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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63화 (363/407)

〈 363화 〉 #175 갈등

* * *

마력을 끌어낸 이은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중된 시선에는 놀람의 감정이 담겨있긴 했지만, 아쉬웠다. 소율이처럼 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실패인 모양. 하기야 갑작스레 마력량이 늘어날 리 없으니까.

"휴…"

아쉬움을 애써 접어두고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폭주하는 환수는 분명 강하지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자비한 파괴를 일삼는 괴물은 방출한 마력을 위협이라 느꼈는지 그 자리에 멈춰서 자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투우장의 황소처럼 땅을 긁는 발놀림. 확실하게 적으로 인식했다는 증거. 그 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위협이라 느낀 것이리라. 야생의 본능이라 해도 좋을 그 움직임은 점차 난폭해져갔고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보폭이 넓다. 그리고 발자국이 깊다. 정면에서 들이받아 한번에 끝장내겠다는 것이리라. 무척이나 빠르고 강하지만…… 그만큼 직선적이고 단조롭다.

빠른 속도에 맞추어 미리부터 움직이자 폭주하는 돌파력을 주체하지 못한 환수가 나무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그런데도 멈추기는커녕 한참을 더 부수고야 빙 돌아 다시 자신에게로 쇄도해온다.

하지만 이번에도 조련하는 투우사처럼 유려하게 무로 되돌리자 환수는 단단히 열받은 것처럼 대지에 강하게 앞발을 디뎠다.

폭주라는 이름답게 지금 녀석에게는 일말의 여유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분노에 미쳐 눈에 띄는 것들을 모조리 궤멸시키는 병기와도 같은 존재일뿐. 하지만 그 발버둥도 여기까지다.

'너무 단순해.'

스치고 지나가는 돌파력. 순간, 바닥을 짚은 이은하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Ascunde."

그건 알파가 가르쳐준 마법. 투명한 막에 숨어들어 자신을 숨기는 기초적인 단문영창. 그럼에도 그 효과는 절묘해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낸다.

폭주하는 환수가 한참이나 파괴를 이어가다 고개를 돌렸지만 아까처럼 달려들진 못했다. 콧김을 내뿜으며 두리번거리는 고개는 분명 자신을 찾고 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적이 있었는데.'

괴물 늑대와의 일. 하지만 그때처럼 무섭다거나 긴장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쯤은 진작에 뛰어넘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막 속에서 이은하는 주먹을 쥐었다. 그와 함께 왜곡되는 공간은 폭주하는 환수를 강하게 압박한다. 어지간한 정도라면 이것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었겠지만 상당한 저항이었다.

그렇다해도 미지의 공격에 화들짝 놀란 환수가 다시 날뛰려하자 남은 손 하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짓눌렀다.

왜곡된 공간은 위에서부터 강하게 작용해 환수를 찍어눌렀고 그건 마치 중력이 몇 배나 강해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싸움이 고조되어가는 와중에 이은하는 생각했다.

'죽이면 안 돼.'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환수는 제정신이 아닐 뿐이다. 일단 쓰러뜨린 다음에 원래대로 들릴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러니까, 어느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거기서 이은하가 선택한 방법은 현상유지. 이대로 시간을 들여 체력을 완전히 빼놓겠다는 것. 강하게 몸부림 칠만큼 빠르게 지칠 테니까.

"대단해! 멋져!"

나풀나풀 날아온 요정이 짝짝 박수치며 감탄했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방심하지 않고 제압하기 위함이란 걸 깨달은 요정은 반짝이는 눈으로 이은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팔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떨리고 있다. 계속해 마력을 이어가고 있단 증거이리라. 그렇게 몇분인가 지났을 때, 먼저 백기를 들어올린 건 환수였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왜곡과 앞다리를 집요하게 무너뜨리려는 힘에 결국 균형을 잃고 말았으니까.

한쪽 다리가 무너졌다면 나머지는 손쉽다. 단숨에 몇 배는 더해진 하중에 결국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진 환수는 분하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 아직도 흥분이 식지 않은 눈동자에는 전의가 사그라지지 않은 채였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승복하지 않았다는 것. 괜히 폭주라 부르는 게 아니다. 이은하는 천천히 걸으며 환수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

그러자, 환수들은 헛숨을 삼키며 이은하를 만류했다. 비록 눌러져있더라도 지근거리에서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요정마저 뜯어말렸지만, 이은하는 태연한 기색으로 신경쓰지 않았다. 되려 그런 요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욱 가까이 다가가더니 기어코.

