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2화 〉 #174 폭주하는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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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 이은하는 아무도 없는 산속의 중심부까지 걸어들어갔다. 확인해보라고 누가 강요한 건 아니었지만, 헌터에게는 책임이 있다. 문제가 생길 요인이 있다면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받는 돈만큼의 일은 해야한다고 여겼다.
산중이지만 길을 헷갈리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용벌레로부터 흩어진 마력이 곳곳에 널려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무서워하는 거야?"
떨고 있는 요정에게 묻자 그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화들짝 놀라 나무옹이 안으로 숨어들더니 이내 빼꼼 고개를 내민 모습에 기다렸다는 듯이 왁하고 놀래켜주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모습에 이은하는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을까? 하지만 곧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만면에 가득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은하! 은하아!"
……아마 자신과 만난 적 있는 요정이었던 모양.
아무리 그래도 요정이 한둘도 아니고 일일이 기억나진 않았지만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애써 모르는 티를 내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법 오랜만에 쓰는 환수어였기에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필요 없었던 모양. 부르르 떨면서도 자신의 물음에 의문에 답해주고 있었다.
"이상해! 이상해! 평소엔 그렇지 않은데! 안 그러는데!"
안타까운 점이라면 어휘가 어린아이 수준이라 이해하는 게 쉽진 않다는 점일까. 그래도 대략적으로 정리해본 이야기의 내용은 이랬다.
'환수의 폭주?'
이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환계에서 몇달간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환수라는 게 그렇게 불안정한 생물이었나?'
사실 폭주라는 단어 자체는 그리 드문 게 아니다. 종종 그런 몬스터가 있기는 했다. 위험에 처하면 생존본능마저 잃어버리고 날뛰는 몬스터. 네버랜드의 광란도 규모는 달랐지만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키메라도 몬스터도 아닌 환수가? 그 온화하고 지성있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다는 말인가?
"다른 환수들은? 말리진 않는거야?"
그렇게 묻자 요정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나 빠르게 흔드는지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마나 강한데! 다른 환수들은 못 이겨!"
"백록은……?"
"백록은 여기 없는걸! 있어도 못 이길 거야!"
그제야 이은하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백록은 영리한 환수이기는 했지만 가장 강한 환수는 아니었다. 백록보다 강한 환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폭주했다는 그 환수는 요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강한 축에 든다는 것 같은데……
'이길 수 있을까?'
이은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폭주한 환수에게로 안내해달라는 말에 요정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도망쳐야 돼! 늑대가 오기 전까진 기다려야 돼! 못 이길 거야!"
이은하는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분명 환계에 있었던 시절의 자신을 안다는 말일 터. 비록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때 당시의 알파도 터무니없을만큼 강했다. 농담으로라도 그 때의 알파가 약할 리 없지 않은가. 이미 단신으로 구획보스를 쓰러뜨렸던 괴물이었거늘.
이제야 가까스로 윤곽이라도 어렴풋이 볼 수 있게 된 A등급 스킬인 공허를 다루던 알파. 농담으로라도 알파와 싸운다고 생각하면 오슬오슬 몸이 떨려오는 듯하다.하지만 그런 동시에 이은하는 생각했다.그때의 알파와 지금의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노라고.
"괜찮아. 나도 많이……"
한번 끊었던 말을 다시 생각하고서, 그럴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고서 기어코 입밖으로 꺼냈다.
"많이 강해졌으니까."
***
자신의 세계를 잃은 여신이 슬픔에 빠져 그리움을 빚은 세계야말로 환계. 이미 사라진 아이들을 보고 싶어 빚은 이들이 환수. 누군가는 모형정원이라 경멸했지만 늑대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그리운 장소였다.
환계가 있었기에 목숨을 부지한 적이 도대체 몇번이나 있었는가. 여왕에게 도움받은 적은 대체 얼마나 많았던가. 그녀가 없었다면 만상의 주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너무나 오랜 시간. 헤아릴 수 없을 기나긴 평생이 오로지 희생 하나로 점철되었던 여왕. 마지막 순간마저 악의에게서 발버둥쳐야만했던 그녀. 그럼에도 긍지를 잃지 않고 타인을 도왔던 고귀한 성품까지.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분명 그녀이리라.
