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화 〉 #165 마녀 vs 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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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을 향해 손을 뻗자 손바닥에서부터 튀어나온 붉은 사슬이 뻗었다. 깨진 유리창 안으로 들어가 단단히 고정된 순간 홍유리는 기꺼이 자신의 마법에 몸을 맡겼다.
덩굴을 타는 타잔처럼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리고 그 뒤를 마력 덩어리가 몇 번이고 뒤쫓아 부딪친다. 흉흉하기 그지없는 힘이 행사되는 걸 확인하면서 끌끌 혀를 찼다.
"쯔."
시간을 끌면서 기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피하고 있다보면 결국 마력이 바닥나지 않을까 하고서. 아무리 무진장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그 끝은 있을 터. 하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바깥으로 불던 바람이 마녀에게로 되돌아간다. 그 흐름을 제어하는 것 또한 마력. 즉,마력을 방출해서 사용하는 주제에 그걸 다시 흡수하고 있다. 압도적인 지배력으로 인한 말도 안 되는 무한동력. 마법사인 홍유리가 보기엔 기가 차는 일이었다.
"이 개년이 진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고 홍유리는 주변을 살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다소 일방적인 마력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고층 건물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비교적 낮은 건물도 예외가 되진 못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먼지가 높게 치솟아 눈살이 찌푸려지는 가운데 건물 안으로 뛰어든 홍유리는 바닥을 구르며 곧잘 몸을 일으켜 달렸다.
여유부릴 시간은 없다. 바닥을 내리침과 동시에 발 밑을 밀어주는 작은 폭발이 달리기를 가속시켰다. 그렇게 반대쪽 창문으로 빠져나왔을 땐 그림자가 기울며 짙어지고 있었다.
"……!"
통째로 무너지는 건물.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 홍유리는 주먹에 마력을 담았다. 빠져나갈 수 없다면 이판사판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으니까. 웅혼한 힘이 담기며 특유의 색으로 타오르는 불꽃의 색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할 때, 틈새가 드러났다.
더없는 힘으로 휘둘러진 대검이 건물을 양단한 것. 두말할 것 없이 강태호였다.
"이제 좀 쓸모있네."
마력을 갈무리하고 틈새 사이로 빠져나간 홍유리는 먼지가 닿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섰다.이 거리라면 마력도 그리 쉽게 닿진 못하리라.
'그냥 저걸 콱 죽여버릴 수도 없고…'
마법이 흩어지기는 하는데 대마법이라면 그러지 않을 터. 시원하게 두 세번정도 박아넣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마녀건 뭐건 알파까지 불렀는데 내용물이 백소율이라면 선을 두어야한다.
그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손속을 두고 싸워야한다니. 설마 이런 개같은 상황이 또 있을까.
"넌 나중에 뒈졌어."
***
과연 말한다고 믿을수나 있을까. 사람이 건물을 베어갈랐다는 것을. 그것도 어지간한 건물이 아닌 10층을 족히 넘기는 고층 빌딩이라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을 일을 벌렸음에도 정작 당사자는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이 정도는 그에게 당연하다는 것이리라.그런 황당하다는 눈길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은 거한이 태평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이야아아…"
쑥대밭이 되어가는 도시 외곽. 손으로 햇볕을 가리고 지켜보던 강태호는 감탄을 뱉었다.이러쿵저러쿵해도 저 괴물을 상대로 일대일로 맞서고 있지 않은가.
싸움의 내용은 결코 호각이라고 부를 순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홍유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그래도 이 양상이 오래가진 않으리라. 기껏해야 앞으로 10분 정도일까…….
"지원합니까?"
"어. 넌 남고 나머진 가서 대표 클랜이나 도와줘."
"예? 아니 저는 또 왜."
"씁."
토달지 말라는 경고에 입을 다문 이기준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기야 적합한 오더이기는 했다. 다른 헌터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터. 자신마저도 원거리에서 지원하는 역할로 꼽힌 것이지 정면에서 맞서 싸우기엔 적합하지 않다.
"뭐 어쩌겠냐? 여기 대표 클랜 대가리도 오고는 있다는데……"
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사실 와봤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으니까.
"두 시간만 고생하자고."
솥뚜껑같은 손이 어깨를 두드리자 이기준은 폭삭 내려앉을 뻔했다. 툭툭 건드린 것에도 여간 아닌 힘이 담겨 있다. 결국 긴 한숨과 함께 자신의 활을 집어든 이기준은마녀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할 수밖에 없다. 도시를 망가뜨리게끔 둘 수는 없으니까. 애당초 저런 괴물과 정면에서 맞서는 게 가능한 건 마찬가지인 괴물.그리고 이기준이 생각하기에 강태호는 충분히 그 범주 안에 있었다.
