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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85화 (385/407)

〈 385화 〉 #192 다가오는 끝

* * *

"그래서 지금 그대로 돌아왔다는 겁니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어이없어하는 하연. 그러거나 말거나 귓구멍을 후빈 강태호는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날렸다.

귓밥이 날리자 옆자리에 있던 이기준이 기겁하며 물러났지만 강태호는 뭘 그러냐며 껄껄거릴 뿐이었다.

"거, 틀린 말도 아니잖냐. 지들이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끈거리는 머리. 요즘따라 달고 사는 편두통에 하연은 답답한 숨을 흘렸다.

"뭐가 아니란 거냐. 우리도 여기까지 했음 됐지 더 해줄 게 뭐가 있다고."

다들 겉으로는 쫓는 척하지만 제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진 않다. 그 이유로는 전력 손실. 이러쿵 저러쿵해도 부유섬이 무너진 스퀘어는 예전의 위상을 그대로 갖고 있지 않은데다가 평화속에서 수많은 클랜이 해체 절차를 밟았으니까.

'설령 전성기의 인류가 그대로 있었더라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홍유리의 말마따나 서로 눈치나 살피고 있는 게 현 실정이었다.

"그러니까, 거기서 더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끔 물밑 작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럼 됐잖냐?"

거기서 뭘 더 바라겠냐며 무언가를 까먹는 그. 커다란 손가락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껍질을 보니 땅콩이었다.

"어차피 바라지도 않더라.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디 유리 고것이 도움이나 바라겠냐? 알파 그 놈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을거다."

"그럼 그들 나름대로 대책이 있단 겁니까?"

"있겠냐. 아무 생각도 없겠지."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씻고는 사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부스스한 모습에다가 뭘 하고 사는지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 헌터 시절의 날카로움은 어딜 갔는지 반쯤 폐인같은 모습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당사자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입장에 있었으니까. 따라서 수긍할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인 그녀가 아무 조치도 필요없다고 판단했으니까.

일 얘기로 찾아오지 말라는 태평한 말도 그런 자신감에서 발로했을 터. 떠올렸던 것처럼 나중에 집들이라도 찾아가면 되리라.

"2팀장님!"

자신을 부르거나 말거나 강태호는 대범하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오히려 상석에 앉은 이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수? 제 앞가림 못하는 놈들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둡시다. 괜히 바라지도 않는 은혜갚는답시고 설레발치지 말고. 진짜 잘못되면 그때나 도와주자고. 쟤들이 물가에 내놓은 애들은 아니잖소?"

"……."

"어쩔거요. 형님."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린 늑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작 며칠 사이에 얼마나 많은 광경을 보았던가. 감정이 차지하는 영역이 커진 만큼 정신적으로 지치고 있음을 스스로도 깨달았을 정도였다.

본신에서 떼어진 일부이기에 불완전하다. 온전히 이루었던 신역은커녕 그 한참 아래인 초월의 영역에조차 닿지 않는다.

정신체의 영역을 고작이라고 부를 순 없겠지만, 늑대에게 있어 한참이나 전에 지나온 영역. 세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힘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 그걸 본신으로 한번 돌아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의 정신은 온전하지 않다고.

진리와 근원을 포함해 여태 시련을 넘어오며 성숙해진 정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본래정신이란 심신과 떼어놓고 단독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쌓은 지식과 여태껏 배운 경험이 축적되어 마침내 완성되는 것이 자아.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분리했다. 온전하게 남아있다면 그게 거짓말이리라.

신역을 넘어서며 너무나 비대해진 힘과 지식을 가지고 올 수 없었기에 스스로 일부를 떼어 분리함으로써 전대미문의 불합리한 존재는 세계에 거주할 최소한의 자격을 얻어냈다.

얻어냈지만, 불완전하기에 흔들리는 건 필연. 가능한 한 태연하게 있고 싶었지만 스스로 동요하고 있음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

따라서, 환수 사냥꾼들에 대한 응징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라도.

