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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74화 (374/407)

〈 374화 〉 #182 숨어도 도망쳐도

* * *

지하실.

투시를 가지고 있기에 천장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늑대는 가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하게도 맑은 하늘과는 달리 강태준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그나마 한국이 나은 편이라 했던가? 국경을 넘자마자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쯤 되자니 자신이 무심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아예 남획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엉망진창인 지옥도. 그나마 여태까지 한국에서 보았던 환수 사냥은 정말 양반이었던 거다. 지저분한 쇠창살 안에 서로 다른 환수와 영물 그리고 심지어는 일반 동물들까지 제멋대로 뒤엉켜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늑대는 말을 잃고 말았다.

지난 50년간, 몬스터의 위협 속에서 전전긍긍했던 인류. 하지만 동시에 몬스터는 가공 산업과 헌터 업계를 비롯해 사회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만큼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건 무리겠지만……

'납득할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환수들이 희생양이 될 이유는 없다. 벌써 천에 가까운 인원을 가차없이 처치했지만 여전히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냥꾼들이 남아있다.

설령 천이 아니라 만을 죽이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다. 이런 모습 앞에서는 더더욱.

윙­ 위잉­

파리를 쫓아내기 위해 억지로 피운 향이 그렇게 역겹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 잘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 모습에 진한 환멸이 느껴진다. 심지어는 안면을 튼 적이 있는 환수마저 있단 사실이 그런 감정을 더욱 느끼게 만들었다.

"이건 질겨서 안 팔리겠고…개먹이나 줄까."

그리고 기어코 자신을 시험하듯 들려오는 말에 늑대는 더는 참지 못했다.

"밤? 아니 정전?"

의아해하는 목소리는 곧 의문조차 뱉지 못하게 됐다.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뻗어나가 주택으로 위장한 건물을 통째로 뒤덮었으니까.

이미 건물 내부에 무관계한 이들이 없음은 알고 있다. 일단 불법으로 규정된 일을 하는 만큼 생판 모르는 이를 건물에 들일 순 없었으리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늑대는 움직이지 않고 그림자만을 움직였다. 본래는 실체조차 없을 그것이 물리력을 행사한다는 걸 도대체 누가 믿을 수 있으랴.

건물의 뼈대가 되는 철골이 으스라지며 시멘트 벽이 균열이 가다못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 창문이 깨져나가자 사태를 파악한 헌터는 황급히 뛰쳐나가려했지만 그 염원과는 달리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이미 그럴 길이 남아있지 않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집어삼켜져감에 따라 창문의 유리가 깨지고 우뚝 서있던 건물이 그대로 기울기 시작한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헌터는 지하실로 달렸으나 이미 아래로 가는 길이 끊어져있었다. 스멀거리는 그림자가 어서 오라는 듯이 손짓하고 있었다.

"하, 하하하…"

믿기 어렵다는 듯 볼을 당기는 헌터.

"……!"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확인한 휴대폰은 권외. 혹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도시 한복판에서 전파도 데이터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강한 절망을 느끼며 벽을 붙잡았다.

아니, 벽이 아니라 바닥. 어디까지나 죄어오는 강한 압력에 이미 두 쪽으로 나뉘게 된 건물이 서로 맞닿으며 밀어내고 있을뿐. 이미 자신이 몸 둘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헌터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올해들어 가장 끔찍한 악몽이군."

그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탈출구조차 없는 악몽. 헌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현실이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그러나 그 염원과는 달리 그가 다시 깨어나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었다.

…….

화르륵­

검은 불길이 무수한 사체들을 불사른다.

이번만큼은 참지 않아서 다행이고 정답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인내하려봤자 결국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리라.

환수들에게 향하는 원망을 대신 받겠다는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방관해서는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오죽하면 백록이 직접 찾아왔을까.

환수들을 살리기 위해 한 때 자신의 손으로 구했던 인류를 단죄하는 것. 늑대는 그 사실에 자조했다.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단죄한단 말인가.

아니,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라면 확실하게 해야만 한다.

늑대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그래. 숨어도 도망쳐도 끝까지 쫓아가 단 하나도 남기지 않으리라 맘 먹으며.

***

대한민국에서 시작돼 압록강 이북을 넘어 퍼져가기 시작한 마랑의 소문은 인류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아니, 인류 전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화제가 된 건 어디까지나 헌터들 사이에서의 일이었으니. 특히 환수 사냥에 가담한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할 수 있는 건 숨는 것밖에 없다…… 보통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리라.

"바로 그게 틀린 생각이야."

