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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75화 (375/407)

〈 375화 〉 #183 환수 사냥

* * *

기자 회견을 무사히 넘기고 남은 약간의 시간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퍼져나가겠네요."

"그렇겠지."

하연의 말마따나 회견 내용은 금세 일파만파 퍼져나가리라. 과신도 뭣도 아닌 당연한 일.헌터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됐을지 몰라도 세간에 제대로 알려진 건 처음이었으니까.

이른바 환수 사냥. 몇몇 몬스터들의 부산물이 유용한 쓰임새로 혹은 연구용으로 팔렸던 것처럼 환수들의 그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내는 여명이 휘어잡고 있었기에 유입되지 않았지만 유통망은 해외로, 대부분은 중국이나 인도쪽으로 향해있었다.

거기서 또 한번 다른 곳으로 유통되는지 아니면 소비하는지까진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밀수였다.

기자들을 모은 자리에서 강태준은 그 행위를 맹렬히 비판했다.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법과 제도의 숨은 틈을 이용하는 비열한 짓이라고. '같은 환수'인 알파가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지인, 친구, 동포, 가족의 시체가 타국으로 팔려가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다고 들먹였다.

[생각보다 심각했던 제도적 허점]

[마랑이 움직이는 이유. 환수 사냥이란?]

[헌터들은 왜 자긍심을 버렸는가?]

[추악한 욕망의 대가, 환수 사냥의 참혹한 진실]

…….

[여명 클랜장, 검성 강태준의 입장 표명]

우후죽순 생겨나는 기사들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일단 1차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역시 실물을 보여준 게 제법 먹혀든 모양이었다.

"다행한 일이지. 알파를 환수로 알렸던 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됐으니까."

"그래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감성팔이는 됐지 않나."

하연은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그가 바란대로 가져온 현장의 여러가지 물건들. 가죽이나 박제는 물론이고 요정의 날개. 거기에 더해 의문의 액체가 담긴 병까지. 미리 준비해두라던 그것들이 기폭제가 됐다.

백문 불여일견. 실제로 두 눈으로 마주한 현실은 상상보다 더하고 끔찍했으니까.

"……."

처음 보았을 땐 어지간한 담력을 가졌다 자부하는 마법사인 하연조차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을 정도로 끔찍했다. 지금조차 알게 모르게 창백해져 있다. 날개가 뜯긴 요정들이 어떻게 됐는지 마법사인 그녀가 모를 리 없었으니. 저도 모르게 상상하고 마는 것이리라. 환수들만이라면 모를까 사람을 닮은 요정까지 건드린 이상 잘만 이용하면 제법 좋은 시나리오를 짜낼 수 있으리라.

"어느정도 정당성은 생겼지만 아직 조금 부족해."

여태껏 알파의 행동이 용납됐던 이유는 그만한 경각심이 깔려 있어서였다. 하루 빨리 변절자들을 없애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경각심. 그러나 환수 사냥은 다르다. 비록 알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어느정도 정당성이 생겼더라도 그들의 창칼이 인류에 향해진 게 아닌 이상 이야기가 다르다.

'오히려 알파를 두려워하게 되겠지.'

마녀 소동에 이어 이번 일까지 더해진다면 멀리서 손가락질하는데 그치지 않고 행동력좋은 얼간이들이 나올지도 모른다.물론 알파 본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겠지만 주변에서 천천히 고립될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사건을 원만하게 매듭지을 수 있으리라.

'정말이지…'

관자놀이를 문질러 치밀어오르는 두통을 억눌렀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참지 못하고 진작 엎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그럴 힘을 가지고 있음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거라고 비판하고 싶진 않지만 작금의 상황에 한숨만 새어 나오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알파는 지금?"

"슬슬 중국을 정리하고 북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빠르군. 몽골? 아님 러시아?"

"아무래도 거쳐가겠죠."

추측에 의한 말이었지만 동선을 아끼려면 당연한 선택이리라.

"그리고 아마 백소율 양의 일도 있으니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강태준은 끄덕거렸다.

"확인된 사망자만 400을 넘어간다. 실제로는 얼마나 될지 알파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지. 잠깐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지언정 머리가 식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

"그 전에 확실하게 해야지."

"그럴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게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이니까.…이만 들어가지."

