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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83화 (383/407)

〈 383화 〉 #190 흔적

* * *

"예.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확인해주세요."

핸드폰을 덮은 은자림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요 며칠 바쁘게 움직인 건 사실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알게 모르게 정신적으로 무뎌진 모양이었다.

"근처까지 온 모양이에요. 여기서 그리 멀리있지 않다고 하네요. 어쩌면 지금쯤 지근거리에 있을지도요."

알파의 행적을 말하자 아까까지 피로에 찌들어있던 눈에 조금이나마 빛이 돌아왔다.

"조만간 여기까지 오겠죠. 잘하면 만날수도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은 그 때 하도록 해요."

할만하냐는 말에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수면 부족과 피로에 시달리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할만해보였기에 더 묻진 않았다. 정 힘들면 알아서 멈추거나 하다못해 쓰러지기라도 할 테니까.

"주변 클랜의 협조는 받았어요. 자체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으니 환수 사냥을 하러 가진 않을 거예요."

"그럼."

"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에요. 자살 희망자가 아니면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대신 예방해야겠죠."

"환수 사냥꾼을…… 선수쳐서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우리 생각일 뿐이니까요. 정말 저쪽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어쩌면 소문 자체를 가짜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있을법한 일이었다. 실제로 마랑이란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도 꽤 있었으니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었네 살았네 하더라도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너무나 상식과 동떨어져 있으니까.

다만,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모습은 마치 일에 대한 강박증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대단하다는 영역을 넘어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에 이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여태까지보단 훨씬 편할 거예요. 주변 클랜들에 협조는 받았다고 말했죠?"

"네. 헌터들의 신원은 전부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요.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는 헌터를 쫓으면 되겠죠."

헌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재능이 있더라도 무조건 헌터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필연적으로 사망률이 높은 직업이기에 생존률이 낮기도 하다. 발품을 팔긴 하겠지만 이제까지보다 훨씬 편한 일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봐야겠죠. 사실 헌터를 일일이 쫓기엔 시간이 아깝기도 해서 대표 클랜이 맡고 있어요."

"아…"

대체 언제 그렇게까지 일이 진행됐단 말인가. 함께 있으면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환수 사냥을 했다면 분명 연결점이 있을 거예요. 일단 제도적으로 불법적인 일인 만큼 먼저 거래처를 만들어두었을 테고요."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설령 환수를 사냥하는 데성공했더라도 팔 곳이 없다면 말짱 도로묵. 그저 공간을 차지하는 짐덩이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근처에 판매처로 의심되는 곳이 두 곳 있어요."

"두 곳이요?"

"그래요. 지금부터 갈 곳이기도 해요."

***

참 한적하다. 비록 몬스터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없다시피한 비어있는 도시. 그 한복판을 걸으며 백록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낙후된 곳에서까지 환수를 사냥했겠느냐고. 무엇보다 그럴 여력도 없어보인다.

"정말 이들이…… 우릴 죽였단 말인가?"

믿기 어렵다는 듯한 말에 늑대는 실소했다. 그도 그럴것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헐벗고 있었으니까.어린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었고 어른들의 눈에 희망의 빛은 사라져 동공이 비어있는 듯하다.사냥은커녕 움직일 기력조차 없어보인다.

왜 이렇게 다른걸까.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그 이유는 알고 있다. 탐욕에서 비롯된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아까의 혼잣말과도 같은 물음에 대답이 돌아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

"이들은 헌터가 아니니까. 만약 헌터였다면 그랬겠지."

간절함. 집념. 때때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보다 큰 원동력이었지만 헌터도 아닌 일반인이 환수나 영물을 사냥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다.

"그럼?"

"여기가 아니라 더 안쪽. 도심 중심지로 가야겠지."

필연적으로 초인의 힘을 지닌 헌터가 굶주릴 일은 없다. 즉, 이런 곳에 헌터가 있진 않으리라는 뜻이다.

"……알겠네."

