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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81화 (381/407)

〈 381화 〉 #188 사냥꾼을 사냥하는

* * *

환수 사냥을 뿌리뽑기 힘든 이유는 그게 조직이 아닌 행위라는 점에 있다. 누가 그런 행위를 했는지 일일이 찾아야한다는 극명한 단점. 사실상 이미 자리잡아 상당한 시장 규모로 발전한 행위를 절멸하겠다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마약 혹은 범죄와 전쟁을 선포했던 이들은 역사적으로 셀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완전한 성공을 이루진 못했다.

어떤 행위를 절멸시킨다는 건 개인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집단을 움직이고 개혁을 이루어야만 가까스로 가능성이 생긴다. 그만큼 터무니없이 힘든 일이라는 뜻.

"그럴 터인데……"

몇 번이나 하얗게 칠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다. 한국은 당연하고 러시아 동부.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부가 새하얗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받은 하연은 서류를 뒤적거리며 대조해보더니 금세 지도 한 켠에 마찬가지로 색을 칠했다. 여명의요청으로 인해 지역 곳곳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참조해 만든 지도는 이미 새하얗게 물들어있었다.

"하하, 이 자식 이거."

거기에 강태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정상적인 속도라고 표현하고 넘어갈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웃음이 나오세요? 사망자만 40000명이 넘어가고 있는데. 어지간한 전쟁만큼 죽어가고 있는데."

하연이 눈살을 찌푸리자 강태호는 팔짱을 낀 채로 코웃음쳤다.

"탕아들이랑 마랑회는? 알고는 있냐? 그거 둘 합치면 이것보다 더 죽었을 거다."

"그거랑 이건 다른 일이죠. 탕아들은 어디까지나 변절자였고 마랑회도 사실상 마찬가지 맥락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달라요."

"환수 사냥하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죠."

의견 차이라기보단 보는 시각의 차이였다.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강태준은 눈 사이를 좁혔다.

하연의 말마따나 이번 사건에 있어서 인류는 마랑을 곱게 보지 않고 있다. 이미 세간에 널리 퍼져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고.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

하연의 말처럼 사만에 달하는 사망자가 고작 1주일도 되지 않아 속출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조사가 있기는 했을까하는 의문이 한 몫 하고 있었고. 또한 환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있어 어느 날 갑작스레 나타난 환수는 인류의 땅을 빌리고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몬스터를 없앤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있는 땅에 출입이 통제되고 격리된 이상 여태까지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질 터. 특히, 환수를 직접 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나마 알파의 이름이니 이 정도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던 거겠지."

앞으로 더 죽어갈 터. 알파가 목적을 이뤘을 땐 어쩌면 사망자가 10만에 달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직접 움직이는 이들이 없는 건 그나마 여명이 선수를 쳤기 때문이었다.

입장 발표를 하는 게 늦었더라면, 물밑에서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여론은 지금 이상으로 극악으로 치달아 있었을 터. 안 그래도 일각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마랑을 새로운 재앙으로 이름 올려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판국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

아직까지도 각국 각지의 클랜에 요청한 보고는 계속해 올라오고 있다. 실시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건 그대로 알파의 위치를 파악하는 셈. 강태준은 계속해 지도를 새하얗게 칠해갔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어떻게 됐나?"

"아. 그거 말이요? 아마 지금쯤……"

***

마치 산악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대마력을 얻고 수련한 기간이 있었기에 헌터인 자신의 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건 과신도 뭣도 아닌 단순한 사실.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 초인이 아니면 괴물들과는 싸울 수 없으니까.원한다면 몇날 며칠이고 밤을 새우며 전투를 지속할 체력을 가지고 있다. 극한 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체력이 부족할 일은 없다는 것.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자면 그만한 일을 겪으면 숨을 헐떡이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렇게 잠도 자지 않고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가파른 산을 무작정 오르고 또 올라 몇 번이나 전투를 이어왔기에 이미 쓰러지지 않는 게 의아할 정도였다.

"힘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쉬도록 하죠."

그 말에 이은하는 눈길을 돌렸다. 여태 올라온 길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먼 길에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환수 사냥……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는.'

괜히 환수 사냥꾼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원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높은 산맥. 흔적을 뒤쫓아 대체 얼마나 올라온 걸까? 2000m? 3000m? 공기가 희박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쉿. 거의 다 따라온 것 같네요."

바닥을 짚은 은자림이 눈을 감고 집중하는 동안 이은하는 숨을 가다듬었다. 단순히 힘들다는 게 아니라 며칠 사이의 강행군으로 몸이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뻣뻣해져 있다. 세포 하나하나에 힘이 빠진 것처럼 에너지 자체가 바닥나 있다. 이렇게까지 지친 적이 대체 언제였는지.