***
엉망이 된 외투를 집어던진 홍유리는 마녀의 공격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변한 건 공격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지성 따윈 엿볼 수 없을 만큼 뒤따르기만 하던 공격은 이제와선 앞의 수를 예상하고 먼저 움직이고 있다. 수를 봉해진 홍유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조건적인 회피가 아니라 방어를 겸해야만 했다.
대단한 위력이지만 한번 한번을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홍유리를 곤란하게 하는 건 바로 한계였다.
홍유리 또한 마력 재생을 갖고 있기에 빠른 속도로 마력을 회복하지만 마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마력을 회복하기는커녕 사용한 마력을 그대로 흡수해 재활용한다. 아주 조금씩의 손실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효율이다.바로 그 점이야말로 마녀를 마녀로서 있게 하는 것. 강태호가 예상했던 대로 머잖아 한계는 찾아오리라.
'공격도 못하고 막고만 있으라고?'
아슬아슬하게 정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마력. 그 때문에 섬뜩한 풍압이 붉은 머리칼을 세차게 흩날리게 했다. 조금씩 더 정교해져가는 마력탄이 확실하게 자신을 노리고 있다.
'이걸 두 시간?'
질끈 눈을 감은 홍유리는 발을 들어올리곤 강하게 땅을 내리찍었다. 이른바 진각. 그와 함께 어떤 작용이었는지땅이 솟아오른다. 거기에 손가락을 튕겨 불을 덮고 돌아본 순간, 마력이 벽을 두드렸다.
부서지지 않고 벽이 견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홍유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와 함께 둔중한 충격에 수십 미터를 날아고 붕괴한 파편을 몇 개나 더 부수고 처박히고 말았다.
"……!"
그 순간만큼은 고통에 생각을 잊었다. 잠깐이나마 의식을 끊어낸 일격. 거대한 해머에 정면으로 부딪친 것만 같은 아득한 충격. 도대체 내장이 얼마나 손상됐을까? 갈비뼈가 몇 대나 부러졌을까?
주저앉은 그대로 홍유리는 복부 어림을 메만졌다. 구멍이 뚫리진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다만… 감각이 없다.
마치 복부가 통째로 사라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씨, 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울혈이 기어이 올라와 입밖으로 흘러내린다.
처음으로 방식이 아닌 형태가 변했다.
흐릿한 눈으로 홍유리는 정면을 보았다. 그나마 벽이 부서지진 않았지만 중심부가 뚫려있다. 그 말인즉, 여태까지처럼 뭉뚱그린 두루뭉실한 힘이 아니라 공성추와 같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따라붙는 추격타. 막아야하는데 도무지 팔이 들리질 않았다. 움직이기는커녕 긴장을 풀기만 해도 의식이 끊어지리라.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적중한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할 힘은 두 갈래로 갈라져 엉뚱한 곳에 처박혔다.
"얼얼하구만."
손목을 움켜쥐고 엄살을 떠는 거한이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살아는 있습니까?"
물어오는 말에 이마를 찌푸린 홍유리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포션 세례를 그대로 받아냈다. 차가운 감촉에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개새끼… 빨리 좀 오지."
"먼저 혼자 갔잖습니까."
뛰쳐나간 게 도대체 누구냐는 말에 홍유리는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도시로 가는 걸 막는다고는 해도 조금쯤은 시간이 있었을 터. 방법을 강구하는 게 옳았으리라.
대체 왜 이렇게 머리에 피가 쏠렸을까…… 스스로 생각해봐도 의문이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건 아마도……
"망할 년."
***
고작 두 세번 공격을 받아냈을 뿐인데 손목이 시큰거린다. 그나마도 각룡의 뿔을 제련한 이 검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론 끝나지 않았을 거다. 힘으로는 강신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바포메트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이건 그런 영역이 아니다. 홍유리가 금방 쓰러진 것도 납득이 간다.
"오히려 잘했구만."
결정적으로 눈앞의 마녀는 마법사들의 천적. 싸움에 있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는 자신이 장기로 삼는 영역에서 우위를 점하는 존재. 게다가, 마법사의 최대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사전 준비와 영창같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재앙. 헌터와 마법사의 장점만을 가진 하나의 병기 그 자체.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력을 무기로 삼는 마법사가 이길 수 있을 턱이 없다.
오히려 여태껏 버틸 수 있던 게 기적이리라.
'형님이라도 있었음 몰라도.'
이대일이라면 승산이 있었겠지만 일대일은 아무래도……벅벅 머리를 긁은 강태호는 날아오는 마력을 있는 힘껏 베어냈다.
갈라지는 마력탄. 뻐근한 손목. 부축받은 채 멀어지는 홍유리. 순식간에 전황을 읽고 판단한 강태호는 양손으로 대검을 잡아쥐었다.
"에라. 먼저 가는 게 나였어야 했는데."
재생이 있는 자신이라면 금세 회복해 재참전할 수 있었을 테니까.처음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오롯이 선 마녀를 향해 검공이라 불리우는 거한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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