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화
Prologue.
미풍이 불어올 때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고 했다.
지금은 여우비가 그친 뒤라 하늘은 여전히 맑았지만 축축했다. 차가운 빗방울이 풀을 적셔서인지 젖은 흙냄새와 풀 내음이 꽤 향긋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는데, 참으로 차 마시기 좋은 날씨였다.
“레일라, 나 할 말 있어.”
앞에 앉은 사람은 내 언니였다.
언니의 이름은 시베르 아비에르. 아비에르 백작가로 입적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데려온. 시기상으로 보면 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중에 태어난, 외도의 결과물이었다.
“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백작가에 언니를 데리고 들어왔다. 언니의 어머니도 함께.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은 거야?”
시베르 언니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하면서도 말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포기하기를 몇 번이었다.
“레일라, 너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다 용서해 주기로 했지?”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원작의 순진한 레일라 아비에르가 했던 말이었지.
“그럼. 대체 뭔데 그래? 나 이제 무서워지려고 해.”
하지만 나는 지금 레일라 아비에르였기에, 본래의 그녀처럼 유약하고 안쓰러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미안해, 레일라.”
“언니, 대체 왜 그래?”
테이블 위로 올려진 시베르의 손 위로 내 손을 포갰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뒤집으며 내 손을 아주 꽉 잡았다. 무심결에 놓을 뻔했지만, 애써 잡으며 눈을 마주했다.
언니는 까만 머리카락에 바다처럼 푸른 벽안을 가진 단아한 미인이었다.
“나 임신했어.”
“뭐?”
“소네트의 아이야.”
그 순간 머릿속에 종이 뎅- 울리는 기분이었다.
어떤 종이었냐고?
환희의 종!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미안해, 레일라.”
“내 결혼이 1달 남았는데…….”
“미안해…….”
소네트는 내 약혼자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달에 결혼하기로 했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까.
“이해해 줄 거지?”
물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언니가 내게서 뺏어간 남자는 셀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내게서 10명째의 사내를 뺏어간 순간부터 숫자를 세지 않았다.
이제 남자를 뺏기는 건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소네트가 네게 많이 미안해해.”
“언니…….”
이렇게 바보여서 어떻게 해.
너무 고맙네.
다음 달에 정말 결혼하면 어쩌지 걱정했건만,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윽……. 너무해…….”
“미안해, 레일라.”
눈물이 나질 않아서 애써 울먹이는 척 목소리를 낸 뒤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스르르 흘러내려서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우리, 예전처럼 지낼 거지?”
언니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파렴치하게도.
“몇 개월이야?”
“2개월.”
2개월이면 소네트가 나와 살 집을 알아보던 때였다.
“그렇구나.”
“미안해, 레일라. 정말로……. 하지만 소네트도 너보단 내가 좋다고 했어. 나도 처음엔 네가 생각나서 거절했는데…….”
우는 척하기 위해 어깨를 떨었다. 그러자 그녀가 한숨을 쉬다가 말을 이었다.
“소네트와 나는 운명이야, 레일라.”
“언니.”
“네가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으면 너만 불행해질 거야. 그러니까, 응?”
언니가 조급한 듯 말을 이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게 양보해 줘.”
“언니, 그건 너무 잔인해.”
“하지만 넌 얼마 살지 못하잖니. 소네트가 무슨 잘못이야. 소네트가 가엽진 않아?”
순간 정말로 화가 나서 얼굴을 들 뻔했다.
고개를 들려다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니의 얼굴을 확인했다.
슬픈 얼굴이었다. 가증스럽게도.
“그래. 알겠어.”
“고마워, 이해해 줘서. 그래도 우리 예전처럼 지내면 좋겠어.”
애써 눈물을 훔치는 척 눈을 세게 닦았다. 때문에 눈가가 몹시 따가웠다. 방금 울었던 사람처럼 붓도록 아주 세게 비비고선 고개를 들었다.
“당연하지, 언니. 정말 축하해.”
지옥으로 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