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화
두 번째 후식은 타르트였다. 본래는 차가운 게 더 늦게 나오지만, 지금은 언니 생일이었기에 언니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나오고 있었다.
언니는 내 옆에 있었다. 언니의 앞에는 휴고가, 내 앞에는 소네트 브루스가 마주 앉아 있었다.
타르트가 나오고 나는 서빙하느라 잠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엘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베르가 나를 따라 엘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엘라의 뒷주머니 끝에 걸린 은색의 목걸이 줄이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언니가 아끼는 목걸이는 디자인이 특이했다. 세공된 체인에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꼬임이 들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일부분만 삐져나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너!”
언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엘라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엘라의 허리춤 근처를 꽉 잡았다.
“아가씨?”
“이 도둑!”
언니가 가장 싫어하는 건 평민이었다. 엘라는 준귀족이었으나 백작가의 귀족이 된 언니 입장에서 엘라는 평민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가씨?”
근처에 있던 시종장이 놀라서 시베르 언니의 근처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베르 아가씨?”
“엘라가 내 목걸이를 훔쳐 갔어.”
“예?”
“무슨 소리십니까, 아가씨!”
엘라가 당황하며 시베르가 잡은 옷을 놓게 하려고 했다. 그러자 시베르가 더 꽉 잡으며 소리쳤다.
“감히 내 생일에 내 보석을 훔쳐?”
“무슨 소리세요, 아가씨!”
그러자 시종장이 근처에 있던 시녀장에게 이리 오라고 했다. 시녀장인 멜리샤가 시베르 옆에 서더니 엘라를 바라보았다.
“따라오거라.”
“여기서 확인해, 멜리샤.”
“아가씨, 손님이 와 계십니다.”
“아랫사람이 잘못하면 바로잡아서 귀감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시베르가 그렇게 말하자 멜리샤가 당황했다. 손님이 있는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에선 시베르가 당당하게 나올 때마다 모든 남자가 그녀에게 반한다.
시베르는 겉으로는 당당하고 멋지지만 속은 여리고 착한 겉바속촉 캐릭터였다.
실상은 흑막 악녀였지만.
“멜리샤, 오늘 언니 생일이잖아. 언니한테 속상할 일이라면 언니 결정에 따라줘. 응?”
언니가 겉바속촉이라면 나는 겉촉속바 전략으로 가겠다.
“레일라 아가씨…….”
엘라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베르의 친엄마이자 내 새어머니인 현 백작 부인께선 엘라를 꽤 총애했다. 엘라가 나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게 많았고, 꽤 충성스러운 부하이기도 했으니까.
‘엘라, 제발……. 나, 이 약을 먹으면 죽어. 흐윽, 제발 어머니께 말하지 말아 줘, 응? 나 죽기 싫어……. 제발…….’
‘그건 아가씨 사정이죠.’
이전 생에서 약을 몰래 버리다가 걸렸을 때, 엘라는 내 사정 같은 건 고려해주지 않고 그대로 일렀다. 때문에 약의 농도는 몇 배나 진해졌고, 나는 원작보다도 더 빨리 죽었다.
약을 거부하면 억지로 먹이기도 했고.
‘아가씨는 대체 왜 살고 싶으세요? 아가씨 애인도 아가씨가 싫다고 떠났고, 이 집에서 누구도 아가씨 편은 없어요.’
‘윽…….’
‘그런데도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때는 더 심한 막말도 일삼았다. 대꾸할 기운조차 없을 때엔 더 악랄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고.
나는 그저 듣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엘라의 몸수색하는 걸 놓쳤다. 이미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녀장인 멜리샤의 손에 시베르 언니의 가넷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엘라, 너!”
“아, 아니에요! 이게 왜 거기 있는 거지……! 저, 저는 정말 모, 모르는, 모르는 일인데……!”
“하.”
시베르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엘라를 노려보았다.
“아가씨! 전 정말 아니에요!”
-짝!
“겨우 보석 때문에 도둑질을 해? 준귀족이 자존심도 없니?”
“아가씨!”
시베르가 소리치자 엘라는 맞을 뺨을 감싸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제가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멜리샤.”
“예, 아가씨.”
멜리샤가 당황한 듯 시베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걸 치안대로 데려가.”
“아가씨! 시베르 아가씨! 안 됩니다! 치안대는 안 됩니다!”
