랫층으로 뛰어내렸다.사뿐히 착지하고 손을 튕기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진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철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위에서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 도망친 것이리라. 그 또한 지금의 자신을 상대로 승산이 없단 것쯤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두 눈을 감고 집중한 백소율은 헛숨을 들이켰다. 평소와 같은 감각으로 마력 감지를 펼쳤을뿐인데 흘러들어오는 정보의 바다에 아득해질 것만 같았다.

대마력을 얻었을 때도 그랬지만, 마치 세계가 한 꺼풀 껍질을 벗고 본질을 드러내는 듯하다.아니, 실상은 그 반대겠지. 껍질을 벗은 건 자신. 어디까지나 그대로였던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뿐이다.고개 돌린 백소율은 그가 지나간 길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이제 조금이야.'

속삭임과 침식에 당하진 않는다. 지난 나날들은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았으니까.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느꼈다. 아까까진 주저앉고 싶을 만큼이나 두려웠던 목을 죄어오는 갑갑한 그리고 서서히 현실이 되어가는 악몽에 지금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어째서?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분명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에 두둥실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다. 분명 유혹엔 지지 않았지만 기억에 혼선을 빚고 있다. 두통을 고통으로 눌러 무시한 백소율은 그 다음을 생각했다.

일단을쓰러뜨리자고. 그리고를 와해시켜 모든 걸 바로잡은 다음 그에게로 되돌아가리라.

'그?'

또 혼선이다. 마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불쾌함은 더해지고 있다.그러나, 백소율은 어렴풋한 위화감의 실체를 붙잡지 못했다.

***

"……?"

수천미터의 고도. 아직 비행중인 항공기 안에서도 느껴지는 이질감. 눈살을 찌푸린 홍유리는 바로 옆 좌석에 잠들어있는 클랜원을 흔들어 깨웠다.

"좀 비켜."

그를 구석으로 밀어넣고 창밖을 내려다본 홍유리는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하늘의 경치를 보는 데는 지장없지만 저 아래를 보기엔 불편하기 그지없다.

창문을 열 순 없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순 없는 모양. 곧 다가온 승무원이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 홍유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착륙하기까진 앞으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냥 착각이었나?'

홍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지하에서 지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계단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런 폐건물에 엘레베이터는 있어봤자 쓸 수 없으니까.

허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철문을 박살내고 천장을 뜯어낸 철인은 성치 않은 몸으로 그 위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어떤 도구도 없이 맨몸이지만 겨우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고작 반나절만에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등정한 적도 있었으니까.

'상상 이상이다.'

결정을 반쯤 소화한 선구자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후계자는커녕 스퀘어 마스터의 영역조차 넘어서 있다. 비록 지금은 그 차이가 크지 않지만 남은 결정을 모두 소화하면? 정말 마녀가 되면 과연 어떻게 변할까?상상만해도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그거야말로 확실하게 마랑을 강림시킬 수 있는 방법이리라.

그리고 그 때는 그리 멀지 않았다. 물론자신에게 지금의 그녀와 맞설 능력은 없다. 그 누가 오더라도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싸울 필요는 없다. 굳이 손 쓰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취해버릴 테니까.

그 때가 되면 마력을 탐하는 괴물이 돼 스스로 마녀의 길을 걸을 터…

"역시 불가능했나."

기어오른 철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항할 힘이 없다는 건 달리 말해 도망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뜻. 미리 예상했던 결과였다.

어렴풋하게 저편에 보이는 빛. 분명 입구가 저기에 있는데도 나가는 건 요원한 일이다. 이런저런 충격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폐건물. 아마 이곳이 무덤이 되리라.

"……왜, 웃는 거죠?"

웃고 있었던가. 저도 모르게 입가를 매만진 철인은 조금 올라간 입꼬리를 끌어내렸다.해야할 일은 모두 끝났다. 자신이살아있건 아니건 그 여부에 관계 없이 그녀는 되리라. 분명 마녀가 되리라.

"아무것도 아니다."

철인은 다시금 주먹을 쥐었다.

'그나저나, 정말 불리한 싸움이군.'

자신은 그녀를 죽일 수 없는데 반해 선구자는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 만약 죽이는 것뿐이었다면 의외로 쉽게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렇지도 않나.'

처음의 승리조차 선구자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약점을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었다면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여태 서 있지도 못했으리라.

아직 낫지 않은 손가락을 억지로 꺾어 주먹을 쥔 철인은 선구자를 노려보았다.설령 결과가 뻔하고 정해져 있더라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 가만히 죽는 것보다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게 나으리라.

***

얼마 흐르지 않은 시간. 결국 건물이 폭삭 내려앉아 무너진다. 설령 아무도 찾지 않는 도시의 외곽, 외딴 곳이라 할지라도 이래서야 들키지 않을 리 없다.

'…….'

지금이라도 흩어져야 한다. 만약 헌터들이 뒤쫓아오면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을 테니까.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는데 살아나오는 건 어려우리라. 그럼에도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뒷걸음질치기를 얼마간,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늘까지 치솟은 먼지 사이로 누군가의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였으니까.

"선구자님!"

반색하고 소리친 그는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묘한 위화감에 걸음을 멈췄다. 실루엣은이런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여유를 잃지 않고 걷고 있다.

그 사실에 의아해했지만 그 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요."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도망, 쳐요…!"

경고하는 말과는 달리 그 손끝이 자신에게 향해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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