숨어야한다고 부추기는 멍청한 놈이 눈앞에 있다면 분명 자신은 멍청한 소리말라며 일갈하리라. 숨는다고 살 수 있다니 그 얼마나 안일하고 멍청하며 아둔한 생각이란 말인가?

살기 위해서는 숨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 민중의 눈이 자신에게 향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애당초 숨는다고 숨어서 살 수 있을 거라면 탕아들이나 마랑회가 그리 빨리 뿌리뽑혔을까?

어떤 방식인지까지는 몰라도 마랑에게선 도망칠 수 없다는 선례가 수도 없이 증명돼있지 않은가?

"숨는 건 정말이지…… 멍청한 짓이다."

그래. 살고 싶다면 숨는 게 아니라 당당히 드러내야 한다. 민중이 보고 있다면 제아무리 마랑이라한들 자신을 죽이진 못하리라.그랬다간 세간의 눈길이 뻗칠 테니. 여명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일단 사회에 섞여있는 이상, 아무리 지금 날뛰고 있어봤자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순 없으리라.그리하여, 헌터는 백주 대낮부터 유독 사람의 눈길을 끄는 곳에 떡하니 버티곤 드러누웠다.

'철저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차오양 시에서 마랑의 소문이 들린 것으로 보아 이곳 베이징까지는 정말 금방이리라. 어쩌면 이미 도착했을지도 모르니까.

"……."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을 애써 무시해야했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봤자 수치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러고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다음날, 자금성 대로에서 광대 복장의 사내는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이유 모를 학살극으로 헌터들이 목숨을 잃어가는 가운데……]

[마랑이 날뛰고 있는 이유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그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한 헌터들은……]

가능한 한 숨기려했지만 결국 한계는 있다. 세간에 결국 마랑의 존재가 드러나고 말았으니까. TV에서 송출되는 뉴스에 거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 골치 아프구만."

회의실에 가득 찬 이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팀장급. 의아한 것은 부팀장까지 포함해 여섯이 아닌 일곱이라는 것. 본래라면 곧 퇴직할 홍유리가 있을 필요는 없었겠지만 다름 아닌 알파의 일이었기에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말리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는 그럴 여지조차 없더군."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네요."

"그래. 가정했던 최악은 아닌 게 그나마 위안이겠지."

"뭐, 아무렴 어때? 그 새끼들 꼴같잖은 건 사실이었는데. 이렇게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팀장님……"

"뭐 인마. 틀린 말했냐?"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이기준과 콧김을 뿜는 강태호 그리고침묵하는 좌중. 그런 와중 강태준은 리드미컬하게 테이블을 두드렸다.

최악의 사태라는 건 두말할 것 없이 알파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할 경우. 즉, 폭주나 다름없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할 재앙이 될 테니 최악의 상황이란 모든 게 끝나는 것과도 같으니까.

"……만에 하나를 걱정해 알리지 않았지만 이럴 거라면 알려두는 게 나았겠군."

결국엔 뒤늦은 후회. 짧게 자기반성을 마친 강태준은 잠깐 홍유리를 스치듯 쳐다보았다. 최악의 경우가 아닐 수 있었던 이유에는 분명 그녀의 역할이 컸으리라. 새삼스레 역시 이어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3팀장이라면 그래도 알고 있는 게 있겠지.혹시 뭔가 들은 게 있나."

사전에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말없이 시선만이 자신에게 고정되자 홍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요. 그저…일주일. 일주일 안에 다 정리하고 오겠다고밖에."

"일주일이라."

국내만이라면 모를까 국외까지 생각힌다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 하지만 알파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랑회를 떠올려보자면 비슷한 사례가 이미 있지 않던가.

한다고 한 이상 어떻게든 완수할 터. 하물며 굳게 다짐한 듯한 지금의 알파라면 더더욱.

"막는 건 불가능…… 그럼 방법을 달리해야지."

"어떻게 말입니까?"

"알퍄를 돕는다. 단, 어디까지나 물밑에서. 먼저 언론을 수습해야겠다."

"안 그래도 요청이 몰려있습니다. 아침부터 진을 치고 있을 정도로."

"마침 잘 됐군."

마랑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여명을 연상하게 될 만큼 사람들이 보기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자들이 보기엔 이만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도 없으리라.

"여기까디 왔는데 기꺼이 던져주고말고. 회견은 1시간 후에 여는 걸로 하지. 회의는… 2시간 후에 다시 모이고."

반론없는 회의는 그렇게 조용히 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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