적어도 늑대는 그녀를 믿고 있었다. 설령 초월의 격을 지닌채 되살아난다 하더라도 문제가 될 리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되찾는 건 성공했다.'
흑린의 잔재. 즉, 악의라 불러 마땅할 존재로부터 여왕의 정수를 되찾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여왕의 정수가 오롯한 것인지 부활시켜보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
분명 여왕의 정수이지만, 이 정수마저 녹아들어 악의와 하나가 됐던 그녀가 분리된 지금도 오롯할지는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여왕의 정수를 떼어내 회수한 건 사실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게 섞여있을 가능성을 0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100%에 가깝긴 하지만.'
압도적인 정보량을 토대로 가상의 차원, 현실을 구현하고 여러 번의 검증을 해보기는 했으나 늑대는 알고 있었다. 설령 예지나 예언과는 차원이 다른 정해진 미래와도 같은 현실의 반복이라 하더라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종말을 쓰러뜨리는 것따윈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사실, 신경쓸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희박한 확률이다. 그런 일따윈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가능성이나 거기에 걸려있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그녀가 살아온 영겁과도 같은 시간에 비하자면 눈 깜빡임만도 못한 짧은 시간이리라.
짧은 작별을 고한 늑대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우주 바깥의 우주. 외우주의 술렁임이 잦아들고 정적과 침묵이 깃들기 시작했다. 다시 마랑이 눈을 뜨는 그날, 여왕이 되살아나리라.
***
요정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며 언젠가부터 숲속이 요동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환수들은 무책임하게 떠난 게 아니라 가능한 선에서 폭주하는 환수를 억누르고 있었던 셈이다.
비록 정면에서 맞서지는 않더라도 이성을 잃은 환수를 상대로 도망치고 도망치면서 다른 동물, 영물, 환수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 있었다.
"은하가 왔어!"
크게 외친 요정의 말에 따라 환수들의 고개가 돌아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 중에는 자신이 본 적 있었던 환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환수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는 눈치였다.
"이이이인…간?"
뜸들이는 말은 원숭이와 새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의 환수가 뱉은 말은 영락없이 미심쩍어하는 어투였다. 만약 이 자리에 온 게 자신이 아니라 알파였다면 어땠을까. 분명 저들 모두가 안심할 수 있었으리라.그러지 못한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부덕.
모든 생각을 접어둔 이은하는 가라앉은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날뛰는 환수 폭주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붉게 물들어있는 그 몸은 코뿔소를 닮아있었다. 다만, 풍성한 갈기같은 털이 있고 덩치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이나 컸지만.
'설마…… 이걸 보고?'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큰엄니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제보. 그게 사실은 큰엄니멧돼지가 아닌 이 환수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크나큰 오차가 있다는 게 맹점이었을까.
'훨씬 강해!'
수컷 아프리카 코끼리보다도 훨씬 큰 덩치와 두꺼운 가죽 그리고 그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강인한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미 엉망이 된 주변과 짓밟힌 수목에서 그 위력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마치 2팀장님을 보는 듯했다.
또한, 그러면서도 환수라는 이름답게 적지않은 마력이 내부에서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저 강인한 육체에 마력이 더해진다면 분명 상상도 하기 힘든 괴력을 발휘하리라.
역시 여기 와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오지 않았더라면 저 폭주하는 환수가 풀려나 엉망진창으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을 테니까.
이은하는 있는 힘껏 자신의 마력을 풀어냈다.
그 순간, 다시 폭주하는 환수를 진정시키기 위해 흩어졌던 시선이 다시금 이은하에게로 모여들었다. 풀어헤치는 마력의 양이 터무니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이게 아니야.'
대마력을 얻음으로써 한층 성장한 마력을 풀어헤치며 이은하는 떠올렸다. 진짜 마력이라는 건 이런 게 아니라고. 적어도……
'소율이처럼!'
하다못해 그 때의 마녀처럼. 파도처럼 흘러나오는 무수한 마력이 한데 모여 그릇에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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