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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79화 (379/407)

〈 379화 〉 #186.5 열락의 밤

* * *

백소율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어느새 침대에 똑바로 누운 자신과 그런 자신을 내려다보는 홍옥처럼 붉고 깊은 눈동자. 볼 때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런 눈으로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반쯤은 농담이었는데. 당연히 거부할 거라 생각하고 꺼낸 말이었지만 알파는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알 수 있었다.

반대로 비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마치 거울처럼 똑똑히 알 수 있었으니까.

"아……"

저도 모르게 손을 올리고 뺨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감촉이 녹아버릴 것처럼 뜨거워 스스로 놀라고 말 정도였다. 그런 한편, 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색정적이었다.

야릇하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홍조를 띈 볼도 달아오른 피부도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도 전부 다. 겉으론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수도 없이 봐왔던 자신을 낯설게 느끼며 침을 삼키고 말았다.

자신마저 그렇게 보이는데 알파에겐 어떻게 보일까.

***

아주 잠깐이지만 뒷감당에 대한 생각부터 들었다. 아직 잠들어 있을테지만 만약 홍유리가 본다면 백소율을 쫓아낼지도 모르니까. 그 정도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일 테지만…… 숨을 고르며 자신을 관조했다.

안에서부터 이글거리는 불길. 작은 불씨가 타올라 어느새 타오르는 화염으로 변해 있었다. 저번에 채 해소하지 못했던 잔불이 아직 남아있었던 셈. 거기에 기름이 부어지고 말았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마력을 회수하곤 곧바로 떠날 셈이었지만 미련이, 탐욕이 생기고 말았다. 돌아 생각해보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말 오랜만의 일. 일년도 훨씬 더 지나 둘만의 시간이 생긴 셈이었으니.

"전부 끝났어요. 마랑회의 일은 전부 다."

36.5도. 아니, 분명 그보다 높게 달구어진 체온이 자신에게 닿은 순간 애써 억누르고 있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자신이 그녀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괜찮죠?"

얼른 답해 달라는 재촉에 참지 않기로 했다. 다른 모든 것들을 잊고서라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

생각보다 독점욕이 강하다.

늑대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백소율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기대어오는 걸 쳐내지 않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그런 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연결 고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제 자신의 것이 된 두 사람. 이기적인 생각이고 새삼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느쪽이건 놓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기꺼이 그녀를 원하고 탐하리라.

스멀스멀 뻗은 그림자가 웃옷을 벗기자, 서서히 드러난 그녀의 나신……

"……죄송해요. 볼품 없나요?"

부끄럽다는 듯이 수줍은 손길이 그녀 자신을 가린다. 하지만늑대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더었다.

하얗다못해 손에 묻어나올 것 같은 투명한 우유색의 피부는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질 정도다. 그리고 그녀의 말마따나 조금 말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전보다 확연히 수척해졌다. 옷 안에 가려진 그녀의 모습은 전보다 야위어 더없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가련함이야말로 연못 위에 뜬 연꽃처럼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마치 끌여당겨지는 듯하다. 잠깐이라도 넋을 잃었다간 짐승처럼 달려들어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해선 안 된다고 늑대는 강하게 다짐했다.

이전과는 달리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한층 성숙해졌으면서도 가련해진 그녀를 본 순간, 불길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갈증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이 다음부터는 마치 취한 것처럼 열락에 빠져 서로를 탐하게 되리라.

"……."

서로의 눈동자가 가까워졌을 때, 늑대는 사람의 형상을 뒤집어썼다.

"아, 그러실 필요는……"

이전에 했던 말을 지키겠다는 듯 말리려했으나 알파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짐승의 형상으로 하게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서로가 아는 행위가 아닐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어서.

더 생각하는 것보다 움직이기로 했다. 손을 뻗어 여전히 누워있는 그녀의 작은 귓볼을 만졌을 때 눈동자가 떨리는 걸 볼 수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한다. 하지만 귓볼을 만지던 손이 목 뒤를 받쳐 들어올리자 순식간에 얼굴이 가까워졌다.

서로의 날숨이 섞여 더운 공기가 천천히 퍼져 얼굴에 닿았을 때, 이미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순번을 정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어진 일련의 동작. 서로의 거리가 0이 되어 입술이 맞닿았을 때, 작은 쾌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작은 쾌감은 컵 속의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순식간에 번지고 말았다.

