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화 〉 #201.5 이은하 (2)
* * *
몇 번인가 이어진 손짓에 반쯤 넋이 나가버린 그녀를 기다려주며 배 위를 쓸었다.
마시멜로같은 피부와는 달리 헌터로써 뛰다니며 잘 단련된 몸. 하루종일 손대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보이는 것에 장난기가 들었다.
손가락을 세워 쿡 찔러보았더니 앗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운에 젖어있던 눈이 현실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숨을 헐떡이던 이은하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리다가 겨우겨우 상황을 파악하곤 말했다.
"나… 혹시 기절했어?"
"넋놓고 있었을 뿐이다. 괜찮나?"
"아, 응. 괜찮은 것 같아."
아마도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시트를 집고 일어나려던 이은하는 복부에 느껴지는 이물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배꼽에 들어간 손가락이 빙빙 돌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
새삼스럽지만 부끄럽다. 서로 알몸으로 이러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다보니 순식간에 나간 진도. 오늘 벌써 어떻게 됐더라. 키스는 물론이고… 정신차리고 생각해보니 뭔가 굉장한 일이 되버렸다.
"손가락. 좀 부끄러운데…"
놓아달라는 부탁에 알파는 픽 웃으며 여태까지중에 가장 깊게 배꼽을 찔러보았다. 화들짝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안듯이 받아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나? 아직 더 할 수 있겠나?"
귓 속 깊숙이 파고드는 물음에 떨어버리고 말았다. 미미하게 끄덕임과 함께 반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응…"
알파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
이제 진짜 시작하는구나.
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버렸다. 해본 적은 없더라도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수음정도는 해본 적 있었으니까.
……알고 있지만. 알고는 있지만 긴장이 고조됐다.
아까 장난치던 게 농담이란 것처럼. 이 조용한 정적속에 한참이나 녹아들었단 것처럼.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다 기다리다 좀처럼 오지 않는 그를 맞아 실눈을 떴다.
조금 늦지 않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알파는 의외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왜 갑자기? 하필이면 지금? 혹시 이제 와 생각이 바뀐 걸까? 그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보았지만 눈 뜨고 기절하기라도 했단 것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혹시 뭔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정말 생각이 바뀌어서?
언젠가, 얼마 전의 그 날이 떠올랐다.
알파가 자신을 받아주면서 했던 걱정. 거기에 숨은 뜻. 자신을 사랑하진 않는다고 했었다. 분명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 거라면. 그래서 멈추려고, 그만두려고 하는 거라면……그것만큼은 싫어. 그것만큼은 절대로 사양이었다.
'홍 팀장님도 소율이도 다 했으면서!'
왜 자신만. 왜 또 나만!
눈을 치켜 뜬 이은하는 먼저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용기를 낸 게 아니라 악에 받쳐서, 없다고 생각했던, 깊은 데 쌓여있던 울분이 몸을 움직이게 했다.
몇 번이고 전세가 역전되듯 알파를 밀쳐 침대 위로 넘어뜨린 이은하는 아직 그가 허벅지 위에 걸치고 있는 수건을 집었다.
1초. 고민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보다 짧았다.
힘껏 수건을 집어던진 이은하는 그 안에 감춰진 것을 쥐었다. 도저히 한 손으로 감싸긴 어려울 만큼 커다랗고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거운 그것을.
"……!"
당혹은 누구의 것이었나. 알파의 것을 단단히 쥔 이은하는 손에 전해지는 뜨거움에 깜짝 놀라 놓아버릴 뻔 했지만 되려 마음을 굳게 먹고는 행동에 나섰다.
평소같았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차오른 울분과 앞서 맛 본 쾌락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뜨거워.
……그러니까 식혀야 해.
그 두 가지 생각에 삼켜버리고 말았다.
***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미뤄놓기로 했지만 너무 확실하게 알아버려서, 그걸 깨달아버려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에 굉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은하가 자신의 것을 물고 있다. 입으로 삼켜서 혀를 굴리고 있었다. 자꾸 이빨이 닿아 한 번에 어설프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 순수한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아서 쾌락 이상으로 만족감이, 대견함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아플 정도로 서 있었기에 전해지는 쾌감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방심하는 순간 놓아버릴 것 같다. 허나,마치 그러라고 보채기라도 하듯 점점 빨라지고 집요해지는 움직임. 새삼스러운 사실이었지만 배움이 빠르다.
직접 겪어보면서 이은하는 점차 움직임을 고쳐갔다.
어설픔은 금세 사라지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수정해갔다. 자꾸만 닿던 이빨은 이제 닿지 않게 돼버렸고 그녀의 혀는 마치 별개의 생물이기라도 하듯 움직였으며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과 입맞췄던 입술은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혀왔다.
