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화 〉 #193 마수화 계획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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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화 계획.
사라진 마랑을 대신해 환수를 그처럼 만들겠다는 일념에 시작된 계획은 마수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마랑화 계획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좀 더 흉폭하고 난폭하고 광폭하게끔 만들어 환수를 마수화시켰을 때 그럼에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마랑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야성과 이성이 결합했을 때 진정한 완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다면 마랑의 근본이 환수나 영물이 아닌 몬스터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었을 터. 즉,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인 셈이다.
잠정적으로 내부에서 불가능이라 여겨진 이 계획은 마랑회에서도 금세 폐지되어 백지화됐지만 이를 강하게 주장하던 몇몇은 독자적으로 계획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번번이 실패. 흥분제만이 아니라 환각제와 자백제를 비롯 마력을 투여한 적도 있었지만 전부 실패였다.
첫 단추와 전제부터가 틀렸음을 몰랐기에 진행된 일이었지만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개를 품종개량한다고 호랑이가 될 리 없고, 고양이를 개량한다고 늑대가 될 수 없듯이 태생부터가 다르다.
괴물은 결코 영물이 될 수 없다.
반대로 환수가 마수로 변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와는 거리가 먼 반쪽짜리 결과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본래 목적이었던 마수가 아닌 날뛰는 괴수로 만드는 것.마치 네버랜드의 광란에 물든 괴물들처럼 날뛰게 만드는 정도는 가능했다.
숲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른 향이. 잘못된 바람에서 시작된 원념과 집념이 결실을 맺었다.
***
가히 군세라 불러 마땅하리라.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얕볼 수 없는 환수라는 점에서. 하물며 그들이 갑작스레 준동해 날뛴다면 새로운 위협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명의 물밑작업으로 인해 환수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인식은 더 이상 남지 않게 되리라.
어디까지나 이 자리에 자신이 없었더라면.
"정상이 아니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악의에 늑대는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코끝을 찌르는 어렴풋한 향이 상황을 일러주는 듯하다.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인위. 분명 무언가가 끼어들어 수를 쓴 것이라고. 당연 이러한 광경을 처음 보는 건 아니다. 훨씬 더한 악의와 맞선 적이 있었기에 짓밟을 수 있었지만 백록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제자리에 우뚝 굳어 망부석처럼 서서 바라보고만 있단 건 아무리봐도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백록."
이름을 부르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여전히 굳은 채였다. 어느새 가까워지는 군세의 발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늑대는 자신의 마력을 주입했다.
거대한 마력이 활화산처럼 움직이며 단숨에 백록의 전신을 덮었고 순식간에 발 아래로 빠져나가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름이 지나간 것처럼 마력이 흐르자 번뜩 눈을 뜬 백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야 정신이 든 것처럼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 백록이 길게 숨을 뱉으며 호흡을 안정시켰다.
"고맙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보기에도 의아하다. 악의에 잠식당한 적 있는 백록이었기에 삼켜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으니까.
무안해서였을까 아니면 그 생각을 읽어서일까. 말로 꺼내지 않은 의문에 답해왔다.
"……우린 눈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까. 아마 그래서인 모양일세."
영향을 받기 쉽다고 고개를 떨군 채 그리 말한다. 하지만 그 행동은 면목이 없어서가 아니라 악의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높게 피어오른 구름처럼 악의가 보인다는 말에 늑대는 숲을 보고서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다. 육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영안을 뜨고 본 눈으론 그랬으니까. 아마 백록이 느낀 것엔 날뛰는 환수들의 감정의 덩어리 또한 포함돼 있으리라.
"부탁하네. 해방시켜주게."
늑대는 천천히 끄덕였다. 악의는 환수만을 찾아 파고드는 게 아니다. 자신의 빈틈으로도 계속해 파고들려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아무리 흔들렸다한들 고작 이 정도 악의에 지배당할 리 없다.
마력을 끌어낸 늑대는 가볍게 발을 굴렀고, 마침 아래를 쳐다보고 있던 백록의 눈에는 대지가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절대 착각따위가 아니다.