그렇게 엘라는 발이 질질 끌린 채 백작가 기사들에게 끌려 나갔다.
치안대로 끌려가면 수도 경비대로 넘겨질 것이다. 도둑질을 했으니 판사에게 형량을 받겠지.
몇 년 전에는 벌금을 내고 무마했던 것이, 요새는 개척지가 생기는 바람에 강제 노역으로 바뀌었다.
엘라는 아마 이대로 끌려간다면 사막의 개척지로 보내져 중노동을 해야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거 실례가 많군요. 사용인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다니.”
시베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위엄 있는 척 자리에 앉았다.
멍청한 휴고는 그런 그녀가 자랑스럽다는 듯 보고 있었다.
“아랫것들이 그렇지 뭐. 조금만 잘해 주면 기어오른다니까.”
기어오르기 전문인 휴고가 그렇게 말하는 게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그도 사람의 빈틈만 보이면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가 기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목걸이 이리 가져 와. 내가 이걸로 바꿔 걸어 줄게.”
“응.”
휴고가 일어서더니 자리에 앉은 언니의 옆에 섰다. 그리고 언니가 매고 있던 목걸이를 손으로 풀어냈다.
그러면서 나를 보는 시선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서 일부러 정면을 보았다.
“레일라가 부러운가 봐.”
“어머, 이 목걸이가 부러운 거니?”
“아니. 타르트가 식어서.”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일부러 보란 듯이 포크로 타르트를 잘랐다. 그대로 입에 넣으려는 순간 소네트 브루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눈이 마주쳐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옆에서는 이미 언니의 목걸이를 바꿔주는 게 끝났는지 휴고가 자리에 앉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이런 건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이건만.
물론 언니의 이런 당당함도 원작에서는 참 잘 먹혔다. 원작의 남자 주인공인 레이니어가 언니의 이런 면에 홀딱 빠지니까.
그러면서도 가끔 보이는 연약하고 지켜주고 싶은 모습에 남주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니.”
“응?”
“나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이만 올라갈래.”
“괜찮아, 레일라?”
“응.”
머리가 정말로 어지러웠다. 아무래도 휴고가 있는 곳에서 뭘 먹어서 얹힌 것 같기도 했다.
“아프다고 하면 눈길이라도 줄 거 같아서 그래? 넌 언제나 그렇게 약한 척하더라. 약하지도 않으면서.”
네 관심은 필요 없어요.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 괜찮…… 아니, 네 그래 주시면 고맙죠.”
소네트가 일어나자 시베르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 내가 소네트에게 계속 관심 있는 척한다면 휴고가 버려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소네트 브루스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내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있음에도 그와는 차이가 꽤 났다.
그럼 뭐 해. 이 후회 서브 남주는 인성이 쓰레기다. 괜히 잘생긴 외모에 홀랑 넘어가면 나만 바보 되는 것이다.
이제 남자는 필요 없다. 나는 그저 죽고 싶지 않았고, 그렇기에 이대로 당하며 살진 않을 것이다.
“제 팔을 잡으십시오.”
“아, 네.”
그가 팔짱을 끼라는 듯 팔을 내밀어 보였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갑자기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레일라 영애!”
“윽…….”
소네트 브루스가 나를 안듯이 잡아서 넘어지진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대로 넘어졌다면 최소 뇌진탕이었을 거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예? 앗…….”
그가 나를 안아 들고선 그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언니의 표정에서 더는 휴고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계획대로 되어가는 건 기쁜 일이다. 내 몸이 좋았다면 더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가뜩이나 어지러워서 죽을 거 같은데 그가 움직이면서 몸이 흔들리자 울렁거려 생각조차 힘들었다.
“조금만 천천히 걸어 줘요.”
“예.”
천천히 문 밖으로 나가는 그에게 매달리듯 옷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땅으로 추락할 것처럼 울렁거렸다. 게다가 시야는 마치 암흑이 깔린 것처럼 어두워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영애, 정말 괜찮은 겁니까? 식은땀이 납니다.”
“괜찮아요. 이런 일은 자주 있으니까.”
그래도 이번엔 피를 토하진 않았으니 다행인 거다.
약을 버리는 걸 들키지 않고 계속 버텼다면 22살까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21살에 죽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다가 몸에 점점 힘이 풀렸다.
“방 안까지는 어려울 거 같은데……. 레일라 영애?”
“…….”
“레일라 영애!”
나는 그렇게 기절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