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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6)화 (6/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6화

레이니어 이그나시오 지크문드.

그는 지크문드 제국의 숨겨진 황자였다. 황제가 그를 숨긴 이유는 그가 죽은 황후의 유일한 적자였기 때문이었다.

선황후는 누명을 쓰고 죽었다. 또한 그녀가 죽을 때 그녀의 아들도 함께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선황후가 죽자 그녀를 모함했던 일들은 전부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은 받지 않았다.

예전에는 황비였던 현황후는 자신이 벌인 이 일을 제 수족 몇을 잘라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현황후의 세력이 워낙 막강했기에.

그래서 황제는 제 아들이 살아있다는 걸 알았어도 그를 바로 공개하진 않았다. 그가 완전히 클 때까지.

그런 연유로 그는 신분을 숨긴 채 수도에 살고 있었다. 분명 원작에서 신분을 숨기고 산다는 것까지는 똑같았다. 

그렇지만 원작에서 언급됐을 때의 그는 이미 황궁에서 살고 있었고, 적자라는 것도 증명해 황태자 자리까지 금방 올라간다.

그리고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즈음엔 황제도 서거하고 황위에 오른다. 제 원수인 황후도 제거해 버리고.

그런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진찰을 해야 하니 다른 분들은 나가시죠.”

“아가씨와 단둘이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캐서린의 말에 레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레이니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유가 뭡니까? 저는 의사인데요.”

레이니어의 말에 캐서린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변명을 생각해 내려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여인이니까요. 남자인 당신과 둘이 있게 할 순 없습니다.”

“왜? 지금까지 다른 의사들은 그냥 뒀어.”

엘라는 그랬다. 그녀는 내 방에 어떤 의사가 왔다 가는지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그 의사가 수당만 받고 제대로 검진하지 않을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엘라였다. 엘라는 내게 ‘인어의 눈물’을 타다 먹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가씨.”

“캐서린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의사잖아.”

이 사람은 레이니어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머리색은 그렇다 치더라도 붉은 눈인 게 이상했다.

붉은 눈은 흔치 않았다. 내가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딱 한 사람 보았으니까.

“그리고 검진하는 것뿐이니까 굳이 옆에 있지 않아도 돼.”

“……예.”

캐서린은 의사를 한번 보다가 대답했다.

이 사람이 정말 레이니어가 맞는지 확인은 필요했다.

맞다면.

그렇다면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이었다. 곁에 둔다면 더 좋고.

-달각

문소리와 함께 캐서린이 다른 하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방에는 나와 레이니어 둘만 남아 있었는데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투성이었다.

무슨 일인지 나와 약혼하려는 소네트. 거기에 레이니어까지 무슨 이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원작에선 그가 의사로 위장해 있다는 말도 본 적 없었다.

아니, 어쩌면 초반만 읽고 바로 완결로 가서 읽어서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중반부는 대체로 다 겪었지만, 일찍 죽어서 빈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그 시기에 의사로 위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전생에 본 레이니어의 모습은 흐릿했다. 그땐 독에 중독돼서 눈이 어두워져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사람과 친해져서 피만 먹을 수 있다면 나는 잃었던 건강도 되찾고 칼도 들어가지 않을 완벽한 몸이 될 것이다.

“손을 주십시오.”

의사처럼 가운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의사로 보이는 듯했다.

이 소설에서 신기한 것은 중세의 의사들인데 가운은 의사 가운이었다. 안에는 정갈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중세라면 이상한 부리 같은 게 달린 가면 같은 걸 뒤집어쓰는 이미지인데. 완벽한 중세가 아니라서 그런가.

“맥박을 재려는 건가요?”

“네.”

대부분의 의사는 청진기를 이용해 쟀던 거 같은데 그는 손목을 이용해 재려는 것 같았다.

“청진기는요?”

“이거 한 다음에 하려고요.”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웃는 걸 보니 정말 남자주인공이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본 적 없을 뿐더러 미소까지 완벽했다.

게다가 계속 바라보니 어딘지 이상하게도 그의 말을 거역해선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본능적으로 그가 나보다 윗사람인 걸 느끼는 것처럼.

“손이 참 작으시네요.”

“진찰한다면서요.”

“네.”

그는 내가 뻗은 손을 살며시 잡다가 뒤집었다. 손목 위로 손가락을 올리고는 기다리는 듯했다. 그런 식으로 맥박을 잴 수 있는 건 나도 아는 상식이었다.

그는 이내 잡았던 손을 내리더니 침대 끄트머리에 앉으며 손을 뻗었다.

“왜 그래요?”

“목에 있는 맥박도 재 보려고 합니다.”

“그래요.”

그가 잠시 일어났을 때 보니 키가 아주 컸다.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 와서 본 사람 중 최장신이었다.

손도 정말 크네.

“읏…….”

“불쾌하십니까?”

“아뇨. 따뜻해서 놀랐어요.”

그의 손이 목에 닿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따뜻했다.

이로써 확신이 들고 있었다. 남들보다 유독 따뜻한 체온, 거기에 붉은 눈, 그리고 아주 큰 키.

원작 묘사 그대로였다.

등 뒤에 난 화상 자국도 확인할 수 있으면 더 확실해질 텐데.

“레인, 어떤 사정 때문에 아비에르 백작저에 머무시는 거죠?”

“어떤 사정이요.”

“네?”

“아주 중요한 어떤 사정이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목에 닿았던 손을 뗐다.

그리고 정말로 청진기를 걸고선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레이니어가 다가오자 나는 자연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벗으려 했다.

“뭐 하십니까?”

“옷이 두꺼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그렇죠. 네.”

당황한 듯 말하는 그를 바라보다가 겉옷을 벗었다.

점점 의심은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허술하게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 의사라면 환자들의 얇은 옷차림은 자주 봤을 테니까.

“아비에르 백작저에는 얼마나 머무시는 거죠?”

“반년 정도 예상합니다.”

“그렇군요.”

잠시 침대 밖으로 나와 코르셋의 줄을 쭉 풀자 한꺼번에 벗겨졌다. 네글리제만 입은 채 다시 침대로 돌아와 앉았더니 그가 청진기를 꽉 잡고 있었다.

“손을 떠시네요.”

“술을 좀 마시고 와서요.”

긴장하면 아무 말이나 하는 걸 보니 남주 맞네.

“숨을 잠시 참으시죠.”

그의 말대로 숨을 잠시 참았다.

“천천히 내쉬세요.”

시키는 대로 몇 번을 그렇게 숨을 쉬었다. 그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청진기를 떼고선 말했다.

“건강하시네요.”

돌팔이.

“네.”

하지만 레이니어의 피만 구하면 정말 건강해질 것이다.

“앞으로 매일 와 주시는 거죠?”

“네.”

그가 그렇게 웃으며 말하다가 짐을 챙겼다. 다 챙길 때까지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가려던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휴고 로날드 백작 영식이랑은 완전히 끝난 겁니까?”

“예?”

“정말 완전히 헤어진 거냐고요.”

“아……. 네.”

그는 그 말을 듣고서도 내게 말을 더 해 달라는 듯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덧붙였다.

“네, 완전히 끝났어요.”

“다시 붙잡고 싶진 않으세요?”

“전혀요.”

“그렇군요. 좋습니다.”

그는 그렇게 웃고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살아 있을 때 봬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나가 버렸다.

어쩌면 그가 이미 언니나 새어머니에게 매수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만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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