츄릅 츄릅
괜스레 뛰어난 청각이 원망스러웠다. 그 탓에 귓가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똑똑히 들려오는 소리가,그 짧은 시간만에 금세 능숙해진 움직임이. 참아보려했지만 이미 그럴 수준이 아니다. 단번에 달리는 쾌감에 결국 고삐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주 잠깐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되는가 싶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정을 토해내고 말았다. 첫 번째 사정이었던 만큼 삼킬 수 있을 만한 양이 아닐 텐데도 이은하는 삼킨 그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이나 목울대가 넘어가고서야 조심스레 떨어지는 그녀. 그러고서도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정이 닫힌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자 그 얇고 기다란 손가락이 입가를 훑더니, 입술 안으로 들어간 검지가 곧 타액만을 머금고 빠져나왔다.
결국 네 번째로 목울대를 넘겼을 때, 넋놓고 바라보고 있던 알파는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이럴 필요도 없었다. 삼킬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왜.
"……봐 줘."
뭘 봐달라는 말일까. 다시 되묻는 것보다도 빠르게 돌아온 말.
"나만! 지금만큼은 나만 봐 줘…!"
그 애절한 부탁에 알파는 탄식하고 말았다.
고작 한 마디 말에 모든 단서가 담겨 있었다. 또한, 말 이상으로 전해지는 감정. 그리고 구태여 그 말을 꺼내게 만들고 만 자신. 그녀라고 자존심이 감정이 없는 게 아닐 터. 수치를 무릅쓰고 했을 말은 그만큼이나 불안하게 만들었단 뜻일 터.
여기서 더 망설일 순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미 한 번 정을 토해냈지만 전혀 기죽지 않은 자신의 것. 아직 시간은 한참이나 남아 있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기꺼이 응했다.
전희는 여기까지. 드디어, 밤의 시작이었다.
***
가냘픈 허리를 쥐고 당긴 알파는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기꺼이 팔을 둘렀다. 시작의 신호는 필요 없다.
두 사람은 이미 준비를 마쳤으니까.
떨리는 이은하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곤 안심하라며 껴안고서는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레 허벅지 위에 걸터 앉았던 그녀의 몸은 단박에 들어올려졌고 그 눈동자에 남은 감정이 놀람만이 되었을 때, 입을 맞추었다.
여태까지보다 더 깊게. 더 길게. 그리고 더욱 오랫동안.
마침내 서로의 얼굴이 떨어졌을 때, 알파는 솔직한 심정을 토해냈다.
"생각해보았다."
"……."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말 안아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은하를 받아줬을 때, 결과와는 상반되게도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진 않는다고 했었다. 스스로 정의한 감정은 친구나 제자에게 품을 법한 친밀감 혹은 대견함. 연인으로서 생각하긴 어려웠다.
홍유리 또한 그 점을 강하게 질타했었다. 물론 홍유리의 경우에는 쓸데없이 또 늘렸다는 개인적인 불만이 컸지만.……언젠가는 파국으로 치닫을 날이 온다. 의무는 다하겠지만 일방적인 마음에 그녀 스스로가 지칠 때가 먼저 올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았다고 이제 와 깨달았다.
불안에 떠는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고 강하게 껴안으며 알파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진작에 그랬는지 아니면 이제 와 이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손을 끌어당겨서 자신의 왼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이은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아까 타버릴 것처럼 뜨거웠던 알파의 것보다도 뜨거워서. 그리고 깜짝 놀랄 만큼 시끄러워서.
"아무래도 오산이었던 모양이야."
그만큼 웃음이 지어졌다. 울분으로 맺혔던 눈물이 어느새 새로 차오른 감정에 벅차 올라 눈꼬리 끝에서 흘러내리고 말았다.
아주 잠깐 여운을 가지고서,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겠나?"
"그거, 벌써 세 번이야.…바보."
"……."
"응. 와줘. 기다리고 있어."
***
이미 한 번 정을 토해냈음에도 기죽지 않은 물건. 마침내 자신의 것이 그녀의 비부와 맞닿았을 때, 약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더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생각에 천천히 움직이면서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틈을 밀어젖히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느리고 또 느리게.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조그마한 꽃봉오리가 조금씩 열리며 자신을 받아들여간다. 조금이라도 물러났다간 금세 닫혀버릴 것만 같아서 허리를 움직였다. 뻣뻣이 선 자신의 것이 점차 그녀를 꿰뚫어갔다.
가장 먼저 느낀 건 충분하다는 점. 몇 번인가 절정에 다다랐던 그녀의 안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젖어 있었다. 누구도 탐하지 못한 영역으로 들어가며 빨려들어가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그 탓에 반사적으로 접합부를 보았지만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아직 귀두의 끝부분도 채 들어가지 않았지만 미끄러지듯 조금씩 들어가는 쾌감이 너무나 강렬했다.