'특히……'

러시아의 서부. 역병에 의해 더럽혀진 땅을 정화하던 요정용들을, 아니 그 흔적을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그들이 왜 죽어야했는가. 왜 '그런 꼴'로 있어야만 했는가. 부정을 없애는 건 인류에게 있어서도 확실한 도움이 되었을 텐데. 고작 욕심. 고작 탐욕으로 죽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정용들은……'

까드드득, 이가 갈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감정이 흘러넘칠 것 같아서였다.

어쩌면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요정용들은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테니까.

본래 환계의 요정용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대부분은 요정용이 아닌 용벌레. 하지만 필요에 의해 자신이 개화시켰다. 비천망을 쓰러뜨리고 화산각룡을 쓰러뜨리며 그 고기를 먹여 용벌레를 요정용으로 변태시켰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부정을 없애기 위해 멸망한 유럽에 있었을 필요도 없었다는 것.

자신을 돕기 위해 유럽에 있었던 요정용들은 같잖은 탐욕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부정할 수조차 없는 명확한 사실에 늑대는 질끈 눈을 감았다.

만약 여왕이 돌아온다면 자신은 무어라 말해야할까. 그리고 그녀는 도대체 뭐라고 말할까. 죽어간 환수들은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보는 눈이, 백록이 곁에 없었더라면 감정이 흘러넘쳤을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하게 상념을 갈무리하는 데 성공한 늑대는 다시금 생각했다.

부디 바라건대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도록. 그리고 더는 참상을 보지 않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바랐다.

***

외우주. 세계 바깥의 또 다른 세계. 진리를 삼킨 마랑의 본신이 잠든 전인미답의 시공에서 미약한 파문이 일었다.

강변에 돌을 던진 것처럼. 강풍에 맞서 입바람을 불기라도 한 것처럼 작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파문. 아니, 작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셀 수 없는 세계를 품은 외우주에 파문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이해를 벗어난 일이었으니까.

이윽고 파문의 근원지인 마랑. 아니, 마랑의 안에서 눈을 뜬 그 존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장소였다.

공간이 보이는 듯하면서도 머릿속에 담을 수 없는 아득한 정보로 이해를 벗어나있다. 시간이 흐르는 듯하지만 정체된 것처럼 멈춰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한히 이어진 무수한 다발. 가지각색의 형상을 지니고 수평선의 저편까지 이어진 그것들. 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세계임을 알아차리기까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

진리가 규정한 세계가 아니다. 자신이 있는 곳은 그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자 진짜 의미로 전부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곳.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한참이나 감탄하고서야 존재는 의아해했다.

왜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하물며 영락하기 이전의 온전한 모습으로 초월의 격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악의 속에 삼켜져 갈가리 찢겨진 자신에겐 회생의 가능성따윈 조금도 없었을 터다. 정수마저 흩어져 전부 끝나버렸을 텐데…… 어째서?

그 이유를 알지 못하던 존재는 문득 무언가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저 검고 어두컴컴한 규명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마치 실체를 가진 그림자같았다.

그런데 따뜻하다. 너무나 따뜻해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처절하리만치 전해지는 감정.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당황했지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성공했구나."

지금의 자신으로서도 마땅히 쳐다볼 수 없는 아득한 격. 혼돈과 허무. 근원을 갈무리하고서도 그 전부를 넘어섰을 만큼 아득한 존재가 하나의 개념처럼 자리해있었다.

그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조차 없었지만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자신을 부른 것이라고 깨달았다.이 따뜻한 어둠과 전해지는 감정이 무엇보다 큰 증거. 즉, 세계는 끝나지 않았다.

무수한 반복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단 한번도 쓰러뜨리지 못했던 종말이 마침내 쓰러진 것이리라.

그리고 필연적으로 진리의 좌에 그가 올라서게 되었다.

단편적인 정보로 정답을 도출해낸 존재는 그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되살린 것이리라.

"……."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보고 싶었다. 한층 더 늠름해졌을 그가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세계가 어떻게 되었을지. 또한,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천천히 몸을 돌렸을 때, 이번에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무수한 세계 속에서 본래 자신이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를.

그리하여, 마침내 마랑의 안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걸음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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