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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56화 (356/407)

〈 356화 〉 #169 마정

* * *

죽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후회는 남기지 않겠다는 모토 때문인지 주마등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것도 좀 아쉬웠다.

'나도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냥 홍유리나 데리고 냅다 튈 걸 그랬나. 어차피 뒤는 알파가 맡아줬을 텐데 두 시간은 안 됐어도 한 시간은 끌었는데.

"하기야 뭐."

그랬다가 마녀가 도시로 향했으면 더는 수습할 수도 없게 됐으리라. 영웅적인 죽음. 숭고한 죽음… 개뿔이. 괜히입맛이 쓰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다가올 통증을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자니 이어진 건 기다리던 종류의 아픔이 아니었다.

콰당, 하고 지면에 부딪쳤다.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쓰러지고 만 것. 주륵 흘러나오는 피에 손을 가져다댔지만 기껏해야 코피.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어안이 벙벙해 고개를 들어올린 강태호는 주변이 검게 물들어있음을 깨달았다.

그 검정은 참으로 섬뜩하면서도 낯익은 것. 강태호는 실소했다.

"허, 참."

아니, 실제로 물든 건 아니다. 그저 그렇게 느껴지고 있을뿐.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검게 물든 존재가 네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으니까.

"두 시간이람서. 이 자식아."

살았다는 안도감에 괜히 투덜거려보았다.

***

'…….'

멈춘 시간속에서 가장 먼저 강태호와 백소율을 떨어뜨려놓은 늑대는 영원의 권능을 해제했다.

이 힘은 본디 초월의 영역에 이른 만상의 주인의 권능. 이젠 자신의 것이라곤 하나 본신이 아닌 이 몸으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결코 오래는 유지할 수 없다.

"두 시간이람서. 이 자식아."

바로 밑에서 투덜거리는 말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예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건 근원을 다룬 경험이 있어서였다.

"……뒤는 맡겠다. 물러나있어라."

등 위에서 뛰어내린 이은하가 재빨리 강태호를 부축해 멀어져가는 사이 늑대는 가까스로 고개만 빼꼼 들고 있는 홍유리와 눈을 마주쳤다.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 특징적인 날개와 뿔, 꼬리가 아니었다면 홍유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만큼 본래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아서였다.

얼마나 당했는지 전신이 멍들어있고 심한 골절으로 골격이 바로 잡혀있지 않다. 심지어 피범벅으로 물든 모습에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 보내지 말았어야했나. 뒤늦은 후회와 회한이 들었다.

엉망진창으로 당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나마 죽지는 않았으니까.

'글쎄…'

조금만. 5분. 아니, 3분만 늦었더라도 전부 몰살당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 답답해진다.떨리는 눈동자가 무어라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떠듬떠듬 입술이 떼어지며 분명히 무어라 말하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건 나중에. 늑대는 다시금 영원을 바랐다.세계가 멈춘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엉망으로 당했던 홍유리와 강태호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어어……"

회복 스킬로도 사라진 피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띄게 좋아지는 혈색은 마치 시간을 되감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놀라워하는 이기준을 내버려둔 채늑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거기에, 다소 변한 모습의 백소율이 있었다.

지금은 마녀라 불러 마땅할 그녀의 모습은 이전에 보았던 정갈함은 온데간데없이 산발이 된 채로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울고 있었다.

끔찍한 비명은…… 마치 통곡처럼 들려온다.아니, 실제로 그러하겠지. 영안을 가진 자신의 눈에는 백소율의 의식이 저 높은 곳에 부상해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 울고 있는 건 마녀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이쪽도 마찬가지.'

마랑회라는 것들도 진작에 몰살했어야 했다.결국엔 자신이 망설였기에 이렇게 되고 만 것. 자괴한 늑대는 일단 상념을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을 처리해야할 때였으니까.

그와 함께 거대한 마력의 집합체가 크게 소용돌이치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아까까지 있었던 상처마저 게걸스레 먹어치운 마녀는 다시금 싸울 태세를 갖추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이 자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녀의 팔다리를 묶어두었으니까. 이미 진작부터 짙은 검정, 그림자가 전신을 포박하고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나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그 아래로 끊임없이 솟구치는 마력. 폭주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릴 만큼 제멋대로 방출하는 마력은 조금씩이나마 그림자를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머잖아 주박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할 터…….