살아있다기보단 죽어가고 있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진득한 절망이란 감정의 향을 맡으며 백록은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아까의 풍경이 거짓말이란 것처럼 번듯한 백록 자신이 아는 높은 건물들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래. 이게 자신이 아는 인류의 모습. 문명을 꽃피운 무법자들의 모습이었다. 늑대의 말마따나어느 지점을 경계로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더는 굶주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낙후된 지역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 극심한 차이에 백록은 잠깐 눈살을 찌푸렸으나 도착했다는 말에 건물을 쳐다보았다.

비록 자신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늑대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고 있으리라. 벽이 벽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속속들이 보고 있지 않을까.

"도울 일은 없는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 늑대. 백록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림자가 뻗어나오고 있었으니까. 문 아래 조그마한 틈새 사이로 길게 뻗어진 그림자. 고작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그 그림자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 없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세하게 맡아지는 피냄새가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가늠케한다.

"……."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말처럼 그 행위엔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해야할 일을 할 뿐인 것처럼 기계라 부르는 장치들처럼 묵묵히 일을 해나갈 뿐. 오히려 그 무감정한 모습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인류를 위해 얼마나 애써왔고 그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모순적이게도 그런 인류를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고 있음에 그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도움을 청한다는 말로, 그밖에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제멋대로 무거운 짐을 떠넘기고 말았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무고한 환수들이 계속 죽어갔을 터. 그리고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엇갈림임을 알고 있었지만 입맛이 쓰게 느껴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한숨을 쉬었다.

***

"여기가 두 번째 장소에요."

은자림이 말했던 판매처. 의심의 대상이었던 첫번째 장소에선 아니나다를까. 영물, 환수의 가죽을 비롯해 여러 물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다소의 저항이 있었기에 싸움은 불가피했지만 아무리 지쳤다곤 하나 어설픈 헌터에게 당할 둘이 아니었기에 역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만.

아마 지금쯤 대표 클랜에게 사안이 넘어가 있으리라.

"……휴. 정말 잘 처리할까요?"

"거기까진 어쩔 수 없어요. 사실, 저희가 움직인 것도 대표 클랜 입장에선 그리 기분이 좋진 않겠죠."

"……."

"그래도 주변에서 보는 눈도 있을테니 어영부영 넘어가진 못할 거에요."

그랬으면 좋겠다. 대표 클랜이 환수 사냥의 존재를 알고도 방치한 게 아니라 그저 몰랐을 뿐이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 경우에는 무능한 클랜일 뿐이란 거고.'

도저히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입맛을 다신 이은하는 은자림의 지시를 기다렸으나 잠깐 살피는 듯하던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그러자 대답 대신 문을 열어젖힌다. 갑작스런 돌발행동. 그녀답지 않다고 느꼈지만 은자림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곧 안으로 성큼 내딛은 은자림을 따라 이은하 또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냥 사람 사는 곳. 딱 그 정도로만 느껴질 뿐.

"이상하네요."

"……?"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혀 정리가 돼 있질 않아요."

은자림은 곧 돌아보았다. 3층짜리 건물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것 자체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건 주변 풍경이었다.

여관 혹은 작은 호텔 건물같은 양식으로 1층에는 식당으로 사용한 듯한 장소가 있었지만다 식어버린 스프는 반쯤 먹은 듯했고 펼쳐진 책은 그대로 놓여있었다. 심지어는 현관의 신발도 엉망으로 놓여있는 것이 신고 나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이만한 건물이다. 누구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

반대로 말하자면 이 장소에 사람만 있다면 모든 게 자연스럽다. 대체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게 의문이었다.

"일단, 좀 더 찾아보도록 해요."

그 지시에 따라 흩어진 둘은 건물 곳곳을 수색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있는 동안에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흔적 없는 장소. 그걸 이상하다고 느끼며 수색하던 이은하는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국. 육안으로 구별하긴 어려웠지만 마치 무언가 끌려가는 힘에 저항하듯 손으로 바닥을 긁은 듯한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쓸어본 이은하는 아직 채 온기가 가시지 않았음에 침음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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