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1화
“관심 없어.”
“뭐? 저놈 정부가 있다니까!”
레일라는 휴고가 하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가 애초에 그렇게 신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신뢰를 깨 버리고 시베르에게 가진 않았겠지.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목소리 낮춰, 휴고.”
레일라는 지금 자신이 20살이라는 걸 감안해도 그가 저와 시베르 사이를 오간 게 한 번이 아니라는 건 상기하고 있었다.
“아, 그렇지. 넌 쟤한테 관심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구나.”
“뭐라고?”
그녀의 말에 그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라도 우리 다시 만나자.”
“미쳤니?”
“응, 다시 너한테 미칠 테니까 우리 다시 시작해.”
휴고가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화장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가.”
“우리 아직 키스도 안 했잖아?”
“나가라고 했지.”
“이참에 키스하자. 넌 첫 키스 맞지?”
“나가라고!”
레일라가 질겁하며 화장대에 있던 향수병을 집었다. 그리고 위협하듯 들며 말했다.
“안 나가면 던질 거야!”
“그래, 던져. 그래야 네 체면도 서겠지. 너무 쉽게 받아주면……. 윽……!”
-팍!
레일라가 겁에 질려 던진 향수병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애초에 뭘 제대로 던져 본 적 없는 그녀가 제대로 명중시킬 리도 없었다.
“이제 됐지? 네 체면에도 이 정도는 해야 명분이 서는 거잖아.”
“나가라고 했어!”
방 안엔 둘뿐이었다. 휴고가 빠르게 다가오자 레일라는 등을 돌리고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병자의 몸으로 달리기는 무리였다. 몇 걸음 달아나지도 못했건만 그에게 어깨를 잡혀 돌려졌다.
“나도 네가 첫 키스라고 해 둘게. 이러면 화가 풀려?”
“네 첫 키스 상대는 언니잖아.”
“……알고 있었어?”
알 수밖에. 그가 직접 말했으니까.
레일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지난 생에 그가 한 조롱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입술에 묻은 화장품이 누구 거라고 생각해? 언제까지 모른 척할 거야?’
“그래서 화가 났구나, 레일라.”
“아니야.”
“그럼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너한테 돌아간다니까?”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너 같은 거 다신 안 보고 싶으니까.”
“화가 많이 났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거짓말을 하지.”
제 어깨를 잡던 휴고의 손이 머리를 붙잡자 그녀는 주먹으로 그의 명치와 어깨를 마구 때렸다. 하지만 그는 그 정도 아픔은 참을 수 있다는 듯 계속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레일라는 분노로 눈을 질끈 감은 채 몸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팍!
“억……!”
그러다가 갑자기 제 눈앞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그녀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화가 나서 고여 있었던 눈물 때문에 앞이 잠시 흐렸다. 그러다가 아주 선명해졌다.
“당신…….”
“머리를 너무 울려서 살 수가 없네요.”
레이니어였다.
그는 표정이 몹시 사나웠다. 거기에 레이니어에게 어떤 조치를 당한 건지 알 수 없는 휴고는 더 사나운 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레이니어가 어떻게 온 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고마워서.
“아가씨.”
레이니어는 분노로 우는 레일라를 보다가 바닥으로 쓰러진 휴고를 힐끔 한번 보았다.
“복수라도 하실래요? 그럼 좀 조용해지시려나?”
“어, 어떻게요?”
“어떻게든요.”
레일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니어는 싱그럽게 웃으며 다가왔다. 눈물로 범벅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던 그의 얼굴은 어느 샌가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쩌려고요?”
“옷 다 벗겨서 청소도구함에 넣어 두려고요.”
“네?”
“그럼 하녀가 발견하겠죠. 남의 저택에서 옷도 안 입고 묶인 채 청소도구함에서 발견된다면 소문이 어떻게 날까요?”
“아.”
그럼 이던 상단도 끝이다. 그런 더러운 추문, 그것도 성적인 추문이라면 끝이었다. 다들 자유롭게 연애하는 듯 보였어도 연애만 하는 것과 성적인 추문이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판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런 추문이 붙은 상단주에게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 말까요?”
“아뇨, 해 주세요.”
“대신 제가 그렇게 하면 제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역시 바라는 게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싸늘하게 변한 레이니어처럼 그녀 또한 사늘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뭔데요?”
“돌아와서 말하도록 하죠.”
레이니어는 기절한 휴고를 짐처럼 번쩍 들더니 나가려 했다. 그러다가 한번 뒤를 돌아보았자 얼굴을 닦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레일라가 반사적으로 웃어 보이는 순간, 그는 휴고를 떨어뜨렸다.
그러다 ‘철퍼덕’ 하는 거친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선 휴고를 다시금 들고 나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레일라는 아무래도 레이니어가 수상했다. 어쩌면 저를 감시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할 정도로 빠른 타이밍에 나타난 게 그랬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녀는 천장을 한번 보았다. 어쩌면 위에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레이니어는 역시 자신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계속 주시하다가 나타나는 게 분명하다.
뭔지는 몰라도 그것을 줘 버리고 피를 달라고 하면 되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