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화
레이니어가 문을 닫고 나갔지만, 문 바로 앞에서 말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레일라는 괜찮습니까?’
‘아뇨, 안정을 취해야 하니 오늘은 돌아가시죠.’
‘얼굴을 보고 가고 싶습니다.’
‘돌아가시죠, 브루스 소후작님.’
레이니어의 사나운 목소리에 그가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이상한 긴장감이 들었다.
‘그럼 내일 오면 됩니까?’
‘아뇨.’
‘그럼 모레?’
‘아뇨.’
‘……그럼 언제 와도 된다는 거죠?’
‘아가씨가 안정을 찾으시면 오시죠.’
레이니어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소네트의 당황한 표정에 정신이 확 들었다.
“레일라?”
소네트가 부르자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
-달각
그 와중에도 문은 조용히 닫혔다.
“대화도 하면 안 돼요?”
“네, 안 됩니다.”
“소네트는 손님인데.”
“그 손님 때문에 다치셨습니다, 아가씨.”
레이니어가 웃으며 다가왔는데 어지러워서 그런지 더 잘생겨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죽을 때가 가까우니까 미인계에 더 약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레일라, 미안합니다. 제가 더 신경 썼어야…….’
“앗……!”
‘레일라?’
소네트가 문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손에 감았던 헝겊을 풀어내는 것 때문에 따가웠다.
“아파요.”
-똑똑똑
‘레일라, 괜찮습니까?’
그는 저도 모르게 존대로 돌아올 정도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래서 조금 정신이 들어 말했다.
“소네트 다음에 다시……. 읏…… 아프다니까요.”
“힘을 푸시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레일라.’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내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 휴고가 오갈 때와는 다르게 조용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지나는 듯했다.
소네트가 갔다.
“아…….”
“손이 찢어지셨습니다.”
“꿰매야 하나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좀 더 깊게 다쳤다면 그래야 했겠죠.”
레이니어의 싸늘한 표정 때문인지 주눅이 들었다.
그는 대체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그리고 소네트도 왜 나랑 약혼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난 아직 제대로 무언갈 하지도 않았는데 왜 시작부터 전생과는 조금 달라진 건지.
“흣……!”
그가 상처를 건드리는 것에 움찔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빼려 했다. 그 순간 그에게 손을 꽉 잡혔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우, 우십니까?”
“머리가 아파요. 속도 울렁거리고요. 손도 너무 아프네요.”
어찌 됐건 나는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의 피 한 방울이면 이 모든 게 해결될 테니까.
차라리 때려서 기절시킨 다음 피만 뽑아내면 될 거 같기도 했지만, 그건 안 된다. 그가 ‘자발적으로’ 준 피여야만 효과가 있다.
만약 이런 제약이 없었다면 황가는 절대로 황위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노예처럼 끌려다니며 치료제로 쓰였겠지.
“손을 왜 이렇게 떨어요?”
“추워서요.”
레이니어가 그렇게 말하고는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다가 다시 잡길래 왜 그러냐는 듯 보았더니 쥐어짜듯 잡기 시작했다.
“읏……. 뭐 하는……!”
“지혈이요.”
정말로 효과가 있어서인지 피는 곧 멈추었다. 다만 이제는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시무룩하게 변해 있었기에 뭐라고 말도 못 했다.
친해지려면 계기가 있어야 한다. 친해질 수 있고 우호적인 분위기와 상황이.
그런데 지금은 그가 너무 우울해하고 있었기에 적기는 아닌 것 같았다.
우선 감사인사부터 할까.
“도와줘서 고마워요, 레인. 레인 덕분에 치료도 받네요.”
그러자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설마 내가 감사하다는 말을 안 해서 그런 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레이니어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저 지금은 대외적으로 괜찮은 척하는 것이겠지.
“여기 오기 전에는 어디 있었어요?”
“제가 궁금하십니까?”
“네.”
“왜죠? 다른 귀족도 그렇게 평민을 궁금해합니까?”
일단 평민인 척 들어온 건 알았으니 큰 수확이구나.
“의사는…….”
“의사는 네, 대체로 준귀족들이 많이 하죠. 하지만 저희 아버지께선 준귀족이셨어도 저는 작위를 물려받지 못했으니 평민입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실력이 있으니까 백작저에 온 거겠죠.”
칭찬하듯 말하자 그의 눈이 휘어졌다.
“앞으로 아가씨의 건강은 제가 책임질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앞으로 누굴 만나시든 제 허락을 받고 만나세요.”
“예? 하지만 그건 제 개인…….”
“건강을 위해서요.”
그가 소독약을 쥐고 있었기에 말을 못 했다. 저 소독약을 붓는 순간 느낄 고통이 두려웠으니까.
“자, 잠깐만요!”
“안 됩니다.”
“꺅!”
“다 아가씨 건강을 위해서랍니다.”
소독약은 냉정하게도 손바닥 위로 쏟아졌고, 부글부글 끓으며 상처를 아프게 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치료받는 듯 괴롭힘을 당해야 했고, 그는 내가 정말로 탈진하듯 쓰러지고 나서야 방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