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406화 (406/407)

〈 406화 〉 #201.5 이은하

* * *

샤아아아­

샤워기로부터 흘러나온 따뜻한 온수가 스며드는 듯이 몸을 적신다. 이미 비누칠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샤워는 진작에 끝났는데 차마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왜냐하면, 밖에선 알파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왜, 왜 이렇게 됐지?'

싫은 게 아니다. 오히려 바라왔던 일이지만 조금 갑작스럽다. 굳이 말하자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사건… 그렇게 불러도 될진 모르겠지만 일의 발단은 물론 자신이 원인이었다.

벌써 반 년이나 지났는데 왜 진도를 나가지 않느냐는 여동생의 말에 욱해서 술김에 전화하고 만 것.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세 달이었으니까.

첫날. 심지어 그 당일날 밤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괜히 전화했다가 홍 팀장님이 "알았다."고 전화를 끊어버렸을 때도 불안하긴 했지만 금세 헤벌쭉 웃어버렸다.

그 날은 두근거려서 잠이 오질 않았다. 그 날뿐만 아니라 이틀, 사흘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까지도 그랬다. 매일같이 잠을 설쳐서 대체 뭐하고 다니느냐고 한 소리 들었을 때까지도 웃고 다녔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자 슬슬 불안해졌다. 알파를 보기는커녕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클랜은 그만두고 싶었지만 갑자기 일에 치이게 돼 말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휴일도 없이 나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모르게 불안해지고 말았다.

아주 가끔.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오는 알파와 환계에서 만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래도 만족할 수 있었다. 원래 크게 욕심은 없었으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뭔가가 쌓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동생한테 진짜 사귀는 거 맞냐고 한 소리 들었을 때 자각하고 말았다.

이건 여태까지와 다를 게 없지 않느냐고. 함께 있어서 좋고 행복했지만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연인같은 일. 서로 달콤한 말을 속삭이거나 함께 다니며 즐기는 것. 물론 알파가 사람은 아니었으니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없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동생에게 쏘아붙였다. 왜 괜히 그런 소리를 해서 사람 심란하게 만드느냐고.

그러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이, 그 발랑 까진 것이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술을 가져왔을 때 미쳤느냐고 혼내기는 했지만 금세 휘말리고 말았다.

그래서 하필이면 주량 이상으로 마시고 말았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을 신기하게도 술기운에는 잘만 나불거릴 수 있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기억해도 잊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침에 깨어난 자신의 핸드폰에는 새벽동안 무려 2시간에 달하는 긴 통화 이력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자만이 남아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문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먼저 샤워하라고 들여보낸 점이나 여기가 호텔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 어쩌지."

연인다운 일을 원하긴 했어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그, 순서라던가 단계라던가 절차같은 게 있는데 너무 빠르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여기서 경험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그건 그것대로 또……

'싫지는 않네.'

샤워실 벽을 짚고 잠깐 생각하던 이은하는 안밖을 번갈아보면서 생각했다. 소율이에게 언뜻 듣기로는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혹시 죽을 수도 있다던가…… 꼴깍 침을 삼킨 이은하는 이내 마음을 굳게 다지고 끄덕거렸다.

이판사판 어디 한 번 부딪쳐보자고.

***

"누구…… 세요?"

샤워실에서 나온 이은하는 멀뚱멀뚱 눈을 끔뻑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강아지였는데 나올 땐 사람이 있었으니까. 몰라서 물은 게 아니라 알파가 정말 사람 모습으로 있는 게 워낙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처음 본다. 그렇다고 듣긴 들었는데 사람이 된 알파는 평소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타, 타잔?'

그래. 타잔같았다. 정말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야성적인 매력이 흘러넘친다는 뜻이었다. 특히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시선에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정말 괜찮겠나?"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순… 없잖아."

서로가 얇은 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뒤엔 생각이 달라졌다.

각오는 이미 다졌을 텐데 부끄러움같은 감정이 뒤늦게 차올라서 가슴이 방망이질쳤다. 결국 그 옆에 조심스레 앉았을 때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등 뒤에 닿아서 어깨 위로 올리는 손이 그 손길이 너무, 너무……!

'너무 야하잖아!'

닿는 족족 소름이 돋았다. 불쾌한 소름이 아니라 녹아버릴 것 같아서. 그 감각을 만끽하던 이은하는 저도 모르게 한 마디 뱉어버리고 말았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된 것 같아……"

그게 재밌었는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 위에 올려진 정말 커다란 손이 목 뒤를 쓸었을 때, 부르르 떨어버렸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원한 게 아니었나."

"……."

"그렇게까지 말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미안하다."

미처 신경써주지 못했다는 알파의 말에 휘둥그레 눈 뜬 이은하는 대체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전에 얼굴이 가까워지고 침대 위에 눕혀지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첫 키스는 참 달콤했다. 녹아버릴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녹아버려서 아까 뭘 물어보려 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설탕을 머릿속에 들이부어진 듯했다. 숨 쉬는 법도 잊어버려서 답답해졌는데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듯 한번 더 입을 맞췄을 때 그제야 숨 쉬는 법을 깨달았다.

……응. 이렇게?

그래.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서로가 서로의 입 속을 게걸스레 탐하면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면 할수록 무르익어간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렇게나, 이렇게나 기분좋은 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

하나하나 가르치는 게 순백의 눈을 즈려밟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설원을 달리고 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함을 자신의 색으로 더럽히는 것.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죄악감에 눈을 감아버렸다.

