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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70화 (370/407)

〈 370화 〉 #179 대립 (3)

* * *

"미친 놈들."

맘 같아서는 일갈하고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결국 답답한 한숨과 함께 속만 썩일 수밖에 없다.

"동감이오. 신전의 소집치고는 참석할 가치가 없었구려."

서로 오고 가는 말은 많았지만 그 전부가 탁상공론.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알파를 이 자리에 불러 추궁한다고? 도대체 누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할멈이 보면 저세상에서 통탄할 노릇이겠군."

아마 무덤을 박차고 나오지 않을까.

시간에 변질됐다고는 해도 신전의 전신은 어디까지나 가톨릭이었을 터. 유럽을 멸망시킨 질병과 역병을 쓰러뜨린 알파는 그들에게 있어 은인이었을 터다.

설령 철면피를 썼다 하더라도 알파가 했던 일은 잘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불러오라고 하는 건가. 자리에 모인 면면이 면면이다보니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불가능한 임무를 맡고 싶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물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면 더더욱.

"……."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자 불편한 침묵과 서로의 얼굴색을 살피는 시간만이 허무하게 흘러갔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꺼냈을 때부터 이리 될 걸 알고 있었기에 강태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신전이라고 정말 몰랐을까?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아무도 안 계십니까?"

남자의 물음에도 침묵은 깨지지 않았지만 두 세번 더 재촉하자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차라리 신전에서 직접 하는 건 어떻소?"

"……."

"죽을 일에 자원할 멍청이가 도대체 어딨겠소?"

적나라하고 솔직한 말에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가 털어놓은 가감없는 속내에 강태호는 고개를 주억였다. 비록 알파를 향한 여론이 들끓고는 있었지만 그건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알고 있다면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서려 들지 않으리라.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휴. 알겠습니다."

사내는 이해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럼 현상금을 걸면 어떻겠습니까? 약소하게나마 신전에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사내는 터무니없는 액수를 말했다. 약소하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금액. 아무리 다국적 클랜에 단순 규모만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전이라지만 기둥 뿌리를 뽑아야지만 가까스로 충당할 수 있을법한 액수. 이미 억의 단위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돈이 중요하다곤 해도 목숨보다 중하진 않으니까. 무엇보다 성공할 리 없으니까. 현상금 얘기를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정적이 이어졌다.

"여러분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

"그럼 이 자리는 무용한 것이겠군요. 여러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뺏은 셈이 돼버려 정말 죄송합니다."

천천히 허리를 꺾은 사내. 소집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정중한 태도에 강태호는 눈살을 좁혔다. 설마 여기서 자리를 파하겠다고? 이만한 면면을 소집하고 심지어는 스퀘어의 후계자까지 불러놓고서?

'무슨 생각이냐.'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거기엔 분명 꿍꿍이가 숨겨져 있으리라. 차라리 자신이 아니라 하연이나 형님이 왔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강태호는 이를 갈았다.

"이 자리는 파하도록 하죠."

면목 없다는 듯이 그리 말하는 사내. 시간낭비였다는 이회명이 얼른 나가자고 재촉했지만 강태호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리를 파하겠다고 한 마지막 순간, 그는 분명 웃고 있었으니까. 마치 이렇게 되는 걸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

"이제 속이 시원해?"

"……."

"별로 따질 생각은 없어. 없는데."

퀭한 눈으로 현관에서 홍유리가 그렇게 말했다. 분명 자신이 돌아오기까지 한숨 잠도 자지 못한 것이리라.

"없는데…… 말은 해줄 수 있잖아."

"……."

"내가 왜 네 소식을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돼?"

그것만이 불만이란 것처럼 몸을 기대어온 홍유리는 자신에게 고개를 묻었다. 혹시라도 피냄새가 베지 않았을까 생각해 움찔거렸지만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놓지 않겠다는 듯이 가득 벌린 두 팔에 안겨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늑대는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다."

그러자, 부르르 떠는 작은 몸.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 말을 이었다.