"찾았어요. 저쪽도 찾고 있네요."

"Ascunde."

보이지 않는 막으로 서로를 덮자 은자림은 작게 끄덕였다. 이대로 접근해 일망타진하면 될 뿐.따라오라고 손짓하곤 거침없이 수풀을 헤집었다.

"……."

사람들이 떠드는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서 높은 산중에서 어렴풋이 들려온다. 방향과 거리를 가늠한 은자림은 등에 맨 창을 풀어 단단히 쥐었고 한 손을 바닥에 붙인 채로 마력을 집중했다.

바닥에서 뻗어간 마력은 그들의 발 밑에서 숫자를 확인했다. 8명. 고작 여덟에 불과하지만 분명한 환수 사냥꾼. 뛰어난 헌터는 아니더라도 소수로 온 것을 보아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리라.

몸을 일으킨 그녀는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히 브리핑했다.

"여덟. 마법사는 둘 있네요. 여섯은 제가 맡을 테니 둘만 부탁하죠."

"네."

"……바로 처리하고 3시간만 휴식하도록 할게요."

체력이 바닥난 자신에게 마법사를 처리하라고 배려해준 것도 면목없는데 페이스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다. 대체 이게 걸림돌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부끄러운 마음에 이은하는 푹 고개를 숙였다.

"후! 네. 죄송해요."

"그렇게 생각할 것 없어요."

은자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환수들을 사냥하는 이들이 있다면 반대로 지키는 이들 또한 있어도 괜찮지 않겠냐는 것. 그걸로 환수들의 반발이 줄어든다면 알파를 돕는 일이 될 터.이 단순명료한 생각 자체가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이른바, 환수 사냥꾼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자는 것.

문제는 이 일의 난이도였다. 환수 사냥의 행위자는 터무니없이 많지만 이쪽은 겨우 둘. 여명에 알렸기에 다른 이들도 움직이곤 있겠지만 당장 자신들은 고작 둘뿐. 그나마도 공식적으로 클랜을 움직일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휴가계를 내고 멋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 마땅한 지원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거기다 죽이지 않는다는 게.'

머리에 꽃이 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하겠다는 각오를 듣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금세 뻗어서 혼자 전장을 전전하리라 생각했으니까. 하루 혹은 길어야 이틀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다. 아니, 있었다.

"……정 힘들면 쉬고 있도록 해요. 금방 끝내고 올 테니."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은자림은 발 아래 마력을 집중했다. 곧 수풀을 헤치고 뛰쳐나온 은자림은 날렵하게 덮쳐듬과 함께 유려한 움직임으로 창을 휘둘렀다. 첫 일격으로 창대의 아랫부분이 무릎의 뒷부분을 부숴뜨렸고 그대로 복부를 걷어차 나무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힘은 조절했지만 자신이 파악한 상대의 수준이라면 이걸로 충분할 터. 곧바로 기절하자 화들짝 놀란 환수 사냥꾼들이 반사적으로 덤벼들었지만, 격이 다르다.

날이 휜 곡도와 메이스와 곤봉 사이 어딘가의 무기. 두 사람의 공격을 유유히 피한 은자림은 창을 찔러 곤봉과 곡도가 만나는 지점에 창끝을 집어넣곤 힘의 흐름, 그 중심점을 비틀었다.

그러자 균형이 흐트러진 것처럼 발을 헛디디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편과도 같다. 그대로 창대를 한 바퀴 돌리자 창끝에 걸린 두 사람이 바닥에 엎어져 쓰러졌다.

순식간에 여덟 중 셋을 제압한 은자림은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낚아챘다. 이미 칠영웅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그녀에게 있어 마력이 담겼다고는 하나 이 정도는 슬로우 모션이나 마찬가지. 화살을 되돌려 던진 순간 궁수는 놀라 바닥을 굴렀지만 화살촉은 활줄을 정확하게 끊어놓았다.

"……?!"

믿을 수 없단 듯이 휘둥그레 눈을 뜨는 궁수의 눈에는 전열의 전사들이 벌써 무력화됐다는 믿기 어려운 진실이었다.

그래도 마법사들의 마법이 완성된 순간 궁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한 때는 스퀘어에 머물렀을 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무려 둘. 불과 얼음의 마법이 각자의 손에서 완성되었으나, 그것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누구보다 놀란 건 두 마법사. 눈이 찢어지라 크게 뜬 눈으로 손을 떨고 있었다. 둘인데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완성된 마법. 마치 거인의 손에 붙들린 것만 같은데 그 마력의 중심엔 허릴 꺾고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헐떡이는 소녀가 있어서였다.

"이, 이제 3시간…… 쉬는 거죠?"

실소한 은자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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