***

고작 입술이 맞닿았을 뿐인데 녹아버릴 것만 같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돌아 생각해보면 그와 입을 맞추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처음의 경험은 키스가 아니라 그의 손길에 입 속이 범해지고 말았으니까. 따라서, 이건 첫키스. 그와 처음으로 나눈 또 다른 사랑의 기록이었다.

조금씩, 많은 것을 잊어간다. 처음의 경험과 커져가는 쾌락 속에서 백소율은 그가 더 자신을 갈망하고 탐해주기만을 바랐다. 자신을 보고 있는 저 눈동자가 앞으로도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만을 갈망해주길 바랐다.

지금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아니, 이러고 있을수록 더더욱 그를 원하게 돼서 욕심을 내고 말았다. 어차피 지금이라면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나신을 가린 손으로 그의 두 귀를 덮어주었다.

"……!"

늑대였던 때와 지금 달라진 걸 하나 찾아냈다. 표정을 읽는 게 훨씬 수월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평정이 깨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금세 사라졌지만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 반응이 신선해서 쾌락과는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 밀려왔다.

'좋은 거구나.'

귀를 가려주는 게 좋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이 다가오자 백소율은 동그랗게 눈을 떠야만 했다.

"아."

……질척거린다.

어느새 열린 입술 틈을 비집고 서로를 당기는 혀. 타액과 타액이 섞이는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몇 배는 커져서 조용한 세상에 그 소리만이 들려온다.

왜 그가 놀랐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부르르 몸을 떤 백소율은 또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을 실감했다. 청각이 오직 하나의 소리만을 받아들이자 혀의 감촉이 더없이 생생해졌다.

'키스란 거……'

여러 매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숨 쉬기가 괴로울 정도로 몰려오는 쾌감.

'이렇게, 야한 거였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경험한 입맞춤은…… 정말 달랐다.

하지만 모든 것에 끝이 있듯이 결국 얼굴이 멀어져가자 백소율은 안타까워하며 외마디 소리를 흘렸다. 평소같았으면 상스럽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미 중독된 것만 같다. 이번엔 그가 아니라 자신쪽에서. 그에게로 고개를 가까이했다.

***

백소율이 집요하게 따라붙음에도 알파는 거부하지 않고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러는 한푄 등줄기를 쓸어보았다. 마정의 탓으로 축적된 마력. 물론 회수했지만 아직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한껏 달아올라 민감해진 몸이, 허리가 휘었다.

마치 악기와도 같다. 자신의 손길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만의 악기.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녀가 느끼는 것도 전혀 달라지리라.

등줄기를 쓸던 손가락은 더듬거리며 움직였고 이윽고 측면을 향해 나아가 그녀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야윈만큼 확실하게 느껴지는 늑골. 그 틈새 사이를 쓸었을 땐 참지 못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이 또한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그 사실을 만끽하며 알파는 조금 다른 곳에 눈을 두었다. 구태여 묻는 듯한 일은 하지 않았다.

입맞춤의 와중에도 그녀 또한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선수를 놓쳤을 정도였다.한껏 달아오른 그녀의 나신처럼, 한껏 달아오른 자신의 물건을 쥔 가녀린 손가락.

"……대단해요. 이렇게까지 되는 거군요."

그 섬섬옥수가 자신의 것을 조심스레 건드렸을 때, 이번엔 키스와는 다른 감각이 몰려왔다. 뇌로 이어지는 쾌감에 잠깐이지만 정신이 아득해질 뻔했다.

"아하."

깨달았다는 듯이 조금 느슨해진 그녀의 입가. 처음으로 알파는 그녀에게서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손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손이 오르내리며 왕복할 때마다 아찔한 쾌감이 밀려왔다.

아까보다 더한 열기를 띤 눈동자가 여전히 자신과 시선을 마주한 채로 살피고 있다. 하나하나 반응을 보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보고 있었다.

스윽­ 스윽­

손이 움직일 때마다 아득해져간다. 뱀이 움직이듯 느릿하고 여유로웠던 손길은 점차 속도를 더해가며 조금씩 빨라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순 없다.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뻗었다. 조금 급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여유가 없어서였다.

다른 한 손은 야윈 것과는 대조되게 이전보다 부풀어올라 자신을 주장하는 가슴을 향해 어루만지고 비틀며 희망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이미 비부에 닿은 손가락이 흠뻑 젖어있었으니까.

전희따위는 키스로 충분했을 정도로 강렬히 자신을 원하고 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손과는 달리 남은 한 손이 비부를 향해 뻗은 자신의 손목을 잡고 더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읏."