처음 느낀 게 준비가 충분하다는 점이었다면 그 다음으로 느껴진 건 뜨거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것이 그러하듯. 아니, 그 이상으로 달구어져 가고 있었다. 그 열기에 녹아서 하나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귀두의 끝이 완전히 들어가게 되었을 때, 참지 못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 소리에 이끌린 알파가 고개를 들었을 땐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단 것처럼 흔들리는 눈동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격하게 떨리는 동공. 안심하라며 감싸 쥔 손으로 등줄기를 쓸어주었지만, 그게 실수였다.
눈을 크게 뜨며 부르르 떨리는 몸이 명백히 절정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탓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겨우 귀두 끝 부분만 넣었을 뿐이었는데, 서로가 마주 본 자세에 더불어 절정에 달한 그녀의 몸이 떨리자 순식간에 깊은 곳까지 넣어지고 말았으니까.
아차하는 사이에 일어난 그 사고는 이은하에게 두 가지 감각을 선사했다. 첫 번째로는 안쪽이 긁히는 듯 미끄러져 들어와 강렬하게 전해진 쾌감. 두 번째는 순식간에 파고 들어와 예기치 못한 순간에 파과의 아픔을 느끼고 말았다는 것.
"……읏!"
쾌감 그리고 고통. 상반된 두 감각에 입술을 깨문 이은하가 자신의 목 뒤로 두 팔을 두르며 애원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쾌감도 강렬했지만 아픔은 그 이상이었다. 하물며 평범한 크기를 훨씬 넘어선 자신의 것은 원래 느꼈을 아픔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했으리라.
"괜…!"
괜찮느냐고 물으려했지만 눈물을 찔끔거리며 들어올린 고개에 그러질 못했다. 천천히 젓는 고개, 그리고 들려오는 말.
"응. 근데…… 미안. 조금.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돼?"
그리고 아주 희미한 미소를 보았을 때,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
둘로 갈라지는 듯하다.
그런 아픔이었다. 자칫하면 그 아픔에 기절해버릴 만큼 아팠다. 아까의 쾌감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려움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여기서 혹시 더 아프면 어쩌나 하고. 더 해버렸다가 그랬다가 더 아프면 어떻게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참았다.
왜냐하면, 더 아팠던 적도 있었으니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던 때도 있었다. 그건 다쳐서 아팠을 때가 아니라 좀 더 다른 때. 이를 테면 알파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며 거절당했을 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정말 아팠다.
……그래서 견딜 수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처럼 아파할까봐 고개를 들었더니, 처음 보는 알파의 얼굴에 웃어버렸다.
정말, 무슨 얼굴일까. 아연실색해서 질려있는 표정. 그 늠름한 알파한테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얼굴. 내가 그렇게 아팠던 것처럼 아파하고 있는 거구나.
날 아프게 해서, 아파하고 있다고 깨달아버렸다.
그냥 실수였는데. 별 것 아닌데. 저렇게 놀랄 일은 아닌데. 충분히 견딜 만한데.
더 아팠던 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날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니까…… 그게 빈말이 아니라고 표정에서 알 수 있어서 있는 힘껏 웃어보였다.
"응. 근데…… 미안. 조금.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돼?"
힘껏 끌어안는 팔. 서로의 거리가 0이 되었다. 얇은 천 하나 걸치지 않고 이렇게 달라붙어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이은하는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두근두근.
아, 이렇게나 시끄러운데.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 혹시 그게 알파에게 들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두근, 하고서 다른 소리가 끼어들자 쓸데없는 생각임을 깨달았다.
감았던 눈을 크게 뜨고, 고동 소리는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정말 그렇다고 알아차리고 알파에게 기대어 있다가 어느새 고통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씻은 듯 날아간 아픔. 그리고 아픔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내려다 본 이은하는 자신과 그가 연결된 접합부를 보고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정말 전부 다……'
정말 다 들어왔구나. 그게 너무 신기했다. 지금도 턱이 아플 정도로 커다란 알파의 것을 자신이 품고 있음에. 그와 자신이 하나라는 사실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차오른 감정은 서서히 변해갔고 그 사이, 이은하는 갈증을 느꼈다.
갈증. 아니, 갈망. 조금 더 그를 갖고 싶다고 더 함께하고 싶다고 그렇게 느꼈다.
***
천천히 움직인다. 집중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그녀가 열기가 담긴 숨을 뱉었을 때, 알파는 이미 참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넣어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타버릴 것처럼 뜨거운 열기에 녹아서 하나 될 것만 같았으니까. 먼저 입을 맞춰오는 그녀. 애원하는 듯한 행동 이상으로 전해지는 감정에 응해 알파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참을 수 없을 만큼 원하고 있다. 이 강렬한 감정을 전부 부딪쳐서 쏟아내버리고 싶다.