"여기서 더 해버리면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경고할 셈으로 할 말이었는데 웃어버린 그녀가 자신의 목 뒤를 끌어당겼다. 끌어당긴 그대로 하는 말에 알파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다리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다며 젖은 눈으로 말한 그녀의 눈꼬리가 다정하게 휘었다. 초승달처럼 휜 눈꼬리와 헐떡이는 호흡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말했다.

"얼른, 와 줘."

두 팔 벌려 반기는 모습에 알파는 진작 다졌던 각오를 또 한번 다졌다. 책임감이나 상처주기 싫다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 홍유리가 질타했던 그 생각에 끝까지 책임을 지자고. 언젠가 혹시라도 파탄이 오게 되더라도.

그리하여, 그녀가 덮고 있는 수건을 걷어냈다. 그렇게 드러난 건 가슴 떨릴 정도로 아름다운 나신이었다.

언젠가 생각한 적이 있다. 한 장의 그림처럼 더없이 아름답노라고. 첫 만남에서 자신은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 감정을 이번에도 느끼고 말았다. 부끄러운 듯 조심스레 가리는 손길. 그 몸짓과 외마디 소리에 침을 삼켜버렸다.

어쩌면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상념은 나중에. 불안에 떨리는 눈동자.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맞이하는 게 우선이었다.

가장 먼저 목 뒤를 받쳤던 손으로 쇄골을 타고 내려와 허리를 만졌다.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에 손가락이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헌터라는 거친 일을 하고 있다곤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상처는 다 나은 것 같군."

"상처?"

"그 때, 많이 다쳤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은하가 픽 웃었다.

"그게 언젯적 일인데."

쓰다듬는 손이 옆구리에 가 있었으니까. 늑골이 부러진 게 한 두번은 아니지만 아주 옛날, 처음 만났을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보니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서."

"혹시 신경쓰고 있었어?"

"글쎄."

답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옆구리에 파고드는 감촉에 휘둥그레 눈을 떴을 그녀에게 두 번째로 기습을 가해 입을 맞추었다.

놀란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그녀를 탐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았다.

아까보다도 훨씬 부드럽다. 사람의 피부가 아니라 부드러운 떡을 만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는 건 신기하기까지 했다.

"읏…"

입을 맞추는 와중에도 새어나오는 소리. 아예 틀어막아버리고는 하나 남은 손을 아래로 가져갔다. 유난히 달아오른 아랫배를 더듬으며 더, 더 아래로.

"거긴……!"

소리가 새어나오지 못하게끔 다시 입을 막아버렸다. 불안한 것처럼 떨리는 눈동자에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꽉 닫힌 허벅지 사이를 파고 들어 누구도 도달한 적 없는 곳에 마침내 손이 닿았다.

"……!"

부르르, 떨리는 몸.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 닫힌 틈새로부터 투명한 액이 새어나왔다. 일순간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는 분명 그녀가 가버렸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작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 닫힌 틈새에 살짝 닿았을 뿐인데. 민감한 정도가 아니다. 이미 풀려버린 눈이 데구루루 구르자 난처함을 느꼈다.

그만둬야할까. 아주 잠깐 든 생각은 누워 있던 그녀가 상체를 일으켰을 때 달라지고 말았다.

"……?!"

반대로 저쪽에서 달려들었다. 오히려 자신을 눕게 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하니 이럴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헤헤 웃는 얼굴에 이내 실소하고 말았다.

꼬리도 없는데 새하얀 강아지 꼬리가 붕붕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때? 잘 했지?' 하고 묻는 듯한, 칭찬을 바라는 듯한 모습에 쓰다듬어주었더니 머리를 비벼왔다.

마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한 번 가버리고 난 이후에 부끄러움은 다 잊었는지 강아지처럼 변해 있었다. 종종 그렇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건지 한 번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행위에 집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되갚아줘야 할 테니까. 그 생각에 손가락을 꼬집듯 비틀며 사정없이 희롱했다. 비부를 어루만졌던 손으로 가볍게 엉덩이를 때렸다.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된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옷 위로는 몰랐지만 홍유리보다는 당연히. 그리고 백소율보다도 더 중량감있는, 한 손으론 쥐기 힘든 가슴을 마구 주물렀다.

탄력있으면서도 끌어당기는 듯한. 상반된 감촉을 가진 그것을 희롱하며 만끽해갔다. 그러다 수줍게 부풀어오른 첨단이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약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차마 그 소리만은 부끄러웠는지 입을 가리려했지만 그마저도 용납치 않고 하나 남은 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쓸었다.

정말 중독될 것 같은 감촉이었다. 사람의 피부가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 들 정도로. 특히, 반응이 재밌었다.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입을 가리려던 손을 떨리며 느려져갔고, 결국 다시 비부에 닿았을 땐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소리내는 걸 참은 그녀가 두 번째 가벼운 절정을 맞았을 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아까 그 건방진 행동을 응징이라도 하겠다는 듯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도리도리 젓는 고개와 그 눈꼬리 끝에 찔끔 눈물이 맺혔어도 용서치 않으며 집요하게.

"그, 그만!"

결국 항복 선언이 터져나왔을 땐, 헐떡인 이은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잠시간의 반항을 제압한 알파는 어떠냐는 듯 웃었고, 그 짧은 사이에 이미 네 번에 달하는 절정을 맞아 있었다.

민감하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아마 그 기저에 깔린 건…… 알파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지만 그보다도 가슴을 간질거리게 하는 무언가에 의아해하면서. 잠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자 불안해졌는지 손가락 끝으로 자신을 건드리는 그녀. 그래. 그런 의문보다는 지금에 집중해야한다.

왜냐면, 아직 밤은 길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