"그랬군."

늑대는 담담히 끄덕였다. 마녀를 마녀라고 부르는 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처럼 걸맞은 힘이었다. 통찰하는 눈이 모든 정보를 읽어내린 순간, 이미 그녀 자체가 마력의 총체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육신 그 자체가 마력의 정수(??). 그에 따라 걸맞은 스킬이 발현되려하고 있었다.

'환영의 나비도 없었는데.'

구현화라는 A등급 스킬이 있긴 했어도 가진 건 어디까지나 대마력. 그 너머에 있는 것에는 닿지 못했다. 자신마저도 정신체가 된 이후에 얻었던 힘. 그래서 어렴풋이 인류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인위적으로나마 마정에 닿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적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자신의 몸마저 불사를 정도의 마력이. 어떠한 상처라도 되돌릴 마력이 내부에서 상충하며 결국엔 육신이 적응한 것이니까. 더없이완벽한 마력의, 마력을 위한, 마력에 의한 체질으로 말이다.

'이런 방식이었나.'

정신체의 영역에는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 끄트머리에 어렴풋이 걸쳐있다곤 할 수 있으리라.그리고 결국엔 대마력의 너머. 마정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더는 상처입지도 않는다. 완전한 마력 체질로 변한 그녀는 한계를 벗어던지고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되었다.

반쯤은 정신체. 굳이 부르자면 마력체이리라.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늑대는 실소했다. 만상의 주인의 기억 속에 있는 마녀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기야, 종말이 오는 시간을 늦추기 위함이었지 인류를 멸절시키기 위함은 아니었으니 다소 조절한 것이리라.

그와는 반대로 지금의 마녀는 완성에 가깝다. 여기서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학살을 이어간다면 분명 걷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리라.

그런 면에선 다행이라 생각했다. 홍유리와 강태호가 분발해 그녀가 도시로 가지 못하게끔 막았으니까.

마정에서 가공되는 순수한 마력이 다시금 자신의 그림자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그 순도를 높여가고 결국엔 그림자를 찢어발기고 말았다.과연 마녀라 부를 만한 힘. 어느샌가 그녀로부터 흘러나온 흉흉한 마력이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이 장소 전체가 이미 마녀의 영역.그럼에도 늑대는 담담히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고 있었으니까.

"기다려라. 지금 약속을 지켜주마."

언젠가의 약속을 뱉으며 마력을 끄집어냈다.

***

"……!"

순식간에 회복된 상처. 그렇게나 심했는데 1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심지어 고갈된 마력까지 되찾은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아니, 생각해봤자 손해이리라. 맘만 먹으면 죽은 사람마저 부활시키는 그에게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테니.

황급히 일어났지만, 곧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스퀘어의 마스터들이 일제히 마력을 방출하면 이러할까?아까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마녀로부터 더욱 거센 마력이 흘러나온다. 폭주하고 있었을 때부터 그랬지만 자신의 몸은 일절 신경쓰지 않고 발산하는 마력은 확실하게 재앙마저 넘어서있다.

착각의 여지가 없다. 아까의 마녀보다도 한층 성장해있다. 만약 지금의 마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미쳤냐고 되물었으리라.

시간을 끄는 게 아니라 차라리 시민들을 대피시키는데 함께했겠지.그러나 홍유리를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일대를 뒤덮은 마녀의 마력. 그것이 너무나도 조그맣게 보였다.마치 조약돌과 천년의 거암을 보는 듯하다. 고작 일대정도가 아니다. 인간의 시력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자신의 눈으로도 시야가 닿는 훨씬 너머까지 뒤덮은 거대한 마력이 사방을 덮고 있었으니까.

홍유리는 실소하고 말았다.

'이러고도 본신이 아니라고?'

세계가 좁아 본신을 두지 못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 들었던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게 대체 뭘 의미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별격의 존재. 걱정따윈 하지도 않았지만마랑과 마녀가 마주 선 순간, 이미 결착은 났음이나 다름없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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