느린 움직임은 점차 박차를 가했고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감싸주는 듯한 그녀의 안쪽을 만끽하며 알파는 허리를 들썩였다.
삐걱거리는 침대. 연신 움직이는 둘. 고조된 감정. 차오르는 열기.
이미 요인은 충분했다. 더없이 서로를 원하고 있다. 탐하고 또 탐하며 알파는 망설이지 않고 정을 토해냈다. 그녀의 안쪽을 자신의 색으로. 그리고 그녀를 자신만의 것으로. 감정을 자각한 뒤에 찾아온 독점욕이 그렇게 하라고. 해버리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깊은 곳까지 닿아 두드리며, 정을 토해내느라 한껏 부풀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마저도 행위를 돕기 위한 요인으로 삼아 더더욱 빠르게 움직여갔다.
"읏, 읏, 읏……!"
쉴 새 없이 떨리는 몸. 한 번 닿았을 뿐인데 절정에 다다랐을 만큼 민감했던 그녀가 이미 몇 번이나 가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금세 초점은 흐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애타는 듯 입을 맞추고 혀를 섞어오는, 더 바라는 애원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응하지 않고선 참을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했던가. 아니, 돌이키도록 두지 않으리라.
지금 자신에게 안겨있는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색으로 확실하게 물들이고 말리라. 채워지지 않을 갈증과도 같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게걸스레 그녀를 탐했다.
앳되면서도 넋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운 얼굴. 매끄러운 목덜미와 알게 모르게 부각되는 쇄골. 한 손으로 전부 쥐기 어려운 가슴. 비틀 때마다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첨단. 잘록한 허리와 빠져드는 듯한 피부의 감촉. 살이 붙은 허벅지. 놓고 싶지 않은 둔부. 질척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접합부. 젖은 목소리와 자신을 빠져들게 하는 눈동자까지 전부 다.
"이젠 내 거다."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자신의 것. 욕망과 쾌감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이 한껏 치솟아올랐다.
"읏……!"
그리하어, 그녀의 양 허리를 쥐고 보다 격하게 움직였다. 허리를 들썩였다. 자신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녀 또한 움직이자 알파는 세 번째 정을 토해내었다. 생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렬한 쾌락에 젖어 흐리멍덩해진 눈동자에도 불구하고 제동은 걸리지 않았다.
"!"
***
기나긴 밤이 끝나고, 녹초가 된 이은하와 같은 침대에 드러누웠을 때 정말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시트는 갈았고 환기는 시켰지만 아직 열락의 흔적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있잖아."
거의 실신하다시피 했던 그녀가 지친 목소리로 물어왔다. 고개 돌린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순진무구해보여서 아까까지 그런 일을 했다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있잖아. 오늘 왜 갑자기 여기로 온 거야?"
부추기는 걸까. 아니, 그러기에는 너무 순진하게 묻는 듯해서 오히려 의아해진 알파는 되물어보았다.
"기억나지 않나?"
"……그게, 사실 잘 안 나서."
술기운에 전화했다는 것과 아침에 일어나니 문자가 있었다는 말. 눈을 끔뻑이던 알파는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실소했다.
"네가 원한 거 아니었나. 꿈에선 이랬다면서. 근데 왜 아무것도 안 해오느냐고 울고불고 소리치고……"
"……."
"나한테 매력이 없냐는 둥 혹시 싫은거냐면서 울면서 소리쳤던 거 기억나지 않나?"
떨떠름하게 끄덕인 이은하의 반응에 그럼 들려주겠다며 입꼬리를 끌어올린 알파는 잘 쓰지도 않는 핸드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나아아… 너어어랑 하고 시푼 거 얼마나 마눈데…]
[왜에에에! 끊지 마아아! 하자고오오오~! 응? 응?!]
순식간에 홍당무가 된 이은하는 핸드폰을 뺏으려 날뛰었지만 그런다고 뺏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아공간속으로 사라져가는 핸드폰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다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당기고 말았다.
"이것 말고도 더 있는데. 2시간… 3시간이었나? 제법 길게 전화했으니까."
이불 속에서 이은하는 귀를 막아버렸다. 근데도 이상하게 파고드는 듯한 목소리. 결국 참다참다못해 달려들었다가 붙잡히고선.
"벌써 기운차렸나?"
그럼 이차전으로 가자는 말에 농담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참고로, 나는 밤에는 농담하지 않아."
너무나도 진지한 말과 함께 돌아온 건 아까보다도 더 진하고 뜨거운, 실신해버릴 정도로 지나치게 과열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