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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화 (3/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화

“그게 무슨 소리야, 소네트?”

휴고가 그에게 건방지다는 듯 대꾸했다.

실상 소후작이 백작가의 장남인 휴고보다 직위가 높긴 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그저 휴고가 무례하게 굴면서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거라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둘이 무언가 모종의 관계라 저러는 걸지도 모르니까.

거기에 로날드 백작가는 막대한 부자였다. 어쩌면 브루스 후작가에서 빚이라도 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런 태도가 이해가 되긴 하는데.

그래도 지엄한 신분의 벽이 있건만.

“말 그대로입니다. 원래 이렇게 무례하셨냐고 물었습니다.”

소네트가 내 편을 드는 게 이상했다.

아직 약혼은 확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생에선 내가 그와 약혼하지 않겠다며 휴고에게 이리저리 휘둘려 다녔기 때문에 약혼하지 못했다.

‘휴고, 나 정말 이러다가 다른 사람이랑 약혼할지도 몰라. 제발…….’

그때 나는 휴고가 내게 돌아올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약혼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가 내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을 걸 믿는 지금과 다르게.

“로날드 영식께선 아비에르 영애에 대해 잘 모르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시죠?”

“잘 모른다고? 내가 레일라를?”

휴고는 그의 말에 코웃음 치며 말하려 했다.

“그만.”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내 기분은 더러울 게 뻔했다. 그래서 일부러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식사 때 언쟁하지 말죠.”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휴고가 대놓고 비웃고 있었다. 시베르 언니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식탁 위로 올라온 휴고의 예의 없는 팔을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내가 레일라를 왜 몰라? 레일라가 나한테 사랑한다며 매달린 게 몇 번인데.”

참고 참으면 참기름이 된다.

이전 생에서 나는 참기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휴고의 상단에서 운영하던 배가 침몰해서 손실이 크다고 들었어. 그거 때문에 지금 예민한 거야?”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기는. 곧 다 퍼질 소문이었다. 다만 이전 생의 나는 돈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가 안타까운 마음에 내 지참금까지 끌어다 주고도 눈길조차 받지 못했지만.

“우연히 들었어. 너야말로 언니와 결혼하게 되면 돈이 필요할 텐데, 한 몇 년은 어렵겠다.”

“너……!”

“어떡해…….”

휴고는 화가 나면 미친놈이었다. 그렇기에 말을 덧붙여야 했다.

“언니도 알고 있는 거지?”

“어? 아…… 응.”

언니는 몰랐을 것이다.

휴고는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 그가 언니를 선택하면서 자랑했던 부분은 재력이었다.

그러니 그 자랑하던 재력이 지금 본래의 상황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들킨다면, 시베르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언니는 매번 내 것을 갖고 싶어 했지만, 가진 뒤에 쓸모가 없으면 금세 정리하곤 했었다. 그래서 지난 생에서 나는 휴고와 다시 만났다가 헤어졌다를 반복했었다.

언니가 그에게 관심이 사라지면 그는 내게 돌아왔다. 그러다가 다시 언니가 그에게 관심이 생기면 다시 언니에게 갔다.

휴고는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도 언니, 정말 부러워.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언니 생일을 위해 이렇게 온 거잖아.”

나는 정말 부러운 듯 말하며 시선을 내렸다.

소네트가 어찌나 집요하게 바라보는지 그의 금색 눈동자가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정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손실이 얼마입니까?”

소네트의 물음에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치켜뜨고 나를 보던 휴고의 관심이 소네트로 향했다.

“왜, 네가 도와주게?”

“예. 레일라 영애에게 하신 말실수를 사과하신다면요.”

“그게 얼만 줄 알고?”

“이던 상단에서의 일이라면 저도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 손실 금액 전부를 빌려드리죠.”

역시 이상하다. 소네트가 나설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나서는 것이 의아했다. 게다가 아직 우린 약혼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게다가 보아하니 소네트는 빚을 질 만큼 돈에 곤란해 보이지도 않았다. 채무 관계도 아닌데 휴고가 어떻게 저렇게 막대할 수 있는 거지?

“하, 그래. 미안하다, 됐어? 내가 아주 죽을죄를 지었네!”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로날드 백작 영식.”

소네트가 낮게 뇌까리자 휴고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쉬운 조건에 그런 막대한 돈이라니! 나라면 열 번 사과하라고 해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휴고가 괜히 사과했다가 돈을 받는 건 곤란했다.

“휴고는 그런 거 못 해요. 브루스 영식.”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러면 당연히 더 사과하기 어려워진다.

휴고는 자존심이 아주 센 사람이었고, 판을 깔아 주면 자존심을 굽혀야 할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하기 훨씬 어려워진다.