실제로 움직인 땅이 솟구쳐 거대한 벽을 만들었으니까. 숲을 둘러싸는 대지의 벽.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기시감이 든다.
백록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느 괴물. 촉수를 수없이 뻗어대며 마치 검은 숲을 만들었던, 그리고 대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대지를 병들게하는 어느 괴물의 모습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그 괴물. 재앙 중 하나인 질병이 가지고 있던 힘임에 틀림없다. 어째서 그걸 가지고 있는지같은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식 밖의 존재. 덕분에 환수들을 멈출 수 있다면 그걸로 됐으니까.
그리고 높게 둘러진 벽을 향해 달려든 환수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졌다. 두께만 해도 족히 미터 단위로 헤아려야할 만큼 단단한 벽을 향해서 몇번이고 부딪쳤다.
역시나 절대 정상이 아니다.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는, 흥분한 동물들마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이따금 벽이 흔들리긴 했지만 깨질 거라곤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러다 환수들이 다치면 어쩌나하고 생각했을 뿐. 백록은 눈을 흘깃거리며 벽과 늑대를 번갈아보았지만 아무리 안목 스킬이라도 벽 너머의 상황을 꿰뚫어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 돼 가고 있는가?"
"……괜히 더 날뛰는 것 같은데."
높은 벽을 보고서도 물러나거나 다른 길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머리를 박는다. 머리가 찢어져 주륵 피가 흐르는 걸 보고서 늑대는 한숨과 함께 이 방법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 풀에 지쳐 걸음을 멈추긴커녕 머릴 찧고 죽는 게 먼저이리라. 이성은커녕 생존본능도 남아있지 않단 증거였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더 지독하다.
늑대의 의지에 따라 숲을 둘러싼 벽의 일부가 허물어지고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약간의 변형. 숲을 둘러싸고만 있던 벽이 아주 기초적인 미로로 변해 마치 호리병의 모양처럼 변해 하나의 통로를 내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을 바꾸어 주의를 끌었고, 그러자 필연적으로 무수한 발소리가 좁은 통로를 향했다. 그리고 그 끝을 검은 늑대와 흰 사슴이 가로막고 있었다.
"물러나있어."
"괜찮겠는가."
붉은 눈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자 백록은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마치 아귀지옥처럼 서로를 비집고 빠져나오려는 모습은 결단코 자신이 아는 환수들이 아니었다.
커다란 환수는 작은 환수를 짓밟고 또 다른 환수는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한다. 질서나 조화같은 단어와는 가장 거리가 먼 모습에 아연해한 백록은 이를 악물고는 아까의 악의를 떠올렸다.
도대체 왜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정말로 간절하게 여왕이 보고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녀가 있었더라면, 환수들의 보금자리인 환계가 있었더라면 결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환수가 아닌 괴수가 된 모습으로 날뛰는 환수들은 이윽고 늑대가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달려왔다. 언뜻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질긴 가죽이 마치 철갑과도 같은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무소가 단번에 돌진해왔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으로 선두에 선 환수의 이름은 궁우(??). 달리 하늘소라고도 불리는 환계에서도 서화와 더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굳건함을 지닌 환수였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학을 떼고 물러났을 테지만 백록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역시 무리일세.'
궁우가 아무리 강하고 굳건하더라도 달라질 게 없다. 그를 선두로늑대를 향해 달려오던 무수한 환수들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었으니까.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이는 영원의 힘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한 것.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눌렀을 뿐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위에서 아래로 작용한 것. 그리고 그 정체는 단순한 마력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 단순한 마력이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도 조여왔다는 것. 위아래로 작용한 힘에 달리던 그대로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침음한 백록은 과연이라고 생각했다.
아까의 괜찮겠냐는 물음은 늑대를 향한 게 아니라 환수들을 향한 것. 저렇게 날뛰고 있는 이들을 다치지 않게 진정시킬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거기에 늑대는 시간을 동결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답했다. 넘어지지도 않았으니 다칠 일은 없으리라. 한숨을 내쉰 백록은 뒤늦게 안도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환수들의 눈에서 투지가 사라지지 않았음에 다른 의미로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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