그러자, 안으로 끌어당겨진다. 고작 손가락에 불과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안으로 초대하는 듯했다. 그 무엇이라도 받아들이겠단 것처럼.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 이어지는 입맞춤과 멈추지 않는 손길이 자신을 부추겨온다.

"……!"

사정감이 차올라 당장에라도 쏟아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주 잠깐이나마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의식이 하얗게 물들었다.

"……."

그리고 그것을 소중하다는 듯이 쥐는 손. 그것을 코로 가져가 음미하듯 향을 들이키는 모습에 알파는 침을 삼켰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선정적이고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마성의 매력, 마녀라는 말이 절로 머리에 떠오르고야 만다.

그리고 가녀린 손이 기어코 검지와 엄지 사이를 벌리며 그 사이로 자신이 사정한 정액이 길게 늘어졌을 때, 기어코 자신의 손가락을 입 안으로 가져가 빨았을 때,

"……이게 당신이군요?"

더는 참지 못했다.

***

아까 사정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뜨겁다. 터질 것만 같은 욕구는 이미 잔불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욕망이자 화마처럼 달아오른지 오래였다.

부서지지 않게끔 조심스레, 유리로 만든 세공품을 다루듯 아꼈지만 이미 그럴 겨를이 없다.

오로지 그녀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쾌락을 갈구하는 본능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이 여성을 반드시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말리라는 생각이 강박처럼 들었다. 이미 아플 정도로 빳빳하게 선 자신의 것. 본능 속에서 간신히 이어진 얇디 얇은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고 물었다.

"미안하다."

아니, 말했다. 이미 어떻게 해서라도 욕구를 참을 수 잏을 것 같지가 않아서. 전부 해소해버리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눈앞의 그녀에게. 억누르지 못한 추한 욕망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귓가에 속삭이는 수줍으면서도 야릇한 열기를 띤 목소리에 긍정되었다.말을 잃은 짐승처럼, 허리를 낮춘 알파는 자신의 것을 조준했다. 그리고 그녀의 꽃잎을 찾았을 때, 늑대는 자신의 것을 조금 집어넣었다.

전혀 다른 세상같다. 귀두의 갓 부분이 걸렸을 때, 밀려오는 쾌감에 시야가 흐릿해졌다.정말 머리가 녹아내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

뜨겁다. 아까 손가락을 넣었을 때완 비교도 되지 않는 열락이, 쾌감이 자신을 받아들인다. 홍유리만큼 좁지는 않았지만 뿌리 끝까지 빨아들이려는 듯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다.

뜨겁고 부드럽고…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걸렸던 귀두를 넘어 더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 있었다. 끌어당기면서도 좁지도 넓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들어맞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딱 한번 있었던 그 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자신의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어떤, 가요?"

……그렇다한들 힘들지 않을 리 없다. 안 그래도 마정에 의한 피로가 다 사라지지 않은 그녀. 묻는 말에 답하는 대신 알파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고작 그것만으로 두 번째 사정감이 치솟았지만 기꺼이 감내했다. 참고 참아내며 인내가 필요할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의 안쪽 전부가 눈에 보일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 감촉을 음미하며 그녀에게 무리가 가지 않게끔 천천히 움직였다.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급하게 움직여 쾌락을 탐하는 대신 서로가 연결돼있음을 느끼고 감정을 고조시켜갔다.

그런데도, 질척거리는 소리만이 아주 느릿하게 방 안을 떠나지 않고 채운다.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심장 소리와 함께 쾌락을 자아내면서.

"아, 아…"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의 안이 꿈틀거림을 느낌과 동시에 알파는 참고 있던 씨앗을 토정했다. 두 번째의 사정과 함께 느릿한 슬로우 섹스에도 불구하고 백소율의 허리는 받쳐줘야했을 정도로 크게 휘었다.천천히 느끼는 만큼 몰려오는 쾌감을 전부 받아들인단 것처럼.

"……!"

입은 벌리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사정과 함께 섞인 액을 윤활유삼아 그녀의 안으로 다시금 미끄러졌다.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느리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차 빨라져가는피스톤질은 뜨거운 열락을 선사했고 뇌의 회로가 전부 타버리고 바보가 될 것만 같은 쾌락만을 만들어냈다.

허덕이고, 소리지르고, 입을 맞추고, 탐하고 원하기를 반복하며 날이 밝아오기 전까지. 그렇게, 피로에 젖어 완전히 잠에 빠지기 전까지 계속해 몸을 겹쳤다.

열락의 밤은 그렇게 느릿하고 강렬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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