"변명이지만 바로 움직여야하는 일이었다."

"……알아."

이해한다는 듯이 홍유리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결같이 끌어안고서는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뭐, 잘했어. 나도 알았으면 죄다 모가지 따버렸을 거야."

"……."

"개새끼들이 어딜 지들 멋대로 사냥질이야? 그러다 뒤져야 정신차리지. 너가 아니었음 내가 그냥!"

"……."

"뭐. 왜. 못 믿어?"

올려다보며 치켜뜬 눈. 비틀어 꼬집는 손가락. 곧 다시 나갈 셈이었지만 늑대는 기꺼이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실감했다.바로 여기가 자신이 돌아올 곳이라고.

"아니, 믿고 있다."

그녀가 자신을 끌어안았듯 늑대 또한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무래도 조금 일정을 당길 필요가 있겠다. 환수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서 전해 듣고 싶지 않다. 홍유리가 그리 말한 것처럼 늑대는 지난 이틀간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

지난 이틀간, 늑대는 환수 사냥꾼들을 척살했고 강태준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소까지 전부 휩쓸었다.그뿐만 아니라 직접 환수들과 대면까지 했다. 환수 사냥꾼들의 목을 전부 가지고서.그것만이 그들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한편 해야 할 일은 해야한다며 노성을 토하고 있었다.

거기에 늑대는 아연해했다. 도대체 그 온순한 환수들을 어떻게 했기에 이리 분노케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미 감정의 골이 너무나도 깊어져있다.

도저히 수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힘으로 환수들을 억누를 순 있을 테지만, 그래선 환수 사냥꾼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만상의 주인이 환영의 나비를 비롯한 타인을 통제하려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늑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려달라는 말뿐이었다.

그나마도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었더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겠지만 성의를 표시한 것과 함께 그들에게 약속함으로써 간신히 시간을 벌 순 있었다.

살아있는 환수와 영물은 모두 구하겠다.

환수 사냥에 연루된 이는 예외없이 죽이겠다.

단순하지만 터무니없는 두 가지 조건. 사실상 환수들이 하려했던 일을 직접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거기까지 말하는 데 있어 간신히 그들의 노여움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적어도 그들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도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 더 확실하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 사람이라면 자립 혹은 자긍이라는 단어로 거부했을지도 모를 제안을 합리를 추구하는 환수들은 간단히 받아들였다.

일시적으로나마 분노는 가라앉혔으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강태준은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 땅에서 있었던 일은 약과에 불과하다고. 그나마 억눌린 게 이정도였노라고.

거기서, 늑대는 생각했다. 이미 조화는 깨져버리고 말았다. 인류와 환수의 공존은 역시 불가능하다고 더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분리해야 한다.'

산과 숲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서로를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있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왕이 만들었던 환계는 무엇보다 적격이었으리라.

설령 자신이 환수 사냥꾼을 모조리 척살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재발할 일,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니까.

'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자신으로서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누구보다도 환수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들을 보호할 힘을 가진 이가.

다행히도 늑대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기보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는 게 더 옳은 말이리라.

망설임은 있었다. 거부감도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건 근심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몬스터들을 없애고 있었지만 이젠그럴 수 없게 돼버리고 말았다. 설령 이번 일이 전부 원만히 끝나더라도 나중에 그녀는 안타까워하리라. 아이들을 도울 수 없었단 사실에 탄식하고 말리라.

그러니까, 일을 앞당겨야만 한다.

'아직 내키지는 않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 그녀만 되살아난다면 모든 문제가 원만히 풀리게 된다.

그러니까,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여왕을 온전히 부활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 그리고 만약 실패했을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한 명의 초월자가 돌아서고 말리라.

기회는 한번뿐, 아무리 그래도 없는 정수로부터 초월자의 격을 빚는 건 결코 쉽지 않으니까. 가능한 모든 변수를 배제하고 싶다. 결국 코앞까지 닥친 결행을 앞두고 늑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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