회의실로 향하는 강태준의 뒤를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뒤따랐다.

***

"역시."

추적조로 편성된 남자는 혀를 내둘렀다.

자국의 헌터들이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리 없다. 비록 몬스터가 사라져가곤 있다지만 헌터들은 그 자체만으로 귀하디 귀한 인력이었으니까.사망자가 수백 수천에 이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리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게 하필이면 나라는 게 문제지.'

추적자는 이를 갈았다.

중앙 정부의 명으로 몇 개의 클랜에서 차출된 인원들은 마랑을 찾아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찾아낸 다음 어떻게 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막무가내로 찾아내라는 명령. 결국 시키는 일이었으니 할 수밖에 없었지만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알면 알수록 답도 없다는 것만 느껴진다.

일단, 단서를 일체 남기질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현장 자체를 인멸함으로써 추적할 단서를 전혀 주지 않는 거였다. 피해자 혹은 현장이 아예 통째로 사라지니 머리카락, 혈흔, 발자국이나 마력에 이르기까지 미세한 단서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따라갈 수가 없고.'

매번 사건이 있은 뒤에 제보를 받아 현장에 들르는 것.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그런것뿐이었다. 물론 거기엔 아무 의미도 없다.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 것? 굳이 헌터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아, 이번에도 꽝."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추적조의 팀원. 인근 cctv를 확인해본 모양이었지만 먹통이었다. 노이즈가 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단서를 남기지 않는 건 그러려니하겠지만 cctv에 더불어 목격자까지 없으니 정말 쫓을 방법이 없어 허상을 뒤쫓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건물 하나를 통째로 없앴으면서도 어떻게 은밀할 수 있단 말인가?

"죄다 까마귀 고기라도 쳐 먹었나."

"내 말이."

추적자는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밤이나 새벽이면 모를까, 아침과 낮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데도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단 게 말이 되는가? 차라리 사람들이 마랑에게 매수당했다는 게 더 설득력있으리라.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있나?"

위에서는 재촉하고 있지만 추적조의 모든 인원은 두손 두발 다 들고 있었다. 나름 내로라하는 이들로 이루어졌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광휘나 진홍이라면 모를까."

"아서라. 그게 말이 되냐."

팀원의 핀잔에 추적자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광휘는 진작에 죽었고 진홍은 여명의 일원이자 마랑의 파트너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마랑을 쫓는 일에 가담한다? 턱도 없는 소리였다. 차라리 훼방을 놓으면 놓았겠지.

"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다."

솔직한 본심을 토로했지만 이루어질 리 없는 소원이다. 때마침 바짓춤이 시끄럽게 진동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십중팔구 상부에서 온 독촉이리라.

한숨을 푹푹 쉬며 전화를 받았을 때, 추적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예상하던 말이 아니어서.

"아, 예…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

꿈인지 생시인지. 갑작스레 내려진 명령에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분명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면 현실이라는 거겠지만 그래도 믿기 어려웠다. 통화를 종료하고도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추적조를 해산하라는 바라 마지않던 명령에 쾌재를 질렀다.

"흐흐."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하지만…갑자기 왜? 자신에겐 좋은 일이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지금 여기서 상부가 마랑을 쫓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생각해봤자 윗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리 없다. 추적조가 해산되자 추적자였던 남자는 희희낙락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대체 어디까지 썩어있는 거냐.'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환수 사냥으로 생겨난 여러 물건들은 국내에선 거의 소비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해외로 나가는 물품을 추적했다.

자신의 약속은 '환수 사냥에 관련된 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것. 당연히 이럴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상상 이상으로 썩어있는 듯했다.

설마하니, 일국의 고위직 간부조차 환수 사냥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쳐먹고 있으리란 사실을 대체 누가 알 수 있었으랴.

'…….'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그만큼 씁쓸하게 느껴졌다. 하기야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이만한 규모가 성립될 리 만무하다. 자신이 죽인 숫자만 해도 무려 천에 달하고 있었으니까.

'더 높은 곳에도 있을 거다.'

설령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마찬가지. 설령 변절자가 아니더라도 이번만큼은 한 발도 물러나지 않으리라. 확실하게 뿌리뽑아야만 두 번 다신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 그림자를 일으카 늑대는 이번에도 현장 자체를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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