마치 잘못한 뒤 곧장 사과하는 건 쉽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엔 어려운 것처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레일라에 대해 잘 알고 싶어 했던 건 소후작 아니었어?”

“잘 알고 싶다고 했지, 모욕하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이게 왜 모욕이야? 레일라는 이전에 나와 교제했었어. 그리고 그때마다 시베르를 괴롭혔다고. 쟤는 이 정도 모욕도 싸.”

“로날드 영식!”

소네트가 화가 난 사람처럼 식탁을 탁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물러가죠. 앞으로도 뵐 일이 없길 바랍니다, 로날드 영식.”

“아, 자, 잠시만요!”

먼저 나선 건 시베르 언니였다.

“오늘 제 생일인데……. 왜들 싸우는 거예요?”

언니는 마치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소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네트가 아차 싶었던 건지 입술을 달싹였다.

“방금 했던 대화는 서로에게 미안한 이야기에요. 그렇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휴고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소네트 브루스까지도.

“그러니까 서로에게 잘못한 일은 덮기로 해요. 네?”

언니의 노력이 우스웠지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에 나도 마저 말했다.

“그래요, 우리. 언니 생일에 이런 대화는 좀 아니었어요. 미안해, 언니.”

“아니야, 레일라.”

“내가 너무 눈치도 없이 여기 온 거 같아. 내가 낄 자리가 아닌데.”

“아니야. 내가 와 달라고 부탁한 거잖아.”

그래, 네가 부탁한 거지. 휴고와 얼마나 가깝게 지내는지 내게 보여주고 싶어서.

“브루스 영식도 가지 말고 함께 있어요.”

그러자 소네트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민망한 식사 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나로서는 참 만족스러웠다. 언니의 생일이었고, 휴고가 파산 위기라는 걸 알려주기도 했으니.

그렇게 어색한 식사가 끝날 때가 되었다. 나는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에 나온 디저트는 초콜릿 파르페였다.

언니가 좋아하는.

나는 찬 걸 잘 먹지 못한다. 먹으면 머리가 아팠고, 거기에 병자라서 그런지 그리 많이 먹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걸 먹으면 기껏 생기롭게 칠해 둔 분홍색 입술이 다시 진줏빛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꽤 번지고 먹어서 본래의 색이 남아 있진 않겠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네트는 아까 이후로 계속 이쪽을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그리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진 못했다. 그는 원작에서 후회 서브 남주였으니까.

원작의 결말 때, 그는 나와 약혼했다. 지난 생에서 나는 그것을 거부했었지만.

원작에서 그가 나와 약혼했을 때 시베르 언니가 진심으로 사랑한 남주는 소네트였다.

하지만 소네트는 뼛속까지 귀족이었기에, 평민 출신인 시베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계속 모른 척했다. 그리고 시베르가 황제가 된 레이니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나서야 제 마음을 깨닫는 후회 서브 남주였다.

단순히 후회하고 끝난 게 아니라 후회하면서 어찌나 처절하게 붙잡던지 원작을 읽을 때 그를 욕하면서도 안타깝게 생각하긴 했었다.

그래서 대충 읽었었다. 소네트야말로 고구마 후회 남주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소네트는 언니와 이뤄질 리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거기에 둘은 이루어진다고 해도 절대 행복하지 못할 관계였다.

소네트가 혈통에 집착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제 자리를 서자에게 빼앗길 뻔했던 일 때문이었다. 독살 시도나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던 시도도 있었다. 그리고 자객이 들었던 적도.

그런 그였기에 평민 출신의, 그것도 운 좋게 귀족이 된 사람을 순조롭게 사랑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만약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평생 그 부분은 버리지 못할 것도 뻔했고.

“이거 아주 맛있네요.”

“그렇습니까? 제 것도 드시겠습니까?”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소네트에게 나도 똑같이 웃어 주었다.

언니는 내가 가진 건 다 갖고 싶어 한다. 내가 소네트를 가지겠다 하면, 소네트도 마찬가지겠지.

“네, 좋아요.”

그러자 그가 손도 대지 않은 파르페를 내게 밀어 주었다. 그것을 받으며 수줍게 웃는 낯으로 눈을 맞추다가 언니 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니의 눈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기묘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브루스 소후작님.”

“소네트라고 불러 주십시오.”

“네, 소네트. 혹시 이따가 저를 방으로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혼자 걷는 게 조금 힘들어서요.”

“네, 물론입니다.”

그가 예쁜 금안을 반짝이며 눈매가 휘어지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두 번째 후식을 가져왔습니다.”

엘라가 나타났다.

언니의 생일을 완벽하게 망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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