"……!"

기어코 환수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뿐만 아니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하자 요정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진정하라는 것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닿을 때마다 거칠게 뿜어내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든다. 마치 자장가를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닫힐 리 없는 눈꺼풀이 내려가고 혈안이 되었던 눈동자가 조금씩 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분명 폭주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어떻게 확신을 가진 건지 요정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은하는 성공했다. 그리고 환수는 잠들어가고 있다.

"……휴. 역시 보험까진 필요없었네."

원숭이를 닮은 환수는 감탄하고 말았다. 결국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소매로 땀을 훔친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면이 출렁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리라.

아까 혼잣말로 중얼거린 보험이라는 게 분명 그것일 테니. 도대체 뭘 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땅속에 무언가를 심어두었던 모양이다.

"이제 괜찮아."

안심하라고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렴풋이 환계에 몇몇 인간들이 왔고 백록이 가르쳤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설마, 서화를 쓰러…… 뜨릴 줄이야."

서화(??)라고 하면 환수 중에서도 최고봉으로 꼽히는 힘을 가진 존재. 평소에는 온순하기 그지없지만 누군가 위협하기 시작하면 그 힘을 드러내는 일종의 환수의 지킴이라 부를 만한 존재였다. 지킴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듯 단순한 힘만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데도 이 인간은 어렵지 않게 서화를 제압해냈다.그게 가능한 건 기껏해야 오래된 용 정도일 텐데도.

"봤지! 은하는 세다구! 강해! 멋져!"

까르르 웃으며 주변을 맴도는 요정에 난처해한 것처럼 멋쩍게 볼을 긁는 모습에 원숭이를 닮은 환수, 후운(??)은 순순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고맙다. 이런, 인간도. 있었군."

어눌한 말로나마 떠듬떠듬 요정어를 뱉으며 감사를 표하자 해맑은 웃음으로 답해왔다.

"그럼 깨워볼까,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야 할 테니까."

***

이은하가 산중에서 분투하고 있을 때, 본신에서 다시 되돌아온 늑대는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이곳에 있는 건 본신이 아닌 자신의 일부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전지전능에 닿았던 감각이 멋대로 뻗어나가 있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약간의 상실감과 함께 찾아온 것은러닝머신 위에서 뛰다가 내려온 것처럼 전혀 다른 어색한 감각. 자신이 자신인 것 같지 않은 낯섬이었다. 매번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 부서지지 않을까 조심해야만 했다.

'불편해.'

전지전능…… 어쩌면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거대해진 자신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까. 세계 하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쌓을 게 아니라면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게끔 조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근원의 반쪽을 찾기 위해 분주히 달리던 그 때도 시행착오를 겪었던 만큼 조심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걸림돌이 자기자신이라는 사실에 늑대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다시금 감각을 되찾은 늑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달리려 했지만, 멀리서 달려오는 기운을 느끼고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익히 잘 알고 있는 흰사슴이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

"무우우…"

제정신을 찾은 서화에게 물어봤지만,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른다는 듯하다. 서화는 말을 할 줄 몰랐기에 후운에게 전해들은 내용이었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폭주라는 현상 자체에 심각하게 골몰하는 환수들은 언젠가 자신이 그렇게 당하지 않을까 곤란해하는 듯했다. 우연히 무언가가 맞물려 이렇게 된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

문제는 환수는 폭주를 겪지 않는다는 것. 겪어본 적 없는 현상이 갑작스레 나타났다는 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율이랑 비슷해.'

종류는 다르지만 마녀화도 일종의 폭주라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그 발현이 다소 갑작스러웠단 것도 한 몫 하고 있었다.

"혹시 백록은."

환수를 가장 잘 아는 건 같은 환수이리라. 자연스레 백록을 찾으려했지만 후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늑대… 마랑을 찾으러."

"알파를?"

"…우리도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참는다그 말에 이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아까부터 후운의 말에선 묘한 가시가 느껴졌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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