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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67화 (367/407)

〈 367화 〉 #178 탐욕

* * *

어설펐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머리가 꽃밭이었을까? 납치된 환수를 구해오면 조금이라도 화를 가라앉힐 수 있을거라 여겼다. 그러는 사이에 전면전을 막아보자. 그렇게 생각했지만……

'겨우 그런 게 아니었어.'

알파는 진작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처럼 어설픈 방식이 아니라 확실하게 맘 먹고서. 마치 변절자를 사냥하는 것처럼 맹렬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미 알파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그 성정을 잘 알고 있는 이은하는 알파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여전히 마력에 짓눌린 채로 울고부는 사내. 아까의 자부심넘치던 표정은 전부 어딜갔는지 발치에 매달려 빌고 있었다.

이은하는 속으로 고민했다.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당연 죽일 생각은 없었다. 손에 피를 묻혀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그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기 짝이없는 것이었는지 이제는 좀 알 것도 같았다.

이대로 이 사람을 살리면 알파에게 거스르는 셈이 된다. 그건 그 무엇보다 사양이었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알파는 반드시 찾아내 죽이고 말리라.그러나 내버려둔다면 이 사람이 죽는 걸 용납하는 꼴이 되고 만다. 비록 환수를 사냥했다지만……

'어쩌면 더 거대한 내막이 있는지도 몰라.'

예를 들면 자신이 모르는 상상도 못할 범죄라던가. 잠깐 속으로 되뇌인 이은하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고민할 시간이 없다. 어차피 알파가 이곳에 오게 되는 즉시 모든 걸 알게 될 터. 숨겨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일단, 어디에 건 전화였어요?"

동료가 있었을 소재지를 묻자 남자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아, 아마 목포에서…"

목포. 잠깐 생각한 이은하는 여기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차로는 아무리 못해도 1시간은 걸릴 테지만, 알파가 맘을 먹는다면 3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해도 이 사람을 구할 시도를 하는 건 그 다음이다. 어디까지나 환수를 구하러 온 거였으니까.사내를 앞장세운 이은하는 천막 안쪽으로 안내받았다.

사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예민한 청각이 미세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장 끊어질 것만 같은 소리가 아슬아슬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야.'

다행… 이은하는 그걸 다행이라 여겼다. 어찌됐건 여기 있는 건 고작 한 마리뿐이었으니까.

천을 걷어내자 우리 안에서 옆으로 누워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어린 환수조차 아닌 영물. 고양이를 닮은 녀석이 색색거리며 잠에 취해있었다. 아니, 잠뿐만이 아니라 분명 다른 것에도 취해있었다.

'이 어린애한테… 약을?'

자백제 종류의 약이리라. 사람을 취하게 해서 제정신이 아니게 만든다는 점에서 악랄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사람도 아닌 어린 영물에게 사용됐다는 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전신을 덮은 털 너머로도 똑똑히 보이는 타박상의 흔적. 찬물로 세수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차게 식었다.

"그, 그건 본의가 아냐. 나도 약은 반대했다고!"

제멋대로 변명을 쏟아붓는 그를 무시하고 이은하는 철창을 억지로 집어 뜯었다. 열쇠를 찾는 것보다도 단 1초라도 영물을 이런 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영물을 안아들었을 때, 팔에 느껴지는 무게는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고작, 고작 이런 아이를 가두고 있었단 말인가. 약에 취했음에도 반항하는 건지 손가락을 잘게 깨물자 이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로 살리는 게 맞는가. 오히려 알파에게 가세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영물이나 환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있건 없건 다들 어느정도는 지성을 가지고 바라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이 아닌 여왕님이 빚어낸 그녀의 자식들. 오히려 자신만큼은 이 사람들을 척살하는데 손을 보태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설령 그렇다해도 자신은 사람이니까.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일어선 이은하는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안 그래도 뛰어난 시력이 어두컴컴한 천막 안에서 있는 짧은 시간 동안 하필이면 눈이 적응해버리고 만 거다.

주변 어디에도 마찬가지. 자신을 재촉하는 손길에도 이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서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하려고 했죠?"

"뭐? 무슨…"

이 상황에 그딴 게 다 무슨 상관이냐는 말에도 이은하는 고집스레 대답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아마도… 애완동물. 길들이고 있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실험이기도 했다. 영물을 어디까지 약으로 길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들은 이은하는 고개를 꺾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답답한 심정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천장만이 깨끗했으니까.

"……그랬겠죠."

착각하고 있었다. 한 마리뿐인 게 아니었다. 한 마리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거였지. 잘 생각해보면 이 아이 하나 때문에 사람이 배치된 것도 이상하다.

……주변엔 이런저런 흔적이 널려 있다. 그게 자신에게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가죽과 털뭉치. 그리고 발톱을 담은 병과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알 수조차 없는 액체가 담긴 병. 무엇보다도 살아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제들을 보았을 때, 괴로운 가슴을 움켜쥐고 말았다.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괴로움 속에서 점차 생각을 달리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환수뿐만이 아니라…… 나비의 것과 흡사한 날개를 보았을 때 이은하는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애완동물로 영물을 기르는 것뿐만이 아니다. 영물과 환수를 사냥하고 부산물을 쟁여두고 있다. 단순한 돈벌이, 탐욕을 위해서. 그러나 거기까지라면 그나마 이해했으리라.

"……."

차가운 송곳에 전신이 쿡쿡 찔리는 듯한 기분이었다.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을까.

더는 해맑은 웃음을 짓지 못하리라. 누가 알았으랴. 분명 사람은 아니지만 그와 한없이 흡사한 요정들마저 탐욕의 대상이 되었을 줄은.

***

"무산됐다고요."

수화기 너머로 되물은 은자림은 이번에도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 귀에 들리고야 말았다. 가능한 한 그가 알기 전에 전부 끝내고 싶었는데.

결국 늦어버린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알게 된 건 고작 한두시간 전이라고 했지만 그에게 있어 한 두시간이란 건 모든 일을 끝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마리도 남기지 않겠다고."

전해들은 말에서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사실, 그것 자체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가세해 척살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거기 있다. 알파가 움직여 환수 사냥에 가세한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면 반드시 마랑을 지탄하는 소리가 나오리라.

안 그래도 마녀를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인류의 적개심에 불을 피울지도 모른다. 물론 마랑은 참으려 할 테지만, 만약 어리석게도 행동으로 나선다면? 스퀘어 마스터에도 손색없다는 평을 듣고 있는 홍유리 씨나 퍼플 스퀘어의 후계자인 백소율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 페리에게 해를 끼친다면 어떻게 될까?최악의 경우 페리가 잘못됐을 때 알파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또 다른 재앙이 되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클랜원의 말에 은자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측근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를 보았다면 그런 안일한 대답은 하지 못하리라.정말 만약에 이성을 잃고 분노를 터뜨린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하다.

그 생각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저 질끈 눈을 감고 엎드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전 인류가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재앙?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또 다른 종말이 이번에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찾아오리라.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준비하세요."

"먼저 움직인다고요? 하지만 벌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겠다는 건 전부를 말하는 겁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 행성 전부를요."

클랜원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랑이 움직임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확신할 수 없는데 전 세계? 고작 한 마디 말이었지만 거기에 담긴 스케일의 격이 다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알파, 마랑을 막자는 게 아닙니다."

"……."

"환수들을 설득해야겠죠. 움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환수들만이 멈출 수 있을 테니까."

말도 통하지 않는 환수들을 설득하기 위해 말이 통하는 환수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은자림이 알기에 그런 환수는 